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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장이 지은 미술관, 대가의 작품
안도 다다오가 지은 뮤지엄 산과 건축가 리처드 마이어의 철학을 계승한 마이어 파트너스가 설계한 솔올미술관. 강원을 대표하는 두 미술관에서 현대미술계가 열렬히 사랑하는 두 아티스트의 전시가 각각 열리고 있다.

뮤지엄 산의 청조갤러리 4관에서 선보이고 있는 번 투 샤인. 2022, dimensions variable: synchronized video projection. © Ugo Rondinone Courtesy of studio rondinone and Kukje Gallery, Seoul; Esther Schipper, Berlin; Galerie Eva Presenhuber, Zu··rich; Gladstone, New York; Mennour, Paris; Sadie Coles HQ, London
우고 론디노네 개인전 <번 투 샤인BURN TO SHINE>, 뮤지엄 산
지금, 뮤지엄 산에서 현대미술가 우고 론디노네의 국내 최대 규모 개인전 <번 투 샤인>이 진행 중이다. 작가가 지난 30여 년의 작품 활동을 통해 끊임없이 성찰해온 삶과 자연의 순환, 인간과 자연의 관계, 그리고 이로써 형성되는 인간 존재와 경험에 관해 이야기한다. 작품 40여 점을 소개하는 이번 전시에 관해 노은실 큐레이터는 이렇게 설명한다. “조각, 드로잉, 페인팅, 사진, 건축, 비디오 및 음향 설치 등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고 재료 부분에서도 납, 나무, 왁스, 청동, 스테인드글라스, 잉크, 페인트, 흙과 돌 등 스펙트럼이 넓은 작가입니다. 이번 전시 또한 다양한 매체와 재료의 다양성을 경험할 수 있는데, 뮤지엄산의 노출 콘크리트와 파주석을 둘러싼 공간에서 시시각각으로 변화하는 시간성과 계절성을 경험하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해요. 특히 관람객을 처음 맞이하는 인트로는 ‘레인보우 공간’으로 창문 마흔네 개에 무지갯빛 색상을 입히고, 시계 작품 다섯 개를 엇갈려 배치했죠. 콘크리트 벽면에는 세 개의 ‘창문’ 작품이 전시되어 있어 방문 시간에 따라 변화되는 자연의 빛을 경험해보길 꼭 추천합니다.”

전시의 중심에는 동일 제목의 영상 ‘번 투 샤인’이 있다. 프랑스계 모로코인 안무가 푸아드 부수프와 협업한 이 퍼포먼스 영상은 아프리카 마그레브 지역의 전통 의식과 현대무용을 결합하며, 강렬한 사운드와 신체의 움직임으로 관객에게 압도적인 감각적 경험을 선사한다. 영상에는 타악기 연주자 열두 명과 남녀 무용가 열여덟 명이 등장하고, 이들은 불꽃을 둘러싼 채 춤을 추며 신비로운 황홀경에 이른다. 무한 반복 재생되는 영상에서 이들의 의식은 불꽃이 타버리고 해가 뜨며 막을 내리다, 바로 또 밀려오는 어둠과 함께 다시 시작된다. 삶에 대한 축제이자 애도로서, 작품은 삶과 죽음의 연약한 경계를 탐색한다. “2022년 파리 프티 드 팔레와 2023년 상하이 포선재단에 이어 한국에서 처음 소개하는 영상 작품이자 이번 전시의 큰 주제를 담고 있는 중요한 작품입니다. 이 영상 공간은 전시장의 9m가 넘는 천장을 반절로 나눠서 스크린 여섯 개를 설치하고, 영상 제작에 참여한 파리의 스태프들이 직접 방문해 최초로 열두 개 스피커를 통해 악기 연주자와 무용수 18명의 움직임을 세밀하게 맞추는 작업을 했습니다. 주저하지 말고, 어두운 커튼을 열고 타오르는 불빛이 있는 공간으로 한 걸음 들어가 경험해보길 추천합니다.”

자연을 통한 정신적 사유를 추구하는 론디노네의 이 같은 시도는 ‘수녀와 수도승’ 시리즈에서 새로운 정점에 이른다. 백남준관에는 4m 높이의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이 원형의 천장으로 내려오는 자연광 아래 중세 시대 성인聖人의 엄숙함으로 관객을 맞이하며, 야외 스톤가든에는 여섯 점의 ‘수녀와 수도승’이 정원의 자연석과 어우러져 선사시대의 거대한 돌기둥을 연상시킨다. 9월 18일까지 뮤지엄 산에서. 문의 033-730-9000



노은실 큐레이터와의 3문3답

이번 전시에서 특별히 조명하고 싶은 작품은?
여섯 점의 ‘수녀와 수도승’. 원시적인 자연석과 더불어 봄, 여름, 가을, 겨울로 변화하는 배경 화면에 따라 강렬한 색감을 드러낸다.

작품 설치 단계에서 발생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을까?
작가가 직접 아날로그로 모형을 만들어 백남준관에 여러 작품을 테스트해보며 선택한 작품이 바로 ‘노란색과 빨간색 수도승’이다. 브론즈 작품으로 무게가 약 1톤에 달하는 만큼 설치하기 어려웠다.

이번 전시를 통해 작가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이 있다면?
원색적인 색채와 물성을 보여주는 작가로만 생각했는데, 그 내면과 메시지에 대한 새로움을 발견했다. 삶에 대한 성찰과 겸손함, 자연의 연계는 뮤지엄 산이 전하는 ‘다시 살아갈 힘을 되찾는 공간’과 일맥상통한다.


아그네스 마틴, ‘무제 #9’, 캔버스에 아크릴, 연필, 1990, 182.6x182.6cm, 휘트니 미술관. ©Estate of Agnes Martin/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 SACK, Seoul
아그네스 마틴 개인전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 솔올미술관
마이어 파트너스의 건축과 루치오 폰타나의 전시로 올해 초 개관할 때부터 화제를 모은 솔올미술관. 시작부터 범상치 않았던 솔올미술관이 준비한 두 번째 전시는 절제된 방식으로 순수한 아름다움을 좇던 추상화가 아그네스 마틴의 개인전이다. 2백억 원 이상의 경매 호가를 기록한 적이 있을 만큼 미술계에서 많은 사랑을 받는 작가이지만, 국내에서 자주 만나기는 힘들었던 터. 그렇기에 작가의 첫 국내 미술관 개인전이기도 한 이번 전시는 더욱 반갑다.

리움미술관, 일본의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과 나고야시 미술관, 뉴욕의 휘트니 미술관과 디아 파운데이션, 페이스 갤러리 및 해외 소장자의 협력을 통해 성사된 이번 전시 구성은 런던 테이트 모던 관장을 역임한 이화여대 초빙 석좌교수 프랜시스 모리스Frances Morris가 도맡았다. “아그네스 마틴의 작품을 광범위하게 다루기보다 깊이 있게 보여주고자 했습니다.” 그가 오랜 시간 정성을 들여 준비한 <아그네스 마틴: 완벽의 순간들>에서는 작가의 주요 작품 54 점을 만날 수 있다. 작가의 작업 세계 정수를 보여주는 전시작은 크게 두개의 공간에 나누어 배치됐다. 먼저 전시실 2에서는 아그네스 마틴 하면 떠오르는 선과 격자무늬 작업을 선보이기 직전, 유기적인 형태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원형ㆍ삼각형ㆍ사각형 같은 도형을 화폭에 담은 1950년대 중반의 작품으로 시작한다. 이후 선과 격자가 화폭에 나타나기 시작한 무렵인 1964년에 제작한 ‘나무’, 작가의 작업 생애에서 중요한 전환점이 된 1973년작 ‘어느 맑은 날에’와 작가의 전체 작업 중 가장 신비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작품이라 평가받는 1977년~1992년에 제작한 회색 모노크롬 회화 등이 이어진다.


아그네스 마틴, ‘아기들이 오는 곳’(‘순수한 사랑’ 시리즈), 캔버스에 아크릴, 연필, 152.4x152.4cm, 1999, 디아 파운데이션. ©Estate of Agnes Martin/ Artists Rights Society(ARS), New York – SACK, Seoul
이곳에서 만날 수 있는 ‘어느 맑은 날에’는 이번 전시의 하이라이트이기도 한데, 작품의 진가를 알기 위해서는 작가의 생애를 짧게 훑을 필요가 있다. 아그네스 마틴은 1912년 캐나다에서 태어나 1931년 미국으로 이주해 뉴욕과 뉴멕시코주 타오스에서 미술을 공부하고 가르쳤다. 1950년 미국 시민권을 취득한 후 뉴욕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했지만, 1967년 돌연 작업을 중단하고 홀연히 사라진다. 7년의 공백기 이후 다시 미술계에 등장한 그는 1974년부터 뉴멕시코주 의 시골 마을에 정착, 200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본인의 작품 세계의 정점에 이른 작품을 선보였다. “‘어느 맑은 날에’는 마틴이 공백기 이후 세상에 처음 선보인 작업이에요. 수직선과 수평선을 여러 방법으로 구성한 이 작품은 그가 던진 일종의 새로운 선언이라 생각합니다.”

전시실 3에서는 삶의 마지막 10년간 몰입한 ‘순수한 사랑’ 연작 여덟 점을 만날 수 있다. 고요한 명상 속에서 떠오른 이미지를 그린 이 연작은 전시실 2에 걸린 회색 모노크롬 작품과 대비되는 맑고 섬세한 파스텔 컬러로 표현했다. 전시를 마무리 짓는 ‘순수한 사랑’ 연작 앞에서 프랜시스 모리스는 이 작품에 얽힌 한 가지 재미있는 비하인드 스토리를 알려주었다. “이 연작의 작품 각각에는 ‘사랑’ ‘충만’ ‘순수한 삶’ ‘완벽한 행복’ 등 이름이 붙어 있어요. 1990년대, 현재 페이스 갤러리의 회장 마크 글림처Marc Glimcher는 어린 자녀들을 데리고 마틴의 스튜디오에 방문하곤 했는데요, 아이들은 그의 작품을 보고 왜 제목이 없냐고 물었대요. 이 말을 들은 마틴은 ‘네가 한번 지어보렴’이라고 답했죠. 실제 이 시기 작품 이름의 일부는 아이들과 논의해 짓기도 했답니다.(웃음)” 아이들의 순수함에 대해 종종 이야기하며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고자 했던 아그네스 마틴. 그의 말년 작품에는 생의 끝자락까지 순수함을 좇은 사람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광채와 기쁨이 스며 있다. 8월 25일까지 솔올미술관에서. 문의 033-641-3376 



프랜시스 모리스 게스트 큐레이터와 3문3답

전시 준비에 소요된 기간은?
마틴과 같이 전시 수요가 높은 작가의 전시회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보통 몇 년의 계획이 필요하다. 이번 전시는 3년 전부터 준비하기 시작했다.

작가의 첫 국내 미술관 전시인 만큼 작품 선정 시 특별히 고려한 점은?
마틴의 오랜 경력 중 동시대 한국 회화와 유사성이 있고, 작가의 예술 세계에서 중요한 시기의 작품을 선보이고자 197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까지의 회화를 중점적으로 다뤘다. 그리고 동아시아 컬렉션에 있는 마틴의 주요 작품이 전시작 리스트에 포함되도록 신경 썼다.

작품 외에 이번 전시에서 만날 수 있는 작가의 예술 세계를 보여주는 요소가 있나?
이번 전시에서는 다큐멘터리 영화 <세상을 등지고>도 상영한다. 스튜디오에서 작업하는 마틴의 모습을 담은 훌륭한 영상이다.

글 양혜연, 백세리 기자 | 취재 협조 뮤지엄 산, 솔올미술관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4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