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부산본점_오픈 스튜디오 상처가 꽃이 될 때 - 공예가 김민욱
2022 로에베 공예상 파이널리스트, 2019 렉서스 크리에이티브 마스터즈 어워드 최종 수상자 4인 중 한 명인 키미누Qi Minu 대표 김민욱. 나무가 지닌 상처까지 꽃처럼 아름다운 공예가 되는 키미누의 본질에는 ‘부산’이라는 DNA가 있다.

 나무의 삶의 흔적을 고예로 기록하는 김민욱 작가.

 

 

― ‘아름답다’는 ‘나(我)답다’에서 온 말이라죠. 구멍 뚫리고, 벌레 먹고, 기우뚱하고, 가끔 곰팡이도 슨 김민욱 작가의 작품에서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느끼는 건 나답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인 것 같아요. 나처럼 완벽하지도 세련되지도 않고, 상처도 좀 있고, 남의 도움도 필요한, 그런 존재요. 그게 결국 생명의 본성이라는 걸 우린 알기 때문에 김민욱 작가의 작품에서 편안함, 위로 같은 걸 받는 것 같고요.

 

맞아요. 제가 가장 기쁠 때는 작업이 잘됐을 때보다 나무를 만날 때예요. 제가 말하는 나무는 건조를 포함해 다양한 안정화 과정을 거치지 않은 나무예요. 새 나무를 맞을 때마다 항상 저 커다란 덩어리 속에는 어떤 게 들어 있을까 상상해요. 나무 한 그루도 부분마다 색감, 결, 변형의 정도가 다르거든요. 그리고 나무는 죽은 후에도 뒤틀리고 갈라지는 것을 멈추지 않아요. 그게 나무의 본능이고요. 사람의 눈에는 그게 ‘불완전함’ ‘모자람’으로 보일 수 있지만, 저는 나무가 제 모습을 그대로 드러낸 거라 생각해요. 나무가 오랜 시간 말해온 몸짓을 있는 그대로 끌어안고, 또 드러내는 게 제 일이죠.

 

 

하드우드를 목선반 작업 등으로 깍아 나무 그릇이나 화병, 항아리를 만든다. 그는 벌레 먹거나 곰팡이 슬거나 뒤틀리고 갈라진 '불완전함'을 공예가의 기술로 통제하려 하지 않는다. 심하게 갈라지거나 비뚤어질 때만 아주 작은 금속으로 형태를 잡아줄 뿐이다.

 

 

― 그렇게 ‘좋은 나무를 만나’고 나면 김민욱 작가는 그 나무에 어떻게 형태와 쓰임을 주나요?

 

음… 좀 달라요. 제 작업은 나무에 따라 형태와 쓰임이 결정된다고 봐야 해요. 목선반 작업으로 1차 가공하다 보면 나무 속에 숨은 벌레 흔적(구멍), 곰팡이균이 만든 검은 얼룩(스폴팅), 옹이 같은 게 드러나요. 그걸 매번 새로 발견하는 게 제 일이죠. 그러니 나무가 일러주는 대로 형태와 쓰임을 결정할 수밖에요. 저는 스케치를 하지 않아요. 나무 크기, 옹이 위치, 칼날 상태에 따라 모든 게 유동적으로 바뀌거든요. 한 작업만 파지도 않고요. 이거 좀 하고, 저거 좀 하다 보면 나무들이 계속 마르고, 수축하고, 뒤틀리고, 계절에 따라 색감도 조금씩 변해요. 저는 그 상황을 계속 지켜봐요. 그런 게 제 성격과도 닮았어요. 나무에 시간을 주면 원래 갈라진 부분이 더 깊어지기도 하고, 한 방향으로 더 기울기도 해요. 변형이 심할 경우엔 아주 작은 금속을 덧대 형태를 잡아주는 정도만 제가 해요. 예전엔 그게 나무에 대한 애정이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최근 1~2년 사이에 결국 ‘이것도 내 개인적 욕망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조용한 달맞이길 골목에 자리한 목공예 스튜디오 키미누. 1층에는 쇼룸이 있다.

 


― 패션 디자인을 전공하고, 남성복 테일러가 되려 했다고 들었어요. 이민을 계획하면서 즐겁게 일하며 살 수 있는 직업을 찾다가 목공을 만났다는 이야기도. 부산에 내려오게 된 이야기가 궁금해지는데요.

 

10년 좀 넘었어요. 부산이 고향이에요. 서울에서 직장 생활을 오래 했는데, 결국 서울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내려왔어요. 무엇보다 저는 부산을 아주 좋아해요. 어느 정도인가 하면 예전에 자동차를 살 때도 부산에서 생산된 걸 찾았으니까요. 부산 사람들은 저 별로 안 좋아하는 것 같은데…. 음, ‘부산에서 일하기 때문에 이런 작업이 나왔다’라는 건 확실히 말할 수 있어요. 전에 돌 작업하는 분이 제 작업을 보고 “경상도 냄새가 난다”고 했는데, 그동안 받은 평가 중 가장 인상 깊었어요. ‘경상도스럽다’? 서울적이지 않다, 세련되지 않다, raw하다, 로컬적이다… 뭐 그런 의미일 텐데, 한두 마디 말로 표현할 재주는 제게 없네요.

 


― 저는 ‘raw+cul(ture)적’이라고 표현하고 싶은데요, 나무가 지닌 ‘천연의 미’를 김민욱 작가의 ‘손의 기운’으로 전달한 공예니까요. 부산의 직설적이고 투박하지만 진솔한 컬처가 그 밑바탕에 흐르고 있을 테고요.

 

음… 그렇죠. 저는 나무를 깎는 게 제 일이지만 하루 한 시간 정도 바닷바람, 산바람 맞으며 와우산을 산책하는 것도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와우산도 제 작업실의 일부이고요. 왜냐하면 걸으면서 생각하는 건 작업뿐이거든요. ‘그 나무는 언제 작업 좀 해야 되는데’ ‘그 나무는 깎은 지 며칠 지났으니까 이제 형태를 어떤 식으로 해야겠다’ 생각하다 보면 한 시간이 훌쩍 가요. 그런데 막상 작업할 때는 거의 생각을 안 해요. 관성처럼 순간순간에 집중할 뿐이에요. 바닷가를 끝도 없이 걷는 것, 생각하는 것, 상상이 되지 않지만 서울이나 일산이었다면 이런 일상은 없었을 테고, 지금의 키미누는 좀 달라졌겠죠. 그리고 ‘관계하지 않는 삶’이라고 해야 할까요? 저는 아침 일찍 일을 시작하고, 중간에 잠깐 낮잠 자고, 저녁까지 일하다 산책하고, 격주에 한 번 정도 언덕을 내려가요(집도 작업실 바로 옆이니까요). 아내와 부모님과 나누는 몇 마디 대화를 빼놓고는 언어의 사용도 아주 적어요. 이렇게 단조로운 삶, 관계하지 않는 삶이 제게, 제 작업에 아주 잘 맞는다고 생각해요.

 

 

기사 전문은 <행복> 6월호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E-매거진 보러가기

 

 

글 최혜경 | 사진 이기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