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김영원・홍정표
만들기의 즐거움
‘Art is’, 2004
홍정표는 1976년생으로 홍익대학교와 동 대학원 조소과를 졸업했다. 2004년 제26회 중앙미술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했으며, aA디자인뮤지엄, 몽인아트센터, 애경화학 등에서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중력 무중력’, 1978
김영원는 1947년생으로 홍익대학교 미술대학 학장, 한국조각가협회 이사장을 역임했다.문신미술상과 선미술상, 김세중 조각상 등을 수상했다. 2월 26일까지 동대문디자인플라자에서 <나-미래로> 조각전을 열고 있다.
“선생님, 저는 만드는 게 좋아요.” “재미없으면 이걸 왜 하겠어? 돈이 되는 것도 아니고.” 백발 성성한 스승과 나이 마흔에도 여전히 학생처럼 보이는 제자가 얼굴을 마주하고 웃는다. 작년 홍익대학교 미대 교수에서 퇴임한 조각가 김영원(71세)은 한국을 대표하는 사실주의 조각의 대가다. 광화문광장 세종대왕 동상이 그의 작품. 매끈하게 다듬은 울긋불긋한 표면이 이채로운 상어 조각 ‘Art is’로 2004년 제26회 중앙미술대전에서 만장일치로 대상을 수상한 홍정표 작가(42세)는 김영원 작가가 키워낸 많은 조각가 중에서도 가장 아끼는 제자다.
지난 40년간 사실주의에 기반을 둔 인체 조각에 몰두해온 김영원 작가가 처음 이름을 알린 건 추상 조각이었다. “대학 3학년 때 ‘파열’이라는 추상 작품으로 전국대학미전에서 그랑프리를 탔습니다. 작품에 대해 ‘우리 전통에 대한 부정의 몸짓’이라고 설명하곤 했는데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 말이 겉멋 같아서 참 부끄러웠어요.” 이성을 바탕으로 한 서구 합리주의가 한계에 다다르자 나타난 것이 추상예술이었지만, 새마을운동이 한창이던 1970년대 초반 한국엔 부정할 전통조차 없었다. “현실에 기반을 둔 사실주의 조각을 하리라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미술계는 추상 일변도였지요. 교수님들도, 동료 작가들도 ‘왜 시대를 거꾸로 되돌리려 하느냐’며 저를 만류했습니다. 하지만 묵묵히 끝까지 해보자고 생각했죠.”
홍정표 작가가 가장 좋아하는 스승의 작품도 사실주의 인체 조각을 시작할 무렵인 1970년대의 ‘중력 무중력’ 연작이다. “철봉에 매달려 있는 것처럼 팔을 쭉 펴고 있는 조각이었습니다. 인간이 관여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개념인 중력을 인체 형상으로 표현해낸 것이 놀라웠지요.” 하지만 홍 작가의 작업 방식은 한 주제에 오래 천착하는 스승과 사뭇 다르다. “주제와 성격이 다른 작품을 계속 새롭게 만듭니다. 그래서 고민이 많습니다. ‘내가 산만한가?’ 자문해보기도 하고요.” 그런 제자에게 스승은 “고민을 많이 해야 예술이 된다”고 말한다. 우리 세대 작가들은 거대 담론에 익숙합니다. 하지만 요즘 젊은 작가들은 사소한 것에서 가치를 찾아내고 그때그때 느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지요. 결국 그런 작업이 모여 작가의 정체성을 이룰 겁니다.” 학창 시절 홍정표 작가는 그리 고분고분한 제자는 아니었다. 인체 조각을 가르치려는 스승 앞에서 고집스레 애니메이션 캐릭터를 만들었다고. 하지만 전통적 조각의 미덕을 고스란히 유지한 채 새로운 시대를 읽는 날카로운 감각을 겸비한 작가로 성장한 제자가 스승은 기특하다. 옆에서 스승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홍작가는 이렇게 덧붙인다. “2015년에 전시를 하면서 규모가 큰 작업을 할 기회가 생겨 여러 가지를 시도했는데, 저도 모르게 입체를 만들고 있더라고요. 결국 나는 조각가라는 인식이 새삼스레 들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0년 전인 1980년대 중ㆍ후반은 김영원 작가에게 전환점이 되는 시기였다. 민주화로 시대가 바뀌는 걸 감지한 그는 완성한 조각을 부수고 해체하며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 고통스러운 과정의 결과가 최근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전시하는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으로 인체를 자르고 갈라 평면과 입체, 공간의 경계를 해체한 조각이다. 40대 이전에 자신이 만든 작품은 모두 습작이라고 생각한다는 일흔 살 조각가는 이제 막 40대로 접어드는 제자를 이렇게 격려한다. “너 자신을 믿고 최선을 다해라.”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 것 같았는데, 요즘엔 더 잘 모르겠어요.” “내 나이 먹어도 마찬가지다. 편안하게 되는 일은 하나도 없더구나.”
“인체 조각이라는 하나의 주제로 40년간 작업해오신 선생님은 저의 참 스승이십니다. 거대한 중력을 인체로 표현해낸 선생님의 작업은 놀라웠죠. 주제와 성격이 다른 작품을 계속 새롭게 만드는 저는 요즘 고민이 많습니다.” _홍정표
“거대 담론에 익숙한 우리 세대와 달리 요즘 작가들은 사소한 것에서 가치를 찾고 느낀 것을 자유롭게 표현하며 정체성을 이룹니다. 정표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_김영원
글 정규영 기자
- 문화 예술계 선후배의 공감 30년 차이 만들기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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