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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 디자이너 토머스 헤더윅 상상력과 인간미를 담은 건축과 도시를 만든다
당신은 어디에서 머물고 싶습니까? 토머스 헤더윅은 묻는다. 그에 따르면 경제적 관점에서 무심하게 지어 올린 회색빛 빌딩은 인간미를 상실한 삭막한 도시 풍경을 만들었고, 우리는 건축의 즐거움을 잃었다. 그는 부드럽고 관대한 상상력과 인간미를 담은 건축을 통해 다시 그 기쁨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고 일컫는 세기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 문화역서울284에서 열리고 있는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전시 현장을 찾았다.
기발한 아이디어와 창조적 디자인으로 영국의 레오나르도 다빈치라 일컫는 세기의 디자이너이자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Thomas Heatherwick. 그의 작업을 망라한 전시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가 문화역서울284에서 9월 6일까지 열린다. 2010년 토머스 헤더윅의 디자인을 전 세계적으로 알린 상하이 엑스포 UK 파빌리언을 비롯해 뉴욕의 인공섬 공원 ‘리틀 아일랜드’, 구글 신사옥 ‘베이뷰’, 새롭게 디자인한 런던의 명물 이층 버스 그리고 최근 서울시의 한강 노들섬 재개발 프로젝트로 제안한 ‘사운드스케이프’ 모델까지.

이 전시는 1994년에 설립한 헤더윅 스튜디오의 대표적 디자인 프로젝트 30점을 드로잉과 스케치 노트, 아이디어 모형, 테스트 샘플, 건축 모형, 실제 제작한 3D 프린트, 시제품 등을 통해 보여준다. 무엇보다 토머스 헤더윅이 참여한 프로젝트의 탄생 배경 및 과정, 완성 작품의 영향력과 파장 등 디자인과 건축에 대한 그의 창의적 아이디어와 확고한 철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그리고 미래 세대에 유의미한 메시지를 던진다. 전시 오프닝을 위해 한국을 찾은 토머스 헤더윅과 과거 및 현재의 도시 풍경 그리고 인간미를 담은 건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조각적 공간’ ‘공존하다’ ‘감성의 공유’ ‘도심 속의 자연’ ‘과거를 담은 미래’ ‘사용과 놀이’ 여섯 개 테마로 구성한 전시. 드로잉과 스케치 노트부터 아이디어 모형, 테스트 샘플, 여러 건축 모형, 그리고 실제 제작한 3D 프린트와 시제품 등 다양한 매개체를 통해 헤더윅 스튜디오의 작업을 망라한다.
당신에게 서울은 어떤 이미지인가요?
여러 번 서울을 방문했습니다. 특히 지난 1월에는 휴가차 와서 오래된 한옥에 머물렀는데, 정말 마법과도 같은 시간을 보냈습니다. 청와대가 보이는 독채였는데 자연 요소를 활용하는 방식과 한옥의 창문 손잡이 등 건축적 요소, 디테일 등을 살펴보았어요. 저는 전통 건축에는 인간의 관심에 대한 많은 교훈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지 오래돼서가 아니라 옛사람의 보살핌과 배려, 예술적 자질을 발견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서울 사람들은 제가 아는 다른 어떤 사람보다 디자인에 열정적이고 관심이 많다는 걸 느꼈습니다. 매우 따뜻하고 수용적이고 고무적인 도시 풍경 그리고 사람들을 사랑하게 되었어요. 그 때문에 앞으로 몇 년 동안 계속 서울에 다시 올 수 있기를 바라고 있지요.

세계의 많은 디자이너와 예술가가 서울을 사랑하고, 이 도시에서 무언가 해보기를 원하고 있다는 것을 저 또한 피부로 느낍니다. 어떤 이유 때문일까요?
서울에서 에너지와 열정을 느끼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 도시 안에는 어떤 요구와 필요도 분명 있을 거예요. 유럽의 오래된 도시들의 오래된 건물들이 하나의 분위기와 하나의 문화를 만드는 것과 달리 서울은 전쟁 후 많은 것을 지어야 했고, 교각과 건물이 비교적 새것들이죠. 그래서 실제로 열정과 에너지가 있는 동시에, 새로운 건축물이 충족하지 못하는 인간의 공간에 대한 필요성 또한 공존합니다. 저는 서울이 유럽에는 없는 기회를 갖고 있다고 봅니다. 우리는 문화를 계속 창조해야 합니다. 특히 서울은 미래 권리의 유산을 역사와 혼합해 계속 창조해야 하는 도시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요헨 자이츠Jochen Zeitz와 자이츠 재단이 소유한 현대미술 컬렉션을 만날 수 있는 자이츠 아프리카 현대미술관. 콘크리트 곡물 저장고를 커팅한 거대한 구조물(아트리움)이 인상적이다. ⓒIwan Baan
아트리움으로 변모한 곡물 저장고의 깎여 나간 단면. ⓒHufton+Crow
깎아서 만든 곡물 저장고의 종이 모형을 통해 헤더윅만의 창의적 해석을 엿볼 수 있다. ⓒHeatherwick Studio
서울에 대한 당신의 관점은 노들섬 프로젝트 제안에 그대로 녹아 있는 것 같습니다. ‘Sound’라는 콘셉트는 어떻게 도출했나요?
우리 목표는 도시가 설정하는 어떤 것이든 최고 가치를 최대한으로 얻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어떠한 장소에 머물고 싶어 하는가? 공공 공간은 어떤 콘텐츠를 갖춰야 하는가? 우리는 이 질문을 던지기 시작했습니다. 도시의 놀라운 점은 여러분이 많은 사람과 함께 있다는 것입니다. 음악은 다른 이들과 함께할 때 하나로 만들어주는 매우 감성적인 콘텐츠이자, 현재 한국에서 가장 잘하는 분야이기도 합니다. 세계 대부분의 공공 공간은 거리 공연을 위해 설계하지 않았다는 점도 중요합니다. 우리의 ‘사운드스케이프’ 노들섬은 거리 공연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을 모으고, 거리 공연을 보고 싶어 하는 사람들을 모을 것입니다. 더불어 거울처럼 서울을 비추는 자연과 강물이 함께 어우러지는 공공장소를 꿈꿨습니다. 이 공모는 디자인이 아닌 팀을 뽑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에서 가장 역점을 둔 점은 무엇인가요? 특히 문화역서울284라는 공간의 역사와 하드웨어적 환경이 전시와 연결되어 어떤 시너지를 낼 것이라 예상하나요?
저는 이 건물이 매우 공공적이며 역사적 의미가 있어서 마음에 듭니다. 미술에 관심 있는 사람만 미술관에 가게 되죠. 반면 서울의 가장 큰 기차역 주변에 있는 이 오래된 건물은 마치 거대한 공간의 심장 같은 느낌으로 다가옵니다. 주변의 큰 빌딩들에 비하면 작지만, 당신의 눈은 이곳을 집중하게 되죠. 이 건물 안의 다양한 공간에 여러 전시가 펼쳐집니다. 전문 전시 공간이 아니기에 조명에 정말 신경을 많이 썼어요. 완성한 프로젝트의 결과뿐 아니라, 이 결과에 도달하는 방법 및 저와 제 팀이 어떤 일을 하는지 보여주는 프로세스와 테스트 조각도 있습니다. 이 전시가 책이라면 저는 두꺼운 책이기를 바랐어요. 영국에는 어린이를 위한 책 중 ‘범퍼북’이라는 것이 있어요. 매우 두꺼운 종이에 커다란 삽화와 다양한 요소가 들어 있는 책을 말하죠. 저는 이 전시가 범퍼 전시회가 되길 바라요. 사람들에게 마법 같은 경험이 되면 좋겠습니다.


전통 중국식 극장을 연상케 하는 상하이의 번드 파이낸스 센터. 마치 술 장식과 같은 6백75개의 금속 태슬을 적용한 파사드는 세 개의 트랙에 배열해 회전하는 것이 특징이다. ⓒLaurian Ghinitoiu
중국의 직물 패턴, 밧줄 및 매듭에서 영감을 받은 ‘태슬’이 구조물로 형상화되는 과정. ⓒHeatherwick Studio
헤더윅 스튜디오에 2백80명이 넘는 직원이 일하고 있고, 팀 내에 신경과학자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토머스 헤더윅 스튜디오에서 일하는 데 가장 중요한 자질은 무엇입니까?
제가 일하는 방식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함께 이야기하고, 함께 모델을 만들고, 함께 토론하고, 어떤 것이 문제인지 깨닫고, 더 나은 아이디어를 가지고 끊임없이 토론합니다. 엔지니어와 예술가, 신경과학자 등 다양한 분야의 사람과 협업하죠. 건축은 여타 예술과 다르기 때문에 공공 경험을 바탕으로 한 충분한 토론 없이 공공에게 좋은 결과를 내놓을 수 없습니다.

생각해보세요. 전시회에 가서 그림을 좋아하지 않으면 나가면 됩니다. 어떤 음악을 좋아하지 않으면 헤드폰을 벗고 음악을 끄면 돼요. 하지만 그것이 당신 삶의 풍경일 때는 어떻게 해야 하나요? 우리는 감정을 삭막하게 만들고 획일화하는 건축 환경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우리는 일을 더 명확하게 하는 동시에 사람들이 공공 경험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도록 영향을 미친다는 사명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껏 해온 프로젝트는 이런 생각과 사명감의 결과입니다. 어떻게 하면 인간적 환경을 만들어나갈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해요.


뉴욕 허드슨강 부두의 오래된 나무 말뚝에서 영감을 받아 조성한 인공 섬 리틀 아일랜드Little Island. ©Timothy Schenck
강원도 설혜원 부지에 건축 중인 미술관 ‘The Core(코어)’. ©NOD Studio
당신의 프로젝트를 담은 책이 발행될 예정이라고요?
네, 맞아요. 저는 지난 5년 동안 새 책을 어떻게 낼 것인지 연구하고 작업해왔습니다. 10월에 영국에서 발간하기 시작해 세계 곳곳에서 번역될 거예요. 내년 초에 한국어판도 나올 겁니다. 책 제목은 〈Humanise〉입니다. 이 책은 그저 프로젝트를 소개하는 건축 전문 서적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싶어요. 우리 도시의 잠재력에 대해 전형적인 건축 서적의 방식에서 탈피해 비건축 언어로 담을 예정입니다. 이 책이 어떤 반응을 일으킬지 정말 흥분됩니다.

당신의 디자인에서 추구하는 것, 솔soul은 무엇입니까?
앞서 말했듯 공공 공간을 만드는 데 우리의 책임을 진지하게 생각하는 동시에 기쁨을 주려고 노력합니다. 어떤 기쁨도 주지 않는다면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기쁨이라는 감정에는 미소 짓게 하는 것, 재미있는 것, 행복한 것 등 다양한 의미가 들어 있죠. 저는 헤더윅 스튜디오 작업을 통해 사람들이 궁금증과 기쁨을 느끼길 바랍니다. 우리 도시와 더 많은 사람에게 상상력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더 인간적인 장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제 신념이자 희망입니다.


전시뿐 아니라 렉처, 도슨트 프로그램을 기획한 숨프로젝트 이지윤 대표와 토머스 헤더윅.
숨프로젝트
이지윤 대표

“미래 서울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려보시길 바랍니다”

이번 <헤더윅 스튜디오: 감성을 빚다> 전시는 지난 25년간 유럽과 한국의 현대미술을 잇는 발판 역할을 담당하며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현대미술 프로젝트를 발굴·기획해온 숨프로젝트 이지윤 대표의 열정이 녹아 있는 전시다. 이지윤 대표는 국립현대 미술관 서울관 디렉터를 지낸 바 있으며, 2003년 런던에서 숨프로젝트를 설립했다. 2012년 런던 올림픽을 기념하며 런던 스펜서 하우스에서 올림픽 정신을 반영한 미술 작품을 소개한 IOC 미디어 아트 컬렉션 을 비롯해, DDP 완공과 함께 건축가 자하 하디드의 작품 세계를 기념한 기획 전시, 세계적 뉴미디어 아티스트 그룹전 등을 개최한 바 있다.

헤더윅 스튜디오와 함께한 이번 전시는 문화역서울284의 2023년 협력 전시로 진행했으며, 1년 반 동안의 긴밀하고 치열한 고민과 소통을 거쳐 다양한 영상 및 미디어를 통해 경험하도록 해 마치 헤더윅 스튜디오에 방문한 것과 같은 높은 몰입감을 전하는 것을 목표로 준비했다고 한다. “디자이너이며 건축가 그리고 아티스트인 토머스 헤더윅은 도시환경 속에서 인간의 감성을 담는 건축디자인 프로젝트 등을 통해 지속 가능한 미래 도시 모습과 기능에 대한 새롭고 창의적 제안을 이어나가고 있습니다. 특히 한·영 수교 140주년 기념 전시로 선정돼 더욱 특별한 의미를 담고 있는 이번 전시는 ‘문화역서울284’이라는 근대 서울의 혼과 감성이 담긴 역사적 건축 공간에서 그의 휴머나이즈 철학과 비전을 담은 작품을 전시함으로써 한국의 많은 젊은이에게 미래 서울의 모습을 상상하고 그려볼 수 있는 뜻깊은 기회를 제공하고 싶었어요.”


총 25만 개의 씨앗을 6만 개의 아크릴 막대 끝부분에 배치한 2010년 상하이 엑스포 영국 파빌리언. ©Iwan Baan
금속이 회전하는 형상을 적용한 스펀 체어. 인체 공학적 부분을 이해하기 위해 실물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실험하고 또 실험했다. ©Susan Smart
이지윤 대표는 독보적이고 창의적인 전시 개최뿐 아니라, 이를 더욱 깊이 이해할 수 있는 도슨트 프로그램에도 심혈을 기울였다고 한다. 재생이라는 주제로 지속 가능성, 감성, 인간애라는 관점에서 전시 작품들의 시작과 진행 과정 속 에피소드 등을 쉽고 재밌게 설명해주는 도슨트 투어 프로그램은 건축 전시에 대한 거리감을 줄이는 것은 물론, 서울이라는 도시환경 속 우리 주변 삶의 공간을 다시 한번 깊이 있게 생각해 볼 수 있게끔 구성했다는 점에서 관람객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다. 숨프로젝트는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한 평일과 주말에 하루 4회 차 진행하는 것 외에 야간 개장일인 수요일과 금요일 저녁 전시장을 찾는 학생이나 직장인 등 관람객을 위한 야간 특별 도슨트 투어도 추가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취재 협조 숨프로젝트(www.suumproject.com)

글 강보라 | 인물 사진 이기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