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DM파트너스 사옥에서 만난 고성호 대표. 1층에서는 WA세계건축상 수상을 기념하며 <대지와 풍경의 건축> 전시가 한창 열리고 있었다.
부산은 사람도, 지형도, 풍광도 다이내믹한 도시다. 도심 곳곳에서 갑작스레 자연이 모습을 드러내고, 구불구불한 산복도로 아래위로 산과 주거지, 바다가 공존하는 모습은 어디에서도 보기 드문 풍경이다. 한때 이러한 풍경을 조망하는 대형 카페들이 해안 도로를 따라 속속 들어서던 시기가 있었다. 완벽한 바다 뷰를 갖춘 입지에 들어선 대다수 건축물은 지역의 물리적 조건이나 주변의 맥락을 고려하기보다는 그 자체로 눈에 띄는 데 집중했다. 그마저도 몇몇 공간이 이슈가 된 후에는 비슷한 규모, 재료, 외관의 건물이 여기저기 반복되었다.
부산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PDM파트너스는 F&B 공간에 대해 조금 다른 접근 방식을 택했다. 기장 어촌 마을에 설계한 카페 칠암사계는 동네 집들과 높이를 맞추고 곳곳에 여백을 두어 경계를 흐리려는 시도를 보여줬고, 산과 저수지를 동시에 조망하는 카페 선유도원은 경사진 지형을 거스르지 않도록 건물을 앉혀 풍경뿐 아니라 지나는 사람들의 조망까지 고려하는 혜안을 드러냈다. 50년 된 목장 부지에 지은 카페 성림목장은 없앨 것과 남길 것을 구분하고, 주변 환경을 복원하는 데만 1년의 시간을 들이기도 했다. 철저히 기존 환경과 맥락을 고려하며 만든 공간은 단순히 사람들이 찾는 장소 이상으로 트렌드가 시시각각 바뀌는 상업 공간 분야에서 건축이 지속 가능하기 위해 어떤 역할을 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
PDM파트너스는 프로젝트Project, 디자인Design, 매니지먼트Management의 앞 글자를 따서 만든 이름처럼 건축과 인테리어, 설계와 시공, 조경, 콘텐츠에 이르기까지 공간의 전 영역을 아우르며 일한다. 20여 명의 직원이 업역을 나누지 않고 하나의 프로젝트를 소화하기에 지역성과 지속 가능성이라는 메시지를 더욱 일관된 방식으로 실현할 수 있다. 이들은 물리적 공간을 짓는 프로젝트를 하지만, 동네의 풍경이 되는 건축을 통해 장소에 스며들면서 정서적으로 지속하는 방법을 보여주고 있다.
유선재(2024). 부부의 집 근처에 출가한 자녀들이 모였을 때 쓰기 위한 별채를 설계했다. 유선재는 해운대에서 불과 30여 분 거리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숲과 저수지로 둘러싸여 풍광이 아름다운 부지에 위치한다.
칠암사계(2021). 부산에서 오랫동안 사랑받아온 이흥용과자점을 리브랜딩하며 오래된 횟집이 즐비한 거리에 베이커리 겸 카페를 지은 프로젝트.
성림목장(2022). 10만㎡ 규모의 드넓은 목장을 고요하고 충만한 숲의 원형과 목장의 오랜 이야기를 품은 카페로 고친 프로젝트.
선유도원(2024). 호수와 산으로 둘러싸인 부지에 설계한 카페. 경사진 지형에 거스름 없이 세 동의 건축물을 앉히고 브리지와 계단으로 연결했다.
이백헌(2022). 부산에 속해 있지만 전원 풍경이 완연한 오래된 마을에 3대의 대가족이 함께 사는 집을 설계한 프로젝트.
“때로는 조경을 먼저 하고 남는 땅에 건축을 할 정도로 주변과의 관계를 지키려 노력해요. 결국 물리적 환경이든 공동의 기억이든 그곳과의 관계성을 주의 깊게 살피고 보존하려는 노력이 핵심입니다.”
― 지난해 제49회 세계건축상에서 칠암사계와 선유도원, 성림목장 세 개 작품이 모두 수상했습니다. PDM파트너스에게 어떤 의미를 지닌 수상이었나요?
세계건축상은 전 세계에서 활동하는 건축가 커뮤니티에서 수여하는 상이에요. 프로젝트를 제출하면 2백50여 명의 전 세계 건축가 회원이 투표로 10~15개 작품을 선정합니다. 민주적 방식이죠. 한국에서도 몇 차례 수상한 적이 있지만, 세 작품이 동시에 받은 건 처음이었어요. 설계할 때 대개 한국적인 것이나 지역적인 것에서 출발하는데, 우리의 방식대로 작업한 프로젝트가 전 세계의 보편적 기준으로 보았을 때 어떻게 생각할지 늘 궁금했거든요. 이번 수상을 계기로 우리가 하는 일로도 보편성을 획득할 수 있겠다는 믿음을 지니게 됐어요.
― 원래는 인테리어와 조경을 주로 작업하다 2004년 PDM파트너스를 시작하며 건축으로 업역을 넓혔습니다. 어떤 계기로 건축까지 확장하게 되었나요?
처음에는 인테리어로 시작했다가 건축으로 범위를 확장했어요. 건축이 도시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해하고 있었기에 섣불리 뛰어들어 도시에 피해를 끼치고 싶지 않았습니다. 자연은 건축물 없이 비어 있을 때 가장 아름답다고 생각해왔고요. 그래서 조경과 인테리어를 20년 가까이 작업하며 경험을 쌓았고, 40대 중반에 들어서면서 이제는 다시 건축을 해봐도 되지 않을까 생각해 다시 돌아오게 되었어요. 인테리어는 수익성이나 이용 가치가 떨어지면 금방 바뀌는 데 반해 건축은 수명이 훨씬 길어요. 잘못 설계했을 때도 남아 있는 건 괴롭지만, 제대로 잘 완성하기만 한다면 지속성이 있죠.
― F&B와 주거 공간을 활발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어떤 부분이 흥미로웠나요?
먹고 자고 일하는 공간에 관심이 많아요. 오늘날의 카페는 공공재적 성격이 있어요. 먹고 마시는 것에 그치지 않고 에너지를 충전하고 시간을 즐기는 장소가 되었죠. 주거는 사람을 가장 많이 닮아 있고, 또 변화시키는 건축이라는 점에서 흥미롭고, 오피스도 마찬가지로 사람들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이다 보니 저희가 설계하는 방식을 잘 적용할 수 있겠다고 생각해요. 공통점은 우리가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고, 밀접하게 관계 맺는 공간입니다. 그런 공간을 좋게 만들어 사람과 환경을 더 낫게 바꾸고 싶은 마음이 가장 큰 동기부여라 할 수 있어요.
― 카페 칠암사계는 PDM파트너스의 F&B 프로젝트 중에서도 특히 성공한 작업으로 꼽힙니다. 쇠락한 어촌 마을이 칠암사계가 들어선 이후에 활력을 얻으면서 지금은 80만~90만 명이 방문하는 장소가 되었다고요.
칠암사계는 30년 넘게 부산에서 빵을 만드는 이흥용 명장의 카페 겸 베이커리예요. 주어진 부지는 어촌 마을이지만 전면이 좁아 바다 조망이 불리한 땅이었어요. 주변과의 관계성을 해치고 싶지 않았기에 낮은 채를 여러 개 배치하고, 바다 대신 조망할 정원을 만들었습니다. 이러한 의외성이 오히려 이슈가 되면서 마을이 알려지는 계기가 되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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