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거리 미술가 정크하우스의 페인팅 작업 ‘수리가 있는 깡깡이 마을’. 제공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
생활문화센터 1층에 위치한 마을 다방. 주민들이 직접 운영한다.
마을의 자투리 공간을 재구성한 쌈지공원에는 브라질 예술가 제 팔리투의 페인팅 작업이 숨어 있다. 사진 제공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사진
봉래동의 대문이 부산대교라면, 영도대교 너머에는 대평동이 있다. 영도의 다리 네 개 중 가장 유서 깊고 상징적인 다리.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모두 겪으며 시대의 애환을 함께한 영도대교는 그 자체로 근대 부산의 역사나 다름없다. 대평동 깡깡이예술마을은 바로 그 영도대교를 건너 섬으로 들어올 때 오른쪽 바닷가에 면한 동네다. 1910년대 국내 최초의 근대적 조선소가 세워진 근대 조선 산업의 발상지이자 수리조선업의 성지. 깡깡이란 이름도 녹슨 배의 표면을 벗겨내는 망치질 소리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도 대평동에 발을 디디면 이내 망치로 쇠를 두드리거나 그라인더로 가는 소리가 사방에서 육중하게 울린다. 깡깡깡. 낯설지만 어쩐지 묘한 감흥을 불러일으키는 이 소리는 마을이 객에게 건네는 첫인사다. “과거 뱃전에 붙은 녹과 해조류를 망치로 떼어나는 작업을 깡깡이라 불렀어요. 거대한 배에 깡깡이 아지매 수백 명이 매달려 일제히 망치를 두드렸는데, 그 소리가 바다 건너 용두산 일대까지 울렸다고 해요.” 영도문화도시 문화센터의 김설 담당자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깡깡이’란 단어 자체가 주민들 사이에서 금기시되어왔다고 말했다. 어둡고 고된 역사, 부끄러운 과거라는 인식 때문이다. 실제 20세기 후반까지 수리조선업으로 호황을 누리던 마을은 산업 불황과 함께 쇠락하기 시작했다. 동네에 점점 주민이 사라졌고, 병원과 파출소, 은행이 사라졌다.
그리고 2016년, 깡깡이예술마을 조성 사업을 통해 부산의 문화 예술 기획자들이 대평동으로 모여들었다. 사실 이 프로젝트가 유독 성공할 수 있었던 건 건강한 마을 공동체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오랜 시간 마을회를 운영해온 대평동 주민들은 그 누구보다 변화를 열망했고, 기획자 및 예술가들과 적극 소통하며 주도적으로 변화를 이끌었다. 현재 마을 곳곳에 설치한 벤치와 가로등, 벽화 등 다양한 공공 예술 작품은 실제 주민들의 삶에 무엇이 필요한지, 그들이 어떤 마을을 꿈꾸는지 깊이 논의하고 협업한 결과물이다.
독일의 그래피티 작가 헨드리크 바이키르히트가 깡깡이 아지매를 소재로 작업한 ‘우리 모두의 어머니’. 사진 제공 깡깡이예술마을사업단
생활문화센터 2층에는 대평동 수리조선업의 역사를 보여주는 마을 박물관을 조성했다.
주거지역으로 가는 좁은 골목마다 화사한 벽화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깡깡이 유람선을 타고 바라본 대평동 수리조선소들의 모습.
깡깡이예술마을 산책은 초입의 안내센터에서 시작한다. 여기서 마을공작소를 거쳐 생활문화센터에 이르기까지, 여덟 곳의 수리조선소와 2백 60여 곳의 공장 및 부품업체가 주민 거주지역과 뒤섞여 있다. “과거 공장 근무 시간이 끝나면 동네 전체가 어두워져 무섭다는 의견이 많았거든요. 그래서 구름 모양의 가로등도 설치하고, 곳곳의 벽면도 밝은 색감으로 칠했죠. 마을공작소는 오래된 일본식 가옥을 개조해 완성했는데, 주민들의 공방이자 방문객을 위한 체험 공간으로 운영하고 있어요. 마을회관을 개축한 생활문화센터는 카페와 공유 주방, 박물관으로 채웠고요.”
깡깡이예술마을은 거주지역 골목이 미로처럼 복잡한 데다 자세히 살피지 않으면 모르고 지나갈만한 작품이 많아, 사전 지식 없이 찾는다면 그 매력을 온전히 느끼기 힘들다. 다만 주민들이 자체적으로 운영하는 여러 공간, 투어 프로그램과 함께 구석구석 숨은 이야기를 뒤따르다 보면 영도의 역동적 역사와 독특한 산업 현장, 실제 이 땅에서 삶을 일궈온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 “보통 도시 재생 사업 하면 으리으리한 건물을 남기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런데 이곳은 좀 특별하게 사람을 남긴 사례로 유명해요. 2018년 사업이 끝난 뒤에도 주민들이 계속 공간과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공공 예술 작품도 관리하고, 마을 길이며 골목 안쪽까지 예쁘게 가꾸고 있거든요.”
산책의 마지막 코스는 해상 투어다. 과거 대평동에는 바다 건너 자갈치시장을 잇는 도선이 있었는데, 그 역사를 계승하기 위해 새로이 만든 것이 깡깡이 유람선. 매주 주말 오후에 세 차례 출항해 약 20분간 옛 영도 도선의 뱃길을 도는 코스다. 자갈치시장을 지나 남항 일대를 내달리며 대평동 수리조선소의 전경을 선상에서 관람하다 보면 근대산업 유산으로 가득한 부산 원도심의 정체성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시야를 꽉 채우며 도열한 거대 선박, 부둣가 곳곳에 포진한 예술 작품의 풍광이 영도의 과거와 현재를 가로질러 낯선 여행객에게 이 도시의 내일을 보여준다.
새로운 도시 재생 프로젝트
현재는 문화 도시 사업을 새롭게 진행하고 있어요. 깡깡이예술마을처럼 하나의 구역을 정해 문화적으로 재생하는 게 아니라 그 대상을 영도구 전체로 확대한 사업이죠. 영도를 살기 좋은 지역으로 만들기 위해 폭넓은 도시 정책을 기획하는 중이에요.
추천하는 여행법
차를 타고 여행하는 것보다는 영도의 골목골목 숨은 풍경을 따라 직접 걸어보기를 추천해요. 걷다 보면 다른 부산 지역에는 없는 독특한 풍경도 많고, 골목 끝마다 바다를 여러 면에서 감상할 수 있어 지루할 틈이 없어요. _김상아(영도문화도시센터 팀장), 김설(영도문화도시센터 크루)
- 깡강이예술마을 공간이 아닌 사람을 남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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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