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스크 II’, 혼합 재료, 77×118×85cm, 2002, 개인 소장.“비록 표상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을 보내지만, 내가 포착하고 싶은 것은 삶의 깊이다.” _론 뮤익
국립현대미술관은 현대 조각의 세계적 거장 <론 뮤익>전을 4월 11일부터 7월 13일까지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에서 개최한다. 프랑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Fondation Cartier pour l’art contemporain, FC)과 공동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호주 출신 조각가 론 뮤익의 작품 세계 전반을 조망하는 아시아 최대 규모의 회고전이다. 30여 년 동안 꾸준히 새로운 작품을 발표하며 놀라움을 선보여온 작가 론 뮤익의 시기별 주요 작품을 총망라해 소개하고, 이를 통해 현대 조각의 흐름과 변화의 궤적을 살펴볼 수 있는 전시다.
1958년 호주 멜버른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에서 활동하는 론 뮤익은 조각 매체의 재료와 기법 및 표현 방식 등 다양한 방면에서 조각 장르의 확장을 이끌어내며, 현대 조각의 경계를 새롭게 정의해왔다. 놀랍도록 정교하고 실제보다 더 진짜 같은 론 뮤익의 조각적 테크닉과 표현력은 인간에 대한 통찰과 철학적 사유에 기반한다. 그의 작품은 현대인이 일상 속에서 느끼는 외로움, 취약함, 불안감 같은 내면의 감정과 존재론적 성찰을 담아낸다.
<론 뮤익> 전시는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의 5·6전시실에서 선보인다. 5전시실에서는 1998년 처음 소개한 ‘유령’(1998/ 2014)과 그간 좀처럼 보기 힘들던 ‘젊은 연인’(2013)을 비롯해 실제 크기의 약 네 배나 되는 작가의 자화상 ‘마스크 II’(2002), 암탉과 중년 남성이 마주해 팽팽한 공기를 만들어내는 ‘치킨/ 맨’(2019), 침대에 누운 거대한 인물로 가로 6m가 넘는 대형 작품 ‘침대에서’(2005) 등을 선보인다. 전시장은 출품작 하나하나를 관람객으로 하여금 몰입을 끌어낼 수 있도록 구성했으며, 작가의 주요 작품과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작품 ‘매스’(2016~2017)도 소개한다. 이 작품은 오늘날 전쟁, 전염병, 기후 위기, 자연재해 등 재난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아가는 인류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이 자리 잡은 위치의 역사적 의미와 미술관의 건축적 특징을 고려해 특별한 설치 방식을 제안함으로써 미술관을 찾는 관람객에게 새롭고 경이로운 경험을 선사한다.
‘나뭇가지를 든 여인’, 혼합 재료, 170×183×120cm, 2009,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현실과 비현실의 균형
실제 크기의 약 네 배가 넘는 작가의 자화상 ‘마스크 II’는 론 뮤익 작품의 중요한 특징인 현실과 비현실의 균형을 보여준다. 이 작품은 상징적 자화상으로, 전통적 장르를 전례 없이 독창적 방식으로 해석했다. 두상 형태는 받침대와 맞닿으며 눌려 있고, 그 효과는 너무나 설득력이 있어 관람객에게는 살짝 열린 입에서 숨소리까지 들릴 것만 같다. 그의 거대한 머리 위 공간에는 생각과 꿈이 떠도는 듯하다. 그러나 작품을 뒤에서 보면 그것이 가면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드러난다. 텅 빈 머리 안쪽을 마주하면 정면에서 확실하게 존재한다고 느끼던 실체를 의심하게 된다. 작품의 제목은 단순히 이것이 껍데기라는 사실을 가리키거나 혹은 작가가 자신의 얼굴을 내보이되 자의식을 배제한 상태임을 암시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등을 뒤로 젖힌 채 알 수 없는 작업의 무게를 짊어지고 두 발을 단단히 땅에 딛고 서 있는 여인을 표현한 작품 ‘나뭇가지를 든 여인’. 그녀의 자세는 우아한 불규칙성을 지닌 나뭇가지들과 대조를 이루며 역동성을 만들어낸다. 부드러운 피부에는 날카롭고 거친 나뭇가지에 긁힌 흔적이 남아 있으며, 얼굴에는 깊은 집중과 주변을 의식하는 듯한 표정이 서려 있다. 의도적으로 작게 제작해 불안한 기묘함을 자아내며, 물리적으로 존재하면서도 비유적 세계를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매스’, 유리섬유에 합성 폴리머 페인트, 가변 크기, 2016~2017, 빅토리아 국립미술관, 멜버른, 펠턴 유증, 2018.
‘배에 탄 남자’, 혼합 재료, 159×138×429cm, 2002, 개인 소장.“인간의 두개골은 복잡한 오브제이자 우리가 한눈에 알아보는 강렬한 그래픽 아이콘이다. 친숙하면서도 낯설어 거부감과 매력을 동시에 주는 존재. 무의식적으로 우리의 주의를 끌어 외면할 수 없게 만든다.” _론 뮤익
2017년 멜버른의 빅토리아 국립미술관이 의뢰해 제작한 ‘매스’는 1백 개 대형 두개골 형상을 쌓아 올린 작품으로 전시 공간마다 다르게 구성한다. 작품의 제목만 보아도 그 복합적 의미를 엿볼 수 있다. ‘mass’라는 단어는 더미・무더기・군중을 의미할 수도 있고, 종교의식을 뜻할 수도 있다. 두개골의 상징성 역시 다층적이다. 미술사에서 두개골은 인간 삶의 덧없음을 상기시키지만, 동시에 대중문화에서 흔히 등장하며 고고학적 발견을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죽은 자에 대한 경외심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고, 근현대사의 비극적 사건을 연상시킬 수도 있다. 론 뮤익은 각 전시 장소의 건축과 특성에서 영감을 받아 작품을 구성하므로 ‘매스’는 전시할 때마다 새로운 의미와 풍성한 맥락을 드러낸다. 이번 국립현대미술관 전시에서도 공간이나 관객과의 상호작용을 통해 작품이 더 깊은 의미를 지니게 된다. ‘매스’는 론 뮤익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작품으로, 관객을 작품 속으로 더 깊이 끌어들이려는 그의 열망을 보여준다. 일부 두개골의 색감과 세부 표현에서 개별성이 엿보이기는 하지만 그 정체성을 파악할 단서는 거의 없으며, 집단으로서 존재감이 압도적이다. 이러한 점에서 ‘매스’는 대상의 고립된 개별성에 집중하던 작가의 이전 작품과 다르다.
‘쇼핑하는 여인’, 혼합 재료, 113×46×30cm, 2013, 타데우스 로팍 컬렉션. 론 뮤익의 모든 작품 중 ‘치킨/ 맨’은 아마도 가장 분명한 이야기를 품고 있는 듯한데, 정작 어떤 설명도 제공하지 않는다. 가구 배치부터 남성의 신체와 자세, 집중된 시선, 그리고 닭의 경계하는 눈빛과 자세까지, 모든 부분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그러나 그들 사이의 공간은 의문으로 가득 차 있다. 동등한 대결을 앞두고 우리는 작품의 두 주인공 중 한쪽의 관점, 혹은 심판의 입장에서 이 장면을 관찰할 수 있다. 누가 먼저 눈을 깜빡이고, 누가 먼저 덮칠 것인가? 이것은 팽팽한 긴장감이 감도는 한 장면, 시간 속에 포착된 순간이다. 시선을 잠시 뗐다가 다시 보면 의자가 뒤집히고, 남성은 맥없이 쓰러지고, 닭은 깃털만 흩뿌린 채 사라져버릴 것 같아 감히 한순간도 눈을 돌릴 수 없다. 어쩌면 그 닭은 단지 남성의 편집증이 만들어낸 환영일지도 모른다. 이 질문에는 답이 없다. 우리는 원하는 만큼 오래 이 장면을 곱씹을 수 있지만, 이 상황은 절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정교하게 조각한 ‘치킨/ 맨’은 수많은 세부 묘사를 통해 이 기묘한 장면에 설득력을 부여한다. 우리는 비현실적이라는 느낌을 잊고 그 세계로 끌려 들어가 이 개연성 없는 심리적 대결의 이유를 추측하게 된다. 또 다른 전시실에서 감상할 수 있는 ‘치킨/ 맨’의 제작 과정을 기록한 단편영화는 이 비범한 작품을 완성하는 데 놀랍도록 정밀한 세부 표현이 필요했음을 보여준다. 드블롱드는 작가의 스튜디오에서 시작해 완성된 조각을 사진 촬영하는 과정까지 따라가며, 작품이 마침내 새로운 보금자리인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로 보내지는 여정을 담았다. 이 작품은 이번 전시를 통해 최초로 외부에 대여 및 전시된다.
<치킨/ 맨>, 고티에 드블롱드 각본 및 감독, 2019~2025, HD 영화, 13분. © 고티에 드블롱드 한편 ‘침대에서’를 통해 우리는 론 뮤익 작품의 핵심적 특징을 단번에 마주하게 된다. 놀라울 정도로 생생한 인물과 마주하게 되는 것이다. 이는 단순히 형태와 세부를 정교하게 조각했기 때문만이 아니라, 실제 인물의 정신까지 떠올리게 하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작품 속 인물은 마치 생각하고 느끼는 사람처럼 보이며, 그 존재감은 우리의 시선을 사로잡아 오래 머물게 한다. 론 뮤익의 작품이 늘 그렇듯, 이 조각 역시 실제 크기로 제작하지 않았다. 그는 인물을 항상 과장되게 축소하거나 확대해 표현하는데, 이는 단순한 크기의 차이가 아니라 작품을 경험하는 방식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미친다. 주제와 크기의 선택은 결코 별개가 아니다. 이 작품은 거대한 인물과 함께 이부자리와 베개까지 포함해 대형 조각이 되었다. 덕분에 관객은 인물에게 가까이 다가갈 수 있지만, 그녀는 마치 우리가 보이지 않는 듯 다른 곳을 바라본다. 우리는 작품 속 인물을 천천히 관찰하며 그녀의 생각을 상상할 수 있고, 동시에 우리의 존재가 그녀를 방해하지 않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치킨/ 맨’, 혼합 재료, 86×140×80cm, 2019, 크라이스트처치 아트 갤러리 테 푸나 오 와이훼투 컬렉션, 아오테아로아 뉴질랜드. 론 뮤익의 작품은 실제 사람보다 더 사람 같은 외형을 단순히 재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관객으로 하여금 자신의 내면을 돌아보게 하며 시대의 자화상을 마주하게 만든다. 그의 작업은 수개월, 때로는 수년간에 걸쳐 완성되는데, 이는 빠르고 즉각적인 만족을 추구하는 현대사회에서 예술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되새기게 한다. 이러한 점에서 그의 작품은 일종의 ‘시대 저항’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그의 작품은 인간 존재의 근본적 질문과 함께 관객을 성찰의 자리로 이끌며, 우리가 현실 세계에서 실재하고 있다는 감각과 그 의미를 깨닫게 한다.
인간의 존재와 삶 그리고 죽음에 대한 근원적 의미를 되돌아보는 론 뮤익의 작품을 감상한 후 관람객 스스로 삶의 의미를 질문하고, 예술적 성찰에 이르도록 돕는 다양한 연계 교육 프로그램도 마련했다. 전시를 관람하고 작가의 작품 세계와 연결되는 키워드로 진행하는 워크숍, 디지털 콘텐츠 등 다양한 경험을 제공할 예정이다.
김성희 국립현대미술관장은 “‘인체 조각’으로만 1990년대부터 현재까지 꾸준하게 탐구해온 론 뮤익의 작품 세계를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총망라해 선보이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현대 조각 거장의 작품들 속에서 인간의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사색하고, 진정한 의미를 찾는 경험의 시간이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침대에서’, 혼합 재료, 162×650×395cm, 2005,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컬렉션. © Fondation Cartier © MMCA © Ron Mueck / Photographer © Kiyong Nam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현대 예술의 다양한 분야를 국제적으로 알리고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사립 문화 기관이다. 재단은 시각예술과 공연 예술을 비롯해 건축, 디자인, 패션, 철학, 과학에 이르기까지 폭넓은 영역을 아우르는 독창적 전시, 라이브 퍼포먼스 및 아티스트 토크를 기획해왔다. 또한 40여 년간 동시대 예술의 주요 작가를 발굴하고, 예술가와 과학자가 협력해 오늘날의 중요한 사회적 이슈를 다루는 프로젝트를 선보이는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전 세계 주요 미술 기관과 협력해 현대미술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관람객에게 색다른 예술적 경험을 제공한다. 한국과도 지속적인 인연을 맺어온 재단은 2007년 한국의 대표적 현대미술가 이불Lee Bul을 초청해 파리에서 12개의 크리스털 및 알루미늄 조각으로 이루어진 대형 설치 작품을 선보인 바 있다. 또한 2017년에는 서울시립미술관과 공동으로 하이라이트Highlights 전시를 개최해 재단 소장품 중 국제적 작가 25명의 작품 1백여 점을 공개했다. 이 전시에는 박찬욱&박찬경 형제(파킹찬스), 이불, 선우훈 등 한국 작가들과의 특별한 협업도 포함되어 있어 한국 현대미술과 긴밀한 교류를 이어왔다.
다가오는 2025년 말,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은 세계적 건축가 장 누벨Jean Nouvel의 설계로 프랑스 파리의 유서 깊은 장소 팔레 루아얄Place du Palais-Royal에 새로운 전시 공간을 개관할 예정이다. 이 역사적 장소를 통해 현대미술의 중요한 주체로서 또 한 번 새로운 역사를 쓰게 될 전망이다.
론 뮤익Ron Mueck
1958년생으로 호주 멜버른 출신이다. 독일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나 1986년부터 영국에서 거주하며 활동하고 있다. 영화와 텔레비전 분야에서 마네킹과 소품을 제작하던 그는 1996년, 작가 파울라 헤구Paula Rego의 의뢰로 조각 ‘피노키오’를 만들며 본격적인 예술 활동을 시작했다. 2001년에는 ‘소년’(1999)이 제49회 베니스 비엔날레에 출품되었으며, 그의 작품은 캐나다 국립미술관(오타와), 빅토리아 국립미술관(멜버른), 테이트(영국), 휴스턴 미술관(미국), 까르띠에 현대미술재단 등 다수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다.
<론 뮤익>
기간 2025년 4월 11일~7월 13일
장소 국립현대미술관 서울 5‧6전시실
문의 국립현대미술관 02-3701-95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