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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목할 만한 전시_애틀랜타 하이 미술관 <Kim Chong Hak, Painter of Seoraksan>, 조현화랑 <On Paper>로 살핀 전대미문 김종학
“지금껏 기다려온 놀라움!” “새로운 소개라기보다 오히려 너무 늦은 귀향에 가깝다.” 김종학의 65년 화업을 다룬 미국 내 첫 미술관 개인전에 붙은 평이다. 부산에서는 그의 대규모 드로잉 컬렉션을 전시에 올렸다. 구순을 앞두고 기력을 여투는 중이어서 김종학의 육성을 들을 순 없다. 대신 깨금발로 서서 담 안을 보듯 들여다본 그의 세계다.

<행복> 2012년 5월호 인터뷰 때도 그는 저 모습이었다. 말을 걸지 않으면 카메라 앞에서도 선정 삼매에 들 것 같은 모습으로 그림에 몰두했다. 사진은 그로부터 한참 후에 촬영한 것이다. 사진제공 일치문화재단. 


<Kim Chong Hak, Painter of Seoraksan>
기간 4월 11일~11월 2일
장소 미국 조지아주 애틀랜타 하이 미술관
전시 작품 회화, 식물학 스케치, 민속공예 수집품 등 70여 점
문의 high.org

 

 

‘Untitled(Winter), 2017’, acrylic on canvas,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Kim Chong Hak Foundation.


유튜브 영상을 한 편 보고 나는 그동안 ‘꽂혀 있던’ 종이접기를 접었다. 물고기가 난卵세포에서 발생해, 세포가 꼬깃꼬깃 2분할 4분할되고, 내벽과 외벽이 생기고, 눈과 아가미가 생기고 …. 그야말로 ‘신들의 종이접기’였다. 그런 기적, 그런 감격 앞에서 더 할 말이 없었다. 그건 시간이 만든 대로, 있던 모습 그대로-자연自然-의 상태였다.


그리고 나는 김종학의 꽃 그림 ‘혼돈(Pandemonium), 2018’(이 기사의 166~167쪽 그림) 앞에서 흐읍, 횡격막을 배꼽 아래로 끌어내렸다. 그 그림 안의 세계는 분화 이전이었다. 꽃은 나비이고, 나비는 새이고, 새는 거미이고, 거미는 꽃이다. 그 그림은 ‘차이’나 ‘통합’ 대신 ‘조화’라는 말을 불러낸다. 식물과 동물은, 사람은, 무릇 모든 생명은 재료가 모두 하나, 지구라는 이름의 반죽에서 나온 것이라는 뜻을 한 폭에 다 담는다. 뼈를 닮은 나무와 바위가 보이는 겨울 그림 ‘Untitled(Winter), 2017’(165쪽 그림)도 마찬가지다. 그는 천하 만물을 조물주 앞 동기 동창으로 보는구나. 아무렴, 우주의 눈으로 보면 저 젊은 바위와 저 늙은 겨울새가 동갑이겠구나. 그림 하나가 끄집어내는 생각이 퍽 많다. 그러고 보니 겸재 정선이 하느님 뷰로 그렸다는 ‘금강산도’와 통하는 것도 같다. 언젠가 그는 “나에겐 사람이 꽃 같고, 꽃이 사람 같다”는 마디 수 짧은 말로 간추렸을 뿐이다. 김종학은 대체 어떤 화가인가? 어떻게 이런 그림을 그리나?

 

하이 미술관(High Museum of Art)의 Seoraksan>의 전시 도록에 큐레이터 마이클 룩스Michael Rooks, 캐럴라인 기디스 마시아Caroline Giddis Macia는 이렇게 썼다. “김종학은 마치 잭슨 폴록처럼 ‘그림 속에 있는 상태’였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모른 채 작업’하는 것 같았다. (중략) 김종학이 설악산의 자연과 교감하는 감각은 ‘끌림(being carried)’에서 비롯한다. 이 같은 몰입 상태는 고대 중국의 산런(山人), 19세기 노르웨이의 뭉크, 전후 미국의 폴록에게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다. 끌린다는 것은 우리가 ‘던져진’ 세계의 구조를 인정하는 행위다. ‘던져짐(thrownness)’의 개념은 도가 사상에서 ‘자신을 우주의 리듬과 가능성에 내맡겨라’라는 태도와 상통한다. (중략) 세계와 단절되면서 동시에 본질과 조율되는 순간이다.” 한국의 밀레니얼과 Z 세대까지 사로잡은,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화가 김종학이라서 나도 그에 대한 기사를 여러 번 썼다. 하지만 이때껏 이 같은 평가를 더하진 못했다. 하이 미술관 큐레이터 마이클과 캐럴라인은 3년 동안 전시를 준비하면서 한국 역사부터 공부했다. 작가가 본 것을 그들도 보려고 설악산을 오르고, 독학으로 한국어 읽고 쓰는 걸 배운 다음 작가를 만났다. 그리고 3년 후, LA 다음으로 한국 교민이 많은 곳이자 ‘K-제조의 터전’으로 불리는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전시가 막을 올렸다. “그는 한국에서 사랑받는 작가지만 이곳에서는? 지금껏 기다려온 놀라움이다.”(하이 미술관 관장 랜드 서퍽Rand Suffolk) “오히려 너무 늦은 귀향에 가깝다.”(<조지아 아시안 타임스>) 이국인의 상찬을 받으며 이 전시는 순항 중이다.

 

‘혼돈(Pandemonium), 2018’, acrylic on canvas, Courtesy of the artist and the Kim Chong Hak Foundation 


“김종학의 그림은 역사를 흡수한다”
사실 우리는 그의 그림에서 다짜고짜, 섣부르게 ‘꽃’만 보아왔다. 지난 10여 년 동안 이우환, 박서보, 하종현, 정상화 등 한국 단색화가에 비상한 관심을 준 세계 미술계도 그들과 동시대 화가인 김종학에 대해선 비판적 조명조차 하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3년 동안 김종학을 탐구한 애틀랜타의 한 공립 미술관 큐레이터들이 ‘전대미문 김종학’을 발견해냈다. “김종학의 그림은 역사를 흡수한다. 식민지, 전쟁, 사회 혼란… 그 모든 혼적이 산의 그림자에 남아 있다. 하지만 그의 붓끝에서는 그 모든 것이 구원으로 승화된다.”(전시 도록 중)

 

어느 누가 대표작 ‘Fall, 1980’의 붉은 가을 풍경에서 5월 광주민주화운동의 핏빛 하늘을 읽어낼까? 설경으로 가득한 ‘Untitled(Winter), 2017’(165쪽 그림)에서 식민지 경험 이후의 집단 기억을 읽어낼까?(일제강점기 백색 한복 금지에 대한 민족 저항의 상징으로 해석) 덩굴과 잡초에 휘감긴 ‘Moon, 2013’에서 일월오봉도와 오행을 떠올릴까? 1937년 신의주에서 태어나 평양에서 보낸 유년, 일제강점기와 전쟁을 거치며 가난하던 학창 시절, 동시대 작가처럼 유럽 철학과 불교·공자·노자에 골몰하여 찾아낸 형식 실험, 그리고 추상, 그 집단적 행동인 구체파·앵포르멜 운동, 무명 작가의 궁한 나날 끝에 1979년 ‘이혼당하고’ 귀양 가듯 형님의 설악산 집으로 간 사연, 이후의 설악산 생활 …. 이건 그동안 우리가 많이 들어온 이야기다(<행복> 2012년 5월호에도 있다). 할미꽃 피는 광경을 본 후 자살하려는 마음을 고쳐먹고, 거들떠보지 않던 꽃이 어느순간부터 그리지 않고는 못 배길 대상이 되고 …. 나는 자꾸 이렇게 ‘이야기’의 군살만 붙였는지 모른다. 그의 그림은 뼈, 본질을 말하는데 말이다. 마이클과 캐럴라인의 글에는 새로운 ‘비평’이 더 있다. “김종학은 민족주의, 식민 잔재 속 타자화된 한국, 그리고 정치적 구도에 대해 말하면서도 그 체계에 얽매이지 않는다. 민족주의적 교리에 얽매인 적도 없다. 그는 이를 뛰어넘어 자기 삶의 사회적·역사적 맥락을 탐구했다. 조선 시대부터 수 세기 동안 형성된 사유 체계와 존재 방식에 대한 공부는 그를 설악산이라는 창조적 장소, 자유의 장소로 이끌었다. 그곳에서 그는 한국 사회가 한때 공유하던 자연과의 물리적·정신적·감정적 관계를 회복해나갔다.” 이것이 잭슨 폴록처럼, 겸재 정선처럼 ‘그림 속에 있는 상태’를 만들어낸 것이다. “내 맘대로 살고 내 맘대로 그리고 고독하고 싶었다”라는 김종학의 말을 나는 그동안 장님 코끼리 만지기 한 거다.


“길이 길일 때 이미 길이 아니다”
“길이 길일 때 이미 길이 아니다.”(노자의 <도덕경> 한 구절) 김종학이 자주 꺼내던 의미심장한 아포리즘이다. 바둑에서 고수는 정석을 배우고정석을 잊는다. 1960~1970년대 한국 미술의 정리된 틀 한복판에 섰던 그는 “서구식 모더니즘이 한국의 집단적 트라우마라는 자각으로 추상을 거부”()했다. 이건 이미 정해진 것과 갈등하고 질문하고 반역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었다. 그러고는 설악산에 들어가 그림 속에서 자신을 태우고, 녹이고, 잊고, 들여다보았다. 그러나 살아남기 위해 싸우는 전쟁터 병사가 아니라 풀밭에서 뛰노는 어린아이 같았다. 예술에서도, 삶에서도 그는 객관과 주관을 나누지 않았다. 이것이야말로 ‘추상적인 구상’이자 ‘극사실적인 추상’ 아니겠는가. 다시 신들의 종이접기 이야기와 김종학의 그림 ‘혼돈(Pandemonium), 2018’으로 돌아간다. 본래 식물과 동물의 기원은 같다고 한다. 생명의 맨처음은 점이다. 점 하나의 세포가 두 개가 되고, 물고기가 되고, 사람이 된다. 이건 우리 모두 하나로 연결된 존재라는 불교의 연기론과도 통한다. 구도하듯 평생 ‘나에게서 달아나 나로 돌아온’ 사람 김종학. 그리하여 그림 속에 그림보다 넓은 세계를 그려 넣은 김종학. 그의 세상이 그림 한 폭에 들어 있다. 그리고 벽안의 큐레이터들이 그걸 발견해주었다. 2010년 대 이후 김종학의 세상은? 조현화랑의 드로잉 위주 전시 가 알려줄 것이다.



하이 미술관 현대미술 큐레이터 마이클 룩스
“김종학은 앨릭스 카츠와도, 겸재 정선과도 이어져 있다”

국제 미술계에서 영향력을 지닌 큐레이터 마이클룩스가 한국을 찾았다.
화가 김종학을 어떻게 발견했나?
한국 작가에 대한 정보를 많이 주는 친구가 김종학을 알려줬다. 그림을 처음 보고는 팝적 기질이 강한 30대 작가려니 했다. 그 편견은 구글링을 해보고 금세 깨졌다. 2022년, 처음 한국에 와서 갤러리2에 걸린 8m짜리 겨울 그림 ‘Untitled, 1978’을 40분 넘게 바라봤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내가 이전 근무지인 빌바오에서 앨릭스 카츠 회고전을 기획했고 그와도 친한데, ‘Untitled, 1978’을 보고 김종학은 앨릭스 카츠와 비슷한 프로세스로 그리는 작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후 2년 동안 작가와 그의 딸(김현주 이사장)을 만나고, 수장고도 들락거리고, 한국의 역사와 한국 미술사를 배웠다. 그러면서 ‘김종학은 조선 시대 작가처럼 자기 철학의 세계를 프로세스적으로 합쳐 그림을 완성해내는 구나. 겸재 정선과도 연결이 되겠구나’ 하고 깨달았다.


하이 미술관에서 여는 첫 한국 작가 전시다. 미국, 유럽에선 많이 알려지지 않은 김종학을 택한 이유가 무엇인가?
K-팝은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나는 그 뿌리가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 아니 훨씬 이전부터 시작되었다고 본다. 무엇보다 애틀랜타에 한국 기업이 대거 진출하면서 한국 미술, 한국 작가에 대한 중요성도 커진 상황이다. 그동안 미국에서는 (솔로몬 R.구겐하임 미술관, 2023.9.1~2024.1.7), <생의 찬미: Korea in Color>(샌디에이고 미술관, 2023.10.28~2024.3.3), <시간의 형태: 1989년 이후 한국 미술>(필라델피아 미술관, 2024.3.23~6.23), <한류! 더 코리안 웨이브>(보스턴 미술관, 2024.3.24~7.28) 같은 한국 미술 전시가 열렸다. 이들은 단순히 한류를 인정하는 수준을 넘어 1970~1990년대에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의 흐름 자체에 대한 인정
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처럼 한류가 세계를 들썩이게 하는 시기야말로 다문화 사회인 미국에서 한국의 교차성을 탐구하기에 좋은 순간이다. 김종학은 서구적 모더니즘 한복판에 있었으나 1979년부터 추상에서 과감히 벗어나 과거와 현재를, 특히 조선시대 전통까지 연결하고 되살리는 방식을 탐구했다. ‘교차성’이라는 점에서 이보다 적합한 작가는 없을 것이다.


전시 제목이 이다. 미국인에겐 낯선 ‘설악산’을 표제어로 내건 이유가 있나?
‘설악산의 화가’라는 김종학의 별명은 여러 의미가 있다. 그는 반세기 동안 설악산을 그림에 담았는데, 유럽과 미국 미술사에서도 한 장소와 깊이 연결된 사례를 찾을 수 있다. 김종학과 설악산은 세잔과 생트빅투아르산, 비어슈타트와 스모키산맥 사이의 관계에 비견할 만하다. 그들에게 산은 세계의 모든 것이자 극복해야 할 자신이었다.


김종학의 소장품인 한국 민속공예품을 함께 전시한 이유는 무언가?
그가 평생 수집한 자수 베갯머리, 목기러기, 보자기, 바늘방석 등은 그의 고상한 회화 아래 생생하게 숨 쉬는 민중의 정서를 암시한다. 바늘이 붓이 되어 그린 듯한 자유로운 회화성은 김종학에게 현대성과 예술성의 새로운 가능성으로 다가온 듯하다. 특히 남성 중심의 추상미술 세계에 대한 반역으로, 여성의 손끝에서 비롯된 민속 전통을 소환하고자 한 것이다. 그의 그림을 이해하려면 이 공예품을 꼭 봐야 한다.


조현화랑 
“드로잉만 집중해서 보니 또 다른 세계”

  전시 전경. ©Kim Sangtae, Johyun Gallery
김종학이 구순을 바라보는 지금, “길이 길이면 이미 길이 아니다”라는 필생의 경구는 여전히 유효한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에 있다. 이 전시는 선과 여백으로 채운 김종학의 대규모 드로잉 컬렉션을 선보이는 자리다. 1960년대부터 2020년대까지 그린 목판화, 수채, 연필 드로잉이 연대기순으로 전시장에 도열했다. 그의 유머 감각과 놀이 본능을 담은 오브제(고무장갑, 물감 통에 그린 그림처럼), 작업실 사물을 옮겨와 재현한 공간도 함께다. 그런데 왜 드로잉일까? 전시 오프닝 강연에서 동양학자 조민환 교수는 말했다. “김종학은 자연을 보고 드로잉 하지만, 정작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때는 드로잉을 보지 않는다. 자연의 영기靈氣는 드로잉이 아닌 마음에 각인되는 것이다.” 좀 어려운가? 조현화랑의 설명이 이해를 도울 것이다. “김종학에게 드로잉은 단순한 선의 기록이나 밑그림이 아니다. 자연을 응시한 끝에 다다른 직관의 혼적이자, 반복을 통한 조용한 수행이었고, 순간의 감각을 찾는 정신적 행위였다.”

 

‘Untitled, 2000’, pencil drawing on paper, 22.9x30.5cm.


그의 드로잉에서 ‘작위’는 최소화되고 ‘무위無爲’에 다다랐다. 풀어 말한다. 무리해서 무엇을 하려 하지 않고 나날이 덜어내는 것, 덜고 또 덜어서 무위(함이 없는 것)에 이르는 것, 그리하여 하지 못하는 것이 없는 것, 마침내 스스로 그러한 대로(自然) 존재하는 것이다. 아, 그저 밥 먹고 싶을 때 밥 먹는 마음으로 그렸구나 싶은 그림들이 이 무위에서 나왔다. ‘수박’을 생각하며 그린 빨강과 초록 옷을 입은 여인만 봐도 알겠다. 보이지 않는 손이 종이 그림 속에서 색을 칠하고, 그림에서 뛰쳐나온 벌레들이 눈 앞에서 뛰어다닌다. 그림 한 폭에 우주, 별, 사람이 드나든다. 이 또한 “길이 길이면 이미 길이 아니다”라는 김종학이 탐색한 또 다른 길이다. 미술을 글로 읽는 것은 어리석다. 직접 작품을 만나지 않으면 본문 없는 주석에 불과하다. 그렇지만 애틀랜타는 좀 멀다. 조현화랑의 이 전시가 그 그림에 대한 갈증을 해소해줄 것이다. 


<On Paper>
기간 7월 3일~8월 17일
장소 조현화랑 달맞이
전시 작품 드로잉 컬렉션 1백40여 점
문의 051-747-8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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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최혜경 | 사진 이우경 기자(마이클 룩스) | 자료 제공 일치문화재단, 조현화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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