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투갈 포르투의 암석 사이 수영장 레카 스위밍 풀, Leça Swimming Pool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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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제2의 도시 포르투에 위치한 ‘레카 스위밍 풀Leça Swimming Pools’은 마치 미로 같다.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설계한 작품인데, 바다를 감상하는 데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완만한 기울기로 만든 수영장이다. 해안가의 암석을 훼손하는 대신 건축 요소로 활용해 암석이 곳곳에 존재한다. 암석 사이 완만한 산책로를 통해 수영장에 접근할 수 있는데, 통로를 지나는 동안 파도 소리만 들리게 만들어 일부러 감각을 통제했다. 감각 하나를 통제하다가 풀면 그 효과는 배가되는 법. 하늘을 향해 뚫린 미로 같은 콘크리트 통로를 지나 끝에 다다르면 자연을 머금은 수영장이 극적으로 눈앞에 펼쳐진다. 바닷바람과 옅은 짠내는 생생한 감각을 더해준다. 콘크리트 벽에 뚫린 조그만 구멍을 통해 풍경을 엿볼 수 있게 설계한 건 알바로 시자의 세심한 배려. 대지와 바다의 경계에 무심한 듯 툭 걸쳐 있는 그 공간에 오래도록 온몸을 담그고 싶다. 한곳에서 일정 시간 이상 머무르며 그곳의 고유한 분위기를 감각하길 좋아하기 때문에 빛으로 끓는 해수와 빛으로 선을 만드는 콘크리트가 공존하는 이곳에서 오래 젖어 있고 싶다.”
박세미는 건축과 건축 역사·이론·비평을 전공했다. 201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를 통해 시인으로 등단했으며, 시집 <내가 나일 확률>을 펴냈다. 현재 월간 <SPACE(공간)>에서 기자로 글을 짓는 중이다.
핀란드 헬싱키의 아카데미아 서점, The Academic Bookstor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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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핀란드 헬싱키에서 열흘 정도 머물렀을 때 건축&디자인의 거장 알바 알토가 지은 아카데미아 서점을 매일 들렀다. 빛을 건축에 반영하는 알바 알토가 책 모양에서 영감을 받아 기하학적으로 만든 천창 덕분에 빛이 여과 없이 투영되는 서점이다. 일조량이 적은 핀란드의 특성을 고려해 어디에서든 빛이 들어오도록 콘크리트 대신 유리로 마감했고, 결과적으로 시야가 확 트인 공간이 되었다. 흰 대리석과 빛이 맞부딪쳐 더욱 밝게 빛나도록 한 것, 연령별 키를 고려해 손잡이를 세 개 만든 것도 세심함이 돋보이는 건축적 배려다. 이렇게 빛이 매일 들어오는 서점 안에 위치한 카페 알토에서 나는 매일 책을 읽었다. 알바 알토가 직접 디자인한 펜던트 조명등, 빛에 둘러싸인 대리석 테이블을 바라볼 수 있는 공간, 그곳에서 책을 읽던 한낮. 여행 속에서 반복되는 하루를 누릴 수 있게 만들어주는 공간은 언제나 옳다. 일상 같으면서 일상과 다르게 흐르는 시간을 충분히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박연준은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을 통해 등단했다. 파주에 살면서 시와 산문을 쓰고 발레를 한다. 시집 <속눈썹이 지르는 비명>, <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와 산문집 <소란>, <모월모일> 등을 펴냈다.
미국 뉴욕의 랜드마크, 베슬 Vessel
© Heatherwick Studio
“오히려 사람이 굉장히 붐비는 뉴욕에 가고 싶다. 왁자지껄한 도시 풍경이 그리울 따름이다. 무엇보다 뉴욕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꼽히는 대형 구조물 베슬Vessel에 올라가고 싶다. 런던의 2층 버스를 디자인한 영국 건축가 토머스 헤더윅의 작품을 좋아하는데, 변혁적이고 기념비적인 무언가를 만들겠다는 도시계획이 그를 만나 베슬이라는 건축물로 탄생했다. 46m 높이에 1백54개의 계단식 오르막길과 2천5백 개의 계단으로 구성한 벌집 모양의 나선형 계단 구조물이다. 서로 연결된 나선형 계단의 총길이는 1.6km가 넘는다. 3D 이미지처럼 비현실적으로 다가오는 사진을 보고 직접 가보고 싶다는 욕구가 생겨났다. 인도의 계단식 우물을 모티프로 만든 계단을 거닐다 보면 원하는 각도에서 원하는 주변 경관을 조망할 수 있다고 한다. 거울처럼 반사되기 때문에 시간마다 다른 모습을 볼 수 있고, 사람들이 서 있는 높이와 각도에 따라 새롭게 즐길 수 있다. 베슬 위에서 허드슨강을 바라보는 건 필수 코스. 지금은 사고로 인해 임시 폐쇄되었지만, 안전 문제가 해결된다면 헤더윅이 의도한 것처럼 구조물에 올라가 탐험하고 싶다. 낯선 곳, 낯선 사람들 사이에서는 자신을 조금 내려놓고 즐길 수 있을 테니까.”
김민서는 홍익대학교 목조형가구학과를 졸업하고 대한항공 기내지 <비욘드>와 <행복이 가득한 집>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9년 크리에이터를 위한 멤버십 커뮤니티 ‘코사이어티’에 합류해 콘텐츠 디렉터로 활약하고 있다.
영국 런던의 라이프스타일 숍, 피터섐 너서리 Petersham Nurseries
© Petersham Nurseries
“언젠가 런던 도버 스트리트 마켓에 우연히 갔다가 빈티지 유리 화병을 주제로 한 전시를 봤다. 알고 보니 런던 외곽의 리치먼드에 위치한 라이프스타일 숍 피터섐 너서리Petersham Nurseries에서 수집한 화병 전시였다. 이후 피터섐 너서리를 찾아가 쿠킹 클래스에 참석하고 빈티지 소품을 감상한 순간은 아직도 생생하다. 피터섐 너서리는 한 부부의 용기 있는 선택으로 탄생한 공간이다. 런던 중심부의 삶에서 벗어나기를 꿈꾸던 가엘&프란체스코 볼리오네 Gael & Francesco Boglione 부부가 폐업하는 화훼 농원이 대기업에 인수될 수도 있다는 소식에 단숨에 사들여 제철 꽃이 활짝 피는 곳으로 만들었다. 이제는 미쉐린 스타 셰프가 운영하는 유기농 레스토랑과 카페까지 갖춰 지역 명소로 자리매김했다. 피터섐 너서리는 자연이 깊게 스며든 곳에 가고 싶은 내게 가장 알맞은 공간이지 않을까. 봄이 창문 틈에 내려앉은 지금, 꽃들이 길을 내주는 피터섐 너서리가 더욱 기대되는 이유다.”
나훈영은 공간을 활용하는 방식을 디자인하는 전시 기획 분야에서 활동하고 있다. 2012년 공간 콘텐츠 기획 및 운영 전문 회사 스페이스컨설팅 (주)피디지를 설립해 ‘소프트웨어’를 디자인하는 데 에너지를 쏟고 있다.
이탈리아의 평화로운 섬, 판텔레리아 Panteller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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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에서 무언가를 하고 싶은 생각이 없는 편이라 바다가 있는 조그만 마을을 주로 찾는다. 동네 슈퍼마켓에서 식재료를 산 다음 밥을 해 먹고, 동네를 어슬렁거리다가 바닷가에서 커피 한잔 마실 수 있는 공간을 찾아다니는 편이다. 촬영 소품을 찾는다는 핑계로 철물점, 문방구에 들러 구경하거나 걷다가 돌 줍는 순간을 좋아한다. 섬이 즐비한 이탈리아, 그중에서도 판텔레리아Pantelleria섬이 그런 여유로움을 만끽할 수 있는 곳 아닐까. 영화 <비거 스플래쉬>에서 끈적이는 바닷바람과 건조한 모래바람이 공존하는 판텔레리아섬을 보았고, 그곳에 가고 싶다고 작심했다. 색감과 배경이 아름다운 영화 속 판텔레리아섬이 잔상에 오래 남았다. 판텔레리아섬은 이탈리아 남서부에 있는 화산섬으로, 에메랄드빛 바다와 현무암 토양으로 이루어졌다. 계절 내내 강한 바람이 휘몰아치는 환경에서 독특하게 포도나무를 재배해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수 세기의 역사가 이어져 내려오는 공간이다. 사람은 많이 없지만 여행하는 데 불편하지 않을 만큼 인프라를 갖춘 마을은 생각만 해도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그 조용한 바닷가 마을에서 나는 꾸밈없이, 나다운 상태로 은은하게 빛날 수 있을 테니까.”
신선혜는 이탈리아 밀라노 사진전문학교 I.I.F에서 공부했다. 현재 ‘신선해 스튜디오’ 대표이며, 서울에서 패션, 인터뷰, 공간 사진을 촬영하고 있다. 10년 동안 찍은 1백 장 정도의 사진을 묶은 사진 집 <썸웨어SOMEWHERE>를 2020년 출간했다.
독일 부퍼탈의 부퍼탈 시립극장, Schauspielhaus Wupperta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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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Frank Vincentz CC BY-SA 3.0 (Wikimedia Commons)
“독일 부퍼탈 시립무용단에서 예술 감독, 안무가로 활동한 피나 바우슈를 모른 채 사진집에서 무용수를 찍은 사진을 보고 반했다. 피나 바우슈는 세계 무용계의 판을 새로 만든 사람으로, 그가 구축한 무대 위 세계에서 무용수들이 몸으로 표현하는 언어가 마음을 끌어당겼다. 그러다 우연히 피나 바우슈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를 보고 그 사진집에 등장하는 무용단이 ‘부퍼탈 탄츠테아터Tanztheater Wuppertal’라는 것을 알았다. 우연이 겹치면 애정이 곱절로 증가하는 법. 영국 런던에서 열린 그들의 공연을 보기 위해 한국 귀국을 늦췄고, 의 배경인 독일 부퍼탈로 넘어가 시립극장에서 공연을 봤다. 사진집과 영화를 보고 팬이 되어 시립극장에 찾아간 순간은 낭만이 안착할 수 있는 가장 알맞은 때가 아니었을까. 독일 서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에 위치한 도시 부퍼탈에 또 가야겠다고 약속하는 것 자체가 날 설레게 만든다.”
이주연은 영국 골드스미스 대학교에서 사진을 전공했고, 현재 ‘이주연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다. 매거진 <디렉토리>를 비롯해 여러 매거진과 작업하고 있으며, 네이버와 카카오 등 다양한 기업과 협업을 진행했다.
지중해와 대서양을 잇는 미디 운하, Canal du Mid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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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남부 지방의 툴루즈에서 세트까지 총 241km 길이로 이어진 미디Midi 운하를 배로 여행하고 싶다. 이곳은 지중해와 대서양을 연결하는 곳으로 유명하지만, 남서부 지역의 기후와 식문화를 피부로 느낄 수 있는 길이기도 하다. 특히 피에르 폴 리케가 주변 경관과 어우러지게 설계한 운하를 돌면 중세 이전에 지은, 잘 알려지지 않은 성들을 고스란히 볼 수 있다. 운하 양옆에는 4만 5천 그루 이상의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이 있어 운치가 대단하다. 배를 타고 프랑스 남서부를 천천히 관통하며 그들의 일상을 들여다보는 나날이 있을까? 미 디 운하는 순간을 잡기에 가장 달콤한 목적지, 여행의 목적을 충실히 수행하는 곳일 테다.”
최성우는 프랑스 파리1대학교에서 미술사를 공부했다. 프랑스 디종 대학에서 문화 경영 및 정책 과정을 졸업하고, 프랑스 문화성에서 연수를 했다. 2007년 문화 예술 공간 통의동 ‘보안여관’을 열었다. 2015년 ‘보안여관’ 옆에 ‘보안1942’를 새로 만들고, 문화 예술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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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의 종식은 아직 요원하지만 백신 접종이 시작되면서 여행에 대한 그리움이 짙어지고 있다. 세상에 오감을 열어두고 사는 크리에이터는 변화하는 방향과 속도를 누구보다 기민하게 알아채는 법. 다양한 영역에서 자국을 남기는 크리에이터 열세 명에게 포스트코로나 시대에 첫 번째로 가고 싶은 곳을 물었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