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초 계태사에서 높이 5m의 대형 불화 작업에 매진 중인 혜담 스님. 금니로 세밀하게 그리는 당초원문은 고려 불화에서만 볼 수 있는 고유한 문양이다. 뒤에 걸려 있는 그림은 고려 불화를 대표하는 ‘수월관세음보살도’.
수년 전 우연히 고려 불화 수월관세음보살 그림을 관람한 적이 있다. 극진한 화려함과 부드러우면서 강렬한 곡선, 가까이 들여다보면 눈이 아플 정도로 정교하게 표현한 문양은 사찰에서 보던 불교 그림이나 탱화 양식과 전혀 달랐으며, 명징한 색채는 3D 그림을 보는 듯 입체적으로 반짝거렸다. 세밀한 표현과 색채에 감응을 받아 오랫동안 응시 하던 기억이 있다. 고려 불화였다. 5백여 년 호국 시대의 설법과 고려인의 간절한 염원을 품은 고려 불화는 국내에 불과 20여 점이 남아 있을 만큼 진귀한 문화유산이다. 생경한 느낌도 그런 이유에서일 것이다. 우리가 사찰에서 경험하는 불화 대부분이 조선 시대 유산이기 때문이다.
턱없이 부족한 문헌 자료와 희미해진 명맥에도 고려 불화를 향한 소명으로 매일같이 그림 삼매에 드는 승려 장인이 있다. 2005년 대통령 표창을 비롯해 파리 루브르박물관 프랑스 국립 예술 살롱전 3회 입상과 명예 훈장을 수상하고, 40여 회가 넘는 전시회와 학술 대회를 열고 있는 월제 혜담 스님. 우리 고유의 고려 불화를 복원하고, 전 세계에 적극적으로 알리고 있는 혜담 스님을 속초 계태사에서 만났다. 계태사는 설악산 울산바위 산자락이 품은 마을에 자리한 고려불화학술연구소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온전하게 홀로 수행에 매진하기 위함이고, 사람들이 쉽게 찾아오기 어려운 곳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햇살 좋은 봄날, 혜담 스님은 높이 5m의 대형 불화 ‘아미타삼존도’ 작업에 한창이었다.
아래 산벚나무에 그린 불화. 절 공사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목을 베어야 하는 상황에서 혜담 스님이 나무에 천도재를 올려주었다. 16년째 무탈하게 좌식 경상으로 쓰고 있다.
화불로 나타난 부처의 자비로운 마음
“고려 시대의 헌법이라 할 수 있는 ‘훈요10조’에 불교 교리가 세 개나 있을 만큼 고려 시대는 불교 부흥 시기였습니다. 불교의 지혜로 삼국 문화를 통합하고, 궁극적으로 평화로운 시대를 맞이하고자 하는 염원이 컸죠. ‘아미타불’ ‘미륵불’ ‘지장보살’을 그려 죽은 이의 영혼을 달래고, 참회하며, 극락정토의 삶을 기원하는 불교 의례가 절정에 달했습니다.” 혜담 스님은 대표적 불교 사상인 ‘자비로운 마음’이 고려 시대의 국가 운영과 맞닿아 있다고 덧붙였다. 부처의 힘으로 나라를 지키고 평화를 유지하려 했기 때문이다. 불교 의례가 성행한 고려 시대에 불화를 제작해 소망을 빌고, 불사佛事하는 것은 당연한 풍경이었을 것이다.
“고려 불화를 그리고 모시던 마음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고려 불화의 주인공이 부처 같지만, 실은 발원자가 주인공입니다. 이 그림을 보세요. 늘 기도하는 사람이 있지요. 관세음보살이 아닌 선재동자, 팔부성중이 그 주인공입니다. 선업을 쌓아 부처님 세계로 가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불보살이 화현化現해 염원자를 도와주리라는 마음을 담은 것이죠. 그래서 고려 불화는 단순히 부처를 그린 ‘불화佛畵’가 아닌 ‘화불畵佛’, 즉 ‘그림으로 나타난 부처’라고 말해야 정확합니다.” 혜담 스님 말씀을 들으니 고려 불화가 왜 이토록 정교하게 아름답고 장엄한지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고려인에게 불화는 현존하는 부처로서 경배의 대상인 것이다. 나아가 부처의 형상을 바라보고 공덕을 살피며 깨달음을 얻는 관불삼매觀佛三昧로서 수행 대상이기도 하다.
“고려 불화는 말았다 폈다 하는 족자 형태가 많아 쉽게 훼손되곤 했지만, 현대는 다르지 않습니까. 관리만 잘해도 1천년 보존할 수 있습니다. 고려 불화에는 5백여 년간 쌓은 민족정신이 서리서리 맺혀 있어요. 단순히 종교화로 바라보면 안 되는 이유입니다. 우리 역사에 고려라는 찬란한 시대가 있었고, 어떤 문화유산을 꽃피웠는지 다음 세대에 계속 알리는 일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감응을 일으키는 것에는 경계가 없다고 말하는 혜담 스님. 그 뒤에는 2m 높이의 ‘수월관세음보살도’가 은은한 눈빛으로 내려다보고 있었다.
높이 2m의 대작 ‘열반상(열반도)’. 거의 매일 열일곱시간씩 8개월간 그림 삼매에 빠져 작업했다.
오직 홀로 정진한 수행의 길
1970년대 중반부터 고려 불화 복원을 소명으로 힘써온 혜담 스님의 길은 그야말로 고난의 연속이었다. 고려 불화를 계승한 스승은 없고, 체계적으로 연구한 문헌 자료도 많지 않아 홀로 고군분투해야 했기 때문이다. 고려 불화를 소장한 국내외 미술관을 찾아다니며 자료 수집과 연구를 이어나갔고, 1981년 발행한 고려불화 도록을 참고해 화법 복원에 매진했다.
“1990년대 말 당시 마쓰오카 미술관(松岡美術館) 관장의 도움으로 공개되지 않은 고려불화 ‘지장삼존도’ 자료를 받기도 했습니다. 무려 2백50여 년 만에 세상에 공개된 고려 불화였지요.” 고려 불화를 향한 소명은 헤아릴 수 없는 시간의 수행으로 이어졌다. 마치 티베트 승려가 경전을 수없이 반복해 읽음으로써 뼈와 피에 각인하는 것처럼 말이다. “대형 관음도 한 점을 그리기 위해 하루에 열일곱 시간씩 8개월을 그렸습니다. 바늘처럼 가는 붓으로 세밀하게 그리다 보니 눈이 터지고, 어깨가 망가졌지요. 순금 가루를 아교에 문질러 고운 진흙처럼 만들어 붓질하는데, 티베트 불화 탕카Thanka보다 고도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금니를 사용한 우리 고려 불화는 일본이나 중국의 불화와 비교해 힘과 속도감, 리듬감이 느껴지는 고유한 선으로 나타난다. 정교하고 화려한 문양도 독특하다. ‘아미타불도’에서 볼 수 있는 당초원문이 대표적인데, 고려 불화에서만 볼 수 있는 독자적 무늬다. 혜담 스님이 현재 매진 중인 5m 높이의 ‘아미타삼존도’에도 금니 윤곽선의 당초원문이 수십 개 그려졌다. 워낙 세밀한 문양이라 하루에 대여섯 개밖에 그리지 못한다고.
또한 고려 불화의 특징 중 하나가 배채법背彩法이다. 이란 비단에 아교포수(아교와 명반을 곱게 혼합해 비단에 바르는 과정)해 바탕을 만들고, 뒷면에 색을 칠해 안료가 앞면으로 배어나오게 한 다음 채색이나 음영을 보강하는 화법이다. 값비싼 천연 안료를 구입하는 일도 쉽지 않았다. 고려 시대에는 순수 천연 안료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금가루, 돌가루, 조개 등에서 채취한 석채 안료를 찾아내야 했다. 혜담 스님은 이렇게 오랜 노고로 발견한 전통 화법을 통해 총 76종 2백49점의 고려 불화를 복원했다. 그중에는 3년여간 매진한 높이 5m의 대작 ‘수월관세음보살도’와 ‘오백나한도’가 있다.
“스스로 제 초상 사진을 보고 ‘스님, 훌륭합니다. 존경합니다’ 말하곤 합니다. 홀로 고려 불화를 완벽하게 복원한 스스로를 향한 순수한 격려이기도 하지만, 말하는 ‘나’와 또 다른 어떤 존재가 함께 해낸 일 같기 때문입니다. 종종 불보살님이 꿈속에 나타나 제안하기도 하는데, 그에 반하려다가도 끝내는 불화를 그리게 됩니다. 그럴 때면 제 몸에 부처, 보살, 아라한이 다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부처님 원력이 아니고서야 가능하겠습니까.” 혜담 스님은 삼매에 빠진 무아의 상태, 시공간의 경계가 없는 공空의 상태로 붓과 수행이 통합된 채 그대로 고려 화승이 된 것이 아닐까.
대웅전에서 대작 ‘아미타삼존도’를 작업 중인 혜담 스님. 그림을 완성하기까지 약 3년이 소요된다.
우리의 진귀한 민족문화 유산
고려 불화를 보기 위해 속초까지 직접 찾아오는 사람도 많다. 고려대장경 연구가로 알려진 루이스 랭커스터Lewis R. Lancaster US 버클리대 교수도 그중 한 명. 그는 혜담 스님이 복원한 고려 불화를 보고 “재현이 아닌 고려 불화의 부활”이라 말했다. 대한 불교 조계총 전 총무원장인 설정 큰스님 역시 혜담 스님에 관해 우리 문화를 세계로 알리는 “관음보살의 손”이자 “활불(살아 있는 부처)”이라 극찬했다. 혜담 스님은 최고의 고려 불화장으로 평가받는 것과 별개로 국내 지원이 다소 미흡한 것이 아쉽기도 하다. “누구의 도움 없이 고려 불화를 복원하고 알리는 일은 참 어렵습니다. 그러나 해외에서 그 가치를 인정받고 좋은 평가를 받을 때 더할 나위 없는 보람을 느낍니다. 고려 불화를 마주한 사람들이 ‘참 아름다우시다, 자비로우시다’ 하며 자기도 모르게 경이로운 마음을 일으키고, 힘든 시기에도 편하게 이겨낼 힘을 얻길 바랍니다.”
고려 불화 채색에 필요한 순금 가루와 가는 붓. 돋보기 없이 정교한 문양을 세밀하게 들여다보기 힘들다.
혜담 스님은 먼 길을 온 취재진에게 글귀를 써주었다. 한 획 한 획 정성스레 쓴 덕담과 무엇 하나 더 챙겨주려는 스님의 다정한 마음에서 고려 불화에 담긴 부처의 자비심을 떠올린다. 모든 이의 행복과 평온을 바라는 대자대비심이고, 작금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사랑과 환대다. 혜담 스님은 매일 대웅전을 가득 채운 비단 종이에 엎드려 그림을 그린다. 수행의 깊은 경지에 이른 스님의 붓질은 형상 너머 부처의 마음까지 담는 또 하나의 수행이다. 불화를 제작해 지극한 염원을 올리던 고려 화승의 모습 그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