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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박물관 박기옥 관장 80대, 여전히 현재진행형
세상엔 늙어서 고목 삭정이가 되는 사람도 있고, 푸른 새잎이 되는 이도 있는 것 같다. 나열하는 것만으로도 입 마를 정도로 열렬히 배우고, 이벤트를 벌이고, 벗을 사귀는 박기옥 관장. 소멸을 향해 낡아가는 게 아니라 현재진행형으로 살아가는 중이다.

50년 동안 거주한 프랑스식 저택이자 쉼박물관에서. 30년 전 구입한 잔 프랑코 페레의 원피스, 큰딸이 사준 백, 영국에서 공부하는 손녀가 선물한 모자를 감각 있게 매치했다.
화석처럼 자신을 객관화할 수 있고, 비로소 세상을 ‘관람’할 수 있는 나이. 그것도 ‘로열석’에서! 젊은이가 앞만 보며 오르느라 헉헉댄다면, 이제는 내려가면서 나뭇잎에 맺힌 물방울까지 보는 나이. 박기옥 관장의 86세는 매사에 느낌표 연속, 황홀하다. “배우다 만 피아노도 배우고 싶고, 수채화 클래스도 등록할 거예요. 대여섯 번 옻이 올라 호흡곤란이 올 정도였지만 나성숙 교수님께 옻칠도 배우고 있고요.” 보통 나이가 들면 흥미가 줄고 삶을 달관자처럼 슥 바라본다는데, 그는 호기심이 멈추지 않는다. ‘하려고’ 해서 하는 게 아니라 호기심을 주체할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되는’ 것이다.

손주같이 젊은이도 ‘나보다 나은 사람’이라 생각하면 막힘없이 교류한다. 1988년생 한국화가 김현정과의 우정은 꽤 알려진 이야기다. 30대부터 50대가 주축인 모임 ‘한국문화포럼’ 활동에도 열성적이다. “멋없는 것을 싫어해요. 문화가 없는 사람도 싫어하죠. 그 반대인 사람은 누구든 좋아. 내가 어떤 면에선 철이 없지. 웬만하면 긍정적이고.” 그래서인가 보다. 속절없이 꽃이 지고 있다며 방바닥에 볼을 대고 눈물 흘리는 노년의 울증은 그에게 없다.

쉼박물관에서 전시 중인 상여 장식 조각 중 꼭두. 박기옥 관장이 국민학교 시절, 비슷한 차림의 한복을 입어 처음 보는 순간 아련한 느낌을 받았다고.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2007년, 50년 넘게 살아온 홍지동의 프랑스식 저택을 개조해 전통 상례 문화유산을 전시하는 ‘쉼박물관’을 열었을 때 그는 71세였다. 안방에 침대 대신 일제강점기 이전 경상도 지방의 상여를, 욕조에 꼭두(상여 장식 조각상)를, 말 그대로 살림집에 ‘죽음’을 전시했다.

“어릴 때부터 옛 물건을 몹시 애착했어요. 이화여대 사학과를 다니면서도, 첫아이가 인사동에 있는 유치원에 다닐 때도 틈틈이 고미술상을 배회했답니다. 맨 처음 토기를 시작으로 나막신·떡살·상·뒤주를 좀 모았어요. 그러다 상여와 상여 장식의 색감에 흠뻑 빠졌지요. 몽당치마를 입은 꼭두가 내 어릴 적 모습 같아 애련했어요. 그렇게 모은 수집품 1천여 점을 일반에 공개하고 싶었어요. 남편이 잠자듯 세상을 떠나는 걸 보고 ‘아, 죽음은 자는 것이요, 쉬는 것’이라는 생각이 확실해졌답니다. 가정집을 박물관으로 바꾸는 인테리어는 내가 직접 하고, 프랑스에서 작가로 활동하는 셋째 딸이 소장품 배치를 도왔어요. 다른 자녀들도 후원자가 됐고요.”

직선이 구부러진 곡선이 되어 원을 이루는 것처럼 죽음은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 곧 삶이라는 조상들의 품 넓은 세계관이 박기옥 관장의 살림집에서 꽃을 피웠다. 2008년 세계적 설치 미술가 제임스 터렐의 개인전 , 2009년 패션 디자이너 임선옥의 퍼포먼스, 2010년 연극 <이중섭을 만나다>, 2012년 국제 보자기 포럼 특별전(그는 보자기 작가로도 주목받았다) 같은 이벤트도 치렀다. 시 낭송회, 학술 세미나, 모자 파티, 외국 작가 교류전 등도 쉼 없이 열린다. 모든 시작은 그의 못 말릴 도전 의식!

평화시장에서 구입한 원피스에, 섬유 미술을 전공한 큰딸이 만든 장식을 목걸이로, 2006년도쯤 쁘렝땅백화점에서 구입한 모자를 썼다.
“젊게 사는 에너지는 자존심에서 오는 것 아니겠어요? 세월에는 나잇값을 해야겠다, 자식에게는 어머니의 값을 해야겠다, 세상에는 박물관장의 값을 해야겠다, 그저 보여만 주는 박물관이 아니라 ‘울림의 박물관’, 국장·국민장이라도 우리 전통 장례식으로 치를 수 있게 얼이 담긴 장례 문화를 연구하고 알리는 ‘울림의 박물관’ 관장 값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다 자존심에서 온다고요.”


“값을 해야겠어요”
나이란 그를 구속하는 코르셋이 아니라, 돋보이게 하는 액세서리쯤 된다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는 게 그의 패션 스타일이다. “내가 생각해도 괴로울 정도로 스타일이나 색의 조화에 예민해요. 내남없이 입고 걸치는 차림뿐만 아니라 누군가의 정원, 시장 바닥의 물건도 조화롭지 않은 게 신경 쓰여요.” 이미 1960년대 ‘대한일보 베스트 드레서 10’에 선정될 정도로 소문난 스타일링 감각은 지금도 빛바래지 않았다. 적어도 30~40년 된 ‘묵은 옷’과 딸들이 선물한 새 옷을, 에르메스 옷과 평화시장 옷을 조합하는 식이다. 그가 간직한 가장 오래된 패션 소품은 1956년 미도파백화점에서 구입한 실크 스카프. 비 오는 날의 에티켓과 스타일도 놓치지 않는 그는 비옷이나 우산, 장화 같은 소품도 구색 맞춰 소장하고 있다.

안방 자리에 일제강점기 이전 상여를 두었다. 박기옥 관장의 캐주얼 룩. 힐도 즐겨 신는다.

보배 같은 눈썰미로 고른 의상, 소품은 오래 간직하고, 조화롭게 연출한다.
“옷이 흔한 세상이니 더더욱 자신에게 맞게 갖춰 입는 법을 찾아야죠. 주름 많은 이가 컬러풀한 옷, 패턴이 화려한 옷을 입으면 주름을 강조하게 되는 것처럼 말이에요. 뱃살이 좀 있는 나는 원피스 스타일을 즐겨 입고, 브라운이나 그레이 톤의 옷을 좋아해요. 물론 구애받는 색은 없어요. 색의 조화만 신경 쓰죠.” 컬러는 대범하되, 군더더기 없이 단정한 형태로 담는 그만의 스타일. 옷 이야기 앞에서 80대 박기옥 관장은 유독 해사해진다.

“젊게 사는 에너지는 어디서 오냐고요? 자존심 아니겠어요? 세월에는 나잇값을 해야겠다, 자식에게는 어머니의 값을 해야겠다, 세상에는 박물관장의 값을 해야겠다, 그저 보여만 주는 박물관이 아니라 ‘울림의 박물관’, 국장·국민장이라도 우리 전통 장례식으로 치를 수 있게 얼이 담긴 장례 문화를 연구하고 알리는 ‘울림의 박물관’ 관장값을 해야겠다…. 이런 생각이 다 자존심에서 온다고요.”

옻칠 공예가 나성숙 교수에게 사사해 작업 중인 작품.

꼭두 소장품.
들꽃은 바느질 흔적이 없다는 말이 있다. 평생 글에 몰두한 대문호들의 시는 ‘쓴 시’가 아니라 ‘쓰인 시’라고 한다. 제 몫의 시간과 공간을 성실히 채워온 존재에게 신은 아름다움과 지혜를 몸속에 차곡차곡 쌓아준다. 여기에 박기옥 관장은 덤으로 호기심과 열기를 선물로 받은 것 같다. ‘하고 싶은 바’를 열렬히 나열하는 그, 금방 내린 눈처럼 여백만 남은 눈매의 그, 누구에게든 ‘~한다’체의 훈기 가득한 말투를 뿜는 그. 머리 위에 얹힌 모자가 참 멋지다. 멋을 쓰신 80대.

글 최혜경 기자 | 화보 진행 김현정 기자 | 사진 이정규 | 메이크업 성지안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5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