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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초 개인전 여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 "상식에 사로잡히지 마라, 네 길을 가라!"
4월 초 뮤지엄 산에서 안도 타다오의 건축 세계를 조명하는 대규모 개인전이 열린다. 자신이 설계한 공간에서 개최하는 최초의 전시회 <안도 타다오-청춘>전에 앞서 안도 타다오와 이메일로 대화를 나눴다. 82세의 그는 여전히 고양이의 등줄기처럼 되튀어 오를 채비를 갖춘 채였다. 집 안 어딘가에 붙여놓고 삶이 나태해질 때마다 곱씹어보고 싶은 그의 이야기를 최대한 원문 그대로 전한다.

안도 타다오의 대표작 중 하나인 빛의 교회(일본 오사카)에서. photo by Nobuyoshi Araki.
파리 유네스코 건물에 설계한 명상 공간. pba_04_Meditation Space, UNESCO, 1995. photo by Tadao Ando
플라톤은 철인哲人왕이 다스리는 이상 국가에서 화가를 추방했다. 화가는 실체가 아니라 감각적 사물만 모사하는 무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사각의 대지 위에 삼각형 산, 동그라미 해를 그리는 존재를 화가라 여겼다. 그렇다면 플라톤이 환생해 이 시대의 건축가를 지켜본다면? 다른 이는 몰라도 안도 타다오는 추방 명단에서 제외되지 않을까. 단순성의 추구를 뛰어넘어 실체를 파헤치고, 그보다 더 깊은 정신주의를 찾아내는 건축가 안도 타다오를 말이다.

사진이든, 실제 건축물이든 한 번이라도 안도 타다오의 건축을 본 이라면 이 말에 고개를 주억일 것이다. 속도만 남고 풍경이 사라지는 세상 속에서 무욕한 노출 콘크리트로, 그 위를 넘나드는 빛과 바람과 물만으로 풍경을 만들어내는 사람. 오사카 무역상 집안에서 쌍둥이로 태어나 어머니 가문의 대를 잇기 위해 외가로 입양되었고, 프로 복서였다가 르코르뷔지에의 도면집을 보고 탄복해 건축가 길을 독학으로 걸은 사람. 건축에서라면 무학에 가까웠으나 예일·컬럼비아·하버드대학교의 객원교수, 도쿄 대학교 교수를 거쳤고, 건축계의 노벨상이라는 프리츠커상을 받은 사람. 전 생애에 걸쳐 실패로 끝난 일이 더 많아 스스로 ‘도전과 실패의 전문가’로 부르는 사람. 암으로 장기 다섯 개를 적출하고도 82세까지 맹렬히 사는 사람. LG아트센터 서울, 본태박물관, 유민미술관과 글라스하우스, 그리고 뮤지엄 산 등으로 한국인에게도 친숙한 건축가…. 그가 한국에서 처음으로 여는 개인전 제목이 <청춘>이다.


나오시마에 자리한 지중미술관. pba_05_Chichu Art Museum, 2004. photo by Tadao Ando
전시를 앞두고 그와 이메일로 나눈 문답 속에는 복권 긁는 심정으로 귀담아들을 대목이 너무도 많다. 그 말이 머릿속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삶의 진탕길을 걸어온 발바닥의 굳은살에서 나왔기 때문에 더 빨리, 깊게 가슴에 파고든다. 평생 ‘한계에 도전하는 게릴라 건축가’ ‘아웃사이더’ ‘투쟁적 예술가’로 살아온 그의 이야기는 단지 건축론, 예술론이 아니다. 플라톤의 바람대로 참된 실체를 파헤치고, 그보다 더 깊은 정신주의를 찾아낸 사람의 이야기다.


고시노 주택. pba_02_Koshino House Addition, 1984. photo by Tadao Ando
전시 제목도 <청춘>이고, 자서전 속 “생각의 자유를 잃지 않는 열정을 청춘이라고 한다면… 나는 여전히 청춘을 살고 있다”라는 구절도 많이 인용되죠. 물리적 나이로 안도 타다오의 청춘을 되돌아봤을 때 가장 후회하는 일은 무엇인가요?
굳이 말하자면 성인이 된 후에야 독서를 하고 좋은 책을 만났다는 거죠. ‘이 좋은 걸 어렸을 때 읽었으면’ 하고 항상 억울한 마음이 듭니다. 같은 것에 대한 감동이라도 어릴 때와 성인이 된 후에는 깊이가 다르죠. 무엇이든 받는 것이라면 가능한 한 빠른 것이 좋아요.

청춘을 돌이켜볼 때 자랑스러운 일은 무엇인가요?
어떤 어려운 상황에 처해도, 실패해도 자신의 인생만은 포기하지 않은 것이죠. 이건 외할머니의 영향도 있어요. 오사카 상인답게 자유로운 기풍을 지닌 외할머니는 늘 자기 책임 아래 행동하는 독립심을 요구했어요. 편도샘 수술을 받을 때도 나를 혼자 집 밖으로 내보내셨죠. 어린 마음에 ‘나 혼자 이 위기를 이겨내고 말 테다’라는 비장한 마음으로 병원까지 갔어요. 그렇게 배운 삶의 방식은 내가 살아가는 바탕이 됐죠.


장식을 배제한 콘크리트 박스 속 빛의 변주. pba_03_Festival, 1984. photo by Tadao Ando
안도 타다오의 청춘 시절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이로 르코르뷔지에를 꼽아야겠죠. 스무 살 시절 도면집으로 처음 만났는데, 어떤 면이 그토록 당신을 매료했나요? 독학으로 성공한 건축가이자 기성 체제와 싸우며 길을 개척한 건축가라는 행로가 비슷하지만, 그 도면집만으로는 알 수 없는 일이었을 텐데요. 그 작품집이 어떤 울림을 주었길래 인생의 방향까지 바꾸게 됐죠?
독학으로 더듬더듬 건축을 배우기 시작한 스무 살 때였습니다. 뭐 재미있는 게 없나 하며 헌책방에 들렀을 때 전집 몇 권을 발견했어요. 한눈에 보고 ‘이거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몇 달에 걸쳐 돈을 모아 구입했습니다. 그동안 팔렸을까봐 몇 번이나 가게를 들여다보러 간 것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아무튼 드로잉이 매력적이었어요. 건축을 그린다, 공간을 매혹시킨다는 게 이런 것이구나 감탄했죠. 매일 밤 그 도면집을 뒤적이며 정신없이 르코르뷔지에라는 세계를 추적하는 일을 반복했어요.

어릴 적부터 모노즈쿠리(ものづくり, 장인 정신으로 온 힘을 다해 물건을 만든다는 뜻)에 대해 관심을 가졌다고요? “모노즈쿠리는 물건에 생명을 불어넣는 귀한 일이다. 건축가는 물건에서 물러서면 자유롭게 발상할 수 있지만 물건과의 접촉은 잃고 만다. 돌이켜보면 장인과 건축가 중 어느 쪽이 나에게 더 큰 행복을 주었는지는 모르겠다”라고 회상한 글도 있던데요. 장인이 될 수 있었다면 어떤 장인이 되고 싶었나요?
‘만약’이란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 서투릅니다. 다만 자신의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장인이라고 한다면, 역시 목공 장인 이겠죠. 물건에 손을 더해서 생명을 불어넣는 것이 장인의 일이니까요. 집 근처에 철공소나 판유리 공장, 바둑돌 제작소가 지천이고, 이 웃은 대개 뭔가를 제작하는 직업인이었으니 이런 관심은 자연스러운 것이었죠. 나무를 상대로 그 일을 하는 것 자체가 훌륭하다고 생각했어요. 마음이 채워지는 시간이었고요.



롯코산 급한 경사지에 지은 Rokko Housing I, II, Ⅲ(1983, 1993, 1999). “건축을 철저히 거부하려는 것처럼 깎아지른 자연, 어떻게든 그 자리에 건물을 짓고 말겠다는 도전 정신.” photo by Mitsuo Matsuoka
안도 타다오 건축의 원점으로 꼽는 데뷔작 스미요시 나가야를 통해 당신의 건축 사상을 엿볼 수 있어요.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생활 이야말로 주거의 본질’이라는 사상이죠. 무엇보다 자연을 ‘냉혹함과 따뜻함을 두루 지닌 변화의 존재’로 두고, 그 변화를 최대한 획득하며 사는 삶을 지향한 것에서 당신의 우주관을 짐작하게 됩니다.
사방을 벽으로 에워싸고 출입구 말고는 개구부가 전혀 없으며, 벽과 천장 안팎을 전부 노출 콘크리트로 만든 점, 작은 공간을 3등분해 지붕 없는 중정으로 만든 점, 그로 인해 생활 동선이 전부 중정으로 인해 끊기는 구성…. 가정집으로 몇 가지 문제를 안고 있었기에 오히려 세간의 주목을 받았죠. 기능주의 관점에서 보자면 불편하기 짝 이 없는 집이지만, 일상생활이란 무엇인지, 가정집이란 무엇인지를 생각하고 계산한 건축이죠.

중정이라는 자연적 공백이야말로 좁은 집 안에 무한한 소우주를 만들어줄 것이라 믿었어요. 아울러 중정으로 들어오는 자연의 냉혹함을 일상의 멋으로 알고 살아가는 강인함이 인간에게 존재한다고 믿었죠. 이는 과거든 미래든, 도심 속이든 산골이든 벗어날 수 없는 진리라고 봐요. 무엇보다 안이한 편리함으로 기울지 않는 집, 그곳이 아니면 불가능한 생활을 요구하는 집이 좋은 집이라 생각해요.

늘 건축의 원점을 주택에 두었고, 마무리 역시 주택으로 하고 싶다는 소망을 밝혀왔어요. 현재 그 마지막 작품에 대한 구상이 구체화 되었나요?
아직 매일매일 바빠서 ‘마지막’을 생각할 마음의 여유는 없지만, 아주 작은 집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죠.


독일 조각가 볼프강 쿠바흐와 안나 마리아 쿠바흐의 작품을 전시하는 Stone Sculpture Museum(2010). 콘크리트 구조물 위에 전통적 맞배지붕 헛간을 그대로 복원한 건축물로, 새것과 옛것의 조우를 살필 수 있다. photo by Shigeo Ogawa
당신의 건축이 환영받지 못할 때도 많았는데요, 그 외로운 순간을 버티게 한 힘은 무엇인가요?
항상 ‘나만의 건축을 만들고 싶다’ ‘새로운 세계를 개척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조화를 벗어난 길을 가고 있기 때문에 “NO”라고 외치는 사람이 곁에 많죠. 하지만 건축이란, 아니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것은 그런 것이니까요. 그걸 고통스럽게 느껴본 적은 없어요. 젊을 때 만난 전위예술가 집단 ‘구체미술협회 (Gutai Art Association)’의 영향일까요? “상식에 사로잡히지 마라! 네 길을 가라!”가 그들이 입버릇처럼 하던 말이니까요.

안도 타다오의 건축에 대한 자료를 찾아보면서 많이 맞닥뜨린 단어가 이런 것입니다. ‘억제’ ‘존중’ ‘저항’ ‘공공의 의사’ ‘내부의 공백’ ‘내향적 공간’ ‘게릴라’ ‘낮음’. 여기에 딱 세 단어만 추가해 스스로의 건축을 설명하자면 어떤 단어가 필요할까요?
세 단어 말고 네 단어로 설명하겠습니다. ‘공간의 원형’ ‘풍경의 창조’ ‘도시에의 도전’ ‘역사와의 대화’. 이 네 단어가 내 일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낸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는 이 네 가지 주제를 바탕으로 스토리를 조립하고 있어요.

조선 시대 가구를 좋아한다고요? 조선 시대 가구의 어떤 면이 당신을 매료하나요?
강한 민족성을 발하면서도 보편성을 느끼게 하는 기하학적 조형이죠. 보편적 존재이기 때문에 현대 공간 속으로 들여와도 위화감이 없습니다. 시대를 초월해 사랑받는 겁니다. 기막히죠.


안도 타다오 건축의 원점이라 일컫는 스미요시 나가야의 모델링. photo by Tadao Ando Architect & Associates
개관 10주년을 기념해 대규모 전시를 여는 뮤지엄 산도 안도 타다오의 설계작이다.
전 세계인 중 특히 한국에 팬이 많은 것 같습니다. 한국인의 어떤 정서가 당신의 건축을 사랑하게 만든다고 생각하나요?
건축에 대한 평가는 다른 이에게 맡깁니다(웃음). 한국인의 어떤 점에 끌리느냐는 질문이라면 ‘열정’이라는 한마디로 끝납니다! 희로애락의 진폭이 커서 목표가 정해지면 말 그대로 전력을 다해 돌진합니다. 그토록 힘껏 사는 만큼 그들의 인생이 풍요롭겠지요. 대조적으로 일본인은 안으로 숨기는 타입으로, 비교적 얌전해요. 각자 개성이기 때문에 어느 쪽이 좋은 것은 아니지만, 한국의 강점과 밝음을 저는 좋아해요.

당신은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무엇일까’ ‘나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라는 인생 최대 질문에 대한 답을 20대 초반에 찾은 행운아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그 답을 찾는 청춘에게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나요?
아무튼 각자의 지금을 힘껏 살아가세요. 그리고 그 긴장감을 인생의 마지막까지 유지하세요. 내적 힘을 필사적으로 기르세요. 길을 잃고 좌절하는 일이 있다면 스스로 의지해 일어선 발치, 바로 고향으로 되돌아가면 좋겠습니다. 거기에 뿌리가 있으니까요.

우리 잡지 이름은 <행복이 가득한 집>입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행복 이란 어떤 것입니까?
목표, 꿈을 마음에 품고 그곳을 향해 열심히 살고 있는 그 시간이죠.


<안토 타다오-청춘>
기간 4월 1일~7월 30일
장소 뮤지엄 산(강원도 원주)
전시 작품 원본 드로잉, 스케치, 영상, 모형 등 2백50여 점
문의 033-730-9000


자료 제공 및 취재 협조 뮤지엄 산 참고 도서 <나, 건축가 안도 다다오>(안그라픽스)

글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