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 쎄봉 그림의 메인 소재인 소파에 오리가 널브러져 있다 .소파에 새겨진 Sick of Everyting이라는 문구가 쎄봉만의 유머를 더한다.
살다 보면 문득 그럴 때가 있다. 도보로 5분 거리의 카페를 빙빙 돌아가고 싶어지는 그런 날. 이유는 여러 가지다. 매일 걷던 길로 가는 게 쳇바퀴 굴리는 모습처럽 느껴졌거나, 사무실로 복귀하기 전 잠시나마 산책하는 기분이라도 내고 싶은 마음 때문일 수도 있다. 뭐가 됐든 살다보면 그런 순간을 한 번쯤 마주한다. 때론 그것이 시간과 동선을 낭비하는 선택일지라도 말이다. 그런데 인생은 효율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일상과 일상사이 적절한 위트가 숨통을 터주기도 한다.
작가 쎄봉은 '행복작당부산’포 스터 아트 워크에 그만의 유머를 채색했다. 부산 앞바다를 연상케 히는 청량한 물가에 보트를 탄 오리들의 모습을 그렸는데, 오리들이 제 발(오리발)로 노를 저어가듯 표현한 부분이 그것 “ 오리는 수영을 잘해요. 스스로 헤엄쳐 바디를 건널 수 있죠. 보트를 탈 필요가 없죠. 그런데 왜 가끔 꼭 필요치 않은 일이라도 특별한 기분을 느끼고 싶어서 할 때가 있잖아요. 오리도 ‘보트를 타는 기분'을 느끼고 싶을 수 있는 거죠.”
어릴 적부터 낙서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던 쎄봉. 학창 시절, 종이의 여백을 보면 참지 못해 펜을 들고 그림으로 채우곤 했다. 교과서 모든 페이지가 어린 쎄봉의 습작으로 가득했다. “영감은 주로 일상 속에서 얻어요. 카페에 가면 그곳을 채운 사람들의 모습을 관찰하기도 하고, 카페 밖으로 나와 혼자 산책하다가 떠오르는 장면이 있으면 메모하듯 그려놓아요.'’ 현실을 재료로 삼지만 자신만의 세계관을 구축하고 캐릭터를 만들 었다. 현실과 유리돼 살 수 없지만, 그림이 필시 인간 세상을 그대로 모사할 필요는 없디는 생각이었다. 헤엄칠 줄 아는 오리가 때로는 보트를 타고 바다를 건너고 싶은 것처럼.
행복작당 부산을 기념해 보트를 타고 부산으로 여행을 떠나는 부리와 코코리.
부리와 코코리, 먼데가 살아가는 오리 타운은 그런 배경에서 탄생했다. 섬 안에는 도시계획을 세우듯 벼랑카페, 사무실, 월요병 유령이 출몰하는 먼데굴 둥 현실 세계 같으면서도 비현실적 요소를 삽입했다. 월요일을 두려워히는 현대인의 모습은 부리에게 투영했고, 유령처럼 찾아왔다 사라지는 월요병은 귀신 먼데를 통해 표현했다. ‘‘코코리는 부리의 자존감이 낮아질 때 생긴 또 다른 자아예요. 사람은 저마다 여러 가지 자아를 지니고 있잖아요. 그걸 표현한 거예요. 먼데는 월요병을 유령에 빗댄 캐릭터예요. 제가 월요일을 정말 싫어하거든요. 일요일 밤부터 울적해질 정도로요. 근데 월요일은 도래했다 지나가면 사라지잖아요. 그러다 또 불쑥 찾아오고. 그게 유령 같다고 생각했어요.”
업무에 치여 방전된 코코리. 일상을 사는 우리 모습과 크게 다르지 않다.
그런데 많고 많은 동물 중 왜 하필 오리였을까. ‘‘노란색과 흰색을 좋아해 요. 그 색들이 좋아 초창기에는 달걀프라이를 그리기도 했죠. 근데 제가 또 새를 좋아하거든요. 노란색과 흰색으로 그릴 수 있는 새가 없을까 생각하던 중 오리가 떠오르더라고요. 그 후로 지금까지 오리를 그리고 있어 요.'’ 이유도 어딘지 쎄봉스럽다. 현실인듯 현실 아닌 세계를 그리는 이유는 단순하고도 명확했다. "재밌으니까요. 현실 그대로면 재미없잖아요.” 쎄봉이 작업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재미다. "단순한 재미라기보다는 몇 초 뒤 '피시' 하게 만드는 매지를 추구해요. 오리를 그리지만 어딘가에 찌든 현실의 사람을 투영하거든요. 보는 사람이 공감하면서 피식 웃는다면 그걸로 충분해요. 대단한 걸 전하고자 하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사는 세상은 진지함과 효율만으로 굴러가지 않는다. 창밖에서 들어온 선선한 바람같은 그의 그림은 각박한 현실 속 날 선 마음을 사포질해주는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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