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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관·김혜주 2인전 <미해결의 장>
“얌전하고 정적인 장식과 쓰임을 넘어 제 영역을 확장해가는 공예”. 전시 보도 자료에 쓰인 대로 오늘날의 공예는 예술과의 경계를 확장 또는 이탈 또는 융합 중이다. 장르를 허물어야 한다는 생산적 압력 아래 놓인, 도자공예를 전공한 두 작가. 도자의 한계점을 오히려 부각한 역설적 작품으로 그들이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이것. 미해결의 장은 해결의 시발점?

(왼쪽) 김혜주 작가는 서울여자대학교 조형학과 석사과정에 있는 신예로 중랑아트센터, 바롬갤러리, 공예트렌드페어에서 그룹전에 참여한 경력이 있으나 갤러리에서 정식으로 작품을 전시하는 것은 이번 갤러리 지우헌이 처음이다. 클래식 악기를 다루는 특기를 살려 영상과 사운드를 직접 만들고, 이를 도자와 결합하는 과감한 실험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오른쪽) 정관 작가는 국민대학교 도예과 졸업(2013) 후 뉴욕 시라큐스 대학 VPA 도예과에서 석사 학위(2018)를 받았고, 현재 국민대학교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개인전 〈What to Value〉 (2019, 갤러리밈)와 2013 공예트렌드페어에서 부스 개인전(2013, C.O.C Ceramic Studio)을 열었다. 경기도자미술관과 함께 <숨겨진 빛: 한국의 현대도예>, 벨기에와 프랑스에서 순회 전시(2022)를 개최했으며, 뉴욕·필라델피아·영국·일본 등에서 열린 그룹전에도 다수 참여했다. 미국 NCECA(미국도자교육평의회) 학생 공모전 대상(2017), 행주공예미술대전 특선(2014), 경찰문화대전 금상/은상(2007/ 2008) 등을 수상했다. 국민대학교와 이화여자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모든 생명이 소멸하는 화탕지옥 속에서 비로소 태어나는 도자라는 존재. 우리는 그동안 도자를 포함한 공예와 예술의 가르마 타기에 몰두했고, 지금은 그 노력이 허튼 일임을 비로소 알아챘다. 그동안은 감상할 만한 성질 즉 아름다움을 지녔으되, 예술 작품이 지니지 못한 쓸모라는 덕목까지 갖춘 것을 공예라 불러왔으나, 작금의 공예는 그 경계조차 흩어버렸다.

갤러리 지우헌의 새 전시 <미해결의 장>에서 우리는 “더 이상 뚜렷한 목적지를 설정하기 어려워진 현대 예술에서, 도자라는 매체를 주된 바탕으로 삼는 작가들은 무엇을 추구해야 하는가?”라는 정관 작가의 독백을 맞닥뜨리게 될 것이다. 이는 역시 도자를 주요 매체로 작업하는 김혜주 작가의 독백이기도 하다.


정관, ‘What to Value B#2’, 혼합토에 백유, 산화소성 후 전사, 27×13×22cm, 2022.
형체는 흘러내리고, 유약은 파편화되었으며, 색감은 말할 데 없이 팝아트적이고, 도자 표면으로 한글인지 영어인지 모호한 문자가 헤쳐 모인 정관 작가의 작품. 그가 ‘통상적 실패’라 부르는 이 도상들은 그야말로 전통 도자 양식에서는 실패로 여기는 형태다. 하지만 그는 이런 왜곡, 해체를 통해 공예의 새로운 가능성을 찾아가보고 싶단다. 이번 전시의 대표작 ‘What to Value’를 들여다볼까? 공예에서 자주 언급하는 ‘기술’ ‘기능’ ‘숙련’ ‘완성도’ 같은 단어를 전통 찻잔의 꽃무늬 패턴에 결합해놓고는 형체를 뭉개고, 유약을 파쇄한다. “도예의 관습을 거스르기 위해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공예 패턴을 역설적으로 가져왔다”는 그의 설명이 단박에 이해되는가?


김혜주, ‘음의 조각들_미분음B’, 싱글 채널HD(1080p) 비디오설치, 흑백, 12초, 판성형, 고운백조형토, 산화소성, 72×180cm, 2023.
김혜주 작가의 작업은 ‘미분음’이라는 생소한 현대음악 용어에서 시작한다. 한 옥타브를 열두 단계로 균등하게 나눈 서양 음계의 고전적 ‘평균율’(그동안 우리가 ‘올바른 것’이라 지각해온 음정)에서 벗어나, 12등분 이상으로 나눠 반음보다 작은 음정까지 포용하는 것이 미분음의 세계다. 그런데 미분음과 도자가 대체 어떻게 얽히고설키느냐 묻는다면? “유약을 바르고 굽는 도자 제작 공정의 마지막 단계를 사운드와 영상으로 대체해요.” 그는 수분 함량과 굽기에 따라 미세하게 형태가 달라진 원형의 백조형토판 마흔 개를 벽에 설치하고, 디지털로 복제한 영상을 그 판에 왜곡되게 투사한다(이번 전시 출품작인 ‘음의 조각들’). 도자와 미디어, 사운드 아트가 ‘밀당’을 벌이다 결국 한데 몸을 섞으며 공명하는 장면이다. 이 오묘한 풍경이야말로 공예가 현대미술 안에서 배회하는 듯한 장면 아닌가.

해결되지 않기에 더 탐나는, 그래서 더욱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예술+공예! 그러하니 전시 제목도 <미해결의 장> 아니겠나. 이번 전시에서는 두 사람의 협업 작품도 만날 수 있다. 정관 작가는 백자 형태를, 김혜주 작가는 백자를 투사하는 영상을 구현해 하나의 작품 안에서 만나는 협업을 선보인다.


정관·김혜주 〈미해결의 장〉
기간 8월 16일(수)~9월 9일(토), 일·월요일·공휴일 휴관
장소 갤러리 지우헌(서울시 종로구 북촌로11라길 13)
오프닝 리셉션 8월 16일(수) 오후 5시
인스타그램 @jiwooheon_dh
문의 02-2262-7349
신청 방법 <행복> 홈페이지 ‘이벤트’ 코너 또는 전화(02-2262-7349)



갤러리 지우헌은 컨텐츠 미디어 기업 ㈜디자인하우스에서 운영하는 전시 공간으로, 북촌 한옥마을에 위치한다. 한옥을 개조한 독특한 건축으로, 2016 서울우수한옥으로 선정된 바 있다. 갤러리 지우헌은 동시대 미술을 고찰하는 다양한 전시를 열고, 국내외 신진 작가 발굴과 후원에 힘쓰고 있다.

글 최혜경 기자 | 인물 사진 이기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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