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선형 작가 뒤로 보이는 신작 '가든 블루Garden Blue'는 7월 지우헌에서 열리는 전시에서 만날 수 있다.
그의 손끝은 파랗게 물들어 있었다. 벽에는 그가 그린 파릇한 자연이 있었다. 우연인지 작업실 스피커에서 흘러나온 시저SZA의 앨범 의 커버 또한 푸른 바다가 배경이다.
손끝에 묻은 푸른색에는 사연이 있었다.
“구례 화엄사에 간 어느 겨울이었어요. 얼어붙은 나무를 둘러보고 있는데, 어디선가 지축을 울리는 법고 소리가 들렸어요. 그 소리를 들으며 하늘을 봤는데 검푸른 산등성이에 새 한 마리가 훨훨 날아가고 있었죠.마치 전혀 다른 세상에 와 있는 기분이었어요. 그 후 작업실에 돌아왔는데 어느새 푸른 물감을 개서 그리고 있더라고요.”
그로부터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다. 김선형 작가는 붓으로 자신만의 정원 ‘가든 블루Garden Blue’를 조성해왔다. 그가 그린 정원은 하트 모양 문양이 있는가 하면, 집을 연상케 하는 형태나 숫자, 알아보기 어려운 기호가 무성하게 자리한다.
“겹겹이 쌓인 세월의 흔적이 지금의 오늘을 도래하게 했죠. 나란 사람도 그렇게 구성됐어요. 가든 블루는 무의식 속에 남은 시절의 단편을 막 그려대는 거예요. 그릴 땐 내가 뭘 그리고 있는지 몰라요. 다 그리고 나서야 그때의 내가 그린 게 무엇이었는지 역으로 깨닫죠.”
Garden Blue, 2022, 종이에 수성 혼합 재료, 48.5cm x 22.5cm
7월 2일부터 지우헌에서 열리는 전시 〈My One and Only Blue〉에는 2025년 김선형 작가가 새롭게 다듬은 정원 두 개를 만날 수 있다. 신작이지만 김선형 작가의 태도와 작업 방식은 달라지지 않았다.
“제 그림에는 예전부터 보고 겪으며 가다듬은 어떤 정서가 존재해요. 지금에 다다르기까지 지나온 과거의 다발을 손 가는 대로 그릴 따름이에요. 숫자일 수도, 형태나 기호일 수도 있죠.”
그의 정원 가꾸기는 일종의 즉흥 연주를 닮았다. 공연 당일 현장의 조건과 연주자의 정서, 기분에 따라 연주되는 음악처럼 머리가 아닌 몸이 가는 대로, 즉발적으로 그릴 따름이다. 미리 세운 계획에 맞춰 붓을 흘리지 않는다.
“계획이라면 ‘아 오늘 작업실 가야지’ 이것 뿐이에요.”
색은 칠하는 게 아니라 스며드는 것
정원이 무성한 녹음으로 가득해지려면 정원사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다. 식물이 잘 자랄 수 있는 풍토와 기후도 뒷받침돼야 한다. 김선형 작가의 정원도 마찬가지다.
“의도를 가지고 일정 부분 개입할 수는 있어요. 색이 더 번지게 하고 싶지 않을 땐 열풍기로 확 말려버려요. 더 번지게 하고 싶을 땐 주변부에 물을 계속 뿌리고요.”
물의 양이나 안료의 비율, 종이의 성질 등에 따라 미묘하지만 스며듦과 번짐의 정도를 어느 정도 조절할 수도 있다. 다만 그림의 마침표를 찍는 건 결국 시간이다.
“젖은 옷은 본연의 색보다 훨씬 진하잖아요. 마찬가지예요. 결국 내 작업에 색이 어떻게 나왔는지 확인하려면 시간이 지나 종이가 다 마른 후에야 제대로 볼 수 있어요. 물감이 다 말라 색이 종이화됐을 때 비로소 제 색이 어떻게 나왔는지 알 수 있는 거예요.”
붓이 선을 그리고, 선을 따라 스며들고 번지고 이내 마르는 이 모든 시간이 하나의 작업을 완성하는 셈이다. 김선형 작가의 정원은 사람 혼자서 만들어낼 수 없는 것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그의 작업, 작업에 임하는 자세는 자연을 통제와 탐구의 대상으로 삼는 오늘날의 태도와 조금 거리가 있다. 김선형 작가는 색과 종이, 시간이 만드는 우연성에 몸을 맡기고 재료와 자연을 수단이 아닌 작업의 동반자 자리에 올려놓는다. 그래서 이 말은 꽤나 진실되게 느껴진다.
“저는 제 작품으로 뭔가를 말하려고 하지 않아요. 좀 우스운 얘기지만 제 그림을 보는 사람이 ‘아 저 사람 뭐 아무것도 아닌 걸 그리고 있구나. 이런 정도면 나도 할 수 있겠네’하고 생각해주면 좋겠어요.”
김선형 개인전
색과 종이, 시간을 통해 푸른 농담을 그리는 김선형 작가의 신작 전시가 열린다. 작가는 번짐과 스며듦이 만드는 우연성을 통해 담백하면서도 추상적인 자신만의 정원을 그려낸다. 한편 갤러리 지우헌은 7월 2일 오후 4시부터 열리는 오프닝에서 자연을 닮은 스킨케어 브랜드 ‘다자연’ 제품을 선착순으로 증정한다.
기간 7월 2일~8월 2일(일·월요일 및 공휴일 휴관)
장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11라길 13, 갤러리 지우헌
문의 02-765-7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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