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드한 컬러와 점·선·면의 디자인을 고르게 채운 공간, 스튜디오 포트폴리오라기 보다는 패션 브랜드 화보나 힙합 레이블의 뮤직비디오가 떠오르는 사진과 영상. 최중호스튜디오의 작업은 언제나 트렌드의 최전선을 달리고 있는 것만 같다. 그러나 이들의 작업을 조금 더 깊이 살펴보면 의외의 모습이 드러난다. 멋진 레스토랑이나 트렌디한 스트리트 브랜드의 팝업 스토어만 작업할 법하지만 대부분의 프로젝트는 우리 모두가 속해 있는 ‘집’을 기반으로 한다. 또 늘 세상에 처음 등장하는 유형만 만들 것 같지만 비주얼을 한 켜 걷어내면 간결하고 객관적 디자인이 본질처럼 자리한다. “가구는 공간에 어울려야 하는 동시에 행위를 돕는 도구로서 적절한 치수와 형태 같은 객관성을 유지해야 해요. 제작 방식은 합리적이어야 하고요. 저희 스튜디오도 가구와 비슷합니다. 캐릭터가 강하지만 솔루션 측면에서는 굉장히 객관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해요.”
최중호스튜디오가 여느 스튜디오에서 하지 못하는 결과물을 만들 수 있는 것은 제품과 공간에 모두 걸쳐 일하며 획득한 감각 덕분이다. 모두를 만족시켜야 하는 제품과 한 사람에게 모든 것을 맞추는 주거 공간이라는 양극단의 디자인을 두루 섭렵하며 제품과 공간의 장점을 갖춘 솔루션을 발굴했고, 객관성과 주관성 모두 놓치지 않으며 17년 동안 내공을 쌓았다. 그리고 그 위에 그간 끊임없이 흡수해 온 문화에서 비롯한 터치를 더해 최중호스튜디오만의 정체성을 완성한다. 제품 기반의 유형은 여러 방식으로 확장하며 공간을 다양하게 이용할 가능성을 제공하고, 더 나아가 사용자를 스스로 공간을 바꾸는 능동적 주체로 변모시킨다. 믹스테이프 하나, 신발 한 켤레까지 신중하게 고르며 또렷한 상을 그리지만, 사용자는 그속에서 자유롭게 유영하기를 바란다. 그렇게 지극히 개인적인 동시에 한없이 유연한 태도로 공유 주거나 모빌리티 등 기존에 없던 영역까지 확장하며 최중호스튜디오의 솔루션은 도시라는 무대의 시노그래피를 새롭게 구축하고 있다.
최중호스튜디오
디자이너 최중호가 2008년 설립한 다분야 디자인스튜디오. 제품과 가구, 공간, 크리에이티브 디렉션 등 다양한 디자인 분야에서 활동한다. 가장 효율적이면서 프로젝트의 본질에 입각한 최상의 결과를 만들기 위해 여러 제조사와 브랜드, 그리고 아티스트들과 협업하여 한국의 디자인 산업에 새로운 관점을 제시하고 있다. joonghochoi.com
제이미의 아파트먼트
서울 도심 아파트 최고층에 위치한 사업가의 집. 패션을 좋아하는 집주인의 취향에 맞춰 드레스룸이 집의 주인공이 되도록 디자인했다. 거실을 거대한 드레스룸으로 바꿔 많은 양의 옷을 수납하고, 사용도가 낮은 주방은 포켓 공간처럼 가볍게, 욕실은 작지만 개성 있게 연출했다. 포인트 컬러는 집주인이 좋아하는 디자이너 사무엘 로스가 즐겨 쓰는 레드 오렌지에서 착안했다. 단순한 주거 공간을 넘어 집주인의 패션 감각과 취향이 담긴 쇼룸 같은 공간이다.
레어로우의 트롤리 에케ECKE
금속 가구 브랜드 레어로우의 설립 10주년을 기념하며 협업한 프로젝트. 국내외 총 10 곳의 디자인 스튜디오 중 하나로 참여했고, 트롤리를 주제로 사용자의 취향과 용도에 맞게 확장하는 디자인을 제안했다. 하나씩 끼워 쌓는 방식으로 설계해 방향을 바꿔가며 열 수 있고, 두세 단을 쌓아 침대 옆 사이드보드로 사용하거나 뒤집어서 월 시스템처럼 쓸 수도 있다. 하나의 제품이지만 약간의 변화로 다양한 톤 앤 매너를 만드는 스튜디오의 방법론이 잘 드러난 작업이다.
데스커 라운지
데스커의 콘텐츠를 체험하며 브랜드 철학을 공유하는 멤버십 라운지. 스툴과 2인 책상, 다인용 테이블과 독립된 존 등 다양한 가구를 활용해 카페와 커뮤니티 공간, 전시실을 디자인했다. 가구는 콘텐츠에 맞춰 유연하게 변화하며, 사람의 성향에 따라 원하는 정도의 개방감으로 프로그램을 이용할 수 있다.
산스월스 리조트&빌라
경기도 가평군에 위치한 리조트. 북한강과 신선산의 아름다운 뷰가 펼쳐지는 주변 환경에 맞춰 풍경을 향해 열려 있으면서 건축과 자연 사이의 경계를 모호하게 만드는 공간을 디자인했다. 직접 디자인한 카레클린트 소파와 테이블, 라이마스의 벨트 드라이브 조명과 빈티지 가구로 스타일링한 라운지는 워크숍이나 상영회, 세미나 등 다양한 이벤트가 벌어지는 장소가 된다. 그리너리한 포인트 컬러가 목재와 콘크리트, 다채로운 가구와 조화를 이룬다.
LG 슈필라움Spielraum
LG전자와 협력해 차량 내부를 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춘 공간으로 바꾸는 모빌리티 솔루션 프로젝트. 오피스, 라운지, 엔터테인먼트 등 다양한 유형을 디자인하고, LG전자의 AI 가전과 IoT 기기를 결합한 방식으로 제안했다. 완성된 공간은 포드처럼 제작해 현대자동차 ST1에 탈착하고, 구독 서비스를 통해 유형을 바꿔가며 이용할 수 있다. 개개인의 라이프스타일에 최적화된 모빌리티 경험을 제공하며, 우리의 생활과 이동 방식을 새롭게 정의해본 작업이다.
“마감은 한번 시공하고 나면 바꾸기 어렵지만, 유닛 중심으로 디자인하면 상황에 따라 달라질 여지를 주고 더 지속가능한 공간이 됩니다.”
작년에는 리빙 디자인 스튜디오라 소개해도 좋을 정도로 가구나 공간 작업을 활발히 선보였습니다. 요즘에는 어떤 프로젝트에 집중하고 있나요?
최근에 LG와 협업한 프로젝트를 마쳤어요. 자동차 후면에 교체가 가능한 모빌리티 포드pod를 디자인하는 작업으로, 올해 CES에서 공개됐습니다. 저희는 소비자가 원하는 유형을 구독해서 이용할 수 있도록 공간을 디자인하는 일을 맡아 워크스페이스, 서핑, 건축가의 스튜디오, 엔터테인먼트 등의 유형을 개발하고 그중 라운지 타입을 테스트베드로 제작했어요. 이 외에 LG의 가전으로 구성한 주방, 욕실 플랫폼을 디자인하는 프로젝트도 곧 공개될 예정입니다.
지난해 아파트멘터리와 협업해 아파트 인테리어 컬렉션을 론칭한 것과 비슷한 성격의 작업이 계속 이어지고 있어요.
공간에 고정되는 마감재보다는 사용자가 이용하는 가구나 장치에 집중하는 편이에요. 공간을 제품화하는 것이 저희가 잘하는 영역으로 자리 잡으면서 솔루션을 기반으로 대량 생산이 가능한 공간을 점점 더 맡는 것 같습니다.
컬러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입니다. 공간에서 컬러를 사용하는 방법론이 있다면.
요즘은 미니멀리즘이나 뉴트럴, 유니바디(프레임과 외피가 따로 있지 않고 하나로 일체화된 디자인. 자동차 디자인 용어)처럼 경계를 없애고 하나로 만드는 추세인데, 저희는 다름을 인정하는 디자인을 좋아해요. 공간을 디자인할 때도 건축물의 구조라는 기본 뼈대 위에 새로운 개체를 추가하는 경우, 둘을 일체화하지 않고 구분해 표현합니다. 이럴 때 색이 방법론이 됩니다. 예를 들어 산스월스 리조트에는 콘크리트 슬래브에 천장을 일부 덧대었는데, 그 부분만 초록색으로 마감했어요. 베이스가 되는 건축구조는 건들지 않지만, 천장은 기능을 위해 인위적으로 더한 요소이니 거기에 우리의 연출을 넣는 것은 괜찮다고 생각하는 거죠. 이렇게 철거나 교체가 가능한 부분에 브랜드의 성향이나 주어진 상황에 맞는 컬러를 쓰는 편이에요.
인터뷰 전문은 <행복> 2월호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E-매거진 보러가기
- The Designer_최중호 스튜디오 사용자가 완성하는 ‘집’이라는 제품
-
산업 디자인으로 시작해 제품부터 브랜딩, 가구, 공간까지 다방면으로 활약하며 도시의 속살을 바꾸는 디자이너 최중호를 만났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5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