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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트먼트 라이프 두 사람이 가꾼 머누는 작업실
어떤 일을 하느냐가 우리의 일상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패션과 그래픽. 분야는 다르지만 디자이너로 일하는 이한희·이형석 부부는 각자가 해오던 작업 방식을 공간으로 끌어와 둘만의 집을 만들었다.

패션 디자이너 이한희와 그래픽 디자이너 이형석은 다양한 취미 활동과 작업을 병행하는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주방의 거실화를 모색했다.
어떤 인연의 시작은 협업에서 피어나기도 한다. 패션 브랜드 코스모스Cosmoss를 운영하는 이한희 디자이너와 그래픽 디자인 스튜디오 강과돌(River and Rock)의 이형석 디자이너가 한 지붕 아래 살게 된 계기도 협업이었다. “예전부터 남편을 건너 건너 알고 지냈어요. 평소 해오던 그의 작업이 제 취향이라 브랜드 리뉴얼 작업을 자연스레 의뢰하게 됐죠.”

 

두 사람은 적절히 비워진 공간과 역할이 분명한 공간이 공존하는 집을 꿈꿨다. 바닥의 경우, 아내 한희 씨의 뜻에 따라 검은색 마모륨으로 마감했다. 아주 작은 먼지도 잘 보이는 탓에 로봇 청소기를 작동시켜야 하는 일이 빈번하지만 그래도 만족스럽다고.


클라이언트와 디자이너로 협업하던 두 사람은 자연스레 서로의 성향을 알아갔다. “그 시절 함께 일하며 시작된 연이었는데, 작업에 대한 고민들을 이래저래 털어놓기도 했어요. 아내가 참 멋있었어요. 제 얘기를 잘 들어주고, 조언도 많이 해주고, 본인 일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일로 만난 인연인데 삶과 업에 대한 긍정적인 영향을 받았어요.”


한희 씨도 마찬가지였다. “저는 굳이 비유하면 ‘싫어’라는 말을 자주 하는 사람인데, 남편은 ‘좋아’를 입에 달고 사는 사람이었어요. 평소 보는 눈이 까다롭고 일상을 빽빽하게 사는 제게 남편이 필요한 존재라는 걸 느꼈죠. 같은 방향을 바라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걸요.” 일로 마주 앉아 회의하던 두 사람은 어느새 작업실 밖에서도 서로를 마주하며 그렇게 인연을 맺었다.

 

현관에 들어서면 보이는 좌측 수납공간 모습. 다양한 컵을 모으는 아내 한희 씨는 수납장에 놓인 잔이 은은한 오브제처럼 보이길 원해 불투명 유리를 골랐다. 옆에 걸린 빨간 가방은 코스모스 플래그 Flag 토트백. 아내 한희 씨가 운영하는 패션 브랜드의 팝업 론칭에 맞춰 두 사람이 협업해 제작했다.


두 사람의 첫 보금자리는 방 두 개에 거실을 갖춘 20년 넘은 66㎡ 구옥 아파트. 6년 전 남편 형석 씨가 어머니의 조언을 듣고 마련한 집이었다. 그런데 이곳에 함께 살기로 결심했을 당시 형석 씨는 어딘지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었다. “워낙 오래된 집이다 보니 손댈 곳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거든요. 썩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한희 씨는 조금 다르게 바라봤다. “고칠 게 많은 만큼 이 집을 우리만의 취향으로 가득 채울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직면한 문제를 해결하는 걸 좋아하는 한희 씨의 성향은 형석 씨의 관점을 변화시켰다.

디자이너 세 명이 함께한 즉흥 놀이
화면 안 레이아웃과 글자가 지닌 조형적 아름다움에 매력을 느낀 남편 형석 씨. 그는 자연스레 3차원 공간을 평면으로 본 다음,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따라 이를 재해석했다. “작은 평형대의 집이니 전통적 형태의 주방과 거실의 성격을 담으면 불가피하게 어딘지 비좁고 구겨진 듯한 레이아웃의 집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그가 생각한 건 거실의 주방화. 기존 집의 거실과 주방이 7:3 정도의 비율이었다면 이를 4:6 정도로 재조정하는 것이었다.

 

거실에는 형석 씨의 할머니가 어머니에게, 형석 씨 어머니가 한희 씨에게 물려준 수공예 함을 비롯해 두 사람에게 의미 있는 가구와 오브제가 다양하게 놓여 있다. 포인트를 주는 소파는 마틴 비셔Martin Visser의 데이베드. 한희 씨가 예전부터 갖고 싶어 하던 걸 중고 구매 플랫폼을 뒤져 찾아냈다.
“공간, 특히 주거 프로젝트는 클라이언트의 니즈가 무엇인지 탐구하는 데 시간이 꽤 오래 걸리는데요, 두 분은 원하는 바가 분명했어요.” 스튜디오 티엠엠의 이민호 디자이너는 부부가 그린 집의 모습을 구체화하면서도 절충안을 찾는 데 주력했다. “거실을 좁히면 당장은 부부의 라이프스타일에 잘 맞는 집일 테지만, 향후 이 집에 다른 사람이 들어와 살 수도 있잖아요.” 그는 이 집의 메리트를 고려하면서도 두 사람이 원하는 바를 구현하고자 ㄱ자로 주방을 구성, 베란다 밖을 마주하며 주방에 머무를 수 있는 확장성을 더했다. 여기에 평소 노트북 작업 및 독서 등을 할 때 거실을 이용하는 부부의 습관을 고려해 접이식 테이블을 설치, 필요시 주방을 거실처럼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틈입시켰다.

 

베란다에는 남편 형석 씨가 혼자 살 때 사용하던 책장과 조명, 의자 등이 놓여 있다. 방에는 가급적 짐이 적었으면 하는 아내를 위해 이곳에 짐을 몰아놓았다. 책장 맞은편에는 평소 러닝을 좋아하는 형석 씨의 러닝화들이 놓여 있다.


구조적인 부분은 그래픽디자이너 형석 씨가 담당하고, 공간 디자인의 절충안은 이민호 디자이너가 맡았다면, 공간의 소재는 한희 씨가 전담했다. 스튜디오 티엠엠에서 공간이나 가구를 디자인하고 소재를 제안하면 디테일한 부분에 대한 아이디어를 한희 씨가 제안하는 식이었다. 주방 수납장 유리를 고른 것도 한희 씨였다. “원단 소재를 고를 때 투명한 소재보다는 반투명 나일론으로 윈드 재킷 만드는 걸 좋아해요. 그것이 만들어내는 은은한 실루엣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평소 성향이 집을 꾸밀 때도 자연스레 드러나게 된 듯해요.”

 

거실에 놓인 검은색 조각 작품은 형석 씨의 할아버지이자 1세대 조각가인 김영중의 작품이다.


누군가 아이디어를 내면 그걸 발전시키고 그 위에 또 다른 의견을 덧대는 방식. 형석 씨는 이를 즉흥 놀이에 빗대었다. “인테리어를 준비할 당시 복잡한 일이 산적해 있었어요. 그런데 집을 꾸미는 일만큼은 즉흥 놀이하듯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 있어요.” 이민호 디자이너는 이렇게 반응했다. “공간을 만들 때 머릿속에 있는 아이디어를 이해시키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곤 하는데요, 두 분은 달랐어요. 한 가지 생각을 말하고 어떤 예를 제시하면 부부가 단번에 알아들었죠. 생각의 싱크를 맞추기 수월했어요.”

 

패션 디자이너 한희 씨는 옷을 만들 원단을 고르듯 화장실 타일을 고를 때도 신중했다.


분야는 다르지만 추상을 구체화하는 부부. 따로 출근하던 이들은 이제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곳으로 향한다. “작업실도 집도 함께 쓰며 붙어 있는 시간이 더더욱 길어졌는데요. 점점 융화되는 기분이 들어요. 남편이 업무와 관련해 틈틈이 피드백을 해주면 그게 지루하지 않고 재밌어요. 얼른 팀원들에게 공유하고 싶어지고요.” 남편 형석 씨는 이렇게 말한다. “머문다는 건 그저 쉬는 게 아니라, 관찰하고 생각하고 느끼는 일이라 믿어요. 아내와 함께하는 이 집은 일상이 곧 작업이고, 대화가 아이디어가 되며, 반복되는 하루가 다음 날 영감으로 이어져요. 이 집이 행복과 영감으로 가득하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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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승훈 기자 | 사진 박찬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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