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실 창가는 박만규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공간. 세밀한 작업을 하다 눈이 피로해지면 식물을 가꾸고, 창문 밖 먼 곳을 바라본다.
박만규 작가는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동양화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철학 박사과정을 마쳤습니다. 인문예술연구소에서 주최한 <유遊, 광狂, 화化, 관觀> 등 총 17회의 개인전을 열었고, 아트 도쿄와 화랑미술제 등 2백 회 이상의 단체전에 참가했습니다. 또한 춘추미술상, 대한민국미술대전 우수상·특선·입선, 안견미술대전 우수상 등을 수상했습니다.
박만규 작가는 동양화를 전공하고 수업 시간에 배운 화론과 문인 화가들의 사상을 깊이 이해하고 싶어 철학 박사과정까지 마쳤다. 그는 동양철학을 바탕으로 자연과 인간, 세상 만물과의 관계를 고찰하고 그림에 담는다. 깊은 연구 끝에 집약한 의미이니 세상에 널리 알리고 싶을 법도 한데, 본인의 역할은 딱 캔버스 위에 표현하는 것까지로 멈춘다. 그다음은 우리의 몫. 4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하는 동안 인터뷰 기회를 여러 번 사양했다니, 이번 <행복>과의 만남이 더욱더 귀하다.
자작나무와 매화나무, 담벼락 아래에 피어난 잡초, 담쟁이 등 식물을 주로 그립니다.
많은 사람이 그렇게 생각하더라고요. 아무래도 우리는 앞에 나와 있는 것에 눈이 먼저 가고, 주목하게 되지요. 하지만 사실 제 그림의 주인공은 식물의 실물 형상보다는 그 뒤의 그림자입니다. 그림 속 식물 종류가 계속 바뀌는 동안에도 그림자는 꾸준히 표현했어요. 옛사람들은 “그림자와 물형은 다르지 않다(不異影與形)”고 말했습니다. 그림자는 선명했다가 희미해지고, 사라지기도 하지만 언제나 그 자리에 있죠. 그림자는 대상의 본질을 상상해보게 합니다. 가방 그림자를 보면서 이게 가죽 가방인지, 천 가방인지 구별할 수 없잖아요. 명품 백의 그림자도 그저 가방의 형상일 뿐이죠. 그림자는 존재에 드리운 차별을 걷어냅니다. 저는 언제나 훌륭하고 잘난 존재보다는 그 뒤에서 묵묵히 도와주는 조력자에 관심이 갔어요. 그래서 동양화에서는 그림자를 그리지 않는데도 저는 대학생 때부터 늘 그림자를 그렸어요. 실체와 그림자는 다르지 않으니까요.
작품 속 그림자를 보며 섬세한 표현에 놀랐지만, 이렇게 깊은 뜻이 담겨 있는 줄은 몰랐습니다.
전시 도록을 만들 때도 일부러 서문이나 작가 노트에 제 생각을 자세히 적지 않았어요. 작가는 창작의 주체고, 감상자는 감상의 주체예요. 나와 너의 역할이 분명히 나뉠 때 함께 존재하는 의미가 생기고, 공평하게 공존할 수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 이야기를 듣고서야 조금 더 적극적인 감상자가 되어본다. 2020년과 2021년에 완성한 ‘불이不二’ 연작 속 나무는 몸통 부분만 표현했지만, 그 뒤로 어른거리는 그림자를 통해 나무에 꽃이 피고, 잎을 떨궈 겨울나기를 준비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또한 나뭇잎을 흔드는 바람결이 느껴지기도, 맑은 날씨에 신이 난 새소리가 들려오는 듯도 하다.
최근에는 주로 담벼락에 피어난 잡초를 소재로 그렸습니다. <행복> 5월호 표지 작품 ‘유생有生, 2022’에는 옅은 햇빛 그림자가 깔린 담벼락 아래에 잡초가 자라고 있네요. 보라색 꽃도 피어 있고요.
몇 해 전 심근경색으로 목숨이 위험한 지경까지 갔어요. 건강을 회복하는 동안 육체와 생명의 의미를 고민했습니다. 삶의 철학을 사유하고, 그 사유를 작품으로 표현하는 일 모두 내가 세상에 존재해야 가능하구나. 즉, 우리는 모두 다른 과정과 방법으로 살아가지만, 단순히 보면 결국 ‘있고 없음(有無)’의 문제라는 거죠. 담벼락의 좁은 틈새를 비집고 자란 잡초의 생명력을 보며, 사람이 무언가를 갈망하며 추구하는 모습과 다르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작품의 잡초는 사람의 삶을 상징하기도 하고요. 사실 이 꽃의 이름이 뭔지는 저도 잘 몰라요. 길을 지나다 담벼락 밑의 이름 모를 꽃을 발견했고, 그 작은 존재에 깃든 아름다움과 강인한 가능성을 알아본 거죠. 또 작품에 등장하는 담은 우리의 호기심이나 상상, 추측 같은 마음 작용을 부추기는 동기로 작용합니다. 담은 자유로운 출입과 감금을 가능하게 하면서 그 너머를 보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잖아요. 사람이라면 벽 앞에 서서 ‘그 너머는 어떨까’ 상상하기 마련이죠. 병마를 이겨내는 동안은 언제나 담 앞에 서 있는 기분이었어요.
‘유생有生’, 120×70cm, 2022
‘유생有生’. 그곳에 생명이 있었고, 작가님은 그 가치를 알아보았네요.
제가 관심을 주지 않았더라도 누군가는 알아보고 어여뻐했을 거예요. 설사 아무도 알아 주지 않는다고 해도 식물은 늘 그 자리에 있으니 우리는 항상 공존하는 거죠. 세상 모든 것이 나에게 기울어져 있다는 생각은 피하려 해요. 타자와 섞여 살아간다는 것은 상대를 인정하고, 자기도 인정받으며 더불어 살아감을 의미합니다. 공존에 대한 생각은 대학생 때부터 깊이 했습니다. 화려한 대상 이면에 존재하는 조력자의 편에 서고자 했고, 상생相生하는 방법에 관심이 많았거든요. 대상의 어두운 면을 표현하는 것을 금기시해 그림자를 그리지 않는 동양화를 전공했는데도, 저는 그림마다 그림자를 그려 넣었어요.
사물의 디테일이 세밀하게 묘사되고, 질감까지 살아 있으니 마치 사진 같아요.
돌가루를 한지 위에 바른 후 그 틈새로 물감이 번지게 합니다. 일반 수묵화처럼 번짐 효과를 줄 수 있으면서, 그냥 한지처럼 물감이 축축이 스며들지 않고 덧칠할 수 있어 서양화처럼 또렷한 발색을 내죠. 또 거칠거칠한 질감을 표현하는 마티에르가 생기니 다양한 표현이 가능합니다. 먹이 번지는 동양화 특유의 표현법은 살리면서 색이 투명하고 은은하게 표현되어 눈에 잘 띄지 않는 동양화의 단점을 보완하기 위한 방법을 연구했어요.
작업실 한쪽에는 ‘유생’ 시리즈의 다음 작업이 한창이다. 작업대 위에는 색색의 가루가 담긴 통과 식물 사진을 프린트한 종이가 놓여 있다. 그는 평소 산책하며 눈에 들어오는 식물이 있으면 사진을 찍고, 작업실로 돌아와 사진을 프린트해 들여다보면서 다시 한번 머릿속에 새기는 과정을 거친다. 그리고 준비가 되면, 사진은 넣어두고 스케치도 없이 즉흥적으로 그리기 시작한다.
“세월이 흐른 지금, 흰 바탕의 화지畵紙를 마주하고 그리고자 하는 형상을 생각하면 화지에 그 형상들이 투명한 선으로 그려진다. 미적 상황에 대처하며 이 마음의 선을 따라 그려가면 되므로 굳이 밑그림(下圖)을 그릴 필요가 없다. 어쩌면 순수한 직관과 거리가 있겠지만, 화지에 그려진 마음의 선들은 오랜 경험과 숙달이 관계한 직관直觀의 한 모습일 것이다.” – 작가 노트 中
‘불이不二’, 110×68cm, 2021
이렇게 세밀한 표현을 머릿속 기억과 감각에만 의존하다니요.
오랜 세월 해온 수련과 숙련의 결과입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화가는 언제나 자신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마음이 손을 앞서기 때문이죠. 얼마 전에는 우리 아내한테 이런 이야기를 했어요. “화가는 너무 불행하다. 거의 40년을 꼬박 그리니 이제야 그림 같은 그림을 그리는 것 같은데… 그림 그릴 만해지니 눈이 침침해지기 시작해.” 선배님과 선생님들이 나이가 드시면 왜 그림체가 과감해지고 단순해지는지를 이해했어요. 시력이 도와주지 않으니 숙련된 기술 노하우를 바탕으로 단조롭지만, 힘이 있는 화법画法을 구사해낸 거죠.
이미 완숙完熟의 경지에 다다른 거 같은걸요. 작가님의 작업과 함께하면 그림 이상의 것과 같이 살아가게 될 거 같습니다.
내 그림이 깔끔한 맛이 없어서 그런가, 아직은 많은 사람이 찾지는 않더라고요.(웃음) 하지만 나는 이렇게 작고 보잘것없고, 갈라져 있는 사실적 표현이 좋아요. 우리랑 같이 살아가는 존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잖아요. 요즘 아트 페어가 유행하는데, 모두가 주체성을 지니고 자신의 기호와 생각에 따라 그림을 선택할 줄 알아야 해요. 예술을 그저 나의 소유물로 여기는 게 아니라, 같이 살아갈 존재로 생각하며 고르는 거죠.
- 화가 박민규 그림자와 함께 살아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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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뜻 보면 사진인가 싶을 정도로 세세하게 식물과 식물의 주변 환경을 그리는 박만규 작가. 그와의 대화는 그림과 철학적 주제를 오가며 광범위하게 흘러갔다. 하지만 곱씹어 생각할수록 그의 말이 모두 한 방향으로 흐르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한데로 모인 이야기가 깊은 울림을 전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