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주목할 공간 집에서 시작된 예술 무대 - 리빙룸 마이알레 · 아트 레지던시
네이처 라이프스타일을 제안하는 마이알레가 자신들이 살던 주택을 개조해 복합 문화 공간 ‘리빙룸 마이알레 이태원Living Room My allee Itaewon’을 연 지도 어느덧 1년 반이 지났다. 우경미·우현미 대표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리빙룸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마이알레 아트 레지던시’를 새롭게 열며, 생활과 예술이 만나는 무대를 집 한 채에서 두 채로 확장했다.

아치형 계단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가면 거실, 침실, 욕실 공간이 이어진다. 이곳 역시 다양한 마이알레 제품으로 채웠다. 우경미·우현미 대표가 다년간의 노하우를 바탕으로 감각적으로 큐레이션한 모든 제품 및 작품은 구매할 수 있다.


서울 용산구 이태원로의 한적한 주택가, 오래된 담장과 나무 그림자가 드리운 골목 안쪽에 리빙룸 마이알레 이태원이 자리한다. 골목으로 들어서면 은은히 퍼지는 나무 향과 세월이 깃든 주택 특유의 온기가 먼저 반긴다. 원래 이곳은 우현미 대표가 거주하던 2층 주택이었다. 2023년 11월, 이 집은 음악과 전시, 퍼포먼스, 토크가 자유롭게 오가는 복합 문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리빙룸 설계에서 우현미 대표가 가장 중시한 것은 ‘집의 결’을 지키는 일이었다. 붉은 벽돌 바닥과 기와, 40년 된 벽 마감은 그대로 두고, 손댄 부분은 아들 방의 문을 뗀 것이 전부다. “증축과 기존 구조의 경계를 드러내 벽, 유리문, 커튼이 겹겹이 공간을 이루게 했어요.” 완성된 공간에는 브라이스 와이머Bryce Wymer의 회화·도마니·헨리딘·비토시 등의 제품과 김현성의 가구, 패브릭, 러그가 어우러진다. 전시가 바뀔 때마다 가구와 작품은 자리를 비웠다가 돌아오며, 공간은 계절처럼 변모한다.

 

 

1층의 리빙룸 마이알레 이태원은 사람들이 자유롭게 모여 교류할 수 있도록 열린 구조로 마련했다. 특히 1960년대에 제작한 마르치오 체키의 라운지체어가 공간의 중심을 잡아준다.


알려진 것처럼 마이알레는 더현대 서울, 현대카드 사옥, 네이버, 현대프리미엄아울렛 스페이스원 등 많은 프로젝트에서 독창적 감각을 보여준 대표적 조경&공간 디자인 회사 ‘디자인알레’가 뿌리다. 이 브랜드가 리빙룸 마이알레 이태원을 시작한 것은 단순한 사업 확장이 아니었다. 브랜드가 품어온 라이프스타일의 범위를 물건에서 문화와 예술로까지 확장하려는 시도였다. “처음엔 팀 안에서도 논쟁이 많았어요. 기존 업무와 직접적 연관이 없어 보였고, 솔직히 팝업 임대가 수익성은 더 높았죠.” 우경미 대표는 웃으며 당시를 회상했다. “하지만 라이프스타일은 화병이나 블랭킷, 가구 같은 사물에만 머무르지 않는다고 생각했어요. 그 속에 문화적 숨결이 스며들 때 비로소 온전해지죠. 리빙룸이 그 역할을 해주길 바랐어요. 실험적이고, 어쩌면 무모한 선택이었죠.”

 

내부는 디자인알레의 조경과 마이알레 리빙 숍의 제품이 어우러진다. 벽에 걸린 작품은 브라이스 와이머의 ‘우루빌바 Uruvila A, B’. 가구와 오브제의 큐레이션은 유기적으로 변화하며, 새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이미 과천의 식물원 콘셉트 셀렉트 숍과 카페, 백화점 매장 등 여러 거점을 운영해온 마이알레는 리테일이라는 틀에서 벗어나고자 했다. 리빙룸은 ‘집’이라는 공간 안에서 물건이 놓이고, 방문객은 그 쓰임을 몸으로 느낀다. “거실은 외부 손님을 맞아 취향을 나누는 공간이잖아요. 침실과 달리 세상과 마주하며 이야기가 오가는 곳이죠.” 지금까지 이곳에서는 6~7회의 전시와 매달 한 번의 토크 프로그램이 열렸다. ‘일과 인생’ 시리즈에는 사진가 구본창, 빅데이터 전문가 송길영, 작가 윤광준, 건축가 조병수, 철학자 최진석, 셰프 정하완, 건축가 유현준, 정관 스님이 참여했다. “PPT도, 마이크도 없이 바로 앞에서 이야기하죠. 마치 친구 집에 온 것처럼요. 끝나면 연사와 관객이 함께 음식을 나누고, 공간 구석에서 담소를 하다 보면 어느새 집처럼 편안함을 느낄 수 있죠.”

 

다이닝룸은 토크 이벤트가 열릴 때 마이알레가 직접 준비한 케이터링을 통해 손님들과 함께하는 자리로 변신한다.

 

전시 형태 역시 공간의 콘셉트를 확장한 결과다. 음악 실험 프로그램 ‘딥 리스닝’에서는 참가자들이 아르보 파르트의 ‘타불라 라사Tabula Rasa’를 처음부터 끝까지 감상했다. LP, 카세트, 디지털 음원을 각각 다른 음향 시스템으로 재생하며 공간을 옮겨 다니는 형식이었다. “갤러리나 콘서트홀이 있지만, 우리는 그들이 다루지 않는 결을 시도했다고 생각해요. 작은 공간이어서 오히려 깊게 스며들 수 있었죠.” 사카모토 류이치의 ‘에이싱Async’과 꽃가지를 결합한 전시 〈봄, 부러진 가지〉에서는 버려진 가지가 전시장 안에서 꽃을 피우는 순간을 보여주었다. 폐기되기 전, 단 한 번이라도 꽃이 피는 찬란한 순간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었다.

 

건물 외관은 옛집의 흔적을 간직한 붉은 벽돌로 이루어졌으며, 마이알레 레지던시와 연결되는 계단은 외부에 설치할 예정이다.


아티스트의 새로운 무대, 마이알레 아트 레지던시
이제 마이알레의 시선은 또 다른 무대로 향한다. 리빙룸에서 불과 몇 걸음 떨어진 곳에 위치한 ‘마이알레 아트 레지던시’가 그 주인공이다. 시작은 크리에이티브 그룹 벨트Welt와의 인연에서 비롯됐다. 건축, 그래픽디자인, 브랜드 기획, 마케팅 등 다양한 배경을 지닌 다섯 명이 올해 결성한 벨트는 동료 창작자들과 협력해 연간 레지던시 프로그램과 전시 개최를 목표로 하는 그룹. 현재 한국의 전통적인 요소와 현대적 재료를 결합해 조형성과 예술성을 갖춘 가구를 만드는 김민재, 일상 속 브랜드 오브제를 제작하는 이규한, 발견한 이미지를 수집·기록하며 주로 코드 기반 작업을 하는 최건혁이 입주했다.“벨트의 멤버들 중 한 명이 예전에 다니던 회사가 저희 클라이언트였어요. 마침 리빙룸이 막 오픈하고 전시를 진행하던 시기라 초대했죠. 그러다 공간 기획을 함께 해보고 싶다는 이야기를 들었고, 저희가 소유하고 있는 집을 보여줬어요.” 우경미 대표는 그렇게 본격적인 협업이 시작됐다고 전했다.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뿌듯했어요. 우리가 그런 역할을 할 수 있다면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죠.” 26년간 업계에서 활동해온 만큼 선한 영향력을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기에 깊이 고민하지 않고 시작했는데, 이후로는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됐다.

 

 

2층 라운지에는 101Copenhagen의 라운지체어가 놓여 있어 고유의 존재감을 드러낸다.


2층 구조의 레지던스는 작가들에게 주어진 대형 도화지와 같다. “너무 새집이면 작업이 부담스러울 수 있잖아요. 그래서 공간을 전혀 손대지 않았어요. 문을 자르거나, 벽에 작품을 붙이거나, 나무 설치물을 덧대는 등 작가들이 원하는 대로 작업할 수 있게 했죠. 필요한 건 자유롭게 말해달라고 했습니다.” 우경미·우현미 두 대표는 크리에이터들이 3개월 동안 만족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가진 자원을 총동원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이알레의 가구와 리빙 아이템은 물론, 작게는 에어프라이어, 감자·고구마 같은 식재료까지(웃음) 지원해 즐겁게 생활하며 협업을 이어가도록 돕고 있어요.” 그들은 서로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 세 명이 협업하고 회의를 하며 작업하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덧붙였다. “시야가 확장되는 기분이랄까요. 벨트팀과 이야기할 때 ‘나중에 오랜 시간이 지나 이 기록이 아카이빙된 후, 내가 마이알레 아트 레지던시 몇 기였다고 자랑할 수 있는 순간이 오면 좋겠다’는 말이 특히 기억에 남아요.” 앞으로 이런 기회가 꾸준히 이어질 수 도, 이번으로 끝날 수도 있지만, 두 대표는 이를 좋은 첫걸음이라 믿는다.

 

침실에서는 창 너머로 푸릇한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세 작가가 그리는 ‘세기말의 안빈낙도’


8월 초, 〈행복〉팀이 마이알레 아트 레지던시를 찾았을 때는 입주 작가들이 머문 지 약 두 달이 지난 시점이었다. 김민재· 이규한·최건혁 세 명의 작가는 8월 28일 개막을 앞둔 전시를 준비하며, ‘세기말의 안빈낙도’를 주제로 각자의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1층에서는 김민재, 이규한, 최건혁 세 작가의 공동 작업을 전시할 예정이다.


안빈낙도는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김’을 뜻한다. 여기에 ‘세기말’을 결합한 것은 단순한 유행 코드가 아니라, 각자의 세대 경험과 사회적 감각에서 비롯됐다. “세기말은 요즘 하나의 트렌드처럼 보이지만, 사실 Y2K 분위기에 기대는 부분도 있습니다. 어디선가 들은 ‘우리 세대는 태어나서 세기말을 벗어난 적이 없다’는 말이 인상 깊었어요. 나이 차이는 있지만 모두 크고 작은 위기를 겪었고, 인터넷이 처음 등장했을 때 잠시 유토피아를 꿈꾸었다가 그 환상이 깨지는 경험을 했습니다. 사회현상과 세계 흐름을 작업에 반영하는 편이라, 이 주제를 셋이 함께 풀면 흥미로울 거라 생각했죠. 당시 이 공간이 비어 있어 묘하게 괴기스러운 분위기가 있었고, 거기서 안빈낙도를 발견했습니다.”(김민재)

 

김민재 작가는 자신의 방을 무대로 세트장을 제작 중이다.


이번 전시는 주택 2층 구조 전체를 활용한다. 바닥 공사와 가벽 설치로 공간 구조를 바꾸고, 기존 가정집 요소를 주제에 맞게 ‘해킹’하는 시도를 한다.

 

김민재 작가는 ‘이 공간을 즐기는 가상의 인물’이 살아가는 집을 상상하며, 거울이나 시계 같은 생활 소품에서 작업을 구상했다. 여기에 ‘공간 속의 공간’을 만드는 아이디어를 더해 하수구 커버와 의자를 활용한 세트장을 제작 중이다. 단을 올린 구조 위에 의자를 배치해 상상 속 도시 풍경을 방 안으로 옮겨오는 설치 작업이다. 오래된 주택 특유의 낮은 층고를 오히려 더 낮추어 천장 구조를 바꾸고, LED 조명을 삽입하는 실험도 병행했다. 

 

이규현 작가는 이태원에서 영감을 얻은 간판 이미지를 작업하고 있다.

 

이규한 작가는 레지던시 주변의 풍경에서 ‘세기말의 안빈낙도’를 읽어냈다. “특히 이태원은 오랫동안 아르바이트하며 지낸 동네라 개인적인 서사가 있는 곳입니다. 세계 각국의 지명이 섞인 간판과 다양한 문화가 공존하는 풍경이 제 작업에 자연스럽게 녹아듭니다. 간판의 촌스러운 그래픽, 이질적 색감이 저에게 영감을 줘요.”(이규한)

 

한편 최건혁 작가는 자신이 즐겨 다뤄온 컴퓨터 부품과 코드 기반 이미지를 이번에도 주요 재료로 삼았다. “제 이미지들은 옛날 컴퓨터그래픽에 가까운 질감과 분위기를 지니고 있습니다. 이번에도 그 스타일을 유지합니다. 재킷을 입은 캐릭터 영상을 방 안에 투사해 공간을 채우고, 과거 작업 이미지를 실시간 상호작용 형태로 구현할 계획입니다. 예전에 그린 ‘눈알’ 그림을 활용해 카메라 피드 속 사람의 움직임을 따라 시선이 움직이는 크리피한 설치 작업도 준비 중입니다.”(최건혁)

 

최건혁 작가는 코딩을 활용해 그래픽 작업을 구현하고 있다.


일상과 작업이 뒤섞인 시간
레지던시 생활은 세 작가 모두에게 일상과 작업이 자연스럽게 얽히는 시간이었다. 각자의 작업은 독립적으로 진행했지만, 이곳에서는 서로의 경계를 허물며 적극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다양한 매체를 쓰는 작가와 교류하며 시야를 넓힌 계기였습니다. 작업 이야기를 나누고, 서로의 시선으로 작품을 바라보며 새로운 시각을 얻은 것이죠. 결과물도 중요하지만, 과정에서 이미 많은 것을 얻었다고 생각합니다.”(이규한) 

 

마이알레 아트 레지던시는 2층으로 구성했으며, 8월 28일부터 퍼블릭 오픈할 예정이다.

 

특히 해외에서 오랜 기간 활동해온 김민재 작가에겐 의미가 남다르다. “서울에서 장기간 작업 공간을 소유한 건 거의 10년 만입니다. 장을 보고, 밥을 해 먹고, 생활의 연장선에서 작업했어요. 평소 못 해본 시도를 할 수 있었지요.” 이렇듯 정형화된 프로그램이 아닌 자유로운 구조 속에서 세 작가는 배우고 도우며 전시를 함께 만들어갔다. 캠프에 참가한 듯한 분위기 속에서 쌓인 대화는 오래 남을 흔적이 됐다. “이 순간이 나중에 좋은 추억이 될 거라 생각한 적이 많습니다. 흔치 않은 기회였고, 다시 만날 수 있을까 싶을 만큼 소중한 경험이었습니다.”(최건혁) 세기말의 기묘한 공기와 안빈낙도의 태도가 뒤섞인 이 여름, 세 작가는 서로의 세계를 스치며 하나의 풍경을 완성했다. 

주소 서울시 용산구 이태원로27길 31-8, 리빙룸 마이알레 이태원



  <행복> 9월호를 통해 더 많은 콘텐츠를 만나볼 수 있습니다! E-매거진 보러가기  

글 백세리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