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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낙원에서 보낸 여름 선물, 복숭아
동양의 선약으로 전해지며 자두와 함께 우리나라의 전통적인 아홉 가지 과일에 속하는 복숭아. 탐스러운 모양만큼이나 맛과 영양도 뛰어나 여름 과일의 백미로 손꼽힌다. 유기농법으로 안전하게 재배한 복숭아를 찾아 충북 옥천 청정지역에 있는 과수원에 다녀왔다.
탐스럽게 익은 복숭아를 보면 토실토실 살이 오른 아기 엉덩이가 떠오른다. 나뭇가지에서 노란 봉지를 터트릴 듯 꽉 차게 익어가며 엉덩이를 내민 모습은 살짝 섹시하기까지 하다. 동양에서는 절세가인이나 천상낙원을 종종 복숭아에 비유하는데, 흔히 달밤에 복숭아를 먹으면 미인이 되고 복숭아 잎으로 목욕을 하면 피부가 고와진다고 알려져 있다. 선조들은 봄철의 따뜻한 양기를 상징하는 복숭아꽃이 음기를 좋아하는 귀신을 물리치는 힘이 있는 것으로 믿어 마당에는 복숭아나무를 심지 않고, 제사상에도 복숭아를 올리지 않는다. 그런가 하면 돌날 복숭아 모양을 새긴 반지를 아기에게 끼워주며 모든 잡귀를 물리치고 무병장수하길 바라기도 했다. 이렇게 수많은 이야기가 전해오는 복숭아는 7월과 8월이 수확의 절정이다. 지루한 장마가 잠시 한숨을 돌린 사이, 충북 옥천의 과수원에는 뜨거운 여름 햇살 아래 복숭아가 영글어가고 있었다. 듬직한 산등성이 아래, 맑은 물이 넘치도록 흐르는 계곡 옆에 아늑하게 자리 잡은 과수원에서는 정구철 씨가 유기농법으로 복숭아를 재배한다. 과수원 바로 옆에 옛 도령들이 모여 공부하던 ‘삼계서원’ 터가 있어 ‘정도령 복숭아’라 이름 붙였다.

서울에서 무역회사에 다니다 1993년 귀농한 정구철 씨는 부친이 쓰러지자 농사일을 이어받은 후 계획적으로 저농약과 무농약을 거쳐 유기농으로 완전히 전환했다. 제초제와 농약, 화학비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는 대신 직접 만든 영양제와 생선을 흑설탕에 발효시켜 만든 액비를 사용하는 것. 유기농법을 알고 있는 사람은 많은데 실천하기란 무척이나 힘들다. 특히 무농약으로 과수를 재배하는 농가를 찾아보기는 더욱 어려운 실정. 이유는 바로 과일의 모양 때문이다. 과일은 우선 모양새가 좋고 커야 시장에서 상품으로 인정받는데, 재배 과정에서 벌레나 균이 살짝만 왔다 가도 흠집이 생겨 값을 제대로 받을 수 없다. 아무래도 유기농 재배로는 작고 못생긴 게 많이 나온다. ‘보기 좋은 게 맛도 좋다’고 시장에서는 크고 말끔한 것을 찾지만, 유기농에서는 누가 뭐래도 ‘맛’이 먼저다. 그러니 벌레와의 숨 막히는 전쟁에서 승리하느냐 마느냐가 한 해 농사의 성패를 좌우한다. 정구철 씨가 홈페이지에 적어놓은 농사 일지에는 그 노력과 열정, 고집이 드러나 있다.

산 아래에 자리 잡고 있어 농약을 사용하는 일반 농가와는 격리돼 있고, 바로 옆 계곡에는 깨끗한 1급수가 흘러 유기농 재배를 하기에는 최적의 입지 조건을 갖춘 복숭아 과수원의 전경.

“입동이 지난 초겨울, 유기농 재배하는 모든 과원에 콩깎지, 콩대, 옥수숫대, 고구마순 등 수확 후 나온 농산물의 부산물을 환원하고 쌀겨와 콩깎지 토착미생물을 활용하여 섞어띄움을 하였습니다. 하얗게 피어나는 미생물에 띄움이 완성되어 전 과원에 뿌려줍니다. 유기농 재배의 시작입니다.” (2006. 11. 12)
“복숭아의 개화가 거의 끝나고 가지마다 새순이 돋아납니다. 연약한 새순에는 진딧물이 많이 모여들죠. 천적인 무당벌레가 열심히 이곳저곳에서 활동을 하며 진딧물을 잡아냅니다.” (2007. 5. 1)
“과원 곳곳에서 발생한 충들을 여러 가지 약제를 사용하고 심지어 일일이 손으로 잡아가며 줄여보지만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만 가는 충의 피해는 심각하기만 합니다. 원초적으로 잡기보다는 더 이상 확산되지 않도록 주력하는 것이 작금의 현실입니다. 너무 심하면 수확보다도 나무의 존립 자체가 우려되니까요.” (2007. 6. 26)

열매솎기와 봉지 싸는 일만 사람을 쓰고 그 외의 작업은 거의 혼자 한다는 정구철 씨는 무당벌레의 부지런한 활약에도 늘어만 가는 진딧물을 일일이 손으로 잡아 두 손에는 노랗게 벌레물이 들었다. 이렇게 열정적으로 가꾼 ‘꿈꾸는 소녀’ ‘여름 향기’ ‘여름 아씨’ ‘가을 도령’들이 복숭아나무 가지마다 주렁주렁 매달려 그네를 탄다. 그는 이름이 어려운 복숭아 품종 대신 백도는 ‘향기’ ‘아씨’ ‘공주’ 같은 아리따운 이름을, 황도는 ‘도령’이라는 씩씩한 이름을 붙였는데, 이름만큼이나 예쁘고 튼실해서 당도는 물론이고(아주 단 꿀사과가 브릭스 수치 14정도인데, 이곳 복숭아는 최고 18 이상) ‘유기농 과일은 작고 못생겼다’는 편견을 통쾌하게 깨준다. 아직도 벌레의 공격은 끝나지 않아 정확한 수확량은 장담할 수 없지만 먹을거리로 안전한 복숭아를 키우려 한 열정과 노력만큼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 복숭아를 주문했던 한 고객이 ‘좋은 과일 먹게 해줘서 고맙다’며 선물로 보내온 책 <희망의 밥상>. 그 책을 읽은 정구철 씨는 자신 역시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는 유기농업으로 ‘희망의 밥상을 찾는 농부’로 남고 싶다고 말한다.

(왼쪽) 안전하고 올바른 먹을거리를 향한 정구철 씨의 열정과 고집과 노력 그리고 브랜드 개발의 결과 그 어렵다는 유기농법 과수 재배가 이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오른쪽) 유기농 복숭아 재배의 성패는 벌레와의 싸움에 달려 있다. 진딧물을 일일이 손으로 잡아 없애는 정구철 씨의 손가락에는 마디마디 구석구석 노랗게 벌레물이 들었다.

“유기농업을 하면 욕심을 버리고 수확을 자연으로 돌릴 수 있는 여유로운 마음이 있어야 돼요.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면 내 욕심껏 수확하겠다는 거지만 유기농은 그렇지 않아요. 내가 1백 개를 농사지었다고 해서 1백 개를 다 수확하지 못하거든요. 나는 반만 수확하겠다는 마음으로 반은 자연으로 보낼 수 있는 너그러움이 필요하지요.”

상큼하고 달디단 복숭아는 고맙게도 영양까지 풍부하다. 작년 농촌진흥청연구소와 연세대 박광균 교수 연구팀의 연구 결과에 의하면, 복숭아는 니코틴 해독과 항암에 탁월한 효능이 있다고 한다. 또한 항암제의 부작용인 간과 신장 독성을 줄여주고 항암 효과는 그대로 유지시켜 암 환자들이 복숭아를 많이 먹으면 항암 효과가 상승한다고 한다. 그 밖에도 뛰어난 미백 효과로 피부 미용에 좋고 뼈를 흡수하는 파골세포의 활동을 억제해 골다공증 예방에도 효과적이다. 한방에서 역시 간 기능에 이롭고 피를 맑게 하며 위장 기능을 개선해주고 식은땀을 없애고 신경 안정에 효과가 있다고 보아 열매뿐 아니라 잎, 씨, 뿌리, 줄기, 가지까지 약용으로 사용한다. 장어와는 상극으로 함께 먹으면 설사를 일으키고, 생선을 먹고 식중독에 걸렸을 때는 복숭아를 껍질째 먹으면 증세가 완화된다.

복숭아는 크게 털 없는 천도와 과육이 흰 백도, 노란 황도로 나뉜다. 요리사 배은주 씨는 “우리나라에서는 생과일로 먹거나 통조림으로 애용하는데, 서양에서는 타르트, 잼 등의 디저트 재료로는 물론 요리에도 많이 활용합니다. 특히 고기 요리에 곁들이면 육류의 산성을 중화시키고 색다른 맛과 향을 더할 수 있으며 다른 향신료와도 잘 어우러져 한여름의 제철 재료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습니다”라며 종류별 복숭아를 이용한 애피타이저, 메인 디시, 디저트와 음료를 제안한다. 어떤 때는 제때가 되길 기다렸다가 과일이나 채소, 해산물을 찾아 먹기도 하고, 어떤 때는 반대로 시장에서 맞닥뜨린 산물들로 인해 새삼 계절을 실감하기도 한다. 이맘때 복숭아가 탐스러운 얼굴을 내밀기 시작하면, 8월에 태어난 그 사람이 생각난다. 그가 “복숭아가 시장에 나오면 내 생일이 다가왔다는 신호”라고 말하던 것을 들은 뒤부터다. 올해도 어김없이 복숭아를 보며 자신의 탄생일을 꼽아볼 그에게 생각난 김에 복숭아 한 상자를 여름 선물로 보내야겠다.


(왼쪽) 블루치즈를 얹은 천도복숭아 샐러드
재료 천도복숭아 2개, 래디치오 1/4개, 베이비 채소 80g, 올리브오일 1/2큰술,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블루치즈 50g, 호두 12알

만들기
1 천도복숭아는 반을 갈라 씨를 뺀다.
2 래디치오는 손으로 뜯고 베이비 채소와 함께 볼에 넣은 다음 올리브오일과 소금, 후춧가루를 섞는다.
3 천도복숭아 위에 채소를 소복이 올리고 잘게 조각 낸 블루치즈와 호두를 올려 낸다.

(오른쪽) 커리 향의 복숭아 돼지고기 찜
재료 백도 3개, 올리브오일 약간, 다진 양파 1개 분량, 다진 셀러리 1대 분량, 저민 마늘 3쪽 분량, 돼지 안심 800g, 육수 1컵, 씨겨자 2큰술, 꿀 1작은술, 커리 가루 1/2작은술, 프레시 로즈메리 2줄기, 프레시 세이지 잎 5장, 소금·후춧가루 약간씩

만들기
1 백도는 껍질을 벗겨 씨를 빼낸 뒤 도톰하게 자른다.
2 팬에 올리브오일을 두르고 양파와 셀러리, 마늘을 넣고 양파가 투명해질 때까지 볶는다. 돼지 안심을 덩어리째 표면에 갈색이 돌도록 골고루 지져 접시에 담는다.
3 팬에 육수를 부어 살짝 끓인 다음 씨겨자와 꿀, 커리 가루를 넣고 나무 주걱으로 섞는다. 돼지 안심과 로즈메리, 세이지를 팬에 넣고 뚜껑을 덮은 다음 약한 불에 10분 정도 끓인다. 고기가 어느 정도 익으면 소금과 후춧가루를 뿌린 뒤 백도를 넣고 10분 정도 더 조린다.
4 돼지 안심을 저며 썬다. 접시에 백도를 담고 그 위에 돼지 안심을 얹은 뒤 남은 소스를 뿌려 낸다.

마스카르포네 치즈를 얹은 복숭아 플람베
재료
황도 2개, 버터 2큰술, 흑설탕 2큰술, 브랜디 30cc, 마스카르포네 치즈 1/2통, 바닐라 아이스크림 4스쿱, 피스타치오 부순 것 2큰술

만들기
1 황도는 껍질을 벗기고 씨를 빼 1cm 두께로 썬다.
2 프라이팬을 달궈 버터를 녹인 후 흑설탕을 넣고 살짝 끓여 캐러멜을 만든다. 황도를 넣고 저은 다음 브랜디를 넣고 라이터로 불을 붙여 알코올 기를 날린다(위험하게 느껴진다면 브랜디를 넣은 후 저어가며 잠시 졸인다).
3 개인용 디저트 접시에 나누어 담고 마스카르포네 치즈 1큰술과 아이스크림 1스쿱씩 얹은 후 피스타치오 부순 것을 뿌려 낸다.

복숭아 향의 소테른 와인
재료 황도 1개, 소테른 와인(단맛이 도는 화이트 와인) 1병, 레몬즙 1큰술, 장식용 민트 약간

만들기
1 황도는 껍질을 벗기고 씨를 빼 얇게 저민다.
2 피처에 황도를 담고 소테른 와인과 레몬즙을 넣어 섞는다. 냉장고에 넣어 2시간 이상 차게 식혀 민트로 장식한다.


구선숙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07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