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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교육 걱정없는 세상 수학사교육포럼 대표 최수일 교육은 줄 세우기가 아니다
수능에서 영어 과목이 절대평가가 된 지금, 수학이 수험생의 당락을 결정한다는 이야기가 파다하다. 바야흐로 수학 못하면 대학 가기 어려운 시대가 온 걸까? 하지만 올해 수능을 얼마 앞두고 만난 수학 전도사 최수일 선생님은 좀 더 근본적인 문제에 대해 이야기한다.

수능을 앞두고 최수일 선생님을 만났다. 선생님은 현재 교육 단체 ‘사교육걱정없는세상’의 수학사교육포럼 대표 겸 수학교육연구소 소장이다. 28년간 일선 학교에서 수학을 가르치다 퇴임한 그는 <수포자 신분 세탁 프로젝트> <착한 수학> <하루 30분 수학> 등 주로 수학을 어려워하는 학생을 위한 책을 썼다. 최수일 선생님은 수학으로 고통받는 많은 학생과 학부모의 고민 해결에 도움을 주는 수학 전도사로서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Q 수능이 코앞입니다. 이젠 문과라고 해도 수학을 못하면 대학을 못 가는 시대가 된 건가요?
그런 이야기가 있는 모양입니다. 그동안 파행적으로 이뤄지던 영어 평가 방식이 절대평가로 바뀌면서 점차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습니다. 영어를 필요 이상으로 학습할 필요가 없습니다. 말도 안 되는 문제를 꼬아서 내도 안 되지요. 영어가 모국어인 사람도 제대로 못 푸는 영어 문제가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저는 수학 역시 마찬가지로 평가 방식이 상대평가가 아닌 절대평가로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정 수준 이상이 되어서 공부할 능력이 있는 학생을 뽑으면 되지, 꼭 모든 학생을 줄 세우는 것이 교육은 아닙니다. 변별력을 최우선으로 삼는 시험이 현재 교육 방식의 병폐를 낳았고, 오랫동안 곪아오다가 여기저기서 터지고 있습니다. 이건 올바른 교육이 아닙니다. 교육의 본질을 해치면서까지 그런 줄 세우기를 꼭 해야 할까요?

Q 평가하는 데 꼭 등수를 매기지 않아도 된다는 말씀이시죠?
전 세계적으로 교육 평가 방식은 유럽식이 대세입니다. 유럽에서는 객관식 시험문제를 낸다든가 등수를 매긴다든가 천편일률적인 문제집을 푼다든가 하지 않습니다. 시험은 주관식 이거나 서술형 혹은 논술이죠. 자신의 생각을 써야 합니다. 과목이 무엇이든 간에 말이지요. 마이클 무어 감독이 만든 핀란드 교육에 대한 다큐멘터리가 있습니다. 거기서 핀란드 선생님들이 미국 교육을 살리기 위해 가장 시급하게 제안하는 것이 ‘숙제를 없애라’ ‘표준화된 시험을 없애라’ 등입니다.

숙제를 없애야 학생 스스로 공부하고, 표준화된 국가시험은 문제 푸는 기술만을 가르친다는 이야기지요. 그런 핀란드에서 우리나라 교육을 보면 어떨까요? 우리나라는 미국보다 훨씬 심각한 데 말입니다. 단순 암기력을 평가하는 문제는 더 이상 의미가 없는데도, 아직 일선 학교에선 이런 식의 문제가 대부분이지요. 다른 과목도 그렇지만, 수학은 특히 기본 개념을 잘 알고 있는가를 평가하는 문제를 내야 하는데 자꾸 등수를 매기기 위한 문제를 냅니다. 기본 개념을 측정하는 문제를 내기가 쉽지 않거든요. 선생님들이 고생하고 고민하더라도 제대로 된 문제를 내야 합니다.

Q 그런데 학교의 주관식 시험만 해도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의 채점 방식이라는 느낌이 많이 듭니다.
현재 주관식 문제의 평가에 한계가 있다는 건 알고 있습니다. 부모님들이 학교에 건의도 많이 하고, 불만도 있으시겠죠. 기본적으로 공교육에 대한 신뢰가 무너진 상태니까요. 하지만 이 역시 그 결과를 가지고 등수를 매기기 때문입니다. 등수가 중요하지 않다면, 1점에 일희일비하지 않아도 되는 상황이라면 답을 가지고 선생님과 논의하고 토론하고 아이들끼리 의견을 나누며 그 과정 속에서 계속 뭔가를 배워나가겠지요. 주관식 평가에 사소한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제대로 된 교육’이라는 큰 방향과 일치한다면 뚝심 있게 밀고 나가야 합니다.

일정한 기준을 세워 그 기준만 넘어서면 되는 식으로 평가 방식을 바꾸면 모든 아이를 다 줄 세우지 않아도 됩니다. 특히 상위 몇 퍼센트의 변별을 위한 시험이 꼭 의미가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수능을 치르고 나면 매번 나오는 기사가 있지요. 올해 수능이 ‘물수능’이었나, ‘불수능’이었나에 관한 기사입니다. 그 기준이 무엇인가요? 상위 4%(의대 진학생 기준) 줄 세우기를 얼마나 잘했느냐에 따라서 결과가 달라집니다. 이 학생들 줄을 잘 세워야 욕을 안 얻어먹는 겁니다. 그걸 결정하는 건 극히 일부 문제에 불과하지요. 수험생 65만 명 중 7.5%만 서울 소재 대학에 진학합니다. 사실상 수능은 이 소수를 위해서 존재하지요. 저는 이런 평가 방식이 절대적으로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Q 수능보다는 입학사정관제가 더 낫다고 보시나요?
입학사정관제가 완벽하지는 않지만 단 하루 치르는 수능보다는 낫습니다. 이제 우리나라에 입학사정관제가 도입된 지 10년째가 되었고,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습니다. 입학사정관들도 나름의 노하우가 쌓였고 학생들 보는 눈이 생겼지요. 일정 수준 이상의 학습 능력이 다면 저는 입학사정관제로만 학생을 뽑아도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부모님들이 아직도 불안해하는 부분이 있고 불만도 있을 테지만, 점차 나아지리라 확신합니다. 심층 면접을 통해 기본이 안 되어 있는 학생을 거를 수 있습니다. 과도하게 경쟁하지 않아도 됩니다. 모든 학생을 다 입학사정관제로 뽑을 필요도 없습니다. 중위권 대학은 고등학교 내신 성적으로만 뽑아도 충분합니다. 입학사정관제에서 가장 유의해서 보는 것은 ‘자기 주도 학습이 가능한 학생인가’입니다. 대학에 와서 스스로 공부 주제를 정하고 학습할 만한 능력과 자세가 되어 있는가를 보는 거지요. 상위권 대학은 입학사정관제로 뽑고, 중위권 이하는 고등학교 내신으로만 뽑으면 공교육 자체가 이렇게 파행적으로 흘러가지는 않을 겁니다.

Q 수학 선행 학습, 꼭 해야 할까요?
수학은 예습보다는 복습, 선행보다는 심화 학습이 중요한 과목입니다. 학부모의 역할은 학생이 기본 개념을 제대로 이해했는지를 살피는 것입니다. 기본 개념 학습이 잘되어 있다면 당장 시험을 잘 못 친다 해도 조바심 내지 말고 기다리세요. 개념은 스스로 깨우쳐야 알 수 있지, 누군가가 지식을 집어넣는다고 해결되지 않습니다. 개념을 익힌 후, 스스로 설명할 수 있다면 그 개념은 내 것이 됩니다. 선행 학습하는 학생을 보면 대부분 “앞선 과정을 다 떼었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런데 학교에서 시험을 보면 만점이 안 나와요. 다 떼었는데 왜 틀리죠? 그리고 그걸 몇 번씩 되풀이합니다. 제대로 다 공부했다면 왜 또 합니까? 괜히 속도 내느라 선행하지 말고 할 때 제대로 공부하는 편이 낫지 않나요?

학원은 선행 학습을 부추겨야 돈을 벌 수 있습니다. 그러니 자꾸 불안감을 심어주고 선행 학습을 조장합니다. 그렇게 앞서 나간 진도는 학교에서 시험을 안 보니까 학생이 제대로 배웠는지 아닌지 검증할 방법조차 없습니다. 그러다 보면 결국 사교육 시장에 끌려다닐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악순환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선행 학습을 무리하게 하지 않고도 수학을 잘할 수 있습니다. 초등수학은 어느 학부모든 집에서 가르칠 수 있습니다. 우선 하루에 30분씩 아이와 같이 수학 공부를 해보십시오. 괜히 학원에 쓸데없이 아까운 돈 쓰지 마시고요. 사교육에 기대기보다는 학생 자신의 힘을 길러야 합니다.

Q 아이들 데리고 수학 체험 여행하시는 이유도 그 연장선 상에 있다고 볼 수 있겠죠?
수학을 생활 속에서 배웠으면 합니다. 원리를 이해하고 수학이 우리 생활과 밀착된 학문이라는 사실을 깨치길 바라고 있습니다. 중국, 일본, 유럽 등 여러 나라에 다녀왔습니다. 제가 먼저 가보고 수학과 관련한 장소와 주제를 찾아서 프로그램을 짭니다. 여행 중에는 매일 밤 수학 관련 세미나를 합니다. 하루 종일 돌아다니고 어떻게 몇 시간씩 세미나를 할까 싶지만, 아이들이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참석합니다. 일방적으로 주입하는 방식이었다면 밤늦도록 수학에 관해서 토론할 수 있을까요? 남의 얘기를 귀 기울여 들으면서도 본인이 하루 동안 본 내용, 깨우친 내용을 손 들고 말하고 싶어서 아이들이 늦도록 깨어 있습니다. 그런 걸 보면 아이들의 가능성을 믿을 수밖에 없습니다.

간혹 속한 단체의 이름이 ‘사교육 없는 세상’이냐는 질문을 받는다는 최수일 선생님. 그는 사교육의 필요성을 부정하지 않지만, 그로 인해 불필요한 걱정을 하는 사회를 만들고 싶지 않아 수학 교과과정 개정 등 수학 교육과 관련해 다양한 일에 관여한다. 학생들을 무겁게 짓누르고 있는 교육과정이 느리게라도 바른 으로 나아가길 바라는 마음에서다. 그리고 수능을 끝낸 모든 수험생들, 잠시나마 걱정 내려놓고 편히 쉬기를.


글을 쓴 김지영은 일을 하며 아이를 키운다. 무섭도록 빠르게 변하는 대한민국 교육 체계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지 않을 북극성 같은 지표에 목말라 있다. 그가 객원 기자로서, 뚜렷한 신념을 현장에서 실천하는 교육 전문가를 매달 한 명씩 인터뷰한다. 현재 역동적인 홍보 대행사 함샤우트에서 근무하며, 듣는 이의 마음을 움직이는 ‘전달’의 핵심 원칙을 담은 <빠르게 명확하게 전달하는 힘>을 썼다.



글 김지영 사진 이기태 기자 담당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