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동강국제사진제에 참여했을 때 권혁재 중앙일보 사진 전문 기자가 촬영한 사진. 뒤로 보이는 작품은 ‘빅 브라더’로, 자동차 블랙박스부터 CCTV와 소셜 미디어까지 디지털의 서늘한 눈초리, 곧 빅 브라더에 포위된 현대인의 일상을 표현한 것이다.
황규태 작가는 1938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동국대학교 정치학과를 졸업했고, 경향신문사 사진기자를 거친 후 본격적으로 사진작가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1973년 서울프레스센터 개인전을 시작으로 금호미술관, 아트선재센터, 국립현대미술관, 서울시립미술관, 그리고 일본과 미국 등지에서 20여 회의 개인전을 열었습니다. 2018년 동강사진상을 수상했습니다.
‘Pixel’, pigment print, 222×150cm, edition of 7, 2018. ©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Pixel’, pigment print, 222×150cm, edition of 7-1, 2018.©the Artist and Arario Gallery
결국 그림이 바라는 건 ‘여백’, 시가 바라는 건 ‘행간’이라면 사진이 바라는 건 무얼까? 세계 사진사적으로도 매우 이른 시기인 1960년대부터 필름 태우기, 몽타주, 콜라주 등 反사진적 방법을 통해 ‘엇길’을 걸어온 황규태의 사진이 바라는 건 무엇일까? 그 단서를 찾으려면 농담처럼 툭툭 건네는 그의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볼 필요가 있다.
“내 속에 있는 아이디어는 한 번에 촬영하기 어려워서 꼭 몽타주를 해야 했지.”
서울대 미대 입시 실패 후 동국대학교 정치학과에 들어갔으나 전공 공부보다 사진을 더 열심히 찍었다. 초현실주의 사진가 제리 율스먼Jerry N. Uelsmann의 포토 몽타주 사진에 충격과도 같은 인상을 받은 것도 대학 때였다. 졸업하고 경향신문 사진기자로 3년 일하다 1965년 미국으로 떠났다. 친구의 이민을 도와주다가 미국이란 나라에 궁금증이 생겼다는 게 이유였다. LA 현상소에 취직해 일하면서 사진을 찍었다. 컬러사진 작업도 1967년 미국에서 처음했다. 이른바 그가 ‘장난’이라 말하는 필름 태우기, 겹쳐서 인화하기, 사진 콜라주도 이 시절부터 시도했다. 분출하는 아이디어를 한 번에 촬영하기 어려워서 몽타주라는 방법을 택할 수밖에 없었다. 당시 그가 촬영한 ‘스트레이트적인 흑백사진’도 있는 사실을 정직하게 담는 리얼리즘 사진과 달리, 현실 모습을 찍되 어떻게 하면 비현실 혹은 초현실로 나타낼 것인가를 고민한 흔적이었다.
“비판받았을 때? 아무렇지도 않았어. 나 좋은 대로 하는 거거든. 해외에서는 반응이 괜찮았어.”
1973년 한국에 잠시 들어와 서울프레스센터에서 <제1회 황규태 칼라사진전>을 열었다. 세계 최초로 컬러사진 전시를 연 사진작가(1976년 윌리엄 에글스턴William Eggleston이 최초라는 것이 통설이나, 서울대 미학과 박상우 교수에 따르면 황규태 작가가 그보다 3년 앞섰다)였다. 환경문제와 심리에 관한 주제를 이중노출, 몽타주, 합성 등 ‘만드는 사진’ 방식으로 표현한 이 전시는 한국 사진계에서 주목받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사진이 주류를 이루던 시기에, 게다가 처음 본 컬러사진에 “깬 사람들은 좀 놀라고”, 그 밖의 사람들은 이를 사진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Pixel AI Pixy Heart #4’, pigment print, 50×50cm, 2022.
“눈속임과 허풍이 원래 내 태생인데, 그래서 내가 찍은 사진들은 황당무계하다.” “나는 픽셀과 사랑에 빠져 있다. 그 이유는 모든 잡기(미니멀, 하드에지, 수프리마티즘, 모노크롬)를 스스로 무성생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디지털카메라가 등장한 후(그러나 그다지 관심을 받지 못하던) 그는 디지털 실험에 뛰어들었다. 컴퓨터와 스캐너, 포토샵은 ‘과학기술 시대의 산보자’에게 날개를 달아주었다. ‘궁금증 환자’인 그는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의외성에, 복제와 재생산의 신세계에 몸이 달았다. 그러다 우연히 브라운관의 표면을 확대경으로 들여다보던 중 픽셀pixel과 마주했다. 그는 이후로 자신 또는 타인이 촬영한 사진 이미지, 신문 기사, 모니터 이미지 등을 골라내 촬영하고 확대하고 시각화했다. 처음엔 4×5, 8×10 카메라로 확대 촬영했다. 컴퓨터가 생긴 이후에는 마우스로 크롭한 후 확대를 거듭하고, 마음에 드는 색과 모양이 나올 때까지 합성하자 그 픽셀은 최소한의 형태와 색채만 남은 추상 색면이 되었다. 극도로 복잡해서 근원적으로 단순한, 그래서 ‘무의미’이자 ‘의미’인 황규태의 색면.
세계를 이루는 극소 단위의 세포 같기도, 가장 광활한 우주 같기도 한 색면 앞에 그는 “한 알의 모래알에서 우주를 본다”는 말을 보탰다. 2019년 아라리오갤러리에서 개최한 개인전 <픽셀>을 보고 누군가는 그를 천재라 했고, 누군가는 사진이 아니라 컴퓨터 장난이라고 했다. 그에 대한 연구를 시작한 한국 사진계에선 그를 ‘한국 아방가르드 사진의 선구자’로 추앙했다. 그는 “마음 내키는 대로 솔직하게 탐미한 결과물” “시각적 유희”일 뿐이라 하지만, 이 픽셀 작업에서 1920년대 초현실주의와 절대주의, 1960년대 팝아트와 옵아트를, 미래 세계의 묵시록을 읽어내는 비평가도 있다.
‘Pixel AI Pixy Heart #6’, pigment print, 100×100cm, 2022.
“장미엔 까시가 있다.”
최근 가상공간에서 NFT 아트까지 선보인 85세 작가 황규태. 그의 작업을 사진으로 보느냐 마느냐는 사실 의미가 없다. 그의 작업은 분명히 존재하지만 눈으로 볼 수 없던 것을 ‘볼 수 있게 하는’ 일이며, 그리하여 존재와 부재의 가장 강렬한 경계를 드러내는 일이다. “픽셀 작업은 사진에 대한 나의 이의異意이면서 사진에 바치는 헌사”라는 그의 말이 가장 정확하다.
<행복> 8월호 표지 작품 ‘장미엔 까시가 있다’에서도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는 것, 존재와 부재의 경계를 읽어내는 건 지나친 의미 부여일까. “내가 아무리 돈을 사랑해도 돈이 나한테 안 오잖아. 그것처럼 합쳐지지 않는 마음, 실현되지 못한 모든 욕망이 ‘까시’처럼 존재하지. 장미엔 ‘까시’가 있는 것처럼.” 당신은 저 무수한 픽셀이 만든 빨간 하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욕망을 보았는가?
“당구에 빠진 놈은 자면서도 당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것처럼 작업도 미쳐야 하는 거야.”
절찬리에 전시 중인 에서 그는 pixy(본래 요정이라는 뜻 외에 장난꾸러기라는 뜻도 있다)와 AI라는 ‘장난’을 또 쳤다. 그에게 이 픽셀 작업은 놀이이며, ‘자신을 초월한 그 아이-AI’의 장난이며, 글이 아니고 기호에 의해 통신하는 외계에서 온 편지다. “뭘 보기만 하면 자꾸 뭔가가 생각난다”는, “즐거움과 쾌감이 작업을 계속하는 이유”라는 여든다섯 살의 그에게서 아이의 향기가 풍긴다. 살아남으려면 전사가 되지 말고 아이가 되어야 한다는, 어느 책에선가 읽은 이야기도 불현듯 스쳐간다.
자, 이제 여러분도 황규태의 화면 속 픽셀 요정 PiXEL AI PiXY가 흔드는 요요한 손짓에 미혹될 시간이다. 비트가 분열하고 융합하면서 엮어내는 그 몸짓에서 당신은 분명 무언가 볼 수 있을 것이다!
<황규태 사진전: PiXEL AI PiXY>
지금 한창 디자인하우스 모이소 갤러리에서 황규태 작가의 개인전 가 열리고 있습니다. 여든다섯 살의 나이에 NFT 아트까지 시도할 정도로 열정 가득한 황규태 작가가 작품을 직접 설명하는 시간입니다. 작가와 작품 속 에너지를 현장에서 느껴보세요.
작가와의 만남 8월 12일(금) 오후 1시(전시는 7월 5일~8월 19일, 토·일·공휴일 휴관)
장소 갤러리 모이소(서울시 중구 동호로272 디자인하우스 1층)
참가비 1만 원
신청 <행복> ‘이벤트’ 코너에 참가 이유를 적어주세요.
인물 사진 제공 권혁재(중앙일보 사진전문 기자) | 자료 협조 아라리오갤러리, 갤러리22
- 사진작가 황규태 장미엔 ‘까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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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일 나이 많은 황규태 작가 작품이 제일 젊네요.” 어디서든 그랬다. 1960년대부터 ‘만드는 사진’이든, 컬러사진이든, NFT 아트이든 시대마다 그 누구보다 앞서 새로운 길에 들어선 사진작가 황규태. 지금 디자인하우스 갤러리 모이소에서 그의 개인전 가 열리고 있다. 그가 놀이하듯 만든 작품, 농담처럼 건넨 진담에 우주 원리가, 새로운 생명의 기호가 숨어 있으니 갤러리에 모이소!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