카펠라오너스라운지, 오설록북촌, SSG마켓, 광주요 등 수많은 브랜드의 ‘업그레이드’를 책임진 김아린 대표. 자기 관리에도 철저해 군살이 전혀 없다. 듬직한 심지처럼 걸려 있는 그림은 이배 작가의 회화. 오른쪽으로 보이는 컬러 작품은 색과 점, 바코드를 주요 기호로 작업하는 양주혜 작가의 작품. 그녀는 김아린 작가의 어머니이기도 하다.
김아린 대표의 ‘균형 있는 삶’에서 바탕이자 중심이 되는 곳은 역시 집이다. 분당에 있는 이 단독주택의 설계자는 상암월드컵경기장 설계로 유명한 건축가 류춘수. 돔 형태의 지붕,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중정, 바깥으로 길게 이어지며 안방과 아들 방을 연결하는 구름다리가 시원시원하고 웅장한 미감을 만들어낸다.
한 번씩 김아린 대표의 삶을 들여다볼 때마다 일과 쉼의 균형이 좋다고 느낀다. 올해 여름 그녀는 프랑스 보르도로 한 달간의 여름휴가를 다녀왔다. 남편도 함께했고 양가 부모님 역시 즐거운 마음으로 짐을 꾸렸다. 영국에서 공부 중인 아들 태오도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이들의 여행은 많은 부분 자연스럽고 편안하게 흘러간다. 한데 모여 갈 만한 전시회 정보를 찾고 어느 날엔 수영장 선베드에 둘러앉아 샴페인을 마신다. 저녁이면 인근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즐기고 기회가 닿으면 말을 타고 초원을 달린다.

구름다리를 건너서도 만날 수 있는 아들 태오의 방. 벽에는 자코메티의 드로잉 원화를 걸었다.
여행자로 찾아간 세계지만 그들의 시공간엔 언어 장벽이 없고 무엇보다 정서적 허들이 없다. 김아린 대표의 부모님(알베르 카뮈의 전집 번역으로 유명한 불문학자 김화영, 회화와 설치를 넘나들며 지금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서양화가 양주혜가 그녀의 뿌리다)은 젊은 시절 프랑스에서 공부하며 신혼을 보낸 덕분에 프랑스를 제2의 고향이라 여긴다. 김아린 대표 역시 마찬가지다. 프랑스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면 그렇게 편안할 수가 없다. 부모님이 ‘모험가’인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거긴 가지 말자” “뭐 하러 그곳에 가니?”라는 말 대신 “그곳에서 멋진 전시를 하네” “그 레스토랑 한번 가볼까?”라는 말을 듣는 삶은 그 외연을 자연스럽게 넓혀나간다.

이층 복도. 컬러풀한 색채로 여성을 그린 작품은 페로탕 갤러리 전속인 켈리 비먼의 작품이다. 어머니이자 서양화가인 양주혜 작가의 작품도 곳곳에 걸려 있는데, 김아린 대표는 “해가 갈수록 엄마의 작품이 좋아 계속 욕심을 내게 된다. 내 인생에도 많은 영향을 끼친 멋진 직업여성이자 늘 깨어 있는 모험가이기도 하다”고 했다.
몇 년 전부터 김아린 대표는 온 가족이 함께 하는 한 달 여행을 루틴처럼 지키고 있다. 그 전까지 열심히 일하고 그날이 오면 스스로 공방이라 말하는 회사의 셔터 문을 닫고 미련 없이 떠난다. 그녀의 SNS에 띄엄띄엄 올라오던 여행지에서의 시간이 강렬한 잔영으로 박혀 있던 터라 꼭 추천하고 싶은 여행지부터 물었다. “포르투갈요. 프랑스에 가도 이따금씩 이방인 느낌을 받아요. 뉴욕은 말할 것도 없고요. 그 냉랭함에 한 번씩 정나미가 뚝 떨어질 때가 있지요. 포르투갈에는 그런 게 없어요. 리스본에서 차로 한 시간 30분 정도 떨어진 곳에 믈리데슈Melides라는 작은 마을이 있어요. 아틀랑티크 해안과 가깝고 한겨울에도 평균온도가 영상 10℃ 정도라 프랑스에서도 찾아오는 사람이 많아요. 건드린 적 없는 대자연이 있고, 한쪽으로는 논이 펼쳐지지요. 식당에 가면 양은 냄비로 밥을 지어주고요. 건축가가 지은 숙소도 많아요. 이런 곳은 하루나 이틀은 예약을 안 받고 약 일주일 단위로 예약을 할 수 있는데, 문밖을 나서면 바로 늪지와 연결되는 곳도 있어요. 하루는 아들이랑 선베드에 누워 있는데, 양치기 아저씨가 수영장 너머로 양 떼를 몰고 지나가면서 인사를 하더라고요. 그 정도로 시골이에요. 하루하루 바쁜 마음으로 이곳저곳을 찍고 오는 여행은 휴가가 아닌 출장이라고 생각해요. 며칠이라도 느긋하게 ‘살아봐야’ 진짜 여행이라고 믿지요. 며칠 지내다 보면 옆집 아저씨가 이상한 사람이란 걸 알게 되고, 단골 빵집이 생기고, 노을 구경하기 좋은 장소와 시간을 찾게 되는 것. 그런 순간이 모여 진짜 여행이 된다고 생각해요.” 예나 지금이나 그녀는 “가족과 함께 하는 여행이 행복의 핵심”이라 믿는다.

오토니엘의 Collier Or, 유남권 작가의 옻칠 함, 장 프루베의 테이블과 의자…. 정원을 향해 열린 다이닝룸과 휴식 공간에도 엄선한 아트 피스가 완벽한 ‘합’으로 들어가 있다. 공간을 다른 곳으로 확대하면 오스카 니마이어의 소파, 황형신 작가의 스테인리스 스틸 체어, 김희원 작가의 사진 작품도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브랜딩 전문가인 그녀가 하는 일은 고객의 브랜드와 공간에 이야기의 지도를 만드는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을 고객으로 최욱 건축가와 함께 한 ‘사유의 방’ 프로젝트는 그녀의 감각과 내공을 유추할 수 있는 대표적 사례라 할 만하다. 최욱 건축가는 그 특유의 섬세함을 바탕으로 공간의 바닥과 벽면을 미세하게 기울이고, 반가사유상을 만나는 길도 부러 어둡고 구불구불하게 만들어 불상이 놓인 공간 자체가 작은 우주처럼 느껴지게 했고, 김아린 대표는 그 공간에 ‘사유의 방’이라는 은유적 이름을 붙여주었다. “반가사유상이라는 보물 자체가 초매력 덩어리예요. 제가 대학에서 조소를 전공했잖아요. 다리를 꼬고 한 손은 턱을 받치고 있는 인체를 빚을라치면 100% 다 망해요.(웃음) 엄청난 고난도인 거죠. 그런데 나란히 붙어 있는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을 보세요. 각각 81.5cm, 90.8cm로 1m가 채 안 되는데 신체와 몸짓의 비율과 조화가 완벽하고 마치 열반에 이른 듯 신비로운 오라가 느껴지지요. ‘왜 멋있지?’ ‘왜 웃고 있는 거 같지?’ ‘왜 초월한 것 같지?’ 하는 생각이 계속 드는 거예요. 동양 미술의 핵심을 고요함 속의 움직임, 즉 정중동靜中動이라고 하는데 두 불상 안에 그 정수가 고스란히 담겨 있어요. 알 듯 모를 듯 한 표정 안에 인간의 생로병사와 깨달음도 영혼처럼 들어 있지요. 결국 인간은 사유하는 존재이고 인간의 존재론 끝에 사유가 있는 거예요. 그 보물들이 불상이라서 중요한 게 아니라 사유하는 인간의 모습을 극도로 아름답게 구현해서 보물인 거죠. 이 보물들이 있는 공간을 불교미술실이라 하지 않고 사유의 방이라 명명한 이유예요. 프랑스의 소설가 앙드레 지드가 그랬지요. ‘얼마나 많은 보물을 갖고 있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그것들을 어떻게 보여주느냐가 중요하다.’ 이렇게 공간에 이야기와 숨결을 만드는 일이 너무 짜릿해요. 희열이 있지요.” 사유의 방 밑으로는 이런 부제를 달았다. ‘두루 헤아리며 깊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 작은 퍼즐까지 완벽한 모양과 형태로 만들어 공간과 브랜드에 최상의 해법을 제안하는 기쁨을 더 온전히 누리기 위해 그녀는 1년에 네다섯개의 프로젝트만 맡는다. 팀원도 그녀 포함 네다섯명으로 한정해 “다른 프로젝트가 있어 그 프로젝트는 잘 모른다”는 말을 원천적으로 봉쇄한다. 다 같이 최선을 다하고, 모든 프로젝트를 개인과 회사의 대표 포트폴리오가 되도록 하는 것이 그녀가 일하는 방식이다.

건축가 류춘수가 설계한 집. 상암월드컵경기장의 설계자답게 시원시원하고 웅장한 미감이 두드러진다. 개인적으로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너른 정원이 압도적이었다.
나의 세계관이 있어야 중요한 것을 지킬 수 있다
삶의 균형은 열심히 일하고 열심히 쉬는 것만으로 안착되지 않는다. 매일의 마인드셋과 건강관리가 있어야만 중심이 잡힌다. 김아린 대표의 일상 루틴에는 ‘승마’가 큰 퍼즐로 자리 잡고 있다. “포르투갈로 떠난 여행이 시작이었어요. 남편이랑 아들이 골프를 하는 시간에 저는 승마를 했어요. 승마장 딸린 골프장이 많거든요. 한번 승마를 하고 나면 말과 사랑에 빠질 확률이 높아요.(웃음) 똑똑하고 듬직하고 순하고 사랑스럽지요.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보면 완성도를 높이고 싶어 안달하게 되는데, 승마를 하고 나서부터 그런 마음을 내려놓게 됐어요. 승마는 혼자 하는 운동도 아니고 내가 노력한다고 해서 1백 점을 맞을 수 있는 것도 아니거든요. 말의 마음과 행동을 100% 컨트롤할 수 없잖아요. 서로 교감하지 않으면 1백 점은커녕 10점도 못 맞을 수 있지요. 그렇게 호흡을 맞추기 시작하면 ‘협연’의 즐거움을 서서히 알게 돼요. 육체적으로나 정서적으로 저를 더 나은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너무너무 좋은 운동이지요. 말이 아이큐가 10만 더 높았어도 사람 안 태웠다고 하던데, 한 생명이 저를 위해 한결같은 충성심을 보여주고 애정을 드러낸다는 게 큰 감동이지요. 힐링이고요. 말과 승마, 웰니스가 결합된 브랜딩 프로젝트들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황형신 작가의 스테인리스 스틸 의자와 양주혜 작가의 작품이 어우러진 계단참 풍경.
그리고 집. 김아린 대표의 ‘균형 있는 삶’에서 바탕이자 중심이 되는 곳은 역시 집이다. 분당에 있는 이 단독주택의 설계자는 상암월드컵경기장 설계로 유명한 건축가 류춘수. 돔 형태의 지붕,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만나는 중정, 바깥으로 길게 이어지며 안방과 아들 방을 연결하는 구름다리가 시원시원하고 웅장한 미감을 만들어낸다. 원래 시부모님의 집이었는데 시부모님의 문화와 헤리티지를 이어받고 싶은 마음에 전격, 이사를 결심했다고. “건물 두 채를 연결하는 구름다리를 특히 좋아해요. 겨울에 침실에서 보면 눈이 소복이 쌓여 있고, 문을 열면 강아지가 다다다 그 구름다리를 건너와요.(웃음) 아들도 볼 수 있고요.” 거실과 주방 뒤쪽으로 펼쳐지는 후원을 감상하고 싶어 가로로 길게 열리는 창문을 설치했을 뿐, 원래 집이 지니고 있던 운치와 낭만을 지키기 위해 대수선 같은 큰 공사는 하지 않았다. 그리고 사무실에서 보관하던 이배 작가의 그림. 이 그림을 걸기 위해 거실 한쪽에 따로 가벽을 설치할 만큼 공을 들였는데, 거장의 둥글고 원숙한 붓 터치가 일과 삶에 큰 위안과 영감을 준다. 집에 있는 시간을 좋아하는 그녀는 주말이면 잠깐씩 주흥酒興을 즐기고 수시로 책을 읽는다. 앞으로의 라이프스타일에도, 행복과 럭셔리의 끝에도 ‘책’이 있다고 믿는다. “모든 것이 너무 쉽게 탠저블tangible(만질 수 있는)한 시대가 됐잖아요. 옷도, 차도, 백도 손쉽게 가질 수 있는 시대지요. 하지만 책 읽는 시간은 달라요. 마음이 심란하고 일에 쫓기는 상태에서는 책을 읽기가 쉽지 않아요. 집중해 읽을 수 있는 나만의 공간도 필요하고요. 저는 읽은 책을 다시 읽는 걸 좋아하는데, 그렇게 하릴없이 좋았던 시간으로 다시 미끄러져 들어가는 시간이 좋아요. 모든 것이 너무 빠르게 흘러가잖아요. 챗 GPT도 알아서 해 줄 수 없는 것이 독서의 시간 같아요. 가만, 내 리듬을 지니면서 몰입의 즐거움을 누리는 것, 그런 시간 안에 앞으로의 라이프스타일이 있다고 믿어요.”

창밖으로 정원이 내려다보이는 부부 침실의 한쪽. 에리어플러스 유일선 대표, 챕터원 구병준 대표 등 그녀의 친구들이 만들거나 소개해준 가구도 눈에 띈다. 공간 곳곳에는 ‘책’이 원칙이자 숨구멍처럼 놓여 있다. 그녀가 알베르 카뮈 전집을 번역한 불문학자이자 아버지인 김화영 교수에게 배운 것은 ‘완주하는 삶’이다.
인터뷰 말미, 김아린 대표가 삶은 저글링 같다고 했다. 중요한 ‘공’들을 떨어뜨리지 않기 위해 부단히 애를 쓰는 것. 살다 보면 공을 떨어뜨릴 때도 있겠지만 계속 노력해서 이왕이면 그 공을 다 지켜내고 싶다고…. 일과 가족, 책과 여행은 그 저글링을 더 크고 부드럽게 하는 삶의 기술이자 김아린 대표의 세계관을 압축하는 구체적 지표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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