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 밥상의 추억’, Acrylics, oil crayons, and wax color pencils on canvas, 180 × 170cm, 2025. ‘한봇 V2’, 구조된 한옥 고재에 아크릴, 오일 크레용, 종이, 못, 14.75cm x 12cm × 58.5cm, ‘한봇 V1’, 구조된 한옥 고재에 아크릴, 오일 크레용, 종이, 못, 12cm x 11.5cm × 42.5cm.
건축과 회화는 모두 시각예술의 영역이지만, 그 목적과 방식은 사뭇 다르다. 건축이 실용성을 바탕으로 공간을 창조하는 예술이라면, 회화는 감정과 개념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예술이다. 이 두 요소를 조화롭게 융합하며 독창적 예술 세계를 펼쳐가는 아티스트가 있다. 바로 지훈 스타크.
그는 한국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미국으로 이주했고,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했다. 이후 뉴욕·하와이·독일 등지에서 건축가로 활동하며 경험을 쌓았지만, 결국 어린 시절 품었던 꿈을 좇아 건축업계를 떠나기로 결심했다. 2012년부터 본격적으로 화가의 길을 걸으며 뉴욕·베를린·도쿄 등지에서 활동하고 있다.
‘시원한 마루’, Acrylics, oil crayons, and wax color pencils on paper, 36 × 32cm, 2025
건축업계를 떠났지만, 그의 작품에는 여전히 건축적 시선이 깊이 스며 있다. 화면 위에는 다층적 색감과 구조가 교차한다. 여행지와 일상 공간을 입체적으로 표현한 그의 작품은 작가의 건축적 경험과 시각을 고스란히 반영한다. 이러한 스타일은 많은 이의 관심을 끌며 팬층을 넓히는 계기가 되었다. “페인팅이 좋은 이유는 한 장면 안에 이야기를 담아낼 수 있기 때문이에요. 사람들이 작품을 보며 각자의 해석을 더하는 과정도 흥미롭다고 생각해요.”
지훈 스타크의 작품을 처음 접하는 사람이라도 2018년 4월호 〈행복〉의 커버 아트를 기억한다면 낯설게 느껴지지 않을 것이다. 분홍색 배경 위에 자유로운 선으로 그린 지붕과 벽은 동심을 불러일으키며 많은 사랑을 받았다. 당시 그는 신당동 ‘의외의조합’ 갤러리에서 전시 〈장난감 도시 Pt.2 – Life between Buildings〉를 준비하고 있었다. 2006년, 미국에서 오랜 시간을 보낸 후 처음으로 한국에 돌아와 머문 1년 반의 시간은 그의 작업에 큰 영향을 미쳤다. 그 시기에 이동하 작가의 소설 〈장난감 도시〉를 읽으며 깊은 영감을 받았고, 이를 작품으로 풀어냈다. 이 전시는 폐허가 된 도시 속 버려진 무기들을 마치 장난감처럼 바라보는 작가의 시선이 담긴 작품으로 순수하면서도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조선 시대 어머니’, Acrylics, oil crayons, and wax color pencils on canvas, 230 × 208cm, 2025
그로부터 7년이 흐른 지금도 그의 작업 세계는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았다. 그는 건축과 회화를 이분법적으로 나누지 않고, 두 가지 요소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자신만의 예술적 언어를 구축해나가고 있다. “작품 속에 제 자신을 담아내면서도 익숙한 스타일에 안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롭게 시도하려 합니다. 건축적 사고가 여전히 작업에 영향을 주지만, 그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노력해요.” 그가 도자기, 조각 등 다양한 분야를 넘나들며 새로운 시도를 지속하는 이유다. 그는 2018년 우연한 계기로 ‘노영희의 그릇’ 도예전에 참여하면서 도예가의 길도 걷기 시작했다.
부엌 속에서 되찾은 엄마의 손맛
그의 탐구는 최근 ‘부엌’이라는 공간으로 확장되었다. 3월부터 지우헌에서 열리는 전시 〈LUMI KUKE: 부엌에서 짓는 사한〉은 작가의 개인적 기억과 전통적 요소를 ‘부엌’이라는 공간을 통해 풀어내는 자리다. 그는 부엌을 단순한 요리 공간이 아니라 가족과의 추억이 쌓이는 특별한 장소로 바라본다. “거실보다 부엌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고, 부모님과 대화도 대부분 부엌에서 이루어졌습니다. 부엌은 단순한 요리 공간을 넘어 가족과 소통하고, 따뜻한 일상의 중심이 되는 장소입니다. 이러한 부엌의 의미를 하와이에서 시작한 ‘키친 페인팅’ 시리즈와 한국의 전통 요소를 융합해 표현하고자 했어요.”
지훈 스타크의 작업실. 평소 러닝을 하며 몸과 마음을 환기시키고 아이디어를 구상한다.
전시 제목의 사四/思한韓은 한국, 한옥, 한식, 한글이라는 네 가지 요소를 포함하면서도 동시에 어린 시절 한국에 대한 그리움과 회상을 담고 있다. 그는 네 가지 주제를 중심으로 이번 전시를 기획했다. 한국의 전통, 개인의 추억, 부엌의 공간성, 그리고 음식의 역사다. 총 15~20점의 작품을 선보이는데, 회화뿐만 아니라 나무 조각 작품도 전시된다. 대표작 ‘조선 시대 어머니’는 작가의 한국인 어머니에 대한 기억과 조선 시대 부엌 문화를 결합한 작품이다. 그가 가장 그리워하는 음식인 어머니의 갈비찜을 모티프로 삼아 전통 조리 도구와 부엌 모습을 함께 담아냈다. “어머니가 해주시던 갈비찜 맛은 어디에서도 느낄 수 없어요. 저에게 감정적으로도 깊은 의미가 있는 작품입니다.” 반면 ‘빨간 밥상의 추억’은 어린 시절 기억과 한국 사극 드라마에서 영감을 받아 탄생한 것이다. 빨간 소반 위에 놓인 치킨, 막걸리병, 전통 한옥 부엌의 요소들이 조화를 이룬다. 바나나 우유 형태는 전통 옹기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했다. 특히 사극에서 닭 다리를 뜯어먹는 장면을 보고 작품의 모티프를 얻었다고 한다. “ ‘부엌’ 시리즈는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공간이 아니라, 그곳에서 쌓인 기억과 감정을 시각적으로 풀어내는 과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직접 와서 경험해보세요!”
〈LUMI KUKE: 부엌에서 짓는 사한〉
전시 기간 3월 12일~4월 5일
전시 장소 서울시 종로구 북촌로11라길 13, 갤러리 지우헌
운영 시간 화~토요일 오전 10시~오후 6시(일·월요일, 공휴일 휴관)
*오프닝 당일 ‘다자연’ 제품 증정 이벤트가 진행됩니다. 또한 지우헌 아트 숍에서는 지훈 스타크의 그릇을 판매할 예정입니다.
지훈 스타크는 1976년 인천에서 태어났고, 2001년 아이오와 주립대학교에서 건축을 전공하고 건축가로 활동했다. 2012년 이후 화가로 전향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랑핸드/ 콤포타블 서교(2024), 아줄레주 갤러리(2023), 대구미술관, 갤러리 SP 등에서 개인전과 그룹전을 펼쳤다.
- 북촌 발신 지훈 스타크JEE HOON STARK 개인전
-
과거 건축가였던 지훈 스타크. 지금은 물감으로 건축을 그린다. 그의 페인팅은 우리를 기억의 장소로 이끈다. 갤러리 지우헌에서 열리는 개인전을 통해 선보이는 ‘부엌’ 시리즈는 우리를 어떤 기억으로 데려갈까?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