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F/W 헤라서울패션위크, 패션 브랜드 키미제이의 피날레 무대를 장식한 모델은 76세의 시니어 모델 최순화 씨였다. “맞지도 않는 신발에 발가락 다섯 개를 간신히 끼워 넣고 넘어지면 어떻게 하나 걱정하며 걸었어요. 사실 그때 워킹은 좀 별로였지요.” 강렬한 호피 무늬 톱을 입고 짧은 은발을 단정하게 빗어 넘긴 그는 웃으며 카랑카랑한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어릴 때부터 모델이나 영화배우가 꿈이었어요. 아버지가 사 오신 잡지에서 예쁜 옷을 입고 사진 찍은 모델을 동경했지요. 집에 붉은 벨벳 천이 있었는데, 어머니 어깨너머로 배운 재봉질로 옷을 만들어 입고, 장갑도 만들어 친구들에게 자랑하곤 했어요. 하지만 그땐 부모님께 말 한마디 꺼내보지 못했습니다.” 결혼하고 일하며 자녀 키우느라 멀어진 줄로만 알고 있던 꿈이 일흔둘 나이에 다시 찾아왔다. “키도 크고 늘씬하니 실버 모델 한번 해보지 그래?”라고 지인이 제안하기 전에는 그런 직업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래요? 그런 게 있으면 해야죠!” 4년 전부터 수강한 모델 수업이 그의 자세와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지금도 화요일마다 학원에 수업 들으러 오는데 일주일 내내 그날만 기다립니다. 10년 전쯤 허리가 아파 병원에 갔을 때 척추가 S자로 굽어 있는 걸 알았는데, 모델 수업을 열심히 받고, 늘 자세를 바로 하고 걸으니 상태가 굉장히 좋아졌어요. 무엇보다 항상 즐겁고 행복합니다!” 촬영을 위해 연습실 런웨이에 선 최순화 씨의 우아한 모습에 손주뻘인 모델 연습생들이 박수를 치며 환호한다. 눈부신 조명 아래 존재감이 대단하다. “해외 패션쇼 무대에 서고 싶어요. 대한민국에 이런 사람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은 거죠. 제 또래에게도 얼마든지 새로운 일을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을 주고 싶습니다!”
- 시니어 모델 최순화∙76세 런웨이에서 다시 찾은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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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8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