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미국서 할머니가 뽀뽀한다
최인호 씨가 일간지 <서울신문>에 <유림>을 연재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 1월이었다. 3년간 1천 회를 써야 하는 대하장편소설의 길이만큼이나 고고한 작업. 고도의 몸 관리와 컨디션 관리가 필요하다. 그는 이 3년 동안 이틀간의 결석을 제외하고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성실하게 출석했다. ‘집사람이 받는 스트레스가 심해’ 출판사 사무실에 작업실을 마련하고 출근을 시작했다. 한남동의 주택을 개조한 그의 작업실에는 유교 관련서들이 꽂혀 있는 책상과 두 개의 작은 서가가 있다. 작업실과 소담한 정원 사이에는 운동기구가 놓여 있다. 간소한 작업실에서 눈에 띄는 것은 벽에 걸려 있는 액자다. 원고지에 씌어 있는 것이 육필 원고인가 싶어 살펴보니 그의 어머니가 미국에 체류하던 때 아들 가족에게 보내온 오래된 편지다. 1974년 6월 3일에 씌어진 것으로 되어 있으니 편지의 나이도 33년이나 되었다. 안부를 전하고 묻는 내간체 편지를 읽다 보니 끝인사를 주목하게 된다. “우리 다해, 경재, 멀리 미국서 할머니가 뽀뽀한다.” 손자와 손녀를 향한 가없는 사랑이 담긴 현재형의 인사가 오늘 받은 편지처럼 생생하다. 가족을 삶과 세상의 중심으로 여기는 그의 얼굴에서 정직하게 사랑을 표현하는 그의 어머니를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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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께서는 가족에 대해 축복의 성소라고 말씀하시곤 합니다.”
“가족은 모든 사람이 시작되는 곳이며 모든 인격이 완성되는 곳이에요. 공자님이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를 얘기했는데, ‘수신제가’라는 게 사실 어려운 일이에요. 밖에서 존경받기는 쉬워도 자식들에게 마음으로부터 존경받는 아버지가 되는 건 하늘의 별 따기예요. 밖에서는 이름난 대통령일지 몰라도 아내에게 경멸받지 않고 존경받는 남편은 드물어요. 공자님 말씀은 21세기에도 필요한 덕목이에요.”
“가족의 행복을 위한 선생님만의 가정관리법이 있으신지요?”
“지금은 안 그렇지만 예전엔 부부싸움을 무지하게 많이 했어요. 과장이 아니에요. 그래서 우리 딸이 상처를 많이 입었어요. 우리 부부가 싸우는 문 앞에서 그만 싸우게 해달라고 기도했대요. 저는 집사람에게 칭찬을 많이 해요. 자꾸 칭찬하다 보면 칭찬할 거리를 또 발견하게 되죠. 요즘 섹스리스 부부가 많다고 하는데, 그건 굉장히 안 좋은 것 같아요. 그것도 부부간 커뮤니케이션 중의 하나거든요.”
“부부싸움의 이유는 매우 사소한 걸로 시작된다고들 말씀하시는데….”
그때는 뭔가 해결을 보려고 싸웠어요. 예를 들어, 나는 자장면 먹겠다는데 집사람은 돈가스 먹겠다고 그러는 거죠. 그게 겉으로는 자장면과 돈가스의 싸움이었지만 보이지 않는 심리 싸움이었거든요. 옛날에는 자장면이 옳은지 돈가스가 옳은지 결론을 내려고 했는데 그게 어떻게 결론이 나겠어요. 결론 내릴 수 없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어요. 그것도 우리 둘이 동시에. 저는 요즘이 제일 행복해요.”
“부인 쇼핑하는 데도 동행하신다고요?”
“집사람하고 같이 다니는 게 재밌어요.”
“남자들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 하나가 여자들 쇼핑 따라다니는 것이라는 통계도 있지요?”
“생각하기 나름이죠. ‘재밌어’ 라고 생각하니까 재밌어지더라고요. 전 집사람이 쇼핑할 때 어떤 방법을 쓰냐면, 집사람이 가게 안으로 들어가면 밖에서 기다리면서 시가를 피우거나 커피를 마셔요.”
그는 부인 황정숙 씨를 대학시절 만나 군복무를 마치던 스물여섯에 결혼했다. 20대의 그에게 ‘이탈리아 수도원의 원장’처럼 느껴졌던 황정숙 씨는 조용한 성격의 소유자. 예순이 넘은 지금도 스타일은 그대로여서 집에서 조용하게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는 편이라고 한다. 드러나는 것을 반기지 않는지, 그가 여성지 인터뷰를 하는 날이면 아내는 현관문까지 따라 나와 ‘나에 대한 이야기는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한다. 하지만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가족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1 작업실 서재 벽에 걸려 있는 유일한 액자는 그의 어머니가 오래 전에 보내주신 편지다.
2 1972년 신문에 연재한 뒤 발간된 <별들의 고향> 책 뒤표지에 실린 사진. 미소가 해맑다.
3 최인호 씨와 부인 황정숙 씨는 캠퍼스 커플로 만나 스물여섯 살에 결혼했다. 사진은 1970년 연애할 때의 모습.
유교는 21세기에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 작품을 구상하고 집필하고 쓰는 과정을 출산에 비교하곤 하는 그가 <유림>을 배태한 것은 1990년이었다. 1989년 <중앙일보>에 불교소설 <길 없는 길> 연재를 시작한 그는 소설을 위한 취재활동을 통해 우리 민족의 핏속에는 불교뿐만 아니라 유교도 있음을 자각하게 된다. 그리고 17년 만에 순산을 하게 되었다. 중장년층은 물론 청소년들에게도 높은 호응을 받고 있는 <유림>을 통해 그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과거의 유산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현재를 살고 있다는 것. 3년 동안 3백여 권의 책을 읽으며 자료를 조사한 그는 조광조, 공자, 노자, 이황, 맹자, 이율곡의 삶을 복원한다. 그의 몽블랑 만년필과 원고지 위에서 되살아난 과거는 지난 인물들이 멀리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일 수 있음을 느끼게 해준다.
“유교에 대해 따분하게 여기는 사람이 많습니다.”
“유교는 낡은 유산이 아닙니다. 김수한 추기경께서 유교에 대해 우리가 지금이야말로 지켜야 할 소중한 유산이라고 말씀하셨는데 저도 동의해요. 우리나라는 해방 이후부터 서구적 자본주의를 쫓아왔거든요. 서구적 자본주의가 뭐냐면 닥치는 대로 가서 먹어 삼키고, 이익이 있는 곳에 가면 하이에나처럼 물어뜯는 건데, 그 효율성이 지금은 떨어졌어요. 유교적 자본주의는 가족주의라고 할 수 있는데요, 우리나라가 작년에 3천억 달러 수출을 달성해서 세계 11대 경제대국이 된 것도 유교적 자본주의 덕분에 가능했던 것이죠. 우리 형도 대우에서 오래 근무하셨지만 샐러리맨들이 24시간 일을 했거든요. 유교적 전통이 없으면 그렇게 될 수가 없어요.”
“3년 동안이나 연재를 하셨으니, 작품을 끌고 가는 게 보통 힘든 일이 아니었겠지요?”
“제가 성질이 급한데도 글을 쓸 때에는 참 이상하게도 참을성이 많아요. <유림>을 쓰는 동안 제일 어려운 게 뭐였냐면 처음의 초심과 열정, 긴장감을 끝까지 일관되게 유지하는 것이었어요. 마찬가지로 부부관계도 그래야 될 거라고 생각해요.”
“사랑의 감정이 지속되는 기간은 18개월이라는 발표도 있었습니다만….”
“개똥 같은 얘기예요. 제가 아내와 결혼한 지 40년 가까이 되는데, 지금도 집사람을 다 알지 못해요. 멋지게 보이려고 하는 얘기가 아니에요. 제가 어떻게 우리 집사람의 광맥을 다 알겠어요? 그 사람이 갖고 있는 수만 가지 매력을 하루에 하나씩 발견한다 해도 평생을 못 보고 죽을 텐데요. 그래서 <가족>이라는 소설도 30년 이상 쓸 수 있었던 것이고요.”
그가 부인 황정숙 씨에게서 새로운 면모를 발견한다는 이야기에는 여러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기본적으로는 황정숙 씨가 매일 매일 새로워지고 있는 것일 테고, 아내의 새로운 면모를 발견하기 위해 그의 안목이 매일 매일 거듭나고 있다는 이야기도 된다. 거듭남은 철저한 반성과 성찰이 동반되지 않으면 이를 수 없는 산봉우리. 스스로 변화하겠다는 의지가 없다면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용서라는 개념은 기독교의 핵심 사상이고 핵심 교리일 뿐 아니라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도리인 것 같습니다. 저도 실제로 아이들을 키울 때 상처를 참 많이 줬지요. 모든 상처가 가정과 학교에서 나온다고 하는데요, 부모건 교사건 남에게 잘못했다고 느낄 때는 용서를 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제 아들에게 정식으로 ‘그때 그런 일이 있었는데 내가 정말 잘못한 일이었다’ 라고 용서를 구한 적이 있지요. 사소한 일인 것 같지만 그렇게 용서를 구하니 엄청난 화해를 이루게 되더군요.”
- <대화> 중에서
예수님의 ‘사랑’ 그리고 싶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소설을 쓰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톰 소여의 모험>을 읽은 것이 계기였다. 이모의 괄시를 받던 톰 소여가 ‘내가 죽으면 이모가 슬피 울겠지?’라고 상상하는 장면에서 감정이입이 되어버렸다. 어쩌면 당시 그가 어머니에게 혼난 뒤 읽은 것은 아니었을까? 그러면서 ‘소설은 내 감정을 그대로 묘사해내는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다음 작품으로 예수님 이야기를 쓸 거라고 공표하셨지요?”
“그 전에 연애소설을 한 편 쓰고 싶어요. 정말 쓰고 싶어요. 옛날에 <별들의 고향> 쓸 때에는 제가 여성의 심리를 다 안다고 생각했지만 사실은 전혀 몰랐음을 나중에야 알았어요. 그런데 요즘은 좀 알 것 같아요. 쓰고 싶은 연애소설은 이런 이야기예요. 한 예순쯤 된 남자가 어느 날 아내 앞에서 ‘엉엉’ 울어요. 남자들은 보통 ‘엉엉’ 하고 잘 안 울거든요. 그러면서 자기가 어떤 여자한테 반했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거예요. 그 이야기를 들은 아내는 질투를 하는 게 아니라 오히려 남편 몰래 그 여자에게 찾아가서 우리 남편을 만나달라고 이야기하는 그런 소설이에요.”
지금까지 쓴 모든 작품들이 예수님을 이야기하기 위한 준비 과정이었다고 말하는 그가 다음 작품에서 ‘사랑’을 그리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수순인 듯 보인다. 예수님을 이야기하려면 예수님이 보여주었던 사랑을 몸과 마음으로 이해해야 가능하니 말이다.
“정신이나 내면에 관심을 갖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는지요?”
“가톨릭에 귀의하고 난 뒤부터예요. 저에게는 그 시간이 완벽한 전환점이 되었어요. 젊었을 때에는 제 소설에 살이 많고 화려했는데 요즘에는 문장 표현이 무지하게 단순해진 것 같아요. 제가 생각해도 희한한 일인데, 더 단순해지고 싶어요.”
“선생님께서는 늘 다음 작품에 대해 여쭙지 않아도 먼저 말씀하시곤 합니다.”
“제가 권투선수 ‘알리’ 같은 체질이거든요. 알리는 권투할 때 두려워지면 ‘나는 나비처럼 날아올라서 벌처럼 쏜다’고 말해요. 그게 뭐냐면, 자기 두려움과 불안을 지우고 더 치열하게 몰두하겠다는 의지를 표현하는 것이지요. 그렇게 이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효과가 있나요?”
“효과가 좋아요. 어려운 일을 할 때일수록 자기 최면과 자기 확신이 필요하죠.”
“저는 가장 큰 스승으로 성경에 나타난 예수를 꼽고 싶습니다. 저는 예수를 신적인 존재나 성인이 아니라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보고 싶은데, 그런 의미에서 예수는 내가 아는 가장 매력적인 사람입니다. 그는 인간에 대한 뜨거운 사랑으로 불타는, 그런 이였지요. 그 외에도 불경 속의 부처나 선승들, 가톨릭의 성인 성녀들이 저를 감동케 합니다. 그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눈에서 비늘이 떨어지는 것 같고 어느 순간 숨이 막히곤 하지요.”
- <대화> 중에서
“작품을 잘 써야겠다 하는 마음은 없나요?”
“그 마음이 제일 무서워요. 작품을 쓸 때요, 평상심을 가져야 해요. ‘요거 잘 써야지’ 그러면 초쳐요. 여자들도 연애할 때 ‘이 남자한테 잘 보여야지’ 그러면 뭐가 잘 안 되잖아요? 일도 마찬가지예요.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 좋아요.”
“그 마음이 제일 무서워요. 작품을 쓸 때요, 평상심을 가져야 해요. ‘요거 잘 써야지’ 그러면 초쳐요. 여자들도 연애할 때 ‘이 남자한테 잘 보여야지’ 그러면 뭐가 잘 안 되잖아요? 일도 마찬가지예요. 자연스러운 것이 제일 좋아요.”
예수님 이야기를 완성하면, 불교·유교·기독교에 관한 소설을 통해 한민족의 역사를 두루두루 살피게 되는 셈입니다.”
“저는 해방둥이인데, 그게 저한테는 단순한 의미가 아니라고 생각해요. 해방둥이로 태어난 것이 운명이지요. 그래서 제게는 우리 민족의 정체성에 대해 뭔가 써야 한다는 사명감 같은 것이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한글 세대 선두주자로서 소설뿐 아니라 국민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 작업을 해야겠다는 개인적 염원도 있어요.”
“1963년 데뷔한 이래 지금까지 50권 이상의 작품을 발표하셨어요. <유림>처럼 여러 권짜리 작품을 낱권으로 세면 훨씬 많아지겠지요.”
“피임을 안 하니까요. 산아 제한도 하지 않아요. 제가 원하는 대로 다 씁니다.”
“열정이 대단하십니다.”
“작가에게서 열여덟 살의 열정이 사라질 때에는 거의 죽은 것일 거예요. 작가는 수도자이기는 하지만 성직자는 아닙니다. 글 쓴다는 것 자체가 도 닦는 일이라는 것을 알게 된 게 최근의 일이에요.”
“그 열정과 사명감을 지속하게 하는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요?”
“가장 뾰족하게 깎은 연필이 가장 가는 선을 그을 수 있잖아요. 그렇듯 우리도 살다 보면 마치 연필처럼 무뎌질 때가 있어요. 정신을 깎아서 끊임없이 뾰족하게 만들어야 하는 자기 절제와 엄격성이 필요할 때가 많아요. 자기의 가장 큰 적은 자기 자신이라고, 선을 가늘게 긋기 위해서는 정신을 깎아내야죠. 제 자신을 속이고 싶지 않아요.”
“소설가란 그가 보고 느꼈던 것들을 무의식이라는 창고 속에 들여놓는 사람들이겠지요. 그 양은 물론 엄청나지요. 생각을 시작하면 그 신비한 창고 어딘가에 가서 기억을 끄집어 내오는 것 같습니다. 도를 이루거나 성인이 되면 윤회가 끝나니 다시 태어나지 않아도 되잖아요. 그러니 가장 좋은 일은 다시 태어나지 않는 것이겠죠. 전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아요. 하지만 만약 다시 태어난다면 지금처럼 글을 쓰며 살고 싶고, 지금의 아내와 결혼하고 싶어요. 저로서는 글을 쓰는 일이 정말 행복하고, 한 사람을 진정으로 아는 데 한 평생만으로는 부족하거든요.”
- <대화> 중에서
예순넷의 나이에도 열여덟 살의 열정으로 원고를 집필하고 창작하는 그를 보면 용문산 은행나무가 생각난다. 천 년이 넘은 지금도 매해 가을이면 튼실한 열매를 맺는다는 그 나무 말이다. 은행나무는 은행을 만들고 그는 이야기를 만든다. 은행은 한 번 먹고 나면 그만이지만 그의 행복한 에너지가 영글어 있는 소설들은 지구가 지속되는 한 남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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