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아닌 땅과 식물이 움직인다는 역발상으로 순환식 스마트 팜을 개발한 최훈 대표.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농업에 접목되면서 세계 각국은 스마트 팜에 대한 연구와 개발에 박차를 가하며 새로운 농업혁명의 주인공을 꿈꾸고 있다.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소프트뱅크,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IT 기업과 투자회사가 첨단 기술을 접목한 농기업에 대한 투자를 지속적으로 늘리고 있는 것이 그에 대한 방증이다. 20년 동안 타이어 휠을 생산하며, 국내 1위 휠업체로 자리 잡은 코리아휠이 스마트 팜에 뛰어든 것도 그런 이유다. “미래 농업에 대한 잠재적 가치가 굉장히 크기 때문에 세계적으로도 농업 시장의 패턴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어요. 우리나라도 기존 방식과는 다르게 빨리 전환하면 쇠퇴해가는 농업 국가가 아니라, 세계최고 농업 강국이 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최훈 대표는 자동차 휠을 생산하는 과정 중 도장 공정 생산 라인에서 영감을 얻었다. 수백 개의 타이어 휠을 달고 돌아가는 도장 공정의 모터를 적용한 트롤리 컨베이어를 개발한 것이다.
순환식 컨베이어 스마트팜이 탄생할 수 있었던 모티프. 바로 컨베이어 휠이 레일을 타고 움직이는 도장 공정 생산 라인이다.
오이, 깻잎, 고추, 상추, 배추, 새싹삼 등 다양한 작물을 수확한다.
혁신은 역발상에서 시작한다
충남 보령시 코리아휠 공장의 유휴 부지에 설치한 비닐하우스에는 공중에 매달린 컨베이어 레일을 따라 작물을 심은 화분이 천천히 이동하고 있다. 농민은 비닐하우스를 돌아다닐 필요 없이 작업장에 앉아 컨베이어를 따라 움직이는 화분에 씨를 뿌리거나 수확하면 된다. “지난 10년 동안 직접 텃밭을 가꾸고 작물을 키우면서 농사일이 정말 힘들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지요. 허리를 구부리고 쪼그려 앉았다가 일어나기를 계속 반복해야 하니까요. 어느 날 공장을 돌아보다가 도장 공정 라인을 보며 식물도 저렇게 레일을 따라 움직이면 어떨까 아이디어가 떠올랐어요.”
비닐하우스 한쪽 10∼15㎡ 공간에 작업장을 마련해 트롤리 컨베이어가 순차적으로 이 공간을 지나도록 설계했다. 작업자는 화분이 비닐하우스 내부를 돌다가 작업장을 지나는 동안 상추, 오이, 고추 같은 작물을 심거나 수확한다. 거동이 불편한 노인이나 장애인도 얼마든지 쉽고 편하게 작업이 가능하다. 해외 스마트 팜 시장에서는 수확을 위한 로봇 개발이 한창인데, 로봇이 작물들 사이를 돌아다니며 수확하기 위해서는 자율 주행 기술이 필수다. 그러나 이 순환식 스마트 팜 시스템에서는 수확 로봇이 움직일 필요가 없어 기술적으로 간편하고 비용도 줄어든다.
순환식 스마트 팜 시범 운영을 위해 만든 유리온실.
풍부한 양분을 머금고 자라는 새싹삼.
이로써 단위 공간당 재배 면적을 크게 늘리고 인력은 기존 농업 시스템 대비 90% 이상 낮췄다. 1백 평 기준 최대 약 2천 평의 효과를 낼 수 있어 공간 효율성은 극대화했다. “지금처럼 추운 겨울, 노지에서는 오이를 기를 생각도 못 하지요. 비닐하우스에서 재배한다고 해도 4백~5백 평 이상이 필요한데, 우리는 70평으로도 충분합니다.” 오이를 비롯해 계절에 따라 거의 모든 작물과 고부가가치 작물인 새싹삼, 파프리카, 딸기도 심었다. 특히 샤인머스캣 포도는 3년을 기다려야만 수확할 수 있는데, 그동안 트레이 옆에 달아놓은 주머니 안에 배추, 무, 마 같은 뿌리 작물을 기른다. 화분의 공간까지 효율성을 높여 일반 소득을 올리는 것이다.
도장 공정 생산 라인의 컨베이어에서 영감을 얻은 것과 마찬가지로, 자동차 세차장의 설계에서 착안한 아이디어도 흥미롭다. 2.5m 높이로 자라는 오이, 6m 높이로 자라는 방울토마토 등 수직으로 높게 자라는 작물의 경우 농장의 바닥을 깊게 판 것이다. “자동차 세차장에 가면 차 바닥을 세차할 때 터널식으로 뚫은 바닥에 사람이 내려가지요. 여기서 아이디어를 얻어 컨베이어 레일이 오르락내리락할 수 있도록 바닥 일부를 3m 길이, 1m 높이로 팠습니다.” 오이와 방울토마토를 심은 화분이 저절로 알맞은 높이로 내려오니 농민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 힘들게 수확할 필요가 없다. 사소하지만 기발한 발상의 전환이 산업의 진보와 혁신을 가능하게 만든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좋은 예다.
작물을 심은 화분은 농장 밖에 마련한 작업 공간으로 나왔다가 들어간다. 작업자는 농장 안을 돌아다닐 필요 없이 고정된 작업 공간에서 쾌적하게 앉아서 일할 수 있으며, 컨베이어 속도를 줄이거나 일시 정지하는 것도 가능하다.
컨베이어에 달린 화분이 돌아가면서 센서를 건드리면 자동으로 물과 양액이 분사된다. 5 고설 딸기 품종을 3백44개 화분에 총 1천32주수를 심은 비닐하우스.
햇빛을 받고 자란 건강한 작물
식물이 잘 자라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햇빛과 물이 가장 중요하다. 순환식 스마트 팜의 작물은 인공조명이 아닌 진짜 햇빛을 골고루 받고 자라며, 생육 시기에 맞춰 물과 양액을 자동으로 뿌려주기 때문에 계절과 온도에 상관없이 양분이 풍부하고 튼튼하게 자란다. “스프링클러를 이용해 밭 전체에 물을 뿌리는 방식은 흙과 상수도를 오염시킬 수 있어요.” 물과 양액 공급뿐 아니라 트롤리 컨베이어가 움직이는 속도, 내부 온도와 습도 역시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으며 스마트폰으로 원격 제어도 가능하다. “장마 기간에 식물이 햇빛을 많이 받지 못했다면, 낮 시간 동안 최대한 많이 햇빛을 받도록 컨베이어 속도를 빠르게 하지요.”
또한 토지 비옥도, 습도, 조도, 산소·이산화탄소 농도 등 다섯 가지 요소를 실시간으로 체크해 최적의 양육 환경을 조성할 수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 기술을 접목한 스마트 팜을 구현하기 위해 식물 재배 시스템과 디자인 관련해 등록한 특허만 30개가 넘는다. “제가 태어나서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바로 농업기술과 환경을 개선하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이대로라면 우리나라 식량자급률은 50%대로 떨어져 수입 의존도는 높아지고, 농민은 더욱 힘들어집니다. 우리나라 미래 산업의 가치가 다름 아닌 농업에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이 분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기를 바랍니다.” 경운기, 트랙터 바퀴에 들어가는 휠을 생산하던 회사가 이제 컨베이어 레일을 이용한 순환식 스마트 팜으로 농민의 새로운 활로를 개척 중이다.
- 순환식 스마트 팜 작물이 움직이는 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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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보령시에 위치한 순환식 스마트 팜은 작물이 컨베이어 레일을 타고 움직이며 햇빛을 고루 받는다. 공간 활용과 작물 생산성을 극대화한 이 기술은 미래 농업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한다.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21년 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