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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절 안부 2월, 건너가는 마음


2월은 건너가는 달입니다. 겨울에서 봄으로, 짧은 날에서 긴 날로, 출발점을 떠나 진짜 새 길로 건너가는 달이지요. 달은 보통 ‘열흘’이 세 번 반복되는데 2월만은 예외입니다. 고작 스물하고도 여덟 날뿐이어서 손해를 보는 기분이 들기도 합니다. 겨울의 꽁지에 와 있지만 바람은 아직 차고, 봄이 코앞에 온 듯하지만 한참 먼 것 같습니다. 이럴 때 마음은 어디에 두어야 할까요? 우리에게 필요한 건 이런 게 아닐까요. 한자리에서 봄을 기다리는 의연함, 너무 비싸지 않은 딸기 몇 개(요새 딸기 너무 비싸더군요), 곁에 앉아 온기를 나눠주는 고양이의 복슬복슬한 털, 허공을 뚫고 솟은 목련의 겨울눈, 피를 잘 돌게 해줄 양서 몇 권. 쉽게 얻을 수 있을 것 같지만 꼭 그렇지도 않아요. 사소한 것을 소중히 생각하는 마음과 느긋한 성정을 지녀야만 보고 누리고 맛볼 수 있는 것이지요.

인디언은 부족마다 달의 이름을 다르게 지어 불렀다는데요, 심심할 때마다 인디언이 이번 달을 뭐라 불렀을까 찾아봅니다. 인디언은 2월을 이렇게 불렀다 하네요. “홀로 걷는 달” “강에 얼음이 풀리는 달” “먹을 것이 없어 뼈를 갉작거리는 달” “사람이 늙는 달” “오랫동안 메마른 달”…. 신묘하지 않나요? 그들이 아무 이름이나 붙였을 리는 없고, 2월에 담긴 고독한 시간과 척박한 환경을 오랜 시간 겪어온이들의 지혜와 깨달음을 담은 작명일 것입니다. 인디언에게 2월은 봄이 오기 직전, 추위와 메마름을 견디는 일의 한계점을 느낀 달이었을까요? 그러니 먹을 것이 없어 뼈를 갉작거려야 하는 달, 사람이 늙는 달, 홀로 걸어야 하는 시간이라 불렀겠지요. 그러나 저는 “강에 얼음이 풀리는 달”이란 말에 눈길이 더 오래갑니다. 언 게 풀리고 어려운 문제가 서서히 풀리는 시간 말예요. 한낮의 고드름도 얼기보다 똑 똑, 소리 내며 녹으려 하겠지요. 이 미묘한 차이를 알아보려면 눈을 크게 뜨고 사방을 잘 관찰해야 합니다. 계절의 변화는 소리 소문 없이 순식간에 일어나잖아요. 철모르는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 저도 매일 밖을 관찰하겠습니다.

올 2월엔 음력설과 입춘, 정월 대보름, 우수가 들어 있습니다. 명절 음식을 먹고 봄의 기척을 느껴보겠습니다. 눈이 녹아 물이 된다는 우수엔 경직된 제 마음도 흐르도록 풀어놓겠습니다. 며칠 전 친구가 재미로 타로 점을 봐주었는데, 올해엔 일이 바쁠 텐데 홀로 불안과 걱정을 품게 될 수 있다더군요. 불안과 걱정! 왜 없겠어요. 친구가 주문 같은 지침을 하나 주었습니다. “너르게 너르게.” 듣자마자 가슴에 품을 말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내 마음, 너르게 너르게!” 올해 제 화두이자 표어로 삼겠습니다.제가 인디언이라면 2월을 이렇게 부르겠어요. “봄을 여는 열쇠를 품은 달.” 봄을 향해 잘 건너가봅시다. 총총.

철모르는 지구 덕분에 점점 철딱서니 없는 세상이라지만 우린 한껏 달큼해진 무밥에서 겨울을, 빨라진 회중시계 초침에서 여름을 느낍니다. 작가 한 사람이 석 달씩, 자신만의 시절 감상기를 들려드립니다. MZ 세대 독자들까지 “무조건 박연준”을 외치는 박연준 시인이 두 번째 시절 안부를 여쭙습니다. 그는 파주에 삽니다. 시, 사랑, 발레, ‘여자 어른’이 되는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습니다. 시집으로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 <베누스 푸디카> <밤, 비, 뱀>이 있고, 산문집으로 <모월모일> <소란> <밤은 길고, 괴롭습니다> <쓰는 기분> 등이 있습니다. 남편 장석주 시인과 함께 산문집 <우리는 서로 조심하라고 말하며 걸었다>, 시집 <내 아침 인사 대신 읽어보오>를 펴냈습니다.

글 박연준(시인) | 담당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2년 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