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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티스트 클렘 킴 몽상가 클렘에 대하여
2023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포스터, 모션 그래픽과 디지털 파사드를 눈여겨본 이라면 클레멘타인 킴, 일명 클렘 킴을 기억해야 한다. 작년 더프리뷰 아트페어에서 모래알 속 진주처럼 빛나더니 15만 명이 운집한 페어 현장에서 ‘역대급으로 임팩트 강한 키 비주얼’이라는 영광을 꿰찼다. 자신의 몽상 속 세계와 현실의 경계를 허물고 싶어 하는 의지를 <행복> 과월호 잡지에 크레파스로 그려 넣은 이 젊은 작가를 주목하시라!

클렘 킴은 영국 Chelsea College of Art(UAL)에서 Fine Art(BA)를 졸업한 후 애니메이션, 아트 영상, 페인팅, 일러스트, 조각, 설치 등 다양한 매체의 작업을 선보이고 있다. 가수 태연의 ‘What Do I Call You’ 하이라이트 클립 작업을 맡았다. 2021년 부산의 내추럴 와인 숍 ‘단정와인’에서 첫 번째 개인전 을 열었고, 2022년 더프리뷰 아트페어를 통해 드로잉, 소프트 스컬프처 등을 선보였다.
인생을 닳고 닳게 살아본 어르신들 말씀하시길 “인생은 일장춘몽”이라는데, 우리는 왜 밤도 모자라 낮까지 꿈을 꾸는가. 세상 모든 예술이 ‘꿈속의 꿈’일 텐데, 숱한 예술가가 왜 이런 ‘겹꿈’을 지어내고, 황홀한 잠꼬대에 취하는 것일까? 다만 그들의 꿈은 해독 불능의 잠꼬대에 불과한가? 이제 전시 몇 번으로 이름을 내밀기 시작한 클렘 킴. 스스로를 몽상가라 부르며 백일몽도, 흑일몽도 고루 꾸는 이 사람을 이해하는 첫 번째 단서는 역시 꿈이다. 어쩌면 그에게 꿈은 육체와 욕망의 골짜기에서 정신의 봉우리를 놓치지 않으려 붙드는 밧줄과도 같은 것일지 모른다고, 이 과격한 패션의 MZ 세대 작가를 앞에 두고 생각한다. 그래도 인생은 일장춘몽이겠지만….


헌책방을 돌며 찾아낸 <행복> 과월호에 크레파스로 드로잉을 더한 그림이 2023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포스터, 모션 그래픽 등이 되었다. 구하기 힘든 20여 년 전 별책부록까지 구하는 정성을 보탰다.
본명 김민경, 작가명 클레멘타인(최근에는 줄여서 클렘이라 불린다)이에요. 클레멘타인이란 이름에서 애수 어린 단조 선율을 떠올리는 이도, 영화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리는 이도 있을 거예요. 왜 클레멘타인인가요?
저는 미셸 공드리Michel Gondry를 예술적 아버지라고 생각해요. <이터널 선샤인> <수면의 과학> <마음의 가시> 그리고 숱한 뮤직 비디오와 CF…. 그의 작업에 저의 예술적 취향과 사상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고 생각해요. 제가 프랑스에서 산 이유 중 하나도 미셸 공드리죠! 작가명을 정할 때 <이터널 선샤인>의 주인공(케이트 윈즐릿 분) 이름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어요.

자신을 ‘몽상가이자 아트 필름 디렉터’라고 소개하던데, 우선 몽상가 클렘 킴에 대해 이야기해줘요.
꿈에 대한 믿음과 환상이 있는 사람을 몽상가라고 생각하는데요, 저는 잠잘 때 꾸는 꿈이 무의식 속 다른 세상이라고 믿어요. 꿈과 무의식에서 많은 영감을 얻기도 하고, 초현실적인 것을 추구하는 편이에요. 꿈에서 깨어나기 직전, 무의식 세계와 의식 세계의 간극, 꿈에서 현실로 돌아오기 직전의 그 찰나, 즉 현실과 초현실 사이를 늘 생각하죠. 꿈을 꾸면 스토리를 기록해두었다가 그걸 발전시켜 설치미술이나 아트 필름, 오브제 등으로 비주얼화하기도 해요. 작업하다 답이 보이지 않을 때 살바도르 달리의 작품에서 위안을 얻고요.


‘Metro’, iPad, 60×90cm(fabric print size), 2022. 파리에서 살면서 길거리의 모든 일상이 작품이라는 것을 느꼈다. 신이 존재한다면 파리는 아마 다른 곳보다 더 섬세한 손가락으로 만든 도시가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파리의 모든 풍경을 눈에 보이는 형태로 낙서하듯 그린 것이 이 작품이다.
우리가 클렘 킴을 처음 만난 건 2023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포스터 속 그림이었어요. 클렘 킴의 홈페이지(www.clementinekim.com) 프로필을 보면 “애니메이션, 아트 필름, 페인팅, 일러스트, 조각, 설치 등 다양한 작업을 넘나 들며 창조물을 만든다”라고 쓰여 있고요. 그런데 자신을 ‘몽상가이자 아트 필름 디렉터’라고 소개하잖아요. 그건 꿈의 종착지가 아트 필름 디렉터라는 말인가요?
아트 필름만큼 다양한 감각을 보여주는 매개체는 없다고 생각해요. 캐나다에 살 때 미국 음악 방송을 처음 보고 뮤직비디오 감독을 꿈꿨어요. 영상 속에 내 생각과 감정을 제대로 담기 위해 파인 아트를 전공했죠. 아티스트로서 아직 꿈의 종착지는 정확히 모르지만, 아트 필름 디렉터도 여러 종착지 중 하나일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꿈의 종착지에 대해 고민했지만 이젠 종착지를 생각하지 않으려 해요.

그림이든 설치 작업이든 작품에 사람 몸이 자주 등장해요. 손가락 끝에서 집이 자라고, 계속 자라난 다리가 분리수거 통에 쌓이는 식으로요. 클렘 킴에게 신체와 감정은 어떤 의 미이기에 이렇죠?
유학 시절 여러 나라 친구들과 수업하며 단순히 ‘다름’에 대해 생각했고, 신체의 1차원적 차이에 흥미를 갖게 됐죠. 그 뒤로는 몸이라는 ‘공간’에 대해 더 고찰하게 됐고요. 지금은 제 모든 영감이 몸에 대한 상상력에서 나와요. ‘만약 팔다리가 머리카락처럼 자란다면?’ ‘치아가 아픈 건 그 안에서 꽃이 자라나기 때문 아닐까?’처럼 말이죠.

클렘 킴의 작품 속에선 인체가 자연물과 합성되기도 하죠. 2018년 졸업 전시 서문 중 “자연과 인간의 합성, 또는 자 연화된 인체는 내게 판타지이면서도 나의 현실이다”라는 설명이 있더라고요. 이걸 좀 풀어서 이야기해줘요. 자연과 인간의 합성이라는 게 꽤 의미심장해 보이거든요.
초현실을 사랑하는 저는 합성, 변형, 왜곡, 과장이라는 단어를 좋아해요. 그중 ‘인간과 자연의 합성’이 가장 흥미로워요. 제가 바라는 세상이기도 하고요. 자연이 인간의 선배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두 가지가 하나 되어 좋은 영향을 주고받는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건 없다고 봐요. 자연과 인간의 몸이 많은 부분 맞닿은 상태, 자연화된 인체는 제게 판타지이면서도 유토피아인 거죠. 이렇게 몸의 변형이라든가 몸의 한계를 뛰어넘는 초현실적 형태를 만들면서 저는 역설적으로 마음의 안정을 얻어요. 현실에서 불가능한 일을 초현실에선 실현할 수 있으니까.


‘The way(해결책)’, iPad, 2048×2048pixel, 2023. <행복> 4월호 표지 작품의 연장선상에 있는 그림이다.
올해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포스터는 종이 책(잡지) 위에 그린 그림이죠. 책이라는 매체가 클렘 킴에게 어떤 감정의 증폭을 일으킨 거죠?
저는 문학 하는 사람들을 동경해요. 제가 첫 예술을 글로써 느꼈거든요. 책에 대한 호기심은 늘 있었어요. 그래서 책 위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는데, 드로잉의 색채·형태와 책의 스토리·글 형태가 넘나드는 작업이 흥미롭더라고요. 헌책방에서 구한 <행복이 가득한 집> 과월호에 드로잉을 더해 완성한 것이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포스터죠. 아! 4월호 <행복> 표지 그림은 책 위에 그린 그림이 아니라 감정을 기록하는 그림 중 ‘해결책’이라는 제목의 드로잉이에요.

작업실이 매우 흥미로워요(사진을 촬영한 바로 그 장소). 작가 작업실로는 꽤 독특한 위치의 옥상이네요.
서울 성북구 정릉시장에 작업실이 있어요. 시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날것의 느낌을 좋아해서 이곳에 작업실을 두었죠. 예전에 이곳이 도박장이었다고 하더라고요. 드라마가 있는 것 같아서 재미있다고 생각했어요. 옥상이 주는 자유로움도 좋고요.

고향이 부산이고, 시장에서 마음이 편안해진다고요?
10대 시절 부산 시장 근처에서 살며 바다의 기운을 받아 성격이 대범해졌죠. 사람 사이의 끈끈한 연대가 무엇인지 배웠고요. 날것과 터프함에 익숙해져 해외를 가도 시장 다니는 것을 좋아했어요. 20대에는 필리핀·캐나다·영국·프랑스에서 보냈는데요, 바다의 기운이나 날것에서 오는 터프함은 계속 이어졌죠. 이런 성향이 작품의 러프함으로 나타나는 것 같기도 해요.

아직 한국 미술계에선 신예 작가인데, 앞으로 우리는 어떤 ‘클렘 킴’을 보게 될까요?
자신만의 색이 존재하는 사람, 신선하고 멋있는 사람.

글 최혜경 기자 | 사진 이기태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3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