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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농부가 떠난 일본 농업 연수 푸른빛 찬란하게
‘ 젊다, 고정관념과 틀을 깬다, 한국 농업에 파란을 일으킨다, 블루오션을 창출한다 ’ 라는 뜻의 파란농부. 농협재단이 총 1천1백여 명의 응모자 중에서 뽑은 총 서른 명의 청년 농업인이다. 그리고 그중 열세 명이 선진 농업기술을 배우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우리 농산업의 미래를 모색하고 보다 안전하고 건강한 먹거리를 생산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그 발걸음에 <행복>이 동행했다.

유기농가 이씨에이를 찾은 파란농부 13인. 왼쪽부터 토마토 농부 이소연, 포도 농부 정지홍, 자두 농부 여득기, 버섯 농부 최동희, 단감 농부 김성인, 고구마 농부 방현진, 박 농부 염하나, 쌀 농부 조형근, 유자 농부 류진호, 애플수박 농부 강상훈, 파프리카 농부 주민준, 칡 농부 심보란, 쌀 농부 서영규.
껍질째 먹는 포도를 생산하는 나카야마 과수원.

수입산에 밀려 일본산 파프리카의 시장점유율이 10% 남짓이지만 신선도를 내세워 도전하는 테디.

쌀 농가인 어그리 야마자키를 찾은 파란농부. 유기농법으로 재배한 밭을 보다 안전하게 경작하기 위해 사방으로 4m의 안전 면적을 확보한다는 노하우를 경청 중이다.
농협재단의 청년 농업인 육성 프로그램인 ‘파란농부’. 만 18세 이상 35세 이하 농업인에게 해외 연수 기회와 비용 전액을 제공하고, 연수 후에도 종합 영농 컨설팅을 지원한다. 연수를 가는 나라는 우리나라와 농업 여건이 비슷한 일본과 유럽의 농업 선진국인 네덜란드로, 첫 시작은 일본이다. 이 모든 연수는 농협재단 이사장인 김병원 농협중앙회장의 저서 <위드하라>의 인세기부와 전 농촌진흥청장인 민승규 농업경제학 박사의 재능 기부가 더해져 가능했다.

뿌리고, 키우고, 거두다
해가 갈수록 과일 소비량이 떨어지는 일본. 1인 가구 증가와 노령화가 원인으로 양이 많거나 무겁고 껍질을 깎아야 하는 과일에 불편함을 느끼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이러한 소비자의 취향을 읽은 곳이 바로 이바라키현 지쿠세에 위치한 나카야마 과수원. 30년간 포도 농사를 짓고 있는데, 껍질과 씨앗이 있어 먹기 불편하던 캠벨 품종에서 껍질째 먹고 씨앗이 없는 거봉, 샤인마스커스 등 요즘 소비자가 좋아하는 세 가지 품종으로 교체했다. 파프리카 전문 생산 법인인 테디 역시 현 소비 시장의 흐름을 파악했다. 2000년대 초반의 일본에는 파프리카라는 채소를 모르는 사람이 대다수였다. 버블 경제 때 이탈리아 요리가 유행하면서 서서히 이름을 알린 파프리카는 이미 파프리카 생산 강대국 네덜란드와 한국에서 수입하는 양이 전체 소비량의 90%를 차지했다. 일본에서 생산한 파프리카가 비집고 들어갈 틈이 없었지만, 테디가 중점을 둔건 바로 신선도. 완숙이 덜 된 상태에서 최소 일주일 걸려 일본에 들어오는 수입산 파프리카와 달리 갓 따서 신선하고 바로 먹을 수 있는 완숙 상태의 파프리카를 하루 만에 직판장에 출하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한 것. 빨강·노랑·주황·초록 파프리카 외에 고추처럼 매운 파프리카를 심는 등 새로운 품종 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일본 내 파프리카 생산 역사가 짧지만 이러한 장점을 내세워 시장점유율을 높여갈 계획이다. 그다음으로 찾은 곳은 쌀 농가, 이바라키현 반도시의 어그리 야마자키. 일본의 대표 품종인 고시히카리, 밀키퀸과 사케의 대표 원료인 사카마이 등의 품종을 생산한다. 일본 내 쌀 소비량이 줄어드는 것에 명민하게 대처해 생산 농법을 세분화하고, 각 생산물의 유통 경로를 달리했다. 유기농법으로 키운 쌀은 고급 백화점과 수출용으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쌀은 자국 내 판매, 일반 농법으로 키운 쌀은 레스토랑에 납품한다. 또 사내에 영업 전문 직원을 둬 생산에만 그치지 않고 국내외 판로를 개척하고 확보하는 등 생산, 가공, 유통 전 과정을 적극적으로 관리한다. 한편, 국내에도 정확한 기준이 없어 모호하던 유기농법을 면밀히 엿볼 수 있는 지바현 나카레야마시의 이씨에이. 3년간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은 땅을 확보해 15년간 총 80여 종의 채소와 과일을 유기농법으로 키우고 있다. 소독하지 않은 씨앗을 사용하고 잡초는 제초제 대신 전용 기계인 예초기를 돌려 제거한다. 가장 주목할 점은 자체 개발한 낫토와 요구르트로 만든 유산균을 뿌려 토양의 힘을 강화하고, 마늘과 고추로 만든 약을 뿌려 병충해를 막는다는 것. 늘 소비자의 취향과 시장의 변화를 주목하고, 품종과 농법의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느낀 정지홍, 류진호, 강상훈 농부. “농산물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농산물이 순리대로 자랄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야 함을 깨달았어요. 또 우리는 농업자로서 타 산업이 존경할 수 있는 산업을 만들어야 하며, 늘 창조적이어야 하지요.”

15년간 유기농법으로 총 80여 종의 작물을 키우는 이씨에이의 대표.

쌀 농가 어그리 야마자키의 대표와 그의 딸. 부녀가 함께 일한다.

감지 센서와 실시간 모니터링 등 컴퓨터가 제어하는 첨단 농법의 지바 대학교 식물 공장도 견학했다.

할인 판매 없이 고품질 농산물만 파는 직판장
정성 들여 키운 작물을 어떻게 잘 팔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비단 농부만의 몫은 아니다. 농부와 직판장 간의 지속적인 상호 교류, 차별화한 판매 전략, 친밀한 고객 관리 등이 이뤄져야 한다. 이러한 모범 사례를 볼 수 있는 이바라키현의 농산물 직판장 미즈호노 무라이치바. 1990년에 개설한 후 현재 1백여 종이 넘는 농산물을 취급하고 있다. 인근의 대형 마트보다 20~30% 비싼데도 많은 사람이 찾는 이유는 고품질의 농산물만 취급하기 때문. ‘싼 게 비지떡’ ’품질로 싸우자’라는 철학으로 높은 품질에 상응하는 높은 가격의 농산물, 즉 비싼 돈을 줘도 믿고 살 수 있는 농산물을 판매한다. 땅과 자연의 섭리를 지키고 유기농, 친환경 재배를 하는 총 54개 농가는 1년 동안의 재배 계획서를 제출하고 그대로 이행한다. 미즈호노 무라이치바에 출하하면 제값을 받을 수 있다는 농가의 믿음과 해당 농가의 작물은 품질이 뛰어나 높은 가격을 책정해야 한다는 직판장의 두터운 신뢰가 형성한 구조다. 재고가 남아도 할인 판매하지 않고 한여름의 무더위에도 생산지인 농가와 비슷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에어컨을 가동하지 않는 등 콧대 높은 판매 환경에도 연간 25만명이 찾고, 6억 엔의 매출을 기록한다. 가격이 아닌 품질 경쟁에 최선을 다한 결과다. “그저 낮은 가격을 책정하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품질에 따라 높은 가격을 추구하는 것 또한 다양한 시장경제를 만드는 길이라는 사실을요.” 심보란, 조형근 농부의 말이다.



높은 품질과 그에 상응하는 높은 가격을 고수하는 농산물 직판장 미즈호노 무라이치바와 하세가와 대표.


농업 체험형 레저 시설인 모쿠모쿠 데즈쿠리팜의 아침 식사. 자체 생산하는 블루베리, 우유와 요구르트, 버섯, 토마토 등으로 만든 요리다.

모쿠모쿠 데즈쿠리팜에서 가장 인기 높은 소시지 만들기 프로그램. 돼지와 소, 양의 주요 특징도 알려줘 아이를 위한 교육 차원으로도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우유, 푸딩, 잼 등의 유제품과 각종 햄과 소시지 등 갓 만든 신선한 식료품도 살 수 있는 모쿠모쿠 데즈쿠리팜.

모쿠모쿠 데즈쿠리팜에는 젖소와 돼지 등 도시에서 보기 힘든 동물들을 관찰하고, 만져볼 수 있는 체험 농장도 있다.
놀며 익히는 미래 농업
갓 시작한 창업농으로 관상용 박을 활용해 박 공원을 만들고 싶은 염하나 농부, 유자를 생산하는 데 그치지않고 소비를 촉진하기 위한 체험 프로그램을 만들고 싶은 류진호 농부. 1차·2차·3차 산업을 복합해 농가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싶은 파란농부가 찾은 곳은 생산과 출하가 주목적이 아닌 체험, 학습 및 교육, 외식등의 형태로 이행하는 6차 산업의 성공 사례로 꼽히는 히라가타현의 수기고헤이. 직접 기르는 20여 마리당나귀의 분뇨를 모아 발효시킨 천연 비료만 사용하고, 밭에서 제거한 잡초나 음식 쓰레기 등을 다시 당나귀 먹이로 쓰는 유기 순환 농법을 고수한다. 이렇게 키운 유자, 블루베리, 콩, 고구마, 야콘, 연근 등 1백여 가지 제철 작물이 직영 농가 레스토랑에서 소비된다. 가지초밥, 들깻잎·동아·꽈리고추 등의 모둠튀김, 연잎에 감싸 찐 쇠고기와 제철 채소 등 제철 작물을 이용해 요리한다. 47년간 안정적 수입이 보장되지 않는 소농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 농경지를 넓혔고, 도회지에서 한 시간 거리인 점을 적극 활용해 농가 레스토랑을 만든 것으로, 일본 농가 레스토랑의 원조이자 성공 사례로 꼽힌다. 또 일부 경작지는 회원제 야채재배학교로 운영하는데, 회원 한 가족당 한 구획의 땅을 분양받아 총 30여 종의 작물을 심고 수확한다. 11년째 운영 중인데 현재 근교 60여 가구가 참여하고 있다. 이번에 찾은 곳은 미에현의 모쿠모쿠 데즈쿠리팜이다. 한창 일본 내 여행 붐이 일던 30년 전, 오사카 중심지에서 한 시간 정도 소요되는 이곳에 관광·자연·학습·먹거리를 테마로 만든 농업 체험형 레저 시설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심 사업은 자체에서 생산하거나 인근 지역 농가에서 확보한 식재료로 진행하는 학습형 체험 프로그램. 딸기와 블루베리, 버섯을 수확하며, 씨앗에서 시작하는 생산과정, 수확 방법, 영양가, 섭취 및 요리 방법까지 알려준다. 소젖 짜기 프로그램도 있다. 가장 인기 있는 프로그램은 소시지 만들기. 소의 창자를 사용하는 볼로냐 소시지, 양의 창자에 고기를 넣는 비엔나소시지 등을 만들어볼 수 있다. 갓 짜낸 우유로는 즉석에서 얼리고 딸기, 초콜릿 등의 맛을 첨가해 아이스크림도 만들 수 있다. 이 밖에 콘도형 숙박 시설과 온천, 카페 및 레스토랑 등도 갖춰 연간 약 50만 명이 찾아오는 인기 관광지로 자리잡았다.



유기 순환 농법으로 생산한 농산물로 만든 농가 요리를 선보이는 수기고헤이와 노지마 대표. 식사한 손님에 한해 소량의 농산물을 판매한다.

농업에 관광과 교육을 결합시킨 6차 산업의 성공 사례인 모쿠모쿠 데즈쿠리팜.


지역 특산물인 고구마로 고구마맛탕, 고구마 파이 등을 생산·판매하는 나메카타 파마즈 빌리지.

나메카타 파마즈 빌리지에 일정량의 고구마를 공급해주는 나메카타현의 고구마 농부들.
지역 특산품인 고구마를 전면에 내세운 체험형 농업 테마파크인 나메카타현의 나메카타 파마즈 빌리지도 찾았다. 2015년 당시 농업 인구의 고령화로 생산성을 잃어가는 나메카타 지역의 활성화를 목적으로 문을 연 곳이다. 고구마를 캐는 학습형 체험은 물론 폐교를 활용한 고구마 박물관, 현지 농가의 품종별 고구마를 모은 직판장, 고구마를 디저트로 가공하는 공장 등의 시설을 마련했고, 3년이 지난 지금 관광객은 물론 도시로 떠난 지역 청년들이 다시 돌아오는 등 지역 공헌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6차 산업이란 단순히 농산물을 생산·가공·판매하는 것만이 아닌 지역 경제를 활성화시키는 것임을 알았어요. 우리 파란농부는 예기치 못한 기후는 물론 시시때때로 변하는 시장 변동에 대응하기 위해 눈과 귀를 늘 열어두고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함을 다시금 깨달았지요.” 주민준, 김성인, 서영규, 염하나 농부의 말이다. 7박 8일간의 일본 농업 탐방은 비단 농업 종사자만의 일이 아닌, 한국 농업의 독자적 식량 주권 확보를 위한 준비이기도 했다. 앞으로 한국 농업의 푸른빛 미래를 이끌어갈 파란농부에 힘찬 응원을 보낸다.

글 이경현 기자 | 사진 이경옥 기자 | 취재 협조 농협재단(02-768-50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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