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집 거실에서 직접 내린 커피를 마시고 있는 디자이너 미나가와 아키라 씨.
패션 디자이너 미나가와 아키라가 1995년 설립한 미나 페르호넨은 핀란드어로 나비를 의미하는 ‘미나minä’, 초롱꽃을 뜻하는 ‘페르호넨perhonen’을 합친 말이다. 자연에서 영감을 받은 섬세한 디자인을 바탕으로 유기적 패턴과 텍스타일을 중점으로 하는 브랜드이다. 패션 브랜드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인테리어 등 생활 전반에 걸쳐 다양한 분야로 영역을 넓히고 있다. 창업자인 미나가와 씨가 손으로 그린 도안으로 만든 독창적인 패브릭과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디자인이 인기를 얻으며, 미나 페르호넨의 세계관에 매료된 팬들도 존재한다.
왼쪽 식탁 한쪽에는 미나가와 씨가 한 번씩 들춰보는 책과 일상용품들이 자리한다. 오른쪽 도예가이자 갤러리 모모구사를 운영하는 안도 마사노부 씨가 술지게미를 담던 포대로 만든 방석. 꿰맨 자리는 장식이 아닌 노동의 흔적이다.
미나가와 아키라 씨의 집은 단독주택일 것이라는 예상을 벗어난 아파트, 우리로 치면 맨션에 해당하는 공동 주택이었다. 여러 가구가 지붕을 공유하는 베이지색 타일 건물이 족히 20m는 넘을 듯한 커다란 나무들 아래 커다란 몸을 숨기듯 자리하고 있었다. “언젠가는 내 집을 지어야지 생각하던 중에 이런 아파트가 괜찮으려나 보러 왔다가 사카쿠라 준조坂倉準三 씨가 설계한 집이라는 것을 알았어요. 친구인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中村好文 씨가 레노베이션을 해주겠다고 해서 이사 왔는데, 벌써 7~8년쯤 산 것 같습니다. 그러잖아도 지금 집을 짓고 있는 중이에요.”
원두를 갈고 물을 끓여 커피를 내리는 것이 미나가와 씨의 매일의 시작이다.
작은 주방 앞의 식탁. 천장을 적삼목으로 마감해서 따뜻한 느낌을 준다.
중산층이 거주하는 조용한 주택지가 많은 도쿄 세타가야구에 있는 이 집은 일본의 대표적 근대 건축가 사카쿠라 준조가 설계한 것이다. 사카쿠라 준조는 일본의 모더니즘 건축의 대가로, 거장 르코르뷔지에 아래에서 수학하며 그의 영향을 받았고, 일본 건축의 새로운 길을 연 건축가로 평가받는다. 내부는 복층의 메조넷mesonet 구조로 세계적 패션 브랜드를 이끄는 디자이너의 집이라기엔 소박한 인상이다. 건축가라는 직업을 동경한다고 말해온 미나가와 씨가 사카쿠라 준조가 설계한 아파트를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메조넷 구조가 재미있습니다. 위층에 있는 부엌은 바닥 면적이 작은 공간이지만, 시선이 바깥으로 향하게 디자인되었어요. 작은 공간이라도 시선이 멀리 머물 수 있으면 사람이 넓게 느낀다는 것을 알았어요. 거실 역시 면적은 작지만 천장이 높기 때문에 답답하지 않고 공간이 넓어 보이지요. 눈으로 느끼는 공간과 실제 바닥 면적 사이의 간극을 멋지게 활용한 모습이라 그 아이디어가 굉장히 좋다고 생각해요.”
작은 오브제와 기념품으로 ‘어른의 놀이’를 어린아이처럼 즐긴다.
<집을 순례하다> 같은 책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는 나카무라 요시후미 씨가 레노베이션한 실내는 단정하고 간결하다. 흰 벽과 자작나무 합판으로 마감한 바닥, 그리고 역시 자작나무 합판으로 제작한 부엌 가구 등이 차분하면서 편안하다. 붉은 톤이 감도는 적삼목으로 마감한 천장에서 이어지는 흰 벽에는 여러 가지 그림과 오브제가 장식돼 있다. 집 안에는 생각보다 물건이 많다. 다양한 오브제와 작품, 가구와 책 등이 적당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지만 어수선한 느낌은 아니다. 앤티크 소품과 현대 작가의 작품, 공예품 등이 뒤섞여 있다. 누가 봐도 미니멀리스트보다는 맥시멀리스트에 가깝다. 그에게 스스로 어느 쪽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더니 “확실히 미니멀리스트는 아니네요. 물건이 많으니까”라는 답이 웃음과 함께 돌아왔다.
“만드는 사람의 생각을 알 수 있는 물건을 좋아해요. 현대 작가라면 만난 적 있거나 공방에 방문한 적이 있어서 인연이 있는 작가의 작품이 많습니다. 저는 여러 가지 물건에서 영감을 얻고, 물건 만드는 것에 대해 생각하는 것 자체를 좋아해요. 미나 페르호넨은 패션 이외의 디자인도 하고 있으니까 나 같으면 어떻게 할까 생각해봅니다. 아무것도 없는 공간보다는 좋아하는 물건이 놓여 있는 쪽이 좋아요.”
알바 알토가 아르텍을 위해 디자인한 파이미오 체어 위에 일본 금속공예 작가인 아키노 치히로秋野ちひろ의 작품이 놓여 있다.
갑자기 그가 조용히 자신의 서재로 안내해준다. 일본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유리 공예가 피터 아이비Peter Ivy의 조명이 매달려 있는 방 한쪽 면을 가득 채운 수납장 사이에 벽을 파낸 듯한 모습으로 작은 책상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손바닥만 한 오브제들이 ‘전시’된 모습이 마치 갤러리와 같다. “여행을 가면 조그마한 물건을 하나씩 찾아서 가져와 이렇게 장식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한 번씩 배치를 바꾸고요.”
올해 세상을 떠난 리사 라르손Lisa Larson과의 추억이 담긴 오브제나 라트비아에서 구입한 작품 등 하나하나 기억이 담긴 물건이다. “공간을 예쁘게 꾸미기 위한 물건보다 내 안의 무언가와 연결되어 있는 물건을 좋아해요. 공간의 균형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그보다는 내 눈과 그 자체의 관계성이 중요합니다.”
평소 손 편지를 쓰는 책상 앞에 앉아 있는 미나가와 아키라 씨. 수납 가구는 레노베이션을 맡아준 건축가 나카무라 요시후미 씨가 디자인했다.
짧은 동선의 아담한 부엌에서 미나가와 씨는 매일 커피를 내리는 것으로 일과를 시작한다. “평상시에는 아침에 가볍게 산책을 합니다. 출장 가거나 해서 자주 집을 비우지만, 집에 있을 때는 30분에서 한 시간 정도 걸어요. 그러다 보면 생각지 못한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나 오늘은 이런 스케줄이 있구나 하면서 천천히 생각을 합니다. 커피 내리는 것을 좋아해서 매일의 루틴이라고 할 수 있는데, 매일 조금씩 달라지는 원두와 커피를 보면서 매일 같은 일을 하지만 조금은 다른 느낌이 듭니다. 그런 느낌이 나에게는 다른 것을 발견하게 해주지요.” 오늘은 원두가 신선하다거나 물의 온도가 다른 느낌이라는 것을 감지하는 것, 작은 변화를 민감하게 느끼는 것은 그에게 중요한 일이다. 매일의 삶이 계속하는 것과 계속하지 않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계속하는 것이야말로 삶을 지탱하는 축이 되기 때문이다.
미나 페르호넨의 창업자이자 디자이너인 미나가와 아키라 씨.
‘계속하다(つづく)’는 미나 페르호넨이 2019년에 시작한 브랜드 전시의 타이틀이다. 도쿄도 현대미술관에서 처음 전시를 시작해 일본 각지를 돌아 2022년에는 대만으로 이어졌다. 올해 2월에는 스웨덴 국립미술관에서 <DESIGN=MEMORY>라는 타이틀로 대규모 전시를 열었고, 한국에서는 다시 ‘기억의 순환(the circle of memory)’을 주제로 전시를 개최한다. 패션 브랜드에서 패션쇼나 판매 목적의 수주회가 아닌 전시를 개최하는 일은 흔치 않다. 전시 오픈 3일 전부터 서울에 와서, 매일 아침 커피는 호텔 커피로 대신하고 있다는 그에게 미나 페르호넨의 일과 이번 전시에 대해 물었다.
새롭게 디자인한 옷을 모델에게 입혀보고 체크하는 미나가와 씨. 미나 페르호넨의 의류 디자인 중 80%는 여전히 그가 직접 맡고 있다.
왼쪽 미나가와 씨의 점검을 기다리는 샘플. 오른쪽 미나 페르호넨의 대표 패턴 탬버린을 수놓은 겨울 코트.
해외 출장이나 집을 떠나는 일이 잦은 미나가와 씨에게 물리적 공간으로서 집은 어떤 의미인가요?
릴랙스할 수 있는 장소, 새 둥지 같은 곳입니다. 집을 떠나는 것을 아주 좋아해 스트레스는 없습니다.
집을 떠나 있는 동안 감정이나 감각적으로 다르게 느끼는 점이 있나요?
집을 떠났을 때 느끼는 감각이 예술적 영감이 됩니다. 가령 북유럽의 겨울은 굉장히 춥기 때문에 강이나 바다가 어는 것을 보는데, 자연이 만들어내는 패턴이 인상에 깊게 남습니다. 구름 역시 나라마다 다르니까 구름이 만드는 풍경을 보는 것을 아주 좋아하고요. 구름과 빛과 그림자가 만드는 관계성을 좋아해서 사진을 찍고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올리기도 하지요.
스웨덴에 이어 한국에서 열리는 전시에도 기억(memory)을 다룹니다. 특별한 의미가 있는지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것은 결국 기억밖에 없다고 생각해요. 물질은 가질 수 있으나 내 안에 담지는 못하지만, 기억은 머릿속에 담을 수가 있지요. 중요한 것은 그 기억이 변한다는 겁니다. 숙성된다거나, 발효된다거나, 세분화된다거나 하는 식으로요. 그것이 좋은 방향으로 점점 변화하는 것이 인간에게 아주 멋진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디자인도 결국은 사용하면서 그것을 좋아한다거나 소중히 여기는 감정이 생겨나고, 그 감정이 기억으로 남아서 디자인을 기억하는 것 같습니다. 물질로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감정으로 본다는 점이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이번 전시에서는 미나 페르호넨에서 1995년부터 지금까지 생산하고 있는 텍스타일 패턴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기억은 역사의 순환이나 계승의 의미가 있습니다. 부모 세대에서 배운 것을 반복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하지요. 어려서 먹던 음식을 나이 들어 찾게 되거나 하는 ‘감각의 순환’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미나가와 씨에게 그런 에피소드가 있나요?
열아홉 살 때 북유럽으로 여행을 떠난 것이 굉장히 컸어요. 디자인과 패션의 세계는 사이클이 짧다고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북유럽에서 디자인이 긴 생명력을 지닐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런 것을 패션의 영역에서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디자인은 수명이 짧지 않으니까요. 중요한 기억으로 바뀔 수 있는 디자인이라면 평생 간직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패션 디자이너지만 같은 옷을 몇 년째 입고 있고, 가구나 도구 역시 사용하면서 좋아하게 돼오래 갖고 있어요.
패션 브랜드가 전시를 하는 이유가 있나요? 특히, 한국에서 미나 페르호넨은 대중적으로 알려진 브랜드가 아닙니다.
스웨덴에도 미나 페르호넨의 숍은 없습니다. 고객을 만들기 위해 전시를 한다기보다는 물건과 사람의 관계를 전하는 것이 전시의 의미입니다. 물건을 대량생산하고 소비하는 지금, 가혹한 노동을 통해 물건을 만들지 않는 사회가 되는 것이 전체적으로 좋겠다는 제안을 하는 것이죠. 그래서 패션쇼 같은 것이 아니라, 일종의 공공 전시회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한국 작가 네 명이 협업 전시로 참여했다. 그중에서 건축가인 임태희 소장이 미나 페르호넨의 패턴을 한지에 입혀서 만든 한지 장.
전시가 열리는 동대문디자인플라자가 지닌 장소성이 전시 구성에 영향을 준 점이 있을까요?
굉장히 특별한 공간이에요. 일반 갤러리처럼 ‘화이트 큐브’가 아니고 곡선이 많은 공간이라서, 관람객이 돌아볼 때 내가 어디로 가야 할지 헤매기도 하고요. DDP라는 특정한 장소에 있지만, 어디에 있는지 모르는 게 이 건물과 조화를 이룬다고 생각합니다.
자하 하디드의 DDP 설계는 처음에 반대가 많았습니다. 크리에이터의 운명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하 하디드는 정말 유기질적인 느낌입니다. 물이 흐르는 것 같고 정말 멋지다고 생각해요. 일반적으로 기술이 있어도 해본 적이 없어서 못 한다고 생각한 일을 그녀의 열정으로 해낸 것이지요. 건축물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까요. 새로운 혁신을 통해 새로운 발견을 했다는 점에서 일본 입장에서는 도쿄 올림픽 경기장 설계가 무산된 것을 생각하면 부럽기까지 합니다. 미나 페르호넨 역시 신생 브랜드가 천부터 직접 만드는 게 흔치 않은 일이었으니까 지속하기 어려울 것이라거나, 언젠가 아이디어가 고갈될 거라는 말도 들었어요. 나는 모든 부분에 관여하고 싶었고, 옷의 형태만으로는 멋진 것을 표현할 수 없었습니다. 소재만으로도 옷이 될 수 없으니까 전부 다 이런 천으로 이런 형태를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반영해야 내가 하는 게 의미가 있을 것 같았지요. 지속하기 어렵다고 하면 그럴지도 모르겠지만, 그렇게밖에 할 수 없으니까 그렇게 하기로 했달까요. 그런데 막상 해보니까 그렇지 않았어요.
가구는 물론 키친 브랜드와도 협업을 했습니다. 다른 영역의 브랜드와 적극적으로 협업하는 이유가 있나요?
다른 소재와 프로세스에 항상 관심이 많아요. 다른 업계와 적극적으로 컬래버레이션하는 것은, 그 업계에서 가장 잘 만드는 사람과 함께 일하며 그 과정을 이해하고 공부하고 싶어서입니다.
그런 호기심은 어디에서 생기나요?
잘 모르겠어요. 가끔 예로 드는 에피소드인데, 어려서부터 돌을 뒤집어보는 걸 좋아했어요. 그 아래 벌레가 있을까, 있다면 어떤 벌레가 있을까 궁금했거든요. 보이지 않는 반대편에 관심이 있는 것 같습니다.
미나 페르호넨의 스태프 20명이 직접 참여해 전시회장을 꾸몄다.
여러 권의 책을 썼고 그중에서 <살아가다 일하다 만들다>라는 책이 한국어로 번역 출간되었습니다. 이 단어의 순서에 의미가 있나요? 어쩐지 물건을 만드는 일을 통해 살아간다는 점에서 반대가 돼야 하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만….
순서는 의미가 없지만 저에게는 세 가지 말의 의미가 같아요. 일한다는 것이 곧 만드는 것이고, 만드는 것이 내가 살아 있는 증거이고, 살아 있으니 만드는 것이라는 점에서요.
그것 역시 기억의 순환과 같은 의미인 것 같습니다.
일본에서는 “시간을 온&오프 한다”는 표현을 사용하는데요, 나에게는 일하는 시간이 어떤 의미에서는 놀고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나에게 일과 생활은 나뉘어 있지 않고 커다란 한 덩어리여서 어떤 쪽에 무게가 실리느냐 하는 밸런스가 처음부터 없으니까요.
책에서도 그렇지만 평소 디자인에 대한 이야기와 함께 삶의 방식이나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것 같습니다. 디자이너로서 왜 그런 문제를 다루는 것인가요?
디자인에 대한 설명은 왠지 모르게 물질의 레시피 같은 느낌이 들어요. 중요한 것은, 어떤 생각에서 그 자체가 만들어졌는가 하는 것이니까요. 생각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자기 삶의 방식을 설명하는 것일지도 모르겠지만, 물질이 된 것에 대한 레시피를 말하는 것은 별로 의미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어, 사회가 지금 이런 상태이기 때문에 이런 것을 만들고 싶다고 이야기하면 결과적으로 내가 지금 보고 있는 사회에 대한 이야기라든지 자신의 인생관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거든요.
매번 미나 페르호넨의 전시 공간 디자인을 맡고 있는 건축가 쓰요시 타네田根剛 씨와 함께, 이번 DDP 전시 공간을 담당하고 있는 건축가 아베 마리코阿部真理子 씨가 경복궁의 돌담에서 모티프를 얻어 패브릭으로 장식한 통로. 좁은 통로를 지나 넓은 전시장이 드라마틱하게 펼쳐진다.
디자이너는 자신이 그리는 세계를 표현한다고 생각했는데, 자신의 눈으로 바라본 사회를 설명하기 위한 도구가 디자인이라는 얘기이군요. 그런 설명까지가 미나가와 씨가 생각하는 자신의 역할인가요?
맞아요. 실제로 미나 페르호넨의 옷을 입는 손님을 만나면 ‘이런 형태로 이런 식으로 입어주세요’라고 하는 것보다 ‘이 소재는 이런 느낌으로 만들었고, 그래픽은 이런 이미지를 그렸다’고 설명합니다.
지금까지 미나가와 씨는 미나 페르호넨과 동일시돼왔지만, 앞으로 1백 년 이상 지속 가능한 브랜드를 위해서 미나가와 씨의 DNA를 어떻게 남겨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DNA는 크리에이션의 관점에서는 방해가 되는 표현이지만, 그걸 태도라고 이해하면 될 것 같습니다. 공장 사람들과의 신뢰 관계나 재료에 대한 접근 방식, 물건을 만드는 태도, 철학으로서의 DNA는 만들고 싶어요. 태도는 그렇게 남기되 어떤 옷을 만드는지, 어떤 모양의 가구를 만드는지는 그 시대에 따른 돌연변이라고 하는 것이죠. 전혀 상관없는 것요. 처음에 미나가와라는 사람이 있어서 이런 일을 했는데, 시대가 변해서 그의 방식이 아니라 다른 걸 하는 게 좋겠다고 생각할 수 있어야 브랜드가 지속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미나 페르호넨을 설명할 때 다양한 수식이 사용됩니다. 패션브랜드, 텍스타일 브랜드, 라이프스타일 브랜드 등 어떻게 불리기를 원하시나요?
우리 사회가 인테리어, 패션, 공간 등 디자인 영역을 나누고 있지만 사실은 다 연결돼 있잖아요. 원래는 벽이 없었어요. 나에게도 패션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며, 가구를 사용하고 밥 먹으면서 옷 입는 일을 동시에 합니다. 같은 세계관을 지니고 일한다면 카테고리는 의미가 없다고 생각해요.
미나가와 씨 나름의 시대감각인 거군요.
맞습니다. 물론 만드는 과정은 다르니까 전문성이라는 의미에서 패션 중심이지만, 인테리어 디자이너도 분명 패션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삶을 디자인하는 것이고, 그 안에 패션이 차지하는 퍼센티지가 많을 뿐입니다. 하지만 패션만 만들려고 하지 않아요. 어느 쪽이냐 하면 서비스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천으로 만든 서비스는 옷이라 하고, 나무나 철로 만든 서비스는 인테리어라 부르고, 즐거운 공간을 만드는 것은 건축이라고 하죠. 물질은 변환하는 것일 뿐 호스피탤리티나 서비스가 어떤 기억이 될 것인가를 생각해서 그 기억을 만들기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죠. 결과적으로 우리 미나 페르호넨은 호스피탤리티hospitality(환대)를 만드는 브랜드입니다.
이번 전시의 ‘実 열매’ 공간에는 미나 페르호넨의 대표 자수 패턴인 탬버린을 이용한 가구와 인테리어 소품이 전시되었다.
미나 페르호넨의 이번 전시에서는 특별히 우리나라의 공예가와 디자이너 네 명의 협업 작품이 전시된다. 최덕주 조각보 작가, 임태희 건축가, 문승지 가구 디자이너, 이상훈 가구 디자이너가 미나 페르호넨의 패브릭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만들었다. “문승지 디자이너가 지속 가능성에 대해서 설명을 해줬는데, 디자인의 완성도와 제작 과정, 재료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니 굉장히 깊이 고민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이상훈 작가도 스스로 작게 시작해서 공장을 통한 대량생산이 아닌 자기만의 규모를 지키려는 생각이 인상에 남습니다.”
이번 미나 페르호넨 전시를 통해 미나가와 아키라 씨가 한국의 관람객에게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는 생각보다 소박하다. “서울은 굉장한 역사를 배경으로 DDP나 리움미술관과 같은 현대적 건축 등이 잘 융합되어 있는 도시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시대에 양국의 장점을 느끼면서 살아가는 상황이 굉장히 재미있다고 생각하기에 옛날이나 지금의 디자인에서 공통점을 느끼고 패션이 오랫동안 이 세상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것, 소중하게 만든 것만이 수명이 긴 디자인이라는 것을 이해해줬으면 합니다.”
<미나 페르호넨 디자인 여정: 기억의 순환>
기간 9월 12일~2025년 2월 26일
장소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 전시 1관
관람료 2만 원(성인 기준)
문의 010-5335-0308, minaperhonen.seoul@gmail.com
취재 협조 미나 페르호넨(www.mina-perhonen.jp), 이음 해시태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