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제관 내부의 모습. 왼편에는 작가 허명욱의 ‘M230815’, ‘M230321’, 오른편에는 소목장 구한회의 책장과 소목장 김병수의 3층 책장이 전시돼 있다. 정중앙에 놓인 작품은 소목장 정권석의 책장.
2025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주제전이 열리는 진주역 차량정비고.
시간으로 환산하면 약 네 시간, 거리로 치환하면 약 333km. 서울을 기준으로 한반도 거의 끝자락에 가까운 진주. 바로 이곳에서 지난 10월 1일 2025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가 개막했다.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는 2019년 진주시가 ‘유네스코 공예 및 민속예술 창의도시’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2021년부터 열린 국제 공예 행사다. 이날 진주의 하늘은 푸르렀고, 따사로운 햇살과 솔솔 부는 바람이 줄다리기하며 진주를 찾은 이들을 환하게 맞이했다. 교각 아래로 유유히 흐르는 남강에는 10월 4일부터 보름간 진행하는 진주남강유등축제를 위해 준비한 유등 7만여 개가 물결을 따라 넘실거리고 있었다.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주제관 입구.
올해로 3회를 맞이한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의 주제는 ‘사이(Between Nature To Human)’. 11월 16일까지 47일간 전통 공예의 정수에 현대적 감성을 아우르는 전시 및 행사가 진주역 차량정비고,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진주성 내에서 개최된다. 개막식 현장에는 조규일 진주시장과 장동광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장, 오쓰카 쓰요시 주부산 일본국 총영사, 이영혜 디자인하우스 대표, 참여 작가 및 진주 시민 등 3백여 명이 참석했다. 지난 1, 2회에 이어 이번에도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예술 총괄은 조일상 예술감독이 맡았다.
지리산과 인접해 질 좋은 목재를 구할 수 있는 까닭에 일찍부터 소목이 발달한 진주. 이번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역시 진주의 지역적 특성을 십분 활용, 나무를 이용해 가구를 만드는 진주 소목장小木匠과 협업했다. 전시 주제인 ‘사이’와 맞닿는 지점이다.

정면에 보이는 작품은 류남희 도예가의 도자 작업. 전시장에는 오준식 미술감독과 소목장이 협업해 만든 스툴이 곳곳에 놓여 있다. 창 너머로 보이는 작품은 김정범 도예가의 '우기청호'.
비엔날레의 개막식과 주제전이 열리는 진주역 차량정비고도 과거와 현재 사이를 보여주는 상징적 장소다. 차량정비고는 1925년 진주역이 들어서면서 기차를 정비하기 위해 지은 곳으로 현재 등록유산 제202호로 지정된 근대 문화유산이다. 한동안 사람이 찾지 않아 수십 년 세월이 켜켜이 쌓였으나 2023년 전시관이라는 새로운 역할을 부여받은 진주역 차량정비고는 올해도 관람객과 공예 사이를 이어준다. 1백 년 된 은행나무 가로수길, 그 길을 따라 보이는 웅장한 붉은 벽돌 건물과 거대한 아치형 나무문은 명실상부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를 상징하는 풍경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별전이 열리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는 이성자 화백과 진주 소목장의 작업이 함께 전시돼 있다.
차량정비고에서 전시장으로 옷을 갈아입은 주제관에는 목공·도자·옻칠·금속·섬유 분야에서 전통 기법을 재해석하거나 공예 재료를 새로운 맥락으로 활용하는 국내외 공예 작가 25인의 작업이 관람객을 맞이할 준비를 마쳤다. 세계적 공예 행사로 확장을 모색하는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답게 올해는 특별히 일본에서 참여한 미야모토 테이지 중요무형문화재(인간 국보)가 엄선한 셀렉션과 미키 효에쓰 4대 옻칠 작가의 수준 높은 작품인 ‘잔잔한 물결’ ‘밤의 바다에서’도 만날 수 있다.
주제관 한편에 마련한 다도관.
머무는 전시장, 몰입하는 관람객
진주역 차량정비고를 공예 전시장으로 만든 주인공은 오준식 디자이너. 그는 이곳을 전통 공예의 활기를 오랫동안 관찰할 수 있는 몰입의 장소로 변모시켰다. 이를 위해 고안한 건 다름 아닌 의자다. 진주 소목장 강종렬 장인과 협업해 제작한 옵저베이션 시트Observation Seat를 전시장 곳곳에 비치해 관람객과 공예의 거리를 밀착시켰다. 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이 동선에 따라 작품을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자연스레 앉아 머물며 작품을 감상하는 풍경을 만들기 위해서다.

일본 목공 분야 중요무형문화재 인간 국보 미야모토 테이지가 자신의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한편 진주역 차량정비고에서 약 5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는 특별전 두 개가 열린다. 제1전시실에서 열리는 은 현대 추상미술의 대가이자 1991년과 2002년, 프랑스 정부로부터 문화 예술 공로 훈장 ‘슈발리에장’과 ‘오피시에장’을 받은 이성자 작가와 진주 소목 장인의 컬래버레이션 전시로, 전통과 현대 사이의 감각적 교차를 통해 이번 비엔날레의 주제 의식을 선명하게 보여준다. <일무, 그 길 너머로> 전시가 진행 중인 제2전시실에는 이성자 작가와 성파 스님의 인연을 기억하며 두 거장의 대형 회화 작품이 관람객을 맞이한다. 제2전시실에 놓인 스툴은 흡사 그림의 연장처럼 연출했다.

미키 효에츠 4대 옻칠 작가와 그의 작품 ‘밤의 바다에서’.

미키 효에츠 4대 옻칠 작가와 그의 작품 ‘밤의 바다에서’.
한편 주제전에서 놓치지 말아야 할 작품도 있다. 2회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와 마찬가지로 <행복이 가득한 집>을 비롯해 <디자인> <럭셔리> 등 매거진을 만드는 디자인하우스 미술팀이 기획하고 강종렬 소목장·김우길 두석장과 협업해 전통 방식으로 제작한 액자로, 주제관 초입에 자리해 의미가 깊다. 차를 즐기던 전통이 남아 있는 진주의 문화적 가치를 기리고자 마련한 다도관(CRAFTea)도 관람 포인트 중 하나다. 이 외에도 10월 20일부터 국내 유명 작가의 작품과 생활 소품을 만날 수 있는 진주성 내 중영 제2 특별전시를 비롯 국제학술토론회, 유네스코 창의도시 공예마켓 등 다채로운 행사를 마련해 관람객에게 보다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한다.
저물어가는 가을, 철도문화공원 주변도 걷고 1백50여 개의 공예품도 감상하며 지루하던 일상 속 틈 사이사이를 각자만의 의미로 채워보는 건 어떨까. 아름다운 도시 진주의 풍경과 전통 공예의 정수, 여기에 현대적 감성의 결합까지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2025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는 오는 11월 16일까지 열린다.
INTERVIEW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조일상 예술감독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의 대화 공간

올해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의 주제는 ‘사이’입니다. 관람객에게 무엇을 전하고 싶은가요? 공예는 자연의 질서와 우리의 손과 마음으로 쌓아온 뿌리 깊은 전통 위에서 창조적 흔적을 남겨온 예술입니다. 자연과 인간, 전통과 현대를 잇는 이 모든 경계의 사이에서 공예가 품고 있는 깊은 사유와 감각 그리고 시대를 넘어 이어온 공예의 창의적 여정을 ‘사-이’라는 경계의 연속된 의미를 통해 관람객에게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지난 비엔날레 주제는 ‘오늘의 공예, 내일의 전통’이었습니다. 2회 때와 이번 비엔날레에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이번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는 여러 분야의 공예 작품과 함께 진주의 대표 공예로서 진주 소목 가구 중심의 목공예 분야를 집중 조명했습니다. 다양한 공간 속에서 목공예 작품과 다른 작품들이 함께 어울리며 변주되는 구성을 시도했습니다. 또한 일본 목공예 분야의 인간 국보, 미야모토 테이지 작가와 그의 작품을 초대해 진주 소목과 국내 목공예 작품을 비교해보며 교류하는 기회도 마련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특별 전시로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진주 소목과 이성자 화백의 회화 작품을 현대적 감각으로 조화롭게 연결했는데요, 진주 소목의 특성을 보다 명확하게 확인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합니다.
진주철도문화공원 차량정비고에서 하는 주제전과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 열리는 특별전으로 나누어집니다. 2025년 올해는 차량정비고가 1백 년 된 해입니다. 진주의 근현대사를 함께 겪어온 상징적 문화재 건물로서 공예 예술을 담아내기에 충분히 아름다운 장소입니다. 특별 전시로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에서는 진주의 대표 공예인 진주 소목, 진주를 대표하는 현대미술가 이성자 화백의 회화 작품을 매치해 전통 가구와 현대미술의 감각적 조화를 시도했습니다.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는 작은 규모이지만 내용 면에서 집중되고 집약적인 강한 구성을 추구합니다.
진주공예비엔날레 관람 포인트를 추천해준다면요. 주제관에는 다양한 공예 작품의 다름과 같음을 찾아보며 머무를 수 있도록 특별 제작한 소목 의자를 비치했습니다. 작품 앞 소목 의자에 한참을 앉아 계셔도 좋습니다. 차량정비고 부대 공간에는 다도관을 조성했습니다. 진주는 한국 차 문화의 수도이고 다도의 역사가 깊습니다. 전시 기간 동안 다도 체험이 무료로 진행되니 살아 있는 공예의 완성으로 다도 체험하며 따뜻한 차와 함께 명상 시간을 가져보셨으면 합니다.
INTERVIEW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오준식 미술감독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도시, 몰입하는 비엔날레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미술감독을 제의받고 진주에 오셨잖아요. 당시 느낀 인상은 어땠나요? 진주는 과거 조선 시대 문화와 근대 문화가 잘 섞여 있는데요. 그 모습을 보며 진주가 공예와 참 잘 어울린다는 인상을 받았어요. 비엔날레 같은 예술 행사를 하기에 적합한 도시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지금은 도시 일부에서 비엔날레가 열리지만, 향후에는 도시 전체가 공예 행사로 물들면 좋겠어요. 매력적인 도시 진주의 아름다움을 많은 분이 경험하셨으면 해요.
2025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 전시관의 기획 의도는 무엇인가요? ‘관객이 전시장에 머물 수 있게 만들자’였어요. 동선을 따라 휙 지나가는 게 아니라 잠시나마 머물면 자연스레 작품 속에서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이를 위해서 강종렬 소목장과 협업해 제작한 스툴을 전시장 곳곳에 배치했습니다. 중요하게 생각한 건 작품을 관람하는 데 방해가 되거나 작품으로 향하는 시선을 뺏지 않는 것이었죠.
이어지는 맥락입니다. 관람객과 공예품 사이의 간격을 좁히고자 전시장에 가벽을 설치해 동선을 만들었어요. 차량정비고는 커다란 기차가 정비를 위해 들락날락거리던 큰 스케일의 공간인데요, 덩그러니 작품을 놓으면 관람객에게는 작품보다 공간감이 더 크게 다가갈 수 있는 구조였죠. 대비가 워낙 크니까요. 다만 전시장 동선 모서리 사이를 막지 않고 틈을 만들어 근대 건물이 지닌 공간감과 올곧은 매력도 충분히 느낄 수 있게 했어요. 의자에 앉아 가벽 곳곳으로 보이는 창을 바라보면 서 있을 때는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중첩된 장면이 눈 앞에 펼쳐집니다. 창에 칠한 색은 진주성 단청에서 영감을 받아 골랐습니다.
특별전이 진행 중인 진주시립이성자미술관 제2관의 스툴은 작품의 연장선처럼 느껴졌는데요, 이유가 있을까요? 성파 스님의 작품은 스케일이 꽤 큽니다. 세밀히 들여다볼 때 발견할 수 있는 것이 무궁무진하죠. 실제로 앉아서 바라보면 멀리서는 안 보이던 게 보여요. 가령 물이 흐르는 모양이랄지, 물결이 흐르는 방향 같은 것이 말이죠. 그런 의미에서도 스툴은 필수였는데요, 차이가 있다면 주 전시의 스툴은 존재하는 듯 존재하지 않는 듯한 심플한 느낌이 필요한 반면, 성파 스님의 작품 앞 의자는 있는 듯 없는 듯 존재하는 게 아니라 작품과의 연속성이 필요했어요. 그래서 성파 스님 작품과 최대한 유사한 색과 결을 지닌 나무를 찾는 데 심혈을 기울였죠.
INTERVIEW
조규일 진주시장
전통 공예의 어제와 내일을 볼 수 있는 비엔날레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가 올해 3회를 맞이했습니다. 소감이 어떤지 궁금합니다.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는 진주시가 지난 2019년 유네스코 공예 및 민속예술 창의도시로 지정된 것을 기념해 2021년부터 시작한 국제 공예 행사입니다. 3회를 맞이하는 올해는 유네스코 창의도시 의장 도시로서 비엔날레를 주관하는 의미 있는 해이기도 하죠. 47일간 개최하는 올해는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의 정체성을 확립하고, 진주의 전통 공예가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정하는 중요한 시기입니다. 이번 전시에는 공예의 깊이와 확장성을 드러내 새로운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작품을 선보이는 데 주력했습니다. 많은 분이 진주 소목을 비롯한 진주 공예의 아름다움과 대한민국 공예의 깊이 및 확장성을 만끽하면 좋겠습니다.
전통공예비엔날레를 개최하는 데 진주가 지닌 강점이 있다면 무엇인가요? 진주는 지리산과 남강을 배경으로 풍부한 자연환경 속에서 전통 공예가 발전해왔습니다. 특히 소목의 도시로 불릴 만큼 우수한 목공예 전통을 지닌 지역이기도 합니다. 또한 소목장, 장도장, 두석장 등 여러 다양한 분야의 무형문화유산 보유자와 이수자가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으며 진주목공예전수관, 진주공예창작지원센터, 실크박물관 등 다양한 인프라가 구축되어 공예 산업을 육성하기 좋은 도시입니다.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를 찾은 관람객에게 소개하고 싶은 진주의 명소가 있을까요? 먼저 임진왜란의 대첩지이자 진주의 상징인 진주성을 추천합니다. 성곽과 촉석루, 남강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진주의 깊은 역사와 문화를 느낄 수 있습니다. 낮에는 산책하기 좋고, 밤에는 아름다운 야경이 펼쳐지는 남강 변도 예술의 감성과 잘 어울립니다. 맨발로 숲길을 걸으며 힐링하거나 산림 레포츠, 목공 등 다양한 체험을 즐기며 진주의 산림 문화를 경험할 수 있는 월아산 숲속의 진주도 빼놓을 수 없는 곳입니다. 밤에는 달빛정원 등 조명 경관이 더해지며 색다른 분위기를 자아냅니다. 마지막으로 진양호공원을 추천합니다. 경치 감상과 드라이브 코스로 좋을 뿐만 아니라, 전망이 트여 있어 산책과 여유를 즐기기 알맞은 장소입니다. 예술과 역사, 자연과 문화가 어우러진 공간 속에서 진주의 다채로운 매력을 경험하시길 바랍니다.
진주전통공예비엔날레가 어떤 축제로 자리매김했으면 하나요? 지속 가능한 지역 문화 생태계를 조성하고, 전통 공예의 저변을 확대해 다양한 산업을 육성함으로써 지역 경제가 살아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단순한 전시에 그치는 행사가 아닌, 전통 공예의 현재를 확인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전시회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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