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유석, 류한찬 소장이 사는 4층 집의 거실과 주방. 대지 면적 270㎡, 연면적 398㎡, 철근콘크리트 구조의 로 하우스는 콘크리트와 목재 등 날것의 감각이 가득하다.
요리와 커피는 조유석 소장이 담당한다. 정면에 보이는 벽은 오브제처럼 읽혔으면 해 나머지 벽과 달리 표면을 치핑(고압세척기를 쏘거나 면을 갈아내는 작업)해 거칠게 마감했다.
공공 주택 지구, 상업 업무 복합 단지 등 사업 부지 개발이 한창인 강동구 고덕동. 그중에서도 로 하우스가 위치한 동네는 북쪽에는 고덕천이 흐르고, 바로 뒤편에 얕은 산이 자리 잡아 서울에서는 드물게 야생의 자연과 가까이 닿아 있다. 그러나 주변에 들어서는 건물 대부분은 이런 맥락을 외면한 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상가 주택의 형태다. 효율과 비용의 논리만을 좇은 건 물들 가운데 로 하우스는 확연히 다른 모습으로 서 있다. 정제된 분위기의 콘크리트 파사드를 지나 안으로 들어서면 높은 층고와 그만큼 거대한 창, 거친 콘크리트 벽과 금속 가구가 존재감을 드러낸다. 안팎의 재료는 콘크리트와 유리, 금속, 목재 등 전부 자연의 물성을 그대로 지닌 소재다.
4층 집 거실에서는 산의 능선과 하늘, 거친 콘크리트 위로 빛이 일렁이는 장면을 만날 수 있다. 2 3 4 조유석 소장의 방에서 보이는 거실. 5 경사진 지붕이 기하학 구조를 만들어낸 다락.
이곳은 오더매터의 사무소 겸 그들이 디자인한 가구를 볼 수 있는 쇼룸, 임대주택 네 세대, 두 소장의 집이 있는 4층 규모의 건물이다. 오더매터가 건축가이자 건축주이고, 조유석 소장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시공사가 지은 독특한 이력도 있다. 무엇보다 세 사람을 오더매터로 묶어준 데뷔작이다.
4층에서 다락으로 오르는 계단. 높은 공간감을 극대화하기 위해 유로폼(콘크리트 거푸집)을 가로로 길게 배치하고 콘크리트를 시공했다.
조유석 소장의 침실과 욕실. 광폭 마루와 석재가 경계 없이 이어진다.
초등학교부터 대학교까지 영국에서 자라며 건축을 배운 조유석 소장, 서울에서 쭉 살며 건축을 해온 류한찬 소장, 조유석 소장의 중학교 후배 올리버추. 세 사람은 각자 배경은 달랐지만 건축을 대하는 결이 비슷했다. 본업 외 몇몇 프로젝트로 합을 맞춰오던 것이 로 하우스까지 이어졌다. “아버지께서 이 땅을 얻게 되면서 저에게 설계를 맡기셨어요. 런던에 있던 저 대신 류소장님이 부지를 봐주셨는데, 무조건 해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류한찬 소장은 이렇게 자연을 가까이 품고 있는 필지가 서울에 또 있을까 싶었다고. 세 사람은 이곳에 보편적인 상가 주택의 논리가 아니라 그들이 좋다고 생각하는 건축을 해보기로 했다. “한국에서는 수능 문제 풀듯이 도장 깨기 한 느낌의 건축물이 자주 보여요. 법규를 잘 풀고 건폐율, 용적률을 꼭꼭 채우려는 의도가 드러나는 것요. 그것도 당연히 해야 하는 일이지만, 디자인을 주도하는 논리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한 자연이라는 맥락으로부터 모든 것이 만들어진 건물을 디자인해보고 싶었습니다.”
오더와 매터로 지은 집
로 하우스를 관통하는 가장 중요한 존재는 야생의 산이다. ‘이 가까운 자연을 어떻게 공간에 들여올 것인가’가 핵심이 됐다. 양옆으로 주택이 들어설 것을 고려해 측면은 시야를 막았고, 정면 역시 밀폐된 파사드로 계획했다. 대신 입구를 통과하면 높이 4m의 거대한 창을 통해 자연이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진다. 이 창은 층마다 같은 위치에 이어지며 1층에서는 나무와 길, 4층에서는 산의 능선과 하늘이 보이는 식으로 시점에 따라 달라지는 산의 장면을 액자처럼 담는다. 평면을 계획할 때도 자연이 구심점이 됐다. 가운데의 현관으로 들어오면 거실과 주방 등 사람이 모이고 채광이 필요한 공간은 남쪽의 산을 향해 열려 있고, 프라이버시가 중요한 침실은 북쪽에 뒀다. 그 다음은 오더매터의 철학을 잘 보여주는 단계,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대한 과정이었다. 이번 프로젝트에 임하는 그들의 건축적 태도를 한 단어로 표현한다면 ‘브루털리즘’. “브루털리즘은 날것의 건축이지만 거칠기만 한 것이 아니라 따뜻함도 같이 느껴져야 해요. 보기에만 미니멀한 것이 아니라 기능과 동선까지 가장 최소의 것만 남겨둔 것에 본질이 있고요. 브루털리즘을 이곳의 맥락에 맞게, 오더매터가 정한 질서대로 표현하면 어떤 모습일지 시도해보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조유석 소장이 소개한 태도는 벽의 형태, 콘크리트의 질감 하나까지 이어진다. 로 하우스에 존재하는 모든 물성은 어떤 논리로 여기에 놓이는지, 어떤 제스처로 있어야 하는지에 대해 의도가 있다. “노출 콘크리트를 시공하면 대개 색감을 맞추거나 요철을 메우는 메이크업 작업을 합니다. 그건 콘크리트 위에 도장을 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해 처음의 러프한 마감을 그대로 드러냈어요.” 이 밖에도 주거공간의 마루는 집 전체가 하나의 공간처럼 읽혔으면 해 모든 방에 패턴이 이어지도록 설치했고, 합판이나 대리석은 구입한 다음 모든 무늬를 스캔하고 가장 어울리는 위치와 크기로 배치했다. 합판은 원하는 결과 색감을 찾아 중국 공장까지 날아가 컨테이너로 들여오기도 했다.
단정한 콘크리트 배경에 어우러진 가구들. 소파는 앤트레디션의 인랜드 AV23, 조명은 올루체의 Dim 333, 스툴은 오더매터가 디자인한 페블 시리즈.
‘내 집’이라는 감각
로 하우스의 ‘로’가 소재와 방식을 보여준다면 ‘하우스’는 이곳의 콘텐츠이자 또 하나의 주인공이다. 여기에는 그들이 생각하는 좋은 집은 어떤 곳이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이 담겼다. 특히 임대주택은 류한찬 소장이 강조하던 ‘내 집이라는 느낌’을 구현한 결과다. “한국의 임대주택은 저렴하게 짓고, 집주인은 법규를 지키기 위해 4년 정도 머무르고 떠납니다. 임대 가구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20~30대가 그곳을 내 집이라고 느끼지 못하는 바탕에는 이런 사회적 맥락이 있는 거죠. 집을 집처럼 느껴지도록 하는 것이 임대주택에서 가장 해결해야 할 이슈라 생각했어요.” 세 사람의 해답은 ‘스스로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공간은 자연을 제외한 요소는 전부 배경처럼 존재하고, 가전 또한 사용하지 않을 때는 보이지 않게 매입했다. 거기에 좋아하는 조명이나 소품을 한 점씩 두면서 내 의도대로 공간을 연출할 수 있게 했다. 방은 하나만 두고 포켓 도어를 설치해 필요에 따라 분리해서 쓰도록 한 것도 거주자가 주체적으로 이용할 여지를 두기 위함이었다.
오더매터 오피스는 그들이 디자인한 가구를 전시하는 쇼룸이기도 하다.
임대 세대의 주방 겸 거실. 4층 집과 동일한 오더와 매터를 적용했다.
4층과 다락에 자리한 두 사람의 집은 주방과 다이닝, 거실을 공유하고 두 사람의 침실과 욕실은 분리하는 형태다. 거실과 주방은 문 대신 십자 벽을 두어 주방의 부산스러운 광경을 차단하면서도 소리는 통해 한 공간처럼 느껴진다. 넓은 공간에서 스스로가 작게 느껴질 때 편안함을 느끼는 조유석 소장의 취향에 맞춰 높은 층고와 개방감을 확보했고, 정반대로 작고 낮은 공간을 선호하며, 방에서 잠도 자고, 일도 하고, 놀 수도 있어야 하는 류한찬 소장은 아늑한 다락에서 안정감과 가능성을 발견했다. “창을 통해 산을 바라볼 때가 제일 좋아요. 자연이 주인공이 되도록 설계했는데 실제 생활에서도 그 태도가 이어진다는 점이 기뻤습니다. 나무가 바람에 혼들리고 새도 날아다니며 시시각각 변하는 모습을 보면서 멍 때리는 시간이 가장 행복해요.”로 하우스는 무려 2년 동안 세 사람이 공간의 모든 장면을 하나하나 조율하며 치열하고 지독한 과정을 거쳐 완성했다. 완공된 이후 두 사람에게는 집이자 일터가 생겼고, 오더매터의 철학을 보여주는 공간으로 점점 더 알려지는 중이다. 임대 세대는 벌써 세 집이 계약을 마쳤고 프로젝트도 여러 개 진행하게 되었다고 하니 그야말로 성공적 데뷔작인 셈. “게릴라 콘서트에서 눈을 떴는데 생각보다 사람이 많이 왔을 때 기분 있잖아요. 이 공간이 좋지만 시장에서 괜찮을지 걱정도 되고 스스로 의심하는 상황이 많았는데, 그게 해소된 기분이 들어요. 좀 더 삐딱선을 타도 되겠다 하고요.(웃음)”
콘크리트 타일로만 마감한 외관에서도 브루털리즘의 멋이 느껴진다.
오더매터
서울과 런던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건축 스튜디오로 건축가 조유석, 올리버 추, 류한찬이 공동으로 이끌고 있다. 주거, 상업, 리테일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간, 가구, 조명에 이르기까지 설계 전반을 아우르며, 그 이름이 나타내는 것처럼 재료의 본질성과 공간의 명료함을 바탕으로 섬세하고 정제된 작업을 추구한다. ordermatt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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