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그인 해주세요.
본문 바로가기
건축가 유현준 건축은 타인과 나,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
대중에게 공간과 도시를 알기 쉽게 소개하며 건축의 접점을 넓히는 건축가이자 아키테이너 유현준을 만났다.


요즘 한국에서 가장 잘 알려진 건축가 하면 열에 여덟은 이 이름을 떠올리지 않을까?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의 구독자는 1백29만 명. 그가 건축과 공간을 이야기하는 영상은 많게는 4백60만 회가 넘는 조회 수를 기록한다. 2015년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 이후 집필한 다섯 권의 건축 저서는 모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판매 부수는 71만 부에 달한다. 타고난 스토리텔러인 그의 입을 거치면, 여행만 기대하며 오가던 공항도 건축적으로 무엇이 좋은지 뜯어보게 되고, 평생 관심 없던 알람브라궁전도 이슬람의 역사와 함께 갑자기 흥미로운 대상으로 다가온다. 건축가에게 생각을 표현하는 도구가 스케치나 모형이라면, 유현준에게는 말과 글도 건축을 위한 훌륭한 도구인 셈이다. 그리고 이 모든 결과물은 철저히 건축으로 수렴한다. 도시와 공간에 대해 24시간 멈추지 않는 생각이 글이 되고 말로 변했다가 비로소 작품으로 열매 맺는 것이다.
프랭크 게리가 일필휘지로 완성하는 건축가라면, 유현준이 건물을 설계하는 방식은 해결사에 가깝다. 호기심과 관찰력으로 주어진 환경을 분석해 문제를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해 하나씩 해법을 제시한다. 모든 순간에 논리와 이성만이 존재하는 듯하지만, 이를 통해 만들려는 공간의 본질에는 의외로 따뜻함이 자리한다. 

“개인적으로 건축은 스타일이 아니라고 봐요. 자동차 디자인이 멋지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지만, 건축은 그럴 수 있다고 믿어요.”

유현준
유현준건축사사무소 대표 건축가. 하버드 대학교, MIT, 연세대학교에서 건축을 공부하고 리처드 마이어 사무소에서 실무 경력을 쌓은 후 한국에 돌아와 유현준건축사사무소를 개소했다. 주요 작품으로는 JYP엔터테인먼트 신사옥, 현대차그룹 스마트 시티 디자인, 아페르 한강, 삼화네트웍스 사옥, 고창 황윤석도서관 등이 있다. 방송·유튜브·책 등을 통해 공간과 건축 이야기를 전하며, 건축과 대중을 연결하는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hyunjoonyoo.com



ⓒ노경

ⓒ노경

아페르 한강
한강이 내다보이는 부지에 자리한 26세대를 위한 하이엔드 레지던스. 사선 제한이라는 법규를 만족시키는 동시에 모든 세대에 폭이 2m가 넘는 테라스를 확보하고 평면을 조금씩 다른 형태로 완성했다. 발코니에 나무를 심을 수 있도록 토심을 확보해 ‘마당 같은 발코니를 갖춘 아파트’를 구현한 것, 안방에서 창을 열면 건너편 사랑방이 보이는 한옥처럼 방에서 방을 볼 수 있는 작은 창을 설치해 필요하면 시선이 닿고 관계를 만들 수 있게 한 것이 포인트다.


ⓒ유현준건축사사무소
한강 마리나 요트 클럽 하우스
한강에 다양한 크기의 요트를 정박하는 선착장과 선상 호텔로 사용하는 시설을 짓는 프로젝트. 요트의 돛에서 영감을 얻어 곡선이 어우러진 백색 입면을 디자인하고, 작은 요트는 클럽 하우스 가까이, 큰 요트는 멀리 정박할 수 있도록 선착장을 부채꼴 모양으로 설계했다.


ⓒ노경

ⓒ노경
호미
제주도에 660㎡ 규모로 지은 단독주택. 제주 하면 떠오르는 현무암 돌담과 끝없이 펼쳐진 수평선을 담아 자연을 한가득 느낄 수 있는 집을 완성했다. 입면의 길이를 최대한 길게 하고 단층으로 설계해 자연과 넓게 맞닿아 있고, 불규칙한 입면 덕분에 다양한 각도로 난 창이 공간을 다채롭게 만든다.
 

ⓒ유현준건축사사무소
JYP엔터테인먼트 신사옥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위한 오피스. 회사의 특성상 크기와 모양이 다양한 방들이 모여 있다. 주변 경관과 남향을 고려해 건물의 높이를 정하고, 각각의 방은 최대한 채광과 통풍이 잘 되도록 가운데에 중정을 두고 폭이 좁은 도넛 모양으로 배치했다. 직원들이 둘러앉아 서로 바라볼 수 있는 ‘밥상머리 사옥’이다.


ⓒ신경섭
멀티 테라스 하우스
분당 운중동 주택단지에 위치한 부부와 반려견이 사는 주택. 경사진 대지의 북측에 건물을 배치하고, 남향에 마당을 두어 1층과 마당의 프라이버시를 확보했다. 2층과 3층도 커다란 지붕 처마 아래 마당과 테라스를 적극적으로 배치해 그야말로 야외 공간이 가득한 집이다. 층과 실은 영역을 확실하게 분리하지만 실내외 그리고 방과 방 사이에는 창을 뚫고 시선이 연결되도록 해 서로 소통할 수 있다.


건축설계 외에도 강연과 방송, 집필을 넘나들며 다양한 방법으로 건축을 해오고 있습니다. 어떤 계기로 지금처럼 업역을 넓히게 되었나요?
건축을 좋아한 가장 큰 이유는 나 자신을 표현할 수 있어서였어요. 그런데 건축은 일단 기회가 주어져야 할 수 있고, 많은 비용이 듭니다. 의사 결정에 참여하는 이가 많아서 제 뜻을 100% 펼치기도 어렵고요. 예전에는 표현하고 싶은 생각은 많은데 기회가 주어지지 않아서 대신 글을 썼어요. 그렇게 쓰다 보니 말할 기회가 생기고, 프로젝트도 들어오게 된 거예요. 말한 것을 실현할 기회가 온 거죠.

‘관계를 회복하는 건축, 세상을 화목하게 하는 건축’을 목표로 작업합니다. 이러한 건축관은 어떤 과정을 거쳐 지금처럼 자리 잡았나요?
성장기의 경험이 컸어요. 어릴 때 부모님과 할머니, 고모 등 가족이 많은 집에서 자랐거든요. 그때부터 가족의 다양한 관계를 경험하면서 갈등을 감각하는 촉수가 발달했어요. 과거에도 갈등은 있었지만, 요즘에는 온라인으로 공간이 확장되면서 훨씬 더 많은 갈등이 표출됩니다. 그런 모습을 지켜보는 것이 힘들고, 화목하게 만들고 싶은 거죠. 갈등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저는 이유와 해결책 모두 공간에서 찾는 거예요.

해결책을 제시한다는 관점에서 소장님이 건축을 하는 태도는 아티스트보다 디자이너에 가까워 보입니다. 실제로 설계할 때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하나요?
법규와 주변 환경 등의 요건을 분석해 제약이 되는 조건을 파악하고 우선순위를 정해요. 그 문제를 풀면서 우리가 원하는 관계를 만들어갈 방식을 찾습니다. 이때 중요한 건 문제 해결에만 급급하기보다는 사람이나 교통량이 많다거나 나무가 많은 식으로 기존 환경이 지닌 에너지, 그중에서도 부정적 에너지를 좋게 변모시키는 방향으로 디자인하려고 노력합니다.

좋은 공간의 중요성이 갈수록 높아져요. 앞으로 건축가의 역할은 어떻게 바뀌고, 또 변화해야 할까요?
SNS 피드의 사진은 내 가상의 집을 완성하는 디지털 벽돌이에요. 그 사진 속 배경이 나의 일부가 되면서 점점 더 공간의 중요성을 체감하고, 건축가가 나라는 브랜드를 만드는 데 영향을 미치는 사람이라는 걸 느끼기 시작했어요. 다만 아직은 어떤 것이 좋은 건축인지, 건축가의 역할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과정인 것 같아요. 그동안 한국은 신경 써서 건축할 정도로 부유하지도 못했고, 정주보다는 이동을 기반으로 하는 민족이라 건축적 재능이 굉장히 뛰어나지도 않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다릅니다. 현대사회의 가장 큰 특징은 온라인과 오프라인 공간이 모두 있다는 건데, 두 공간이 가장 잘 융합된 사회 중 하나가 한국이에요. 우리가 앞으로 지어갈 건축이 전 세계에 적용되는 좋은 지혜가 될 수 있어요. 프랑스는 그리스 로마 시대의 건축을 좇지 않고 고딕 양식을 창조하면서 문화국가로 자리매김했고, 미국은 엘리베이터와 철근콘크리트를 이용해 고층 빌딩이라는 유형을 탄생시키면서 유럽을 극복했어요. 한국에서도 이 시대의 인류가 필요로 하는 건축과 도시를 만들 수 있는 때라고 봐요. 이제부터가 시작입니다.

― 기사 전문은 행복 10월호를 통해 만나볼 수 있습니다.

글 정경화 기자 | 사진 이우경 기자(인물), 노경, 신경섭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