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의 매력을 최대한 이끌어내는 구조미가 돋보이는 건축물. 가로 길이 총 100m 중 50m는 지면에 붙여 건물을 올렸고, 나머지 절반은 철제 기둥으로 받쳐 공중에 떠 있는 모양이다.
전면 개방되는 통유리 창문을 설치해 사계절 내내 날씨에 구애받지 않고 명상과 요가를 할 수 있다.
“공중에서 좌선을 하는 듯한 공간을 만드는 것이 젠보 세이네이 건축의 키포인트였습니다. 가파른 절벽을 따라 위치한 가느다란 부지였기 때문에 캔틸레버 형태의 목조 브리지 구조로 설계했고, 좌선을 하는 곳은 숲을 파노라마 뷰로 바라볼 수 있도록 반야외 공간으로 만들었습니다.” _건축가 반 시게루
광활한 숲 속에 안겨 있으면서도 직선으로 길쭉하게 뻗어 존재감을 발휘하는 젠보 세이네이Zenbo Seinei. 온갖 관광지에서 ‘장관’이라는 수식어를 남발해 피로감이 느껴지던 차, 젠보 세이네이에 도착한 나는 먼발치에서 바라본 전경만으로도 비로소 장관의 참뜻을 이해한 듯 감탄사를 연발했다.
젠보 세이네이는 일본 효고현 아와지시마의 청정한 자연 속에 자리한 힐링 스폿이다. 일본의 파소나 그룹은 코로나19 확산 이후 급속하게 변화한 사람들의 생활과 가치관을 바탕으로 도시의 일상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신의 삶을 돌아볼 수 있는 리조트 시설을 고안했고, 2022년 젠보 세이네이라는 이름으로 그 공간을 본격 오픈했다. 이곳의 설계를 맡은 건축가는 2014년 건축계의 노벨상이라 일컫는 프리츠커상을 수상한 반 시게루Shigeru Ban. 대자연과 조화롭게 어우러진 목조건물과 식당의 테이블 다리 및 천장에 활용한 지관(종이 기둥)은 종이와 나무를 소재로 지속 가능한 건축을 선보이는 반 시게루의 작품임을 단번에 알 수 있게 한다.
객실은 5.73m2 크기의 1인실 아홉 개와 11.20m2 크기의 2인실 아홉 개를 갖추었다.
안으로 들어서자마자 느껴지는 건 짙은 삼나무 향기였다. 건물 전체를 휘감은 삼나무는 상쾌한 향을 내뿜으며 마음을 정화해주는 역할을 톡톡히 한다. 이름에서도 알 수 있듯 젠보 세이네이는 일본어로 ‘젠’이라고 부르는 ‘선禪’을 실천함으로써 오롯한 마음의 안정을 찾을 수 있길 바라는데, 그 바람은 공간 곳곳에서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먼저 객실과 라운지가 있는 1층의 각 객실에 붙은 명패가 눈에 띈다. 숫자가 아닌 칠전팔기七顚八起, 일일시호일日日是好日 등 모두 선의 가르침을 담은 단어가 쓰여 있으며, 그 명패에 쓰여 있는 단어의 의미를 자기 나름대로 해석해보는 특별한 경험을 제공한다.
전통 일본 다과를 즐기며 직접 말차를 만들어보는 체험을 할 수 있다.
기능적 디자인이 돋보이는 객실엔 다다미 침대, 작은 책상 등 생활에 필요한 물건만 두어 최소한의 물건이 놓인 공간 속에서 편안하게 자신과 직면하는 시간을 보낼 수 있도록 의도했다. 방을 뒤로하고 건물 2층에 오르면 명상과 요가를 할 수 있는 젠 웰니스ZEN wellness 체험 공간이 펼쳐진다. 말 그대로 ‘펼쳐졌다’는 표현이 적절하다. 좌선을 하는 메인 공간을 반야외로 설계해 쭉 뻗은 100m 길이의 우드 덱에서 일절 시야를 방해받지 않고 3백60도 파노라마 뷰로 숲을 감상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귓가에 속삭이듯 맑은 새소리, 숲에서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 이곳에 마련한 리트리트 체어에 앉아 있으면 마치 숲속에 파묻힌 기분이 드는데, 이는 자연 속에서 선을 체험하도록 건물을 산 높이보다 높지 않게 짓는 등 자연과 공생하는 설계를 했기 때문이다. 좌선 공간 바닥에 압축한 삼나무를 사용한 것도 오롯하게 선을 만끽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비롯되었다. 야외 덱은 비에 쉽게 손상되기에 내구성을 고려한 것도 있지만, 반 시게루는 바닥에 앉아서 명상을 하는 좌선의 특성을 고려해 인위적이지 않은 촉감의 자연 소재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공용 휴게 공간인 살롱.
젠보 세이네이는 달의 정기를 듬뿍 받을 수 있는 만월 때에 메인으로 운영하는 1박 2일 숙박 프로그램과 네 시간 당일치기 프로그램 등 다양한 체험 코스를 예약제로 운영한다. 두 프로그램 모두 마음을 편안히 안정할 수 있는 요가와 명상, 서예, 다도 체험을 포함하며 식사를 제공한다.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젠보 요리’는 밀가루, 기름, 설탕, 동물성 식재료를 전혀 사용하지 않고 조리한 선방 요리다. 아와지시마산 제철 식재료를 활용해 죽과 두부 등 몸에 이로운 음식을 선보이는데, 여기엔 선을 체험하는 투숙객이 건강식을 섭취함으로써 체내를 정화하고 심신의 균형을 맞출 수 있길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다. 젠보 세이네이는 스트레스에서 벗어나 오롯이 자신에게만 집중하는 시간이 필요한 현대 도시인에겐 일상 속 해독제 같은 장소다.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만 싶은 어느 날, 이곳이 나의 도피처가 된다면 그보다 충만한 휴식은 없을 테다.
주소 2594-5 Kusumoto Aza Banaka, Awaji City, Hyogo Prefecture
문의 zenbo-seinei.com
반 시게루는 종이, 나무 등 재활용할 수 있는 소재를 사용해 세계의 재난·분쟁 지역에 임시 주택과 난민 보호소를 만드는 활동을 하고, 지속 가능한 건물을 짓는 일본의 건축가다. 2006년, 디자인하우스 창립 30주년을 기념해 올림픽공원에 종이로 기둥을 세우고 컨테이너 박스로 방을 마련한 페이퍼테이너뮤지엄을 만들기도 했다.
알려드립니다
오랜만에 독자 여러분께 반가운 소식을 전합니다. <행복>이 일본 아와지시마로 떠나는 독자 여행을 기획 중입니다. 이곳 젠보 세이네이도 여행 코스에 포함할 예정이지요. 아와지시마 여행에 대한 상세한 내용은 <행복> 10월호에서 기사와 함께 확인하세요.
기획 박현신 | 취재 협조 일본 관광청, 젠보 세이네이
- 자연 속에서 좌선을 체험하다 젠보 세이네이禅坊靖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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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효고현 아와지시마. 이곳에 자연과 하나 될 수 있는 힐링 스폿이 있다. 숲을 거느리며 명상할 수 있는 가장 소박하면서도 가장 호화로운 시간.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