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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 내일 에코모더니즘, 과학이 지구를 구원한다는 믿음
일군의 환경 운동가와 과학자들이 선언문을 발표했다. 기존 환경 운동의 이상주의가 환경을 해치고 있으며, 오직 과학기술만이 지구를 살릴 수 있다는 것. 이들이 말하는 에코모더니즘은 새로운 한편, 전혀 새롭지 않다.


칠흑 같은 우주를 배경으로 보석처럼 푸르게 빛나는 둥근 행성.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이미지를 온 세상에 알린 데는 과학 저술가이자 환경 운동가 스튜어트 브랜드Stewart Brand의 공이 크다. 그는 1966년 “왜 우리는 아직 지구 모습을 사진으로 보지 못했을까?”라고 쓴 배지를 제작하는 프로젝트로 여론을 모았고, 이듬해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인공위성에서 바라본 지구 사진을 배포했다. 브랜드는 이 상징적 이미지를 활용한 간행물 <지구 카탈로그(The Whole Earth Catalog)>를 발행하며 ‘자연으로 돌아가자’는 히피 문화를 상징하는 인물이 되었고, 사람들에게 지구를 하나의 개체로 받아들이게 함으로써 환경 운동의 시작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그는 2009년 이라는 책을 내면서 기존 환경 운동과 결별을 선언했다. 지구온난화에 대응하기 위해 원자력발전과 유전자 재조합 식물(GMO) 등 과학기술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6도의 멸종> <지구의 미래로 떠난 여행> 등의 저서로 기후변화의 위험에 대해 알린 환경 운동가 마크 라이너스Mark Lynas 역시 최근 원자력발전과 GMO에 대한 태도를 바꾸며 자신이 몸담고 있던 그린피스 등 환경 운동 단체의 비과학적 이상주의를 비판했다.

이들을 포함한 과학자와 언론인, 환경 운동가 18인이 작년 4월, 홈페이지(ecomodernism.org)를 통해 ‘에코모더니스트 성명서(An Ecomodernist Manifesto)’를 발표했다. 성명서에 따르면 과학기술은 지구온난화를 해결하고, 환경 파괴를 막기 위해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유일한 해결책이다. 에코모더니즘은 과학기술이 인류의 모든 문제를 해결할 거라고 믿은 20세기 초반 모더니즘과 기존 환경 운동의 현대화를 동시에 의미하는 이름이다. 환경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이들의 방법은 다름 아닌 분리(decoupling)다.

도시화를 가속해 인간을 자연과 떨어뜨리고, 원자력발전을 통해 자연 자원을 덜 쓰고, 대규모 기업 농경과 GMO 작물 연구를 통해 농지 면적을 줄이자는 것. 에코모더니스트는 자신들의 새로운 관점이 기후 변화는 물론, 전 세계적 빈곤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해답이라고 여긴다.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 <빈 서판> 등을 쓴 베스트셀러 작가이자 인지과학자인 스티븐 핑커, 노벨물리학상을 수상한 버턴 리히터 스탠퍼드대 교수 등 저명한 과학자들이 최근 에코모더니스트가 발표한 원전 폐쇄 반대 공개 서한에 함께 이름을 올렸다.

에코모더니즘은 국내에 아직 잘 알려지지 않았다. 국립생태원 최재천 원장, 서울시립과학관 이정모 관장 등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관련 분야 과학자에게 에코모더니즘에 대한 의견을 물었지만, “아직 들어보지 못했다”고 답했다. 이들은 모두 과학 만능주의를 경계해야 한다고 말하면서도 환경 운동이 달라져야 할 필요성에 대해선 일정 부분 동의하고 있었다. 최 원장은 과학적 근거 없이 GMO 연구를 반대하는 여론을 우려했고, 이 관장은 과학자가 환경 운동에서 밀려나는 세태에 대해 안타까움을 표시했다.

물론 반대 의견도 존재한다. 영국의 저술가 조지 몬비오George Monbiot는 일간지 <가디언> 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소규모로 농사지을수록 수확량이 늘어나는 현상을 예로 들며, 에코모더니즘이 농경과 역사의 이해 없이 과학기술에 대한 위험한 낙관론을 부추긴다고 비판했다. 환경보건시민센터의 최예용 소장은 에코모더니즘이 결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라고 말한다. “체르노빌 원전 폭발 이후 원자력발전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진 몇 년 뒤에 비슷한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후쿠시마 사고가 난 것이 5년 전이지요. 안전을 위협하는 기술에 대한 경계심을 과학기술 혐오증으로 덧칠하는 건 아닐까요? 현재까지 가습기 살균제로 1천12명이 사망했습니다. 과학기술 발전도 중요하지만, 그 피해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는 일은 훨씬 더 중요합니다.”


일러스트레이션 전지원 기자

글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1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