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동안 헤라서울패션위크의 헤어 아트 디렉터를 맡으면서 4천2백여 회 이상 백스테이지를 총괄했습니다. 전쟁터 같은 백스테이지에서 디자이너와 스태프의 전우 혹은 적군으로 지내다 보니 어떤 사람이 진짜 크리에이터인지 알아보는 눈이 절로 생기더라고요. 자렛 이지연도 그중 한 사람으로 패션 디자이너가 지녀야 할 마케팅 안목을 갖춘 것은 물론, 크리에이티브의 힘을 잘 아는 인물입니다.” _ 오민(헤어&메이크업 아티스트)
의상 협조 술 장식의 바이커 재킷과 슬리브리스는 자렛(02-792-6408)
한국의 깍쟁이 고객은 물론이고 호락호락하지 않은 해외 바이어의 마음까지 흔들고 있는 패션 브랜드, 자렛. 시작은 어설펐지만, 현실을 똑바로 바라보고 나아간다. 자렛 패션쇼를 꼭 보고 싶은 쇼로 만드는 디자이너 이지연의 무기는 바로 나이 들지 않는 상상력이다.
자렛을 론칭한 계기가 궁금하다.
한창 신진 디자이너 붐이 일던 때 브랜드 론칭을 준비하던 친구를 도와주고 있었는데, 갑자기 론칭을 취소했다. 그래서 그간 고생한 게 너무 아까워 내가 브랜드를 론칭했다. 당장 컬렉션을 내놔야 했는데 브랜드 이름도 없어 급한 대로 내 영어 이름을 그대로 갖다 썼다. 그렇게 2009년 자렛의 첫 컬렉션을 선보였다. 국내에서 컬렉션을 소개하다가 2011년 홍콩 패션 위크 참여를 계기로 해외 컬렉션과 수주회로 눈을 돌렸다. 뉴욕 패션 위크의 컨셉코리아, 파리 후즈 넥스트, 뉴욕 코트리쇼를 비롯해 베를린, 상하이, 말레이시아 같은 해외가 내 주 무대다.
바이어들 사이에선 서울패션위크에 가면 자렛 쇼는 꼭 봐야 한다고 하던데?
트렌디한 옷을 만드는 건 별로 관심이 없다. 그건 꼭 내가 아니어도 잘하는 패션 디자이너가 많으니까. 그래서 돈을 많이 못 버는지도 모른다. 쇼도 의상도 늘 특이하고 새로운 것을 하고 싶다. 아직은 사람들을 좀 더 선동하고 선도하고 싶다.
쇼의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는가?
문과 출신이라 그런지 문학에서 쇼의 아이디어를 얻는 편이다. 책의 스토리를 내 나름대로 해석해 쇼에 적용한다. 예를 들면 2년 전 컬렉션 테마는 ‘백설공주’였는데, 스노 화이트를 블랙과 레드 컬러로, 왕비를 화이트 컬러로 해석해 눈의 여왕처럼 구성하는 식이다.
판매보다 창작에 힘쓴다고 하지만, 해외 활동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엔 아직 제대로 된 레이블이 적지 않은가?
뛰어난 디자이너는 많은데 생명력이 있는 명품이 탄생하지 않는 게 늘 안타깝다. 외국 디자이너들은 개인 스튜디오를 하다가도 곧잘 기업 스폰서를 받고 글로벌 브랜드로 키우는데, 우리나라는 디자이너 혼자 모든 걸 해나가다가 지쳐 사라지곤 한다. 나이 들 때까진 시간이 많으니 내가 계속 길을 닦아두면 누군가는 훨씬 수월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 한계에 도전하는 별난 모험가 패션 디자이너 이지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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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7년 9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