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구정동에 자리한 쿠키 모리. 갓 구워낸 빵과 함께 싱싱한 꽃을 볼 수 있는 이곳은 그림 속 한 장면처럼 평화롭기 그지없다. ‘쿠키 모리’라는 간판이 없으면 케이크와 쿠키를 파는 숍이라고 믿기 어려울 만큼 아늑하고 여유로운 곳. 쿠키 모리 대표이자 파티시에 김현숙 씨는 숍의 크기를 키우는 것보다 그 안에서 얼마나 맛있고 멋진 케이크와 쿠키를 만들어내는가에 열중하고 싶단다.
거울 볼 틈 없이 바쁜 ‘미스 파티시에’ 아무리 봐도 <헨젤과 그레텔>의 과자 집처럼 예쁘게 생긴 ‘쿠키 모리’. 파란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깍쟁이처럼 똑 부러지는 인상의 파티시에가 손님을 맞이한다. 시원스레 큰 눈에 입가 양쪽으로 쏙 들어가는 보조개, 그리고 아담하고 날씬한 그의 모습. 빛바랜 듯한 서정적인 벽화, 고풍스러운 나무 빛깔이 매력적인 가구와 낡은 벽돌로 꾸며진 것이 앙증맞은 쿠키를 파는 숍에는 어울리지 않지 싶다. 왠지 이런 곳에는 넉넉한 풍채의 ‘호호 아줌마’나 통통하고 털털한 ‘삼순이’가 있어야 제격 아닐까.
“아니, 쿠키 숍 주인이 이렇게 날씬해도 되나요?” 한껏 빗나간 예상의 책임을 그에게로 돌렸다. “하루 종일 서서 쿠키며 케이크를 만들다 보면 절대 살찔 일이 없거든요.” 인상처럼 똑 부러지는 대답. 속사정을 알고 보면 그의 대답은 충분히 그럴 법하다. 일본 도쿄제과학원 유학 시절부터 지금까지 9년째, 매일 새벽 6시면 일어나 출근, 쿠키를 굽고 6시간의 클래스를 진행하는 촘촘하고 견고한 김현숙 씨의 분주한 일상은 그에게 살찔 틈과 겨를을 주지 않는다.
1 쿠키 모리 스태프가 스튜디오에 함께 모여 초콜릿 무스 케이크를 만드는 모습.
2, 3 도쿄에서 유학하던 시절, 그에게 좋은 교과서가 되었던 것은 바로 요리 관련 잡지. 책자에 소개된 제과점을 하나하나 ‘정복’해갔다. 그때 맛본 케이크와 쿠키는 그의 노트에 사진과 함께 차곡차곡 기록된 것은 물론, 그곳의 로고와 포장지까지 붙여놓았을 정도.
몇 년 전, 드라마 <내 이름은 김삼순>을 통해 유명해진 직업, 파티시에. 케이크와 쿠키, 초콜릿 등 ‘달콤한 유혹’을 만드는 파티시에는 이제 누가 보더라도 인기 직종이자 선망의 대상이다. 게다가 이렇게 예쁜 숍까지 갖고 있으니 얼마나 근사한 직업이란 말인가! 그러나 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원칙은 ‘쿠키’에도 적용된다. 김현숙 씨의 표현을 빌리자면, ‘남 보기 번듯한’ 지금은 다크 초콜릿의 몇 배에 달하는 쌉사래한 ‘쓴맛’을 보지 않고서는 이루기 힘든 결과였다.
대학에서 법학을 전공하고, 대기업에 취직해 순풍에 돛 단 듯 아무런 의심 없이 회사 생활을 하던 그는 순탄하게 돌아가던 일상에 참한 취미를 더했다. 당시 가스오븐레인지가 첫선을 보이며 시작된 오븐 요리 강좌. 요리 배우는 재미에 푹 빠진 그의 모습은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인된 ‘현모양 처’ 였다. 그런데 이 참하던 취미가 그의 인생을 송두리째 바꾸는 결정적 역할을 할 줄이야.
1 쿠키 모리 스튜디오 한쪽에 마련된 김현숙 씨의 서재. 목가적인 느낌의 책장 안에는 그의 교과서, ‘베이커리 잡지’와 무크지가 빼곡히 꽂혀 있다. 그는 다양한 잡지와 무크지를 통해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것은 물론 감각적인 파티시에가 되기 위한 영감을 얻는다.
2 정교한 슈거 아이싱 작업에 몰두하기 위해 별도로 마련한 공간. 로맨틱한 화이트 샹들리에와 책장으로 간결하면서도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했다. 웨딩 케이크부터 돌잔치 및 생일 파티를 위한 쿠키 선물이 바로 여기서 탄생한다.
“케이크와 쿠키, 그저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고, 마냥 사랑스럽잖아요? 그런데 이를 만들다 보니 묘하게 빠져드는 매력이 있더군요. 완성했을 때의 뿌듯함도 그렇거니와 무엇보다 그 과정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거든요.” 이때부터 그에게 쿠키와 케이크는 더 이상 혀끝의 달콤함으로만 머물지 않았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과감히 직장을 그만둔 것은 물론 일본 도쿄제과학원에 입학하고, 졸업 후 밀가루 포대를 침대 삼아 주방 보조 일을 한 것은 물론 ‘고급 일본어’를 써야만 가능한 제과점 매장 직원까지 해봤다니. 그가 반해버린 달콤한 유혹은 어느새 쓰디쓴 생활로 변모했다. 그래도 정말 이 길이 운명이었는지,지금 돌아보면 일본에서의 모든 경험과 시간은 적당히 쓰고, 적당히 달달한 다크 초콜릿처럼 달콤 쌉싸래한 맛으로 느껴질 뿐이란다.
1, 3 아기자기한 소품을 좋아하는 김현숙 씨의 취향이 스튜디오 곳곳에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다. 찬장 안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케이크 스탠드며 티포트, 저울 등 제과제빵에 필요한 앤티크 소품은 그가 일본에서 공부할 때부터 모은 컬렉션이다.
2 유학 시절 한국에 일본의 베이커리 트렌드 소식을 전하는 통신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던 그는 귀국 후 스튜디오를 운영하면서 각종 잡지의 베이킹 코너에 등장하여 다양한 레시피를 소개한다. 스튜디오 한쪽 칠판에는 그동안 잡지 촬영을 하며 모아온 폴라로이드 사진이 작품처럼 걸려 있다.
쿠키의 연금술사, 감동을 구워내다 파티시에도 ‘스타’로 등극하고 있는 요즘, 김현숙 씨 또한 그 대열에 오른 스타 중 한 명이다. 도쿄제과학원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하고 일본 유수의 제과점에서 점원에서부터 주방 업무 보조 등, 밑바닥부터 차근차근 밟아 올라간 탄탄한 실력의 소유자. 맛있는 케이크와 쿠키를 만들기 위해 도쿄의 유명하다 소문난 제과점을 전전하며 몸무게가 불어나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남보다 배 이상 칼로리를 소비하는 그이지만, 이를 무색케 할 정도로 정말 많은 케이크와 쿠키를 먹었다) 안 먹어 본 케이크와 쿠키가 없을 정도로 노력했다. 그 결과 이미 자신만의 레시피를 보유하며 쿠키 모리만의 ‘맛’을 만들어냈다. 이쯤 되면 성공한 파티시에의 이력으로 충분한 스토리겠지만 ‘완벽주의자’의 피를 갖고 태어난 그에게 이는 ‘기본’에 불과하다. 정작 그를 유명하게 만든 것은 기껏해야 어른 손바닥을 벗어나지 않는 작은 쿠키 한 조각. 그는 크리스마스나 특별한 날 시즌 상품으로 나오거나 아니면 집에서 만들지 않는 한 쉽게 접할 수 없는 인형 같은 ‘진저 브레드 맨 쿠키’를 상품화하고, 이는 많은 사람들의 입가에 미소를 짓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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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키 모리 숍이 특별하게 보이는 이유, 바로 보기만 해도 황홀한 슈거 아이싱 케이크가 전시되어 있기 때문. 마치 도자기로 만든 듯이 곱고 한 치의 흐트러짐도 없는 슈거 케이크.
설탕과 달걀로 만든 반죽을 원형의 빵에 입히고 굳히는 작업을 통해 만드는 슈거 아이싱 케이크는 흘러내리는 생크림으로 표현할 수 없는 디테일까지 책임지는 것은 물론 오랫동안 보관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쿠키요? 맛도 중요하지만 사람들이 쿠키를 통해 얼마나 행복해지는가가 더 중요하지요.” ‘과연 먹을 수 있을까? 아니 먹기에 너무나 아까운데!’ 단순한 형태의 쿠키 위에 귀여운 그림 하나 더해진 것으로 극진한 대접을 받는 김현숙 씨의 쿠키. 그런데 이 쿠키의 탄생 과정이 보기보다 만만한 것이 아니다. ‘아이싱 쿠키’는 조각가의 조형감과 화가의 색감, 세심한 터치가 없으면 탄생하기 힘든 작업. 게다가 이 모두를 아우르는 세련된 감각까지 더해져야 한다. 그의 책꽂이에는 최신 제과 잡지와 요리책이 빼곡한 것은 기본, 제빵 도구 상가에 가면 쉽게 구할 수 있는 틀을 마다하고 쿠키 형태를 직접 도안해 자신만의 틀을 제작하는가 하면(틀 제작은 2~3번의 수정 과정이 따르는 번거로운 작업이다), 두 가지 색깔로 표현해도 그만인 그림도 세심하게 하나하나 제 색상을 입히고야 만다. 반죽에서 도안, 장식 등 모든 과정이 100% 수작업으로 이뤄지는 쿠키 모리의 쿠키는 만드는 이의 열정과 사랑이 있지 않고서는 탄생할 수 없는 작품과도 같다.
이곳의 빵은 반짝이는 유리 진열장 대신 나뭇결이 살아 있는 목가적인 선반 위에 내놓는다. 쿠키 모리를 찾는 사람들은 단순히 빵과 쿠키만 구입하는 것이 아니라, 이곳만의 서정까지 함께 덤으로 얻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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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김현숙 씨는 화려한 기교와 장식보다는 정갈한 솜씨가 돋보이는 홈메이드 스타일을 지향한다. 피낭시에와 견과류를 넣은 쿠키 등은 누구나 손쉽게 집에서 만들어 먹을 수 있는 종류라고.
2, 3 외국에서도 생일이나 크리스마스 등 특별한 날에만 만드는 진저 브레드 맨 아이싱 쿠키. 쿠키 모리에서는 이 특별한 쿠키를 항상 만날 수 있는 것은 물론 매주, 매 시즌, 매달 새로운 테마로 업그레이드된다는 사실. 이번 달에는 밸런타인데이를 위한 사랑스러운 디자인이 주를 이룬다.
제2의 파티시에를 위한 기회를 만들다 지금 쿠키 모리는 두 가지 모습으로 존재한다. 하나는 누구나 언제든 문을 열고 들어갈 수 있는 따스한 감성이 깃든 파티시에 숍, 다른 하나는 그런 감성을 빚고 굽는 법을 알려주는 쿠킹 스튜디오. 물론 모두 김현숙 씨가 운영하는 곳으로, ‘쿠키 모리’라는 같은 이름을 갖고 생김새 또한 비슷하지만 그 역할만큼은 확실히 구분된다. 숍에서는 쿠키를 맛보고 선물하는 기쁨을 선사한다면 스튜디오에서는 케이크와 쿠키를 만드는 즐거움을 알려준다. 그런데 김현숙 씨는 이 두 곳 중 쿠킹 스튜디오에 조금 더 애착을 갖는다. 쿠키를 만들며 행복을 찾은 그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자신과 같은 마음을 공유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이 어느덧 4년째 이어지고 있다. “흔히 베이킹을 어렵게 생각하지만, 얼마나 쉽고 즐거운 ‘놀이’인지 모릅니다. 한 컵의 밀가루에 무엇을 넣고 어떻게 굽는가에 따라 촉촉한 쿠키가 되는가 하면, 부드러운 케이크가 되는 등 연금술사가 되는 신비한 경험을 맛볼 수 있지요.” 그의 클래스는 회사원부터 주부 그리고 연예인 등, 잠시나마 자신의 일상에서 벗어나 동화 같은 마법에 빠져들고자 하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그리고 그는 이들에게 행복을 ‘제대로’ 전해주고자 쉽고 맛있는 레시피를 개발하고 아기자기한 소품으로 꾸민 스튜디오에서 수강생 전원이 실습할 수 있도록, 한 클래스당 8명이라는 정원을 준수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수업에 대한 감상평은 ‘정말 쉽고 재미있게 배웠는데 실력은 수준급’이라는 말로 표현된다.
1 오래된 주방의 모습을 연출하기 위해 낡은 벽돌로 벽을 장식하고 벽화를 그려 넣었다.
2, 4, 6, 8 베이킹 클래스를 운영하면서 가장 보람 있는 것은 바로 수강생들과 맺은 끈끈한 유대 관계. 외국 여행을 다녀오면서 ‘선생님’을 생각하며 샀다는 온갖 종류의 빵틀과 쿠키틀은 그에게 소중한 재산이자 빛나는 훈장이다.
3, 5 , 7 파티시에에게 목숨과도 같은 것이 바로 조리 도구. 초콜릿 제작 도구들과 케이크에 생크림을 바를 때 사용하는 스패출러 그리고 커팅 도구들은 이제 몸의 일부, 분신처럼 그의 또 다른 손이 되었다.
소녀적인 순수한 감성과 정교하고 엄격한 장인정신마저 겸비한 파티시에 김현숙 씨의 꿈은 ‘후배 양성’이다. “후배를 키워보고 싶어요! 요즘 친구들, 자신의 직업에 대한 진지함과 끈기가 부족해요. 특히 파티시에라는 직업이 아직은 근무 조건이 열악하다 보니 금세 포기하고 이직하는 경우가 다반사니 말이죠.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이 ‘절실한 기회’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쳐버리는 후배들을 볼 때마다 안타까울 따름입니다.” 일본에서 견습생 시절, 밀가루 포대 창고에서 새우잠을 자면서도 새벽 4시 반이면 똘망똘망 눈을 뜨고, 오늘은 어떤 케이크 만드는 것을 볼 수 있을까 그 귀하디귀한 ‘기회’에 설레던 마음을 여전히 최고의 재산이라 여기는 그. 그의 꿈이 이루어지면 그 초심을 간직하는 또 다른 김현숙 씨가 나타낼 테고, 그 덕분에 우리는 보다 달콤한 세상을 만날 수 있게 되지 않을까.
1 간판을 보지 않으면 행여 꽃집 아니냐 오해를 받을 정도로 항상 숍 안팎으로 꽃과 식물을 장식해놓는다.
2 쿠키 모리는 어쩌면 주방이 더 매력적인지도 모르겠다. 주방 유리창에 일러스트 장식을 한 것은 물론 벽면 곳곳에 벽화가 자리하고 있다.
3 먹기에 너무나 아까운 밸런타인 진저 브레드 맨 쿠키.
4주방과 매장 사이 선반에는 김현숙 씨가 모은 앤티크 저울이 진열되어 있다.
5 바닥에도 그림 장식을 잊지 않을 정도. 쿠키 모리 숍 곳곳에는 낭만적인 회화의 향연으로 따스한 정감이 감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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