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효상, ‘수도사 작업대’, 3000×900×720mm, 이로재 오브젝트 제공
최덕주, ‘옥사 가리개’, 470×1500mm, 이로재 오브젝트 제공
나무와 나무가 서로를 단단히 결박한다. 당기는 힘과 미는 힘, 누르는 힘과 버티는 힘. 팽팽한 힘 들이 투쟁해 균형을 잡고 한 점의 가구를 지탱한다. 결구結構(일정한 형태로 얼개를 만듦)가 이룬 평화다. 한 땀 한 땀 바늘이 지나는 자리마다 천과 천이 포개진다. 낮도 밤도 사라진 시간이 석 달이고 넉 달이고 소리 없이 명멸한다. 그리하여 완성한 조각보 한 장의 청려함. 수직手織이 이룬 평화다. 가구와 조각보는 그렇게 무수한 투쟁을 넘어 서로의 풍경에 이른다. 조각보로 건축해 가구로 채운 공간. 담담하고 평온해 보이지만 어딘가 미묘한 긴장으로 가득한 풍경. 여기는 건축가 승효상과 공예가 최덕주 부부의 2인전이 열리는 서울옥션 강남센터 전시장(6월 29일부터 7월 18일까지)이다.
<결구와 수직의 풍경>전은 그 의미부터 자못 특별하다. 가구와 조각보의 만남이라는 점에서 그러하고, 건축가와 공예가 부부의 2인전이라는 점에서 또 그러하다. 이는 승효상이 과거 가 구 전시의 경험과 아쉬움을 토대로 직접 기획한 것이다. “조각보는 허공에 달면 공간과 공간을 나누기도 하잖아요. 그러니까 난 조각보를 가지고 건축설계를 한 거예요. 조각보를 공간으로 해석하니 다른 전시와는 느낌이 다르죠.”
게다가 이 부부의 작품은 서로 닮아 있다. 보기엔 평온하지만 엄청난 투쟁을 전제한다는 점, 또 다른 하나는 수사와 장식을 멀리한다는 점이다. 실제 최덕주 작가는 20여 년의 조각보 작업을 “끊임없이 나를 다듬어가는 과정”이라 정의했다. 천을 염색하고, 오래 숙성시키고, 다시 색을 고르고, 면밀한 계산 끝에 바느질하는 과정. 그 근간에 새긴 미학이 ‘검이불루 화이불치儉而不陋 華而不侈’다.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의미다.
<결구와 수직의 풍경> 전시장에서 만난 건축가 승효상과 공예가 최덕주 부부.
승효상, ‘수도사 의자 2’, 570×480×660mm, 이로재 오브젝트 제공.
“작업할 때 비우고 또 절제하려고 해요. 스케치도 최대한 간결하게, 색을 고를 때도 여러 가지를 꺼내놓은 뒤 하나씩 빼나가죠. 그런 절제가 조각보 작업에서는 중요하거든요. 또 그게 한국의 멋이라 생각하고요.” 승효상의 대답은 좀 더 단호하다. “꾸미는 건 다른 사람이 잘하잖아요. 나는 잘못하니까. 하기도 싫고.” 사실 이번 전시는 그의 첫 가구 브랜드 론칭과도 맞물려 있다. 건축의 본질을 공유하는 가구, 이로재 오브젝트의 시작점이다. “승효상의 건축에서 본질은 건축 자체가 아니라, 우리 삶이 중요하다는 거예요. 가구도 마찬가지죠. 가구는 오브제나 미술 작품이 아니라, 삶을 유지하는 하나의 도구잖아요. 즉, 앉거나 서거나 눕거나 하는 우리 행위가 중요하지 가구 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거든요. 단순한 가구는 검박하고 절제된 듯 보이지만, 공간에 놓였을 때 굉장한 긴장감을 불러일으켜요. 가구를 통해서도 자기 삶을 성찰할 수 있는 순간이 생기는 거죠.”
가구와 조각보가 어우러진 풍경. 건축가 승효상의 바람처럼 더없이 고요하고 평온하다.
최덕주, ‘모시 옥사 가리개’, 1400×1255mm, 이로재 오브젝트 제공.
그의 가구는 그래서 엄숙하고 적요하다. 간결함이 이끈 침묵 속에서 나무들은 서로 의지하며 아귀를 맞춰나간다. 경계 밖으로 자신을 추방한 자를 위한 쉼터. 승효상이 덧붙인 부제는 ‘수도원의 가구’다. “나무가 지닌 성질을 목리木理라 하지요. 목리에 대한 이해와 그에 맞는 가장 정직한 결구 방식. 이게 이로재 오브젝트가 만드는 모든 가구의 원칙이 되어야 하고, 앞으로도 그 원칙은 변함없을 겁니다.”
결구와 수직의 풍경은 평화다. 투쟁이 이뤄낸 평화, 나를 다듬고 버려야만 찾아오는 평화. 아내는 조각보로, 남편은 가구로, 이 부부는 하나의 풍경을 완성했다. 잠시 머물고, 홀로 사유하고, 그리하여 삶을 성찰하게 하는 침묵의 세계가 바로 그 너머에 있다.
- 승효상·최덕주 부부 특별전 <결구와 수직의 풍경> 조각보로 건축하고 가구로 채우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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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가 승효상의 가구, 공예가 최덕주의 조각보는 같은 결을 지닌다. 치열한 신념과 정직한 노동, 보이지 않는 무수한 투쟁으로 하나의 풍경을 이룬다. 고요하고 아득한, 평화의 풍경이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8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