왠지 모르게 책이라는 사물은 귀하고 숭고하며 진지하게 대해야 할 것만 같은 인상을 준다. 소란보다 고요한 상태에서 몰입해야만 무언가를 길어 올릴 수 있다고 여겨지기도 한다. 하지만 주지하듯 독서의 ‘독’자는 홀로 독獨이 아니다. 저자와 독자 사이를 이어주던 매개물로서 책은 오늘날 낯선 사람과 사람 사이를 연결하는 댓글창으로, 한 인물의 요즘 근황을 살필 수 있는 창구로도, 브랜드 혹은 공간의 풍요와 다양성을 가미하는 콘텐츠로도 활용한다. <행복> 편집부가 독서의 계절 가을을 맞아 한적한 책 이야기 대신 책을 둘러싼 북적북적한 사례를 살펴본다.
패션과 미식, 그리고 책이 교차하는 장소
르 카페 루이 비통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세상에 존재하는 걸 얼마나 설득력 있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메종 루이 비통 내 새로 문 연 르 카페 루이 비통은 본래 존재하던 재료를 조합해 새로움으로 승화시킨 사례의 좋은 본보기다. 르 카페 루이비통은 카페와 도서관은 오래전부터 자리한 식·문화 공간을 하나로 결합했다. 단순한 미식 여정뿐 아니라 교양과 문화를 맛보는 경험까지 추가한 공간을 만든 것. 루이 비통 컬리너리 커뮤니티의 아르노 동켈레 셰프, 막심 프레데릭 페이스트리 셰프와 협업해온 윤태균 셰프가 미식 디렉션을 맡아 루이 비통만의 독창적 메뉴를 선보인다. 여기에 시선을 압도하는 돔 형태의 책장과 북 큐레이터가 선별한 서적을 비롯해 안토니 윤 셰프가 직접 고른 요리 관련 도서를 더해 미식에 문화를 가미한 풍성한 서적 목록을 완성했다. (<행복>에서 발간한 도 있다!) 또한 루이 비통 에디션에서 출간한 여행, 스타일, 루이 비통의 살아 있는 유산을 주제로 한 다양한 시리즈 출판물을 구비해 패션 브랜드의 정체성을 부드럽게 녹여냈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압구정로 454 4층
뉴욕 현대미술관의 예술적 감성으로 빚은 공간
현대카드 MoMA 북스토어
미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사람도 한 번쯤 들어봤을 이름 뉴욕 현대미술관(MoMA). 현대미술의 정수라 부르는 뉴욕 현대미술관의 엄선된 도서 컬렉션과 상품을 소개하는 현대카드 MoMA 북스토어가 서울 압구정 도산공원에 상륙했다. 이곳은 뉴욕 현대미술관이 직접 출판한 전시 도록을 비롯해 아트·디자인·건축 관련 도서 약 2백 종 1천1백여 권을 비롯해 다양한 디자인 상품을 선보이는 전 세계 최초이자 유일한 MoMA 발간 도서 전문 매장이다. 공간은 디자인 스토어가 아닌 북스토어라는 이름답게 책을 적극 활용한 부분이 눈에 띈다. 오늘날 예술의 흐름을 주도하는 MoMA답게 감각적 디자인 제품 외에도 색감과 디자인이 돋보이는 서적을 전면 배치해 책이 정보 제공이란 용도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기능할 수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주인공인 책을 돋보이게 하고자 공간의 톤은 화이트 계열을 적용했으나, 일부에 주황색으로 포인트를 주어 비치된 책을 보다 감각적으로 보이게 하는 동시에 시선을 사로잡는 흡입력을 확보했다.
주소 서울시 강남구 도산대로45길 18-10
차와 공간, 거기에 책을 곁들인 몰입의 공간
타스테 리딩룸
타스테 리딩룸은 디자이너 서지와 민우이안양이 운영하는 공간이다. 두 사람은 영어 단어 테이스트taste를 한글 발음으로 옮겨 타스테란 이름을 짓고, 테이스트가 함의한 취향과 맛이라는 두 가지 의미로 공간을 지었다. 타스테 리딩룸은 몰입을 위해 채우기보다는 비워내는 데 중점을 두고 설계한 공간이다. 오직 책과 차만을 통해 온전히 스스로에게 집중하도록 테이블 맞은편에는 과감히 의자를 두지 않아 시선 간섭을 최소화했다. 또한 유리창 너머 빈 앞마당과 흰 벽으로 시선이 먼 곳을 향하도록 해 비워내는 경험을 시각화했다. 반지층의 특성을 살려 외부에서 내부를 조감하듯 내려다보이는 장면을 확보해 공간 전체를 하나의 개방된 독서 장면으로 인지하도록 연출했다. 외부에서 보면 책을 읽는 사람이 하나의 파노라마 장면처럼 흐르도록 연출했다.
주소 서울시 서대문구 연희동 119-24 102·103호, 자갈밭 아래
브랜드 전시에 책을 더하는 방식
알로소
방을 주제로 하는 전시는 종종 볼 수 있지만, 방과 책을 함께 전시 요소로 활용한 사례는 쉬이 찾기 어렵다. 하이엔드 리빙 브랜드 알로소가 다섯 번째로 진행하는 팝업 전시 <소파多방: Sofa & Time>은 소파를 가구가 아닌 나만의 시간을 보내는 하나의 방으로 재해석했다. 다섯 개의 테마룸으로 구성한 전시장 중 방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요소를 배치했다. 다름 아닌 책장과 책이다. 알로소는 디자인 출판 레이블인 안그라픽스와 협업해 전시장에 비치한 책장 속에 감각적이고 다채로운 서적을 채워 넣었다. 책을 단순 진열에서 더 나아가 실제로 꺼내 볼 수 있는 체험 요소로 활용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클래식 문화 예술 플랫폼 풍월당이 큐레이션한 낭만주의 시대 음악을 곁들여 소파 위 쉼의 형태를 보다 감각적으로 풀어냈다. 또한 각 출판사와 책을 주제로 하는 다양한 북 토크를 진행해 책이 브랜드 전시의 단순한 아이템에 머물지 않고, 전시를 풍요롭고 의미 있게 만드는 콘텐츠가 되었다.
주소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8길 11-18 코브더장충
기간 11월 2일까지(10월 6일 추석 당일 휴무)
리브 고슈 헤리티지를 담은 실험적 문화 서점
생로랑 바빌론
파리 7구 그레넬 거리에 문을 연 생로랑 바빌론Saint Laurent Babylone은 1970년 이브 생 로랑과 피에르 베르제가 거주하던 세브르바빌론 지역의 이름에서 따온 것으로, 파리의 문학·예술 전통을 현대적으로 계승한다. 안토니 바카렐로Anthony Vaccarello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1966년 생 로랑의 상징적 ‘리브 고슈Rive Gauche’ 부티크에서 영감을 받아 패션과 문화를 교차하는 실험적 무대로 설계했다. 크림·화이트 톤 대리석 카운터 위에는 생로랑 자체 제작본(SLRD editions), 절판 출판물, 아트 프린트, 레코드 등 희귀 서적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흰 회반죽 벽, 어두운 블루·화이트 러그, 간결한 원목 테이블이 절제된 인더스트리얼 무드를 완성한다. 큐레이션은 바카렐로가 직접 맡았으며, 저자 사인회와 낭독회 및 라이브 음악 세션 등 다양한 이벤트가 예정돼 있다. 생로랑 바빌론은 단순한 패션 매장이 아니라 책과 예술 및 대화를 아우르는 서점으로, 파리 문화 속에 브랜드 헤리티지를 새롭게 스며들게 한다.
주소 9 rue de Grenelle, Paris, Fr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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