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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천8백억 원에 해피콜을 매각하고 귀농한 이현삼 회장 "농부農夫하는 중입니다"
주방용품 전문 기업 해피콜을 창업해 프라이팬처럼 단단한 회사로 일군 기업인 이현삼. ‘성공한 인생’이었지만 그의 몸은 쉴 곳이 필요했고, 강원도 홍천군 공작산 기슭으로 깃들였다. ‘프라이팬’ 회장님이 ‘비누’ 회장님으로 변신한 이야기, 그의 산문집 <농부農夫 하는 중입니다> 이야기를 시작한다.


“이른 아침에 산책을 마치고 숲에서 벗어나 환하게 쏟아지는 포근한 햇살 속으로 들어선 아주 평범한 순간, 나는 돌연 발작적인 행복감에 사로잡혔다. 그건 행복의 바다에 익사하는 것이라기보단 그 위를 둥둥 떠다니는 것에 가까웠다. 나는 행복을 잡으려고 애쓰지 않았는데 행복이 거저 주어졌다. 시간이 사라진 듯했다. 긴급함도 사라졌다. 나 자신과 다른 모든 것들 간의 중요한 차이도 다 사라졌다.”

시인 메리 올리버가 쓴 산문집 <완벽한 날들>에 적힌 대목이다. 햇살을 맞는 별것 아닌 순간에 ‘발작적인 행복감’에 사로잡히는 삶이란, 행복을 잡으려 애쓰지 않았는데 행복이 거저 주어지는 삶이란 어떤 풍경일까? 누군가는 시인의 과장된 시적 호들갑일 뿐이라고 잘라 말할 수도 있겠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자신의 삶의 풍경과 많이 닮았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미리 소개하면, 홍천 공작산에 사는 농부 이현삼은 요즘 자신의 삶이 딱 저렇다고 말한다.

농부 이현삼의 행복한 인생론을 담은 산문집. 왼쪽 매일 아침 해발 887m의 공작산을 오른다.
비행기를 타려면 얼마나 부자여야 할까? 가난한 산골 소년은 늘 그게 궁금했다. 그때부터 그의 동경은 하늘 혹은 하늘 가까운 곳을 향했다. 다르게 말하면 가장 높은 곳, 정상. 소년은 동경만 하는 철부지가 아니었다. 강철 같은 의지로 무장하고 롤러코스터 같은 성공과 실패를 넘나들면서 마침내 원하는 자리에 올랐고, 1년에 3백 번 넘게 비행하는 삶을 살게 됐다. 세상 어느 곳이든 날아갈 수 있게 된 것이다. 물론 그런 삶에도 빈틈은 있었다. 딱 한 곳, 식구들이 둘러앉은 밥상 앞에는 시간 맞춰 도착할 수 없다는 것. 그는 그럴 시간까지 차곡차곡 아껴가며 부자가 됐다.

이현삼. 대한민국 주부라면 고개를 끄덕이는 프라이팬 회사 ‘해피콜’을 만들고 이끌던 주인공이다. 홈쇼핑에 처음 등장한 직후부터 해피콜은 국내 주방용품 회사의 신화를 새로 썼다. 신제품을 출시할 때마다 홈쇼핑 매출 기록을 갈아치웠고, 고가의 외국 주방 제품을 가격뿐 아니라 품질 면에서도 대체함으로써 기업 신뢰도를 쌓아 올렸으며, 국경을 무색케 할 정도로 해외 법인을 늘려나갔다. 혈혈단신 서울에 올라와 남대문시장에서 토스트팬을 판매하는 일부터 시작해 해피콜 수장이 된 그의 이력은 ‘자수성가’와 ‘입지전’이라는 단어에 완벽하게 들어맞는다.

하지만 성공 가도를 달린 사업가의 지난 삶에 대한 평가는 예상 밖이다. 그는 정상으로 향하던 그 시간들을 “불행으로의 비행”이라고 표현한다. 혹은 정상에 오르기 위해 단 한순간도 페달을 멈출 수 없는 자전거 타기에 비유한다. “어릴 때 바라던 대로 부자가 됐어요. 사람들은 해피콜이 신화를 썼다고 말하고, 결코 무너질 일 없는 건실한 회사가 됐다고 말하고, 회사는 그야말로 승승장구 중이었어요. 하지만 저는 동시에 가장 가난한 사람도 됐습니다. 온몸이 아프지 않은 곳이 없었거든요. 잠을 제대로 자지도 못하고, 밥을 제대로 먹지도 못하는 하루하루였어요. 그게 일상이 되면, 어떤 비극이 일어나는지 아세요? 내일이 궁금하지가 않아요.”

그의 성공 사전에는 ‘내일’이라는 단어가 아예 지워지고 없었다. 수천억 원의 매출을 올리는 회장님에서 산골 농부로 삶의 거처를 옮긴 데에는 그만큼의 절박함이 있었다. 살기 위해서, 오늘을 살고 또 내일을 살기 위해서. “여기 들어와 살면서 알게 된 게 밥 먹는 즐거움이에요. 자연이 기른 것들을 밥상 위에 차려놓고, 좋아하는 사람들과 즐겁게 먹는 음식이 주는 에너지가 어떤 것인지 온몸으로 체험하게 된 거죠.”

장작 패는 회장님. 산SAAN 비누에 가성소다와 가성가리 대체물로 죽염을 넣는데, 장작은 죽염을 구울 때 필수다.
비유하자면 공작산 이전의 이현삼 회장이 ‘부자 되기’에 몰두하던 사람이라면, 공작산의 농부 이현삼은 ‘먹고사는 일’에 몰두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 대목에서 그가 귀띔한 건 “밥은 하늘입니다”라고 한 시인 김지하의 시다. “밥은 하늘입니다. 하늘을 혼자 못 가지듯이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밥은 하늘입니다. (…) 아아 밥은 서로 나눠 먹는 것.”

그는 공작산에 들어온 후, 사업가로 살던 시절과는 달리 끼니를 거르거나 대충 때운 적이 없고, 그를 찾아오는 손님들 역시 빈속으로 돌려보내지 않는다. “공작산을 찾는 분들에게 밥상을 차려내는 일, 저는 그 일에 아주 큰 의미를 둡니다. ‘한 끼의 공작산’을 차려내는 거거든요. 공작산에서 자란 재료로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여서 완성하는 밥상입니다. 내가 이런 것을 먹고, 다시 내일을 기대하는 삶을 살게 됐으니, 저를 찾는 손님들도 그 공작산을 맛있게 먹고 일상을 회복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냉이와 달래, 머위와 씀바귀, 감자와 옥수수 등등 자연의 것과 더불어 하루를 사는 농부 이현삼은 이제 더 이상 삶을 다그치지 않는다. 자연의 속도와 삶의 속도가 어긋나지 않도록 조율하는 일의 중요성을 잘 알게 됐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나는 것은 조급한 마음에 장단을 맞춰 자라는 것이 아니라, 비와 바람을 맞고 계절을 견디면서 필요한 시간을 다 견딘 다음에야 생장의 결과를 보여준다. 거기에 인간의 재촉 따위는 그저 무의미할 따름이다. 몇 시간이고 쪼그려 앉아 벌레 먹은 배춧잎을 솎아내면서도 그의 마음에 조바심이 들지 않는 것은, 자연에 완전히 의탁하는 것이야말로 가장 좋은 삶의 해결법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의 몸을 살린 심마니 최종환 선생의 방식처럼 황토와 통나무로 집을 지었다. 뜰에는 노거목의 정취가 오롯한 분재 작품을 두었다.
자연스럽게 살기 위해 비누를 만들었다
농부 이현삼은 지금 공작산에서 날마다 죽염을 굽고, 온갖 약초를 기르며, 그것을 이용해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 산SAAN이라는 브랜드의 비누다. 정상에 오르기 위해 프라이팬을 만들던 시절이 있었지만, 지금은 ‘살기’ 위해, 무엇보다 ‘자연스럽게’ 살기 위해 비누를 만드는 중이다. “우리가 지금 만드는 비누는 먹어도 되는 거예요. 상상도 할 수 없던 비누죠. 그걸 완성하는 데 5년이 걸렸습니다.” 그는 먹을 수 있는 재료를 사용하고, 동물실험을 하지 않으며, 인공 향료를 첨가하지 않고, 식물성 약재만으로 비누를 만든다. 실험 대상이 있다면 그 자신이었다. 어떤 날은 비누수를 먹어보기도 하고, 어떤 날은 온몸에 비누를 칠한 채 하루 종일 지내기도 했다. 구운 죽염으로 가성소다와 가성 가리 대체물을 만드는 데 성공했고, 오랜 시간 숙성시킨 약초를 원료로 사용한 덕분에 가능하던 자가 실험이었다.

그의 표현을 빌리면, 산SAAN의 비누에는 공작산의 사계절이 모두 들어가 있다. 하지만 비누를 만드는 데 사계절이라는 시간과 자연이 품어 키운 천연 재료만 쓴다는 건 요즘 말로 ‘가성비’라는 의문부호를 떠올리게 할 만하다. “맞아요. 이렇게 비누를 만드는 건 가성비가 떨어지는 일이죠. 처음부터 가성비라는 말과는 맞지 않는 종류의 일이었어요. 하지만 확신할 수 있는 건, 지금까지 제가 판 것 중에서 이 비누가 제일 자신 있는 물건이라는 사실이에요.” 이 무모한 일의 시작은 공작산과 어우러진 자연스러운 삶의 완성을 위해서였다. 그런 이유로 그는 설령 비누를 완성하는데 더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더라도 포기할 생각이 전혀 없다고 말한다. 누군가가 그런 집요함을 ‘사업가 이현삼’의 모습이라고 정의하면, 그는 도리어 이런 부단함이야말로 ‘농부 이현삼’의 모습이라고 정정한다.

농부는 자연이 내주는 것 사이에서 제 삶에 필요한 것을 골라내는 사람일 뿐, 자연을 닦달하거나 착취하는 사람이 아니다. 자연이 허락한 것만을 원료로 삼아 만드는 농부 이현삼의 비누는 아는 이들 사이에서는 입소문이 나 있다. “제가 만드는 비누로 세상이 단번에 달라지고, 모두가 자연과 더불어 사는 삶에 최우선적 가치를 두지는 않겠지요. 하지만 저는 세상에 없는 걸 만들고 있고, 더 좋은 비누를 만들기 위해 자연 속으로 더 깊이 들어갈 생각입니다.”

공작산 닭들은 자작나무 밑에서 방사한다. 등겨, 깻묵 등을 섞어 먹이로 준다.
“웃음도 훈련, 행복도 훈련입니다”
2016년 잘나가던 해피콜을 매각할 당시 파격적인 제안 하나를 받은 적이 있다. 매각 후에도 2년간 최고경영자 직함을 유지하면 연봉으로 1백억 원을 주겠다는 것. 그는 한 치의 주저함도 없이 답했다. “노!” 인간의 욕망은 무한하지만 인간의 삶은 그 욕망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하나의 욕망을 더하면 그만큼 빼야 할 것이 생기는 법이다.

사업가 이현삼의 삶에서 성공이라는 탑이 쌓일수록 웃음은 더 빠른 속도로 고갈됐다. 연봉 1백억 원으로 그만큼의 웃음을 살 수 있다면 거절할 리 없지만, 지난 삶을 통해 그가 깨달은 건 그런 등가교환은 세상에 없다는 사실이다. 그가 공작산에 들어와 가장 공들여 시작한 일이 ‘웃음 프로젝트’였던 건 그런 이유 때문이다. 프로젝트의 목표는 아내와 가족이었다. “바쁠 때는 바빠서 아내에게 집안일을 모두 맡겼고, 공작산에 들어와서는 건강을 회복한다는 이유로 아내의 보살핌을 받았습니다. 아내에게 해준 게 별로 없었어요. 저만큼 아내 역시 위로가 필요했을 텐데 말이지요. 그래서 무작정 웃기 시작했어요. 그거 아세요? 웃음도 훈련이에요. 이게 신비한 일인데, 자꾸 웃다 보면 웃음 근육이 생겨요. 그러다 보면 나중엔 늘 웃는 얼굴이 돼요. 어느 순간부터 아내가 웃기 시작했어요. 아내의 웃는 얼굴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공작산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평생 모를뻔했지 뭡니까! 그런 인생은 또 얼마나 가련합니까!”

아내 김진숙에 대해 이야기할 때면 천생 투박한 경상도 남자인 그의 표정과 눈빛이 말랑말랑해진다. 그는 그런 자신의 표정을 숨길 생각이 조금도 없어 보인다. 거기엔 공작산에 깃들인 후 산골 농부로 살면서 알게 된 믿음이 자리한다. 행복을 뒤로 미루는 순간, 불행이 삶의 맨 앞자리를 슬그머니 차지해 앉는다는 것. 행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누군가 거저 행복을 가져다주지 않는다는 것. 그런 믿음을 공작산 어딘가에 숨겨놓고 농부 이현삼은 지금 빈틈없이 행복한 두 번째 인생을 사는 중이다.

글 문일완 | 사진 이기태 기자 | 진행 최혜경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