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혜와 경험이 축적된 사람은 하나의 도서관과 같다고들 합니다.
그런 의미로 보면 홍라희 관장은 큰 문화 도서관일 것입니다.
근심, 걱정, 우환이 한 사람을 키우는 고비로 장치된 것이라면
홍라희 관장은 여러 고비를 넘었기에 아주 큰 사람일 것입니다.
무엇이건 가진 것이 많은 사람을 부자라고 말하는데,
남다른 가족, 남보다 많은 재물, 남몰래 기도한 시간을 많이 가졌기에
홍라희 관장은 그 누구보다 큰 부자일 것입니다.
복은 받은 것보다 스스로 짓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데,
틈새에 스며드는 빛처럼 받은 복을 가꾸고 나누지 않았더라면
이렇게 지켜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특히 낮게 살아가지 않도록 점지된 듯한 그 타고난 미모를 준엄하게
지켜온 미인복이라니요.
호암미술관의 겸재 전시 오프닝에서 홍라희 명예관장.‘문화’는 시간이 걸리는 단어입니다. 컬처culture라는 영어 단어도 땅을 가꾸고 경작한다는 뜻이고 보면 시간이 걸려야 탄생하는 문화는 동사로 이루어진 명사입니다. 인간의 마음이나 정신의 교양, 한 사회의 문명과 가치, 한 나라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문화는 심리학이고 인류학이고 사회학일 터입니다. 문화를 만드는 한 축에서 뮤지엄은 단순히 전시 공간을 넘어 사회 문화적인 플랫폼 역할을 합니다. 수집, 보존, 연구, 조사가 바탕이 되어 하나의 전시가 이루어지므로 우리 공동체의 기억 저장소요, 첨단을 미리 보고 과거를 다시 발현해내는 공간입니다. 그래서 리움은 사립 미술관이지만 그 의미는 작지 않으며 더욱 큰 역할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MZ세대에까지 만원을 이루고 화제를 만드는 리움의 진지하고 실험적인 전시가 그 증거입니다. 리움 로비 한 쪽에 자리한 뮤지엄 숍은 공예 작가와 아티스트, 디자이너들의 제품을 선정, 판매합니다. 이는 치열하게 결과를 만드는 작가들의 서포터로서의 역할도 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하나의 작은 지원 플랫폼일 수 있습니다.
총화된 문화적 지식을 경영해야 하는 뮤지엄의 이런 역할을 맡아야 하는 홍라희 관장은, 이 자리에 오도록 준비된 길이 오래 전부터 만들어져왔다는 생각을 하게 합니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응용미술학과를 졸업, 당대의 손꼽히는 이 나라의 컬렉터들과 왕래하는 시아버지 이병철 회장으로부터 한국의 고미술을 보는 안목에 대한 가르침, 리움미술관의 설계를 의뢰한 세계적 건축가들에 대한 호기심과 진지한 스터디, 근현대 작품과 현대 작가들과의 교류, 세계적 네트워크와 국제적 컬렉션을 해야 하는 의무를 가능하게 한 재력… 이런 전방위적인 소리 없는 오랜 시간이 홍 관장의 길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조용하지만 그녀가 움직이면 미술 시장이 움직였으니 우리나라 미술계를 움직이는 대표 인물이었고, 판을 키울 수 있는 안목과 영향력을 지니고 드러나지 않게 활약한 수준 높은 큐레이션으로 리움을 이 나라를 넘어 세계적 이미지의 뮤지엄으로 만들 수 있는 탄탄한 바탕이 만들어졌습니다.
몇 년 전 이건희 컬렉션을 국가에 기증하고 나서, 많은 사람이 같이 보아야 할 문화 자산이었기에 홍라희 관장은 참 잘한 결정이라고 스스로 위안이 되었다고 했답니다. 그 가벼움으로 다시 편안히 이 자리에 재등장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은 어느 정도는 짐을 지고 있는 것이 그 무게감으로 흔들리지 않는 법입니다. 국가나 시에서 운영하는 뮤지엄은 관장의 임기가 정해져 있으므로 좋은 기획과 뜻이 있어도 관철하기에 충분치 않은 구조입니다. 그러나 문화는 일생을 담보해도 결코 많은 시간이 아닌 것입니다. 그만한 일을 감당하라고 만들어진 운명이 있습니다. 또한 그런 의지를 지닌 어른에게는 졸업이 없는 법입니다.
가늘지만 수많은 실이 올올이 모여 짜인 ‘비단 라羅’ 자가 들어 있는 홍라희 명예관장, 비단의 유연함으로 감싸는 문화 마당으로서 리움미술관, 마지못해 일할 만큼 인생이 길지 않음을 이참에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것도 아닌데 우리 것처럼 말해본다면 “잘해주세요. 부탁합니다.”
홍라희 명예관장과 딸 이서현 운영위원장. 리움은 설립자의 성 ‘Lee’ 와 뮤지엄(Museum)의 ‘um’을 조합한 명칭 아래 이건희 회장 시절에 만든 사립 미술관으로, 2004년 10월 13일에 개관했다. 문화 예술을 후원하는 대표 기관으로 설립 초기부터 깊이 관여한 인물은 홍라희 관장이었다. 마리오 보타, 장 누벨, 렘 콜하스 세 건축가에게 설계를 의뢰해 하나의 예술 단지로 통합했다. 홍라희 관장은 개관과 동시에 초대 관장이었고, 설립 철학 수립부터 전시 방향, 소장품 수집, 공간 디자인에 이르기까지 전방위로 기획에 깊이 참여했다. 13년 넘게 그 자리에 있었으나 와병 등으로 스스로 관장직을 사임했다. 그리고 지난 4월 명예관장으로 다시 추대되었다. 마침 호암에서 이 나라 최대 규모의 겸재 정선 전시가 열린 날, 주요 인사들 앞에서 인사를 했다. 8년만에 다시 등장한 홍라희 명예관장의 결단이 용인의 호암과 리움에서 전통 미술과 현대미술의 균형 있는 큐레이션으로 예술적 실천이 더욱 힘을 받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기대하고 있다.
- 행복 갤러리 홍라희, 리움 미술관 명예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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