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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유민예 도심에 펼쳐진 상상 정원
자연은 때론 예술과 창작의 영감이다. 예술가는 대자연의 풍경에서 경이로움을 느끼고 창의력을 발휘한다. 초록빛 식물 군락을 탐색하는 아티스트 유민예는 도심에서 발견할 수 있는 새로운 차원을 관람객에게 선보인다. 그가 제시하는 도심 속 초록 에너지.

휘겔쿨투어 작품 앞에 선 유민예 작가 (활동명 밍예스). 취재 협조: 포스코이앤씨 더샵갤러리.
태피스트리 아티스트 유민예 작가는 핸드크래프트 위빙 방식으로 실을 엮어 이끼와 줄기, 그리고 거대 식물을 구현한다. 초기 작업인 ‘이끼(Moss)’ 시리즈에서 최근 작업인 ‘줄기(Stem)’ 시리즈와 ‘휘겔쿨투어Hügelkultur’까지 작가의 작품 주제는 줄곧 식물인데, 모든 작품에서 식물의 증식과 운동성, 역동성을 온전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이 작품들은 바로 그가 재현하고자 하는 삭막한 도시 속 ‘초록 에너지’다. 식물이 성장하면서 발현되는 식물 운동 이론을 그만의 방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는 귀엽고 무용한, 그리고 약간 하찮은 것에서 특별함을 느끼는 편인데, 식물 중에서도 이끼가 그러한 역할을 한다고 믿었다.

‘줄기’시리즈. Mixed yarn(hand weaving), 5000x200x200mm, 2023
“사람 눈에는 띄지 않지만 어디에든 존재하고 있고, 화려하지 않은 둥근 형태가 제 눈에는 귀여운 포인트였죠. 동시에 촉감도 매력적으로 다가왔고요.” 작가는 식물을 잘 키우지 못하지만 식물이 지닌 고유한 에너지를 좋아하기 때문에 오브제를 만들고자 했다. 그렇게 ‘이끼’ 시리즈에서 한 단계 확장해나간 ‘줄기’ 시리즈에서는 식물이 빛을 향해 구부러지는 굴광성, 중력의 영향을 받아 뿌리를 깊이 박는 굴중성 등을 통해 식물이 균형을 잡아가는 모습을 관측할 수 있다. 그런 그가 현재 새롭게 구현하고 있는 작품은 식물 세포를 탐구하는 ‘네이키드 스템(Naked Stem)’ 시리즈인데, 이는 ‘줄기가 겉옷을 벗으면 속살은 어떤 모습을 띠고 있을까?’라는 의문에서 시작된 것이라고. 식물세포 또한 어떻게 보면 하나의 유기체로 모듈 형태를 이루고 있고 동시에 무형의 존재이기 때문에 그에게 상상의 자유를 선사한다.

식물관PH에서 선보인 개인전 <꿈틀, 균형잡기>.
그렇다면 유민예 작가가 식물을 창조해내는 이유는 무엇일까? “궁극적으로 자연 안에 있는 동화 같은 면모를 극대화하고자 해요. 더 나아가 작업을 통해 일상을 마법처럼 바꿔줄 수 있는 모먼트를 선물해주고 싶고요.” 이렇듯 유민예 작가의 작품은 일상의 환기 같은 역할을 한다. 마치 일상을 탈피할 수 있는 도시 속 오아시스처럼 말이다.

북서울미술관의 <라운지 프로젝트>.

자연과 식물을 주제로 작품을 전개하며 초록색이 지닌 에너지를 전달합니다. 이끼, 줄기 및 거대 식물을 선보이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식물 이론에 관심이 많은데, 그 이유는 인간과의 연결 고리가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에요. 증식과 생존의 관점에서 이끼의 삶이 인간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했어요. 또한 줄기는 늘 해를 보며 자라나잖아요. 중력에 반하면서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하며 자라난다는 ‘굴중성’ ‘굴광성’ 이론이 있는데 우리 인간의 삶에도 적용된다고 생각했어요. “나무는 제자리를 떠날 수 없기 때문에 대체할 수 없는 장기 대신 모듈 방식의 설계를 취한다. 그 덕분에 나무가 조직의 90%를 잃더라도 불이나 장가지 파편에서 다시 싹을 틔워낼 수 있다.” 우연히 발견한 이 문장이 흥미로웠어요. 이끼 자체가 증식과 생존의 관점에서 항상 유연하게 형태를 바꾸며 성장해나가는 모습과 그 의미를 결합해서 작품 시리즈를 이어나가게 되었고, ‘이끼를 평면뿐만 아니라 입체 형태로 그려보면 어떨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습니다.

9m에 달하는 작업물을 제작하기도 합니다. 작업 프로세스는 어떻게 되나요?
패널 조각을 만든 다음 엮는 작업을 하는데요, 터프팅 작업이 아닌 전부 다 핸드 위빙 방식으로 하다 보니 절대적 시간이 필요해요. 이를테면 어떤 작업물의 경우 한 패널에 2백 피스를 이어 붙이는데, 한 피스당 약 두 시간이 소요돼요. 이 작업 방식의 장점 중 하나는 형태를 바꿔서 재창조, 재활용할 수 있기 때문에 ‘지속 가능성’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현재 영국으로 거주지를 옮겨서 생활하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관찰한 자연 중 가장 흥미롭다고 느낀 풍경은?
최근에 왕립원예협회(Royal Horticultural Society) 멤버십에 가입했는데, 이곳에 소속된 가장 큰 정원인 위슬리 가든Wisley Garden이 인상 깊었어요. 새로운 형태의 식물을 볼 수 있지요. 아무래도 영국이 한국보다 더 습하고 어둡다 보니 이끼 혹은 버섯에 더욱 좋은 환경인 것 같아요.

앞으로 작업 방향성은 어떻게 되나요?
시각적 촉감을 통해서 관객들이 호기심을 갖게끔 하는 것이 요즘 제 작업의 방향성입니다. 그동안 텍스타일과 식물을 결합한 작업을 이어왔고, 그 연장선에서 섬유에 대해 좀 더 연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었어요. 제 작품은 대부분 핸드크래프트 베이스였는데, 동시에 무척 규모가 크잖아요. 따라서 절대적 시간이 소요되는 작업 방식에 약간 의문을 가졌고, 그렇다면 어떻게 ‘기계화’할지 의구심을 품었죠. ‘시각적 촉감을 지닐 수 있는 섬유를 개발할 수 있을까?’라는 보다 더 테크니컬한 관점에서 리서치를 시작했어요. 그래서 1년 동안은 카드 자카르 리빙 방식을 통한 입체적인 패턴 연구를 했고, 섬유들로 ‘네이키드 스템’ 시리즈로 확장해나가고 있습니다. 현재 광주비엔날레에서 선보이고 있어요.

현대인이 왜 이렇게 자연을 느껴야 할까요? 작가님이 창작한 자연을 통해 무엇을 전달하고자 하나요?
일상에 환기를 줄 수 있는 장소가 자연이지 않을까요? 말했다시피 저 또한 제 작품으로 하여금 관객에게 마법적인 순간을 전하고 싶고요. 자연은 일상에서 벗어나 그곳에 나를 놓음으로써 더 새로운 생각을 적용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합니다.

“중력에 반하면서 뿌리를 내리고 해를 향하며 자라나는 식물의 특성이 우리 인간과 비슷하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자연과 식물을 주제로 초록색이 지닌 에너지를 표현하려는 이유입니다.”

글 백세리 기자 | 사진 이창화 기자(인물)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