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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대표 사진가 5인의 부산 참견錄
강과 바다가 그러하듯 시대와 만나 온몸 속속들이 서로의 살을 섞고 마침내 한 몸이 된 사람들의 역사가 이 땅 부산에 고스란히 숨 쉬고 있다. 한국 근대화의 격동을 온몸으로 겪어낸 도시 부산의 현재를 한국의 중견 사진가 5인이 사진에 담았다. 바로 지금 파리 국제예술교류센터에서 전시 중인 <부산 참견錄>이 그것이다.

이중적 세계_ 이갑철
ⓒ 이갑철, ‘동래학춤’, 동래, gelatin silver print, 50.8×60.9cm, 2014

달밤에 지신밟기하듯 잔걸음 잘잘 끌다가, 어깨를 너울거리다가, 한 발 들고 묵중히 세월 지키는 학처럼 서 있다가…. 볕바른 양지쪽이 동래학춤 사위로 들썩인다. “동래 사람들은 팔만 벌리면 춤이 된다”란 말처럼 타고난 흥취도, 이웃한 온천 덕에 한량도, 기녀도 많았던 동래에선 예부터 학춤이 유명했다. 들놀음춤에 사대부의 사랑방춤이 한데 어우러진 이 민속춤은 예술적 기교와 기품이 드높았다. 무의식의 에너지를 포착해온 사진가 이갑철(2015년 <부산 참견錄> 선정 작가)은 무심히 부산을 배회하다 동래학춤을 마주하고는 그 이중적 세계에 홀렸다. 갓 쓰고 흰 도포 입은 한량들이 학처럼 너울대는 그 사위에서 다양한 공명으로 공존하는 침묵과 외침을 본 것이다. 일품 사대부의 하얀 도포 자락 휘날리자 지상에 그려지는 새 그림
자, 사뿐사뿐 춤사위로 하늘을 쓸어안더니, 마침내 바람으로 돌아갔다.


집이 담은 역사_ 강홍구

ⓒ 강홍구, ‘사람의 집-프로세믹스 부산-감천 27, 28’, 감천, pigment print, 300×60cm, 2012

오래된 슬래브 지붕에 나무 그늘이 드리우면 골목은 금세 초저녁처럼 눅진해진다. 섧은 속바람 불더니 삐거덕 관절 소리 내며 문짝 고리 하나가 떨어져 나간다. 천마산 기슭, 슬래브 집들이 낡은 골목길을 타고 오르며 제 쓸모를 찾아 땅따먹기하고 있다. ‘부산의 마추픽추’ ‘부산의 친퀘테레’ ‘레고 마을’처럼 수도 없는 별칭을 매단 감천마을. 한국전쟁 때 팔도에서 모여든 피란민들의 궁군한 터전으로 시작해 1955년 태극도 교인 수천 명의 집단 이주촌이 되었다. 태극도 본부에서는 집과 집들은 서로 통하고, 경사면을 이용해 앞집이 뒷집을 가리지 않아야 한다는 네 귀 딱 맞는 계획으로 마을을 만들었다. 그 덕에 감천고개에서 옥녀봉 쪽으로 1감, 2감, 3감, 4감으로 나누어 구획한 계단식 택지, 가로 구조 골목들이 아직도 가지런한 평화로 남아 있다. 그리고 함께 메밀묵을 쑤어 나눠 먹던 사람들이 여전히 살고 있다. 사진가 강홍구는(2013년 <부산 참견錄> 선정 작가) 파노라마 사진을 통해 화면을 나누고 소실점을 없애면서 그 집 안에 살고 있는 사람의 삶을 읽어냈다. 그리고 ‘비좁은 공간을 탁월하게 이용하는 효율성’으로 부산의 살아 있는 역사를 가늠했다.


전쟁의 기억_ 강용석

ⓒ 강용석, ‘부산을 사수하라’, 부산역, gelatin silver print, 50.8×40.6cm, 2015

‘삼팔광땡’처럼 인생을 ‘예술로’ 한번 살아보기 위해 흑싸리 피 같은 인생을 짊어지고 떠나고, 또 돌아오는 부산역. 부산은 이렇듯 늘 문門과 같은 곳이었다. 1876년 개항 후 일본과 물자를 거래하던 문, 한국전쟁 때 전쟁 물자가 들어오던 문, 피란민과 전쟁 후 집안의 살림 밑천 그리고 산업 역군들이 몰려들던 문. 늘 바깥 사람들의 손질, 발질에 고단한 문이었지만 그 덕에 부산은 운동성과 역동성, 이질성과 타자성으로 들끓는 별천지가 되었다. 한국에서 가장 개방적이고 다양한 문화를 지닌 도시가 된 것이다. 한국전쟁의 경험과 기억을 현재 시점에서 돌아보는 사진가 강용석(2016년 <부산 참견錄> 선정 작가), 그가 부산역에서 발견한 전쟁의 기억이다. 한국전쟁을 거치며 피란민과 이민자의 도시가 된 부산, 물자든 문화든 사람이든 그 혼종성이 극대화된 도시를 그는 되짚었다. 부산역이라는 문을 통해 사람들이 대열을 지어 진군하듯 떠나가고 돌아온다. 떠나는 이의 사뭇 비장한등, 돌아오는 이의 얼굴 위로 부추꽃처럼 떠다니는 피곤 혹은 묘한 안도감이 출정대와 패잔병의 그것과 닮은 것도 같다.


경계의 땅_ 최광호

최광호, ‘해안선, 숨의 풍경’, 금정산, digital c-print, 60×90cm, 2013

살구씨보다 옅은 태양이 계속 땅을 굽어보는 금정산 정상의 오후. 사 녘이 모두 한 바가지 물속, 고당봉(금정산 정상)에 잠들었다. 이 태고의 심지 아래 온 땅이 평등하다. 산꼭대기에서 잉태해 저 아래 은빛 마천루를 휘감은 구름도, 유유히 시가로 흐르는 낙동강도, 여름의 감옥에서 해방되어 벌겋게 드러난 백사장도, 바람의 칼날에도 꼿꼿한 주상 복합 빌딩도, 대지를 밟고 일어선 활엽수림도 온통 동색同色이다. 하물며 수평선 저 멀리 대마도까지도. 사진가 최광호(2014년 <부산 참견錄> 선정 작가)가 포착한 부산은 ‘경계’의 이미지다. 바다와 땅이 만나는 경계, 자연과 역사가 만나는 경계 그리고 낯선 타자인 최광호와 부산이 만나는 경계. 이런 경계들이 서로 어울리고 부딪치는 과정이 그의 카메라에 모자람 없이 담겼다. 경계를 넘어서야 비로소 새로운 세상에 들어갈 수 있다. 녹아내리는 소금 인형처럼 사라지는 것이 경계를 없애는 것이요, 사라지는 것이 알아내는 것이다. 그렇게 나를 녹여야 세상으로 스며 흘러 들어간다. 저 산 정상 아래 온 땅이 동색으로 평등하듯, 그렇게 경계가 사라지듯.


아이러니의 땅_ 정주하

ⓒ 정주하, ‘모래 아이스크림’, 기장, gelatin silver print, 40.6×50.8cm, 2016

기장 대변항 부두에서 뱃고동 소리가 울먹이면 멸치 비린내 물씬한 흥정꾼들의 두런대는 소리가 잠겼다 떠오른다. 좌판에 앉아 근심을 퍼내는 아낙, 펄펄 뛰는 멸치 털이를 보려는 구경꾼, 멸치를 낚아채 가는 갈매기들로 시장통은 어느새 북새통이다. 저마다 녹슨 사연이 흩뿌려져 있는 듯한 기장의 한 귀퉁이 골목에서 사진가 정주하(2017년 <부산 참견錄> 선정 작가)는 허망한 아이러니를 붙잡아냈다. 그건 바로 망각되고 은폐된 원자력발전소의 불안이다. 해운대와 고리원자력발전소 사이에 ‘끼인’ 기장군의 어색한 풍경과 일상을 사진으로 담아낸 것이다. “세계에서 원자력발전소에 저렇게 가까이 가고, 기꺼이 노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지 않나 생각합니다.” 어느덧 위험 앞에서도 무디게 길들여진 사람들의 망각 기운, 그리고 사건 전야 같은 불길함이 이 고즈넉한 풍경 안에 담겼다. 오늘이 그러했듯 내일도, 모레도 그저 매일매일이 ‘아무렇지 않은 날’일 뿐일까?



*<부산 참견錄>은 2012년부터 고은사진미술관이 운영하는 중요한 기획전으로, 매년 한국의 대표적 중견 사진가 1인을 선정해 부산의 역사성과 지역성을 자신만의 시각으로 기록하도록 지원하고 있다. 그 결과물을 매년 전시로 선보이는 10년 장기 프로젝트로, 선정 작가들이 찾아낸 부산의 모습은 지역성을 넘어 다양한 역사적ㆍ 문화적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올해는 한불 수교 1백30주년을 맞아 그 결과물을 8월 30일부터 9월 25일까지 파리 국제예술교류센터에서 선보였다. 주소 부산광역시 해운대구 해운대로452번길 16



자료 제공 고은사진미술관(051-746-0055)

글 최혜경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10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