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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재갑 예술감독 부산,예술로 통하다
지난 9월 2일, 부산비엔날레 오프닝을 하루 앞두고 부산시 수영구 망미동에 위치한 F1963에서 윤재갑 전시 감독을 만났다. 23개국 1백20여 명의 작가를 직접 섭외한 그는 ‘미술’이라는 장르와 ‘비엔날레’ 라는 형식의 만남이야말로 문화적 포용력과 관용을 기를 수 있는 가장 매력적인 소통의 장이라고 강조했다.



Q 고려제강의 옛 수영 공장 터를 부산비엔날레의 두 무대 중 하나인 ‘F1963’으로 재탄생시키기 위해 직접 고려제강 측을 설득했다고 들었습니다.
2014년에 수영 공장 터의 3백평 정도를 비엔날레 특별 전시관으로 사용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고려제강 관계자들과 만난 오프닝 축하 자리에서 “수영 공장 터 전부를 비엔날레관으로 꾸미고 싶다”고 적극적으로 어필했지요. 20년 넘게 큐레이터를 하며 마음에 품고 있던 구체적 공간 설계 아이디어까지 제시하자, 고려제강 홍영철 회장님께서 흔쾌히 수락하며 레노베이션 비용도 부담해주시기로 했습니다.

Q 마음에 품고 있던 공간 설계 아이디어란 구체적으로 무엇인가요?
1년간의 레노베이션을 거쳐 완성한 F1963은 큐레이터로서 오랫동안 꿈에 그리던 이상향의 공간 혹은 미술관입니다. 국내외 비엔날레와 미술 행사를 경험하며 ‘3백65일 24시간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문화 예술 공간을 만들자’는 결심을 했고, 열심히 궁리하다 보니 ‘네모 세 개’라는 아이디어가 떠올랐습니다. 첫 번째 네모는 천장이 뚫린 중정입니다. 바닥은 흙으로 덮여 있고, 하늘은 뚫려 있지요. 두 번째 네모는 카페테리아와 펍이 들어선 상업 공간입니다. 맨 바깥쪽의 가장 큰 네모를 부산비엔날레 전시 공간으로 쓰고 있습니다.

Q 레노베이션을 담당한 조병수 건축가와는 어떤 인연으로 함께하게 되었습니까?
조병수 건축가는 와이어 소재를 많이 사용하는 것으로 유명한데, 바로 고려제강과의 인연 때문입니다. F1963 뒤편에 자리 잡은 고려제강 본사도 지난 3월 조병수 건축가가 설계한 건물이지요. 원래 건물의 오래된 구조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관람객의 동선에 무리가 없도록 여러 가지를 신경 쓰다 보니 레노베이션에 어려움도 많았습니다.

Q 옛 공장 터에서 열리는 이번 부산비엔날레의 콘셉트가 ‘폐허 속에 피어난 야생화’라고 들었습니다.
화이트 큐브로 대표되는 현대의 미술관은 권위적이고 폐쇄적인 공간입니다. 관람객은 어떠한 소리도 용납되지 않는 진공 상태에서 흰 벽에 걸린, 혹은 공간에 놓인 작품을 일방적으로 대면해야 하지요. 그에 반해 공장은 누구나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고, 미술관보다 자유분방한 느낌이 있습니다. 오랜 시간 방치된 폐공장에 갖가지 다양한 예술 작품이 놓이는 광경이 흡사 ‘폐허 속에 핀 야생화’ 같은 느낌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이 공간에서 ‘프로젝트 2’ 전시를 진행 중입니다.

Q ‘프로젝트 2’에 참여한 작가 중 개인적으로 추천하고 싶은 작가가 있나요?
거대하게 돌아가는 양귀비꽃을 연상케 하는 작품 ‘Poppy’를 선보인 네덜란드 작가 조로 파이글, ‘희로애락’이라는 일체 감정을 덜어내고 생물학적, 사회학적 측면에서만 ‘생로병사’를 집중적으로 해부한 이스라엘 작가 아야 벤 론, 시민이 시위하고 있는 듯한 형태의 스케치 앞에 가짜 총을 놓아 관람객이 그 총으로 풍선을 쏘아 맞히면서 악인의 입장을 경험하게 하는 중국 작가 진양핑 등을 꼽고 싶습니다.

Q 익숙하지 않은 공간에서 전시를 준비하면서 작가들과 의견 충돌은 없었는지요?
미술관 형식의 전시에 익숙한 작가나 관람객에게는 공장이라는 공간이 굉장히 불편할 수 있습니다. 조명도 완벽하지 않고, 동선도 혼란스럽지만 소리와 빛, 색이 서로 충돌하고 간섭하며 제3의 의미를 자연스럽게 만들어내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몇몇 작가는 작품 콘셉트를 바꾸거나 설치를 여러 번 다시 한 경우도 있지요. 아주 세밀한 작업을 하는 작가의 경우에는 날것에 가까운 이 공간에 적응하느라 애를 먹기도 했습니다.

Q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전시 중인 ‘프로젝트 1’에 대한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부산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프로젝트 1’은 한국, 일본, 중국 작가 65명(팀)의 작품 1백42점을 전시하고 있는데, 한국의 김찬동, 일본의 사와라기 노이Sawaragi Noi, 다테하타 아키라Tatehata Akira, 우에다 유조Ueda Yuzo(J-Team), 중국의 궈샤오옌GUO Xiaoyan 등 5인의 큐레이터가 기획을 맡았습니다. 주제는 ‘한·중·일 아방가르드(an/other avant-garde china-japan-korea)’. 1960~1980년대 한국, 일본, 중국의 자생적 실험 미술인 아방가르드를 조망하는 전시입니다.

Q 현대미술에 대해 잘 모르는 일반 관람객에게 관람 포인트를 짚어준다면요?
디지털 기술이 발달한 이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모두가 ‘다중’입니다.1990년 이후 전 세계가 하나의 네트워크로 연결되면서 인종, 종교, 성별, 문화와 관련 없이 누구나 마음만 먹으면 서로 ‘연결’될 수 있습니다. ‘혼혈하는 지구, 다중 지성의 공론장’이라는 주제가 그렇게 어려운 말은 아닙니다. 작품을 감상할 때 타인의 마음, 상처, 기억을 들여다본다는 친밀한 자세로 다가가면 됩니다. ‘감상’은 늘 ‘진정성’과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Q 부산비엔날레를 통해 학생, 작가를 비롯한 부산 지역의 젊은 세대와 호흡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 마련될까요?
그를 위해 준비한 것이 ‘프로젝트 3’입니다. 부산시립미술관과 F1963 두 공간에서 파티, 학술 세미나, 음악회 등을 여는 ‘플랜 B(Busan)’를 기획해 미술, 영화, 춤, 음악을 하고 있는 젊은이들이 모여 공간을 활용할 수 있도록 했지요. 비엔날레는 인종, 국가, 성별, 문화, 종교가 서로 다른 예술가가 한자리에 모이는 축제의 장입니다. 보다 많은 사람, 젊은이가 이곳에 와서 그 다양성의 현장을 목격하면서 문화적 포용성, 관용성을 키우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바로 ‘미술’이라는 장르와 ‘비엔날레’라는 형식이 만났을 때 발휘되는 가장 큰 장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글 유주희 기자 사진 이창화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