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걷기만으로는 노화를 늦출 수 없어요. 심장을 힘들게 하세요.”
인간의 생존 및 건강 수명에 기본이 되는 척도에는 근력과 심폐 체력이 있어요. 근육도 쓰지 않으면 얇아지고 가늘어지듯, 심폐 체력도 해가 지날 때마다 비슷한 비율로 계속 떨어지죠. 골밀도도 인지 기능도 마찬가지고요. 결국 우리 몸의 근육과 심폐 체력을 유지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기울이는지가 슬로 에이징의 관건인 거예요. 노화 속도를 조금이라도 늦추려면 젊을 때부터 몸을 써야 해요. 그것도 격하게요. 흔히 걷기만으로도 충분한 운동이 될 거라고 생각하시는데요, 걷는 것만으로는 심폐 체력이 떨어져요. 제가 한때 허리 디스크 때문에 3주 정도 달리지 못한 적이 있어요. 할 수 있는 게 걷기뿐이라 2만 보 가량을 걸었어요. 주말이면 아침에 네 시간, 저녁에 다섯 시간을 걸어서 누적 거리가 42km에 달하기도 했죠. 그날 스마트 워치의 심폐 체력 추정값을 확인했는데, 심폐 체력을 나타내는 지표인 최대 산소 섭취량(VO2 max)이 계속 떨어지더라고요. 꾸준히 오래 걸었는데도 말이죠.
“3주를 쉬면 심폐 체력 노화를 30년 앞당기는 것과 다름없어요.”
실제 연구 결과도 있어요. 스무 살 대학생 다섯 명을 대상으로 수행한 연구였는데요, 3주 동안 침대에서 지내며 책을 읽고 음식을 먹게 한 뒤 이들의 심폐 체력을 측정했는데 결과는 놀라웠어요. VO2 max가 30%나 떨어진 거예요. 이후 세 사람을 30년 뒤, 그러니까 이들이 50대가 됐을 때 다시 만나 그들의 심폐 체력을 측정한 후속 연구를 진행했어요. 그랬더니 20대 시절 3주간 침대 생활 후에 측정한 시절 심폐 체력과 50대 시절의 심폐 체력이 거의 동일하게 나왔어요. 3주라는 시간 동안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으면 심폐 체력의 노화를 30년 앞당기는 셈인 거예요. 폐와 심장을 꾸준히 단련해 심폐 체력을 높은 상태로 유지하지 않으면 우리 몸의 노화가 이렇게나 빨리 찾아온다는 사실이 밝혀진 거죠. 젊을 때 이들의 몸을 육안으로 보면 크게 달라진 게 없었을 거예요. 그런데 실상 속은 30년이라는 시간이 노화된 상태였죠. 중요한 건 지금 내 몸이 어떤 상태인지 속을 들여다보는 거예요. 겉이 아닌 속을 챙기는 게 진정한 슬로 에이징이 아닐까 생각해요.
“뇌 건강을 잘 유지하는 것이 슬로 에이징의 지름길이에요. 심폐 체력을 기르면 뇌를 건강하게 오래오래 쓸 수 있어요. 달리기는 현재까지 나온, 뇌 질환을 방지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수단이에요.”
뇌가소성(neuroplasticity)이라는 개념이 있어요. 젊을 땐 학습·공부뿐만 아니라 가치관이나 성격 또는 생활 습관을 바꾸는 게 수월한 반면, 나이가 들면서 변화를 받아들이는 게 어려워진다고들 하잖아요. 이것 역시 뇌가소성과 관련 있는 얘기예요. 과거에는 뇌라는 게 태어나면 끝이라고 생각했어요. 신경세포는 일정 시기가 지나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1998년에 새로운 사실이 밝혀졌어요.
어른이 돼도 사람 뇌에서는 신경세포가 계속 새롭게 생성된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거든요. 뇌가 계속 변화하려면 새로운 세포가 생겨나야 해요. 세포와 세포 사이 연결망도 바뀌어야 하고, 그 연결망이 제 기능을 해야만 하고요. 유산소운동, 그중에서도 중 · 고강도 유산소운동을 하면 뇌 유래 신경 성장 인자가 늘어나 신경세포를 만들어내요. 신경세포와 신경세포를 연결하는 연결망도 있어야 하는데, 유산소운동을 하면 연결망이 훨씬 많이 생겨난다는 사실도 과학적으로 밝혀졌어요. 여러 감각 자극으로 세포가 생성되는 것뿐 아니라 세포와 세포를 연결해 기능할 수 있게 하고, 이를 통해 인지 기능이 실제로 좋아진다는 사실을 확인한 거죠.
뇌가소성 측면에서 중·고강도 유산소운동은 반드시 필요해요. 뇌는 나란 사람이 누구인지, 내가 살아온 세상에 대한 기억을 저장하고, 주변 관계에 대해 인지하고, 내 몸을 통제하고 다스리는 데 중추적 역할을 해요. 그런데 뇌가 고장 나면 의술과 기술로도 완치가 안 돼요. 신체적 노화도 문제지만 뇌의 노화가 중요한 이유예요. 뇌 기능, 인지 기능과 관련해서는 근력 운동도 한계가 분명해요.
뇌 기능을 보호해주는 측면에서는 유산소운동이 현재 나와 있는 유일한 답이에요. 파킨슨병과 치매에 쓰는 약은 대증적 치료에 불과해요. 증상을 조절하는 정도의 효과만 있을 뿐인 거죠. 이를 치료하고 예방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방법은 중·고강도 유산소 운동뿐이에요. 뇌는 우리 몸의 에너지 중 5분의 1 이상이 필요한 장기예요. 쉬지 않고 일하다 보면 세포에 노폐물이 쌓이는데요, 이를 원활히 제거하지 못하면 퇴행성 뇌 질환이 발생해요. 유산소운동은 바로 이 노폐물을 없애고 건강한 혈관을 담보하는 데도 효과가 있어요.
“하루라도 빨리 시작하세요.”
앞서 말씀했듯 뇌가소성 차원에서 보면 조금이라도 젊을 때가 뭔가를 시작하기 좋잖아요. 몸도 마음도 쉽게 바뀌는 시기니까요. 건강이 악화하고 노화가 가속화하면 결국 언젠가 습관을 바꿔야 하는 상황이 찾아오는데, 우리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자신이 살아온 틀을 바꾸기 힘들어요. 특히나 몸이 아픈 환자에게 힘든 운동을 권하면 거부감을 느끼게 마련이죠.
노화를 거스르는 건 사실상 불가능해요. 우리는 태어나는 순간 노화와 동행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요. 하지만 노화가 찾아왔을 때 이를 어떻게 대하는지에 따라 경과가 달라져요. 나중에 건강이 좋지 않을 때 생활 습관을 바꿀 수 있는 뇌의 근력을 키운다는 측면에서도 달리기는 좋아요.
제가 20대 시절부터 달린 건 노화를 늦추기 위한 목적이 아니었어요. 남는 시간에 몸을 쓰는 무언가를 해보겠다는 단순한 동기에서 출발했죠. 그런데 20년 넘게 환자들을 만나고 뇌를 들여다보니 우연한 계기로 시작한 달리기가 실은 뇌 건강에 좋다는 걸 알게 된 거예요. 이걸 지금까지 꾸준히 해온 것이 인생에서 잘한 일 중 하나라는 걸 깨달았죠.
2003년부터 달리기를 했는데요, 그때는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만 달렸어요. 지금은 거의 매일 달리죠. 만약 지금 나이에 달리기를 시작했다면 제가 20년을 뛸 수 있을까요? 쉽지 않을 거예요. 조금이라도 젊을 때부터 했기 때문에 지금까지 달릴 체력을 기를 수 있었다고 생각하거든요. 변화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한 뇌 근력도 지닐 수 있었고요.
“달리기는 오히려 퇴행성 관절염에서 무릎을 보호하는 운동이에요.”
달리기를 하면 무릎에 좋지 않다는 말을 종종 하는데요, 달리기 자체가 무릎을 손상시키거나 부상을 입히진 않아요. 달리기 부상은 흔히 과사용으로 인해 손상을 입는 경우이고, 아킬레스건염이나 족저근막염도 무리하게 사용해서 생기는 건데요, 몸이 견디지 못할 정도의 과부하를 반복하면 사실 어떤 운동도 몸에 좋지 않은 건 마찬가지예요. 무릎 관절염을 치료할 때 궁극적인 단계는 인공관절 치환술이에요. 이 단계까지 무릎 관절염이 진행한 분들을 진단하고 이야기를 나눠보면 대부분 운동을 하지 않아 근육이 없고 무릎이 닳은 경우가 많아요. 하체 근력을 보존하지 못해 연골에 무리가 가고, 그로 인해 퇴행성 관절염을 겪는 거예요. 달리기는 연골뿐만 아니라 근육, 인대, 건 등 하체 주변 조직을 단련시켜요. 오히려 무릎을 보호하죠. 무릎 관절염은 오히려 운동하지 않는 사람이 더 취약해요.
“다양하게, 골고루 하세요. 편식하지 말고.”
달리기에는 다양한 훈련법이 있어요. 인터벌 훈련도 있고, 요즘 많이 하는 존투Zone2(최대 심박수를 5단계로 나누었을 때 2단계에 지속해서 머물도록 강도를 조절하는 것) 훈련도 있고요. 이 중 어느 것 하나가 나에게 잘 맞는다고 그것만 하는 건 지양했으면 해요. 하나의 방법만으로 심폐 체력을 기르려는 건 덜 고생하고 많은 걸 얻으려는 일종의 욕심이라고 생각해요. 더 잘 뛸 수 있고, 몸 상태가 괜찮은 날에는 심폐 체력의 최대치까지 끌어올려 달려보기도 하고, 몸 상태가 좋지 않다 싶으면 강도를 낮추는 식으로 변화를 줘야 해요. 자신의 심폐 체력 수준이 이미 높은데도 일정 자극 이상을 주지 않으면 유산소운동이 주는 다른 효과는 얻겠지만 심폐 체력을 더 키울 수는 없어요. 슬로 에이징을 위한 심폐 체력을 단련하기 위해서는 중·고강도 달리기와 업힐 달리기, 인터벌 훈련을 병행하는 게 좋아요.
“함께 달릴 수 있는 친구를 만드세요.대회에 나가는 것도 좋아요. 목표를 세워보세요.”
20년 넘게 달리면서 늘 좋거나 재밌지는 않았어요. 러닝 권태기라고 하는 걸 마주한 적도 있는데요, 그럴 때면 같이 달리자고 해주는 친구들이 있었어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덕분에 달리기 싫던 시간들을 조금 수월하게 넘길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처음부터 끝까지 계속 혼자 달렸다면 인생에서 달리기를 놓아버렸을지도 몰라요. 이제 막 달리기를 하는 분에게도 함께 달릴 가족이나 친구를 만들어보라고 권하고 싶어요. 대회의 페이스메이커가 아니라 인생의 페이스메이커를 만들어보는 거예요. 요즘에는 러닝 관련 앱도 많이 나와 있잖아요. 친구를 만드는 게 조금 어색하면 기술의 도움을 받는 것도 추천해요.
‘런데이’ 앱이 대표적인데, 8주간 프로그램 수행 후 30분 쉬지 않고 달리기를 목표로 도전하는 것도 습관을 들이는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해요. 오늘 내가 달린 기록을 SNS에 올리거나 주변 사람에게 티를 내는 것도 일종의 동기부여가 될 수 있죠. 달리기를 하고 싶은데 유지하기가 힘들다면 이런 방법도 이용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달리기에 재미가 생기다 보면 거리나 기록에 집착하기도 하는데요, 그것도 다 한 때거든요. 그러니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도전해보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기록을 단축하든, 좀 더 먼 거리를 달리든 그걸 통해 얻는 성취감도 달리기를 꾸준히 하게 만드는 밑거름이 돼주거든요. 달리기는 이래야 한다, 이것이 올바른 달리기다, 이런 거 없고요. 각자가 애쓰는 과정이 멋진 거예요.훈련을 얼마나 하고, 마일리지를 얼마나 쌓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아요. 모든 달리기는 다 의미가 있고 귀중해요.
우리는 각자 위치에서 저마다의 일을 하며 살아가요. 할애할 수 있는 시간과 기회가 제한돼 있죠. 만약 누군가에게 슬로 에이징을 위해 딱 하나의 운동을 추천 하라고 하면 저는 주저 없이 달리기를 고를 거예요.건강 지표에서 중요한 심폐 쳬력 단련, 뇌 인지기능 보호, 스트레스 해소와 성취감 등은 근력 운동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르거든요. 하루 한 시간 투자해서 이렇게 많은 것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데 하지 않을 이유가 있을까요?(웃음) 저는 환자분에게도, 주변 분에게도 달릴 수 있으면 달려보라고 꼭 권해요. 그러니 오늘 저녁에라도 집 앞 공원에 나가 조금이라도 달려보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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