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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의 기술 잠시 멈추어 생각하기

사춘기 아들이 좋아하는 여자 친구가 생겼다고 고백했습니다. 어느 날, 학부모 모임이 있어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 갔는데 아들은 저를 보자마자 그 여자 친구를 가리키며 “엄마, 저 여자애예요. 어떤 친구들은 안 예쁘대요. 엄마 보기에는 어때요? 정말 예쁘죠?”라고 묻더군요. 제가 보기에는 외모가 전혀 예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서 바로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마음에 없는 말을 하지 않으면서도 어떻게 말해야 아들이 마음 상하지 않을까 고민했습니다. 아들이 처음으로 좋아하게 된 여자 친구인데, 바로 “엄마 보기에는 예쁘지 않은데”라고 말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가만히 잠시 그 여자아이를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외모가 아닌 다른 매력을 찾아보았습니다. 그러다 그 여자아이가 자기 엄마를 보며 활짝 웃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잠시 이야기를 나누다가 집중하며 다시 자신의 일을 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 여자아이를 가만히 보고 있는 저에게 아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엄마 어때요? 전 저 애가 세상에서 제일 예쁜 것 같아요.” 저는 아들에게 다가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엄마가 지금 가만히 봤는데, 인상이 정말 따뜻한 것 같아. 웃을 때 참 환하고. 그리고 자기 하는 일에 집중하는 거 보니까 똑똑해 보이네. 우리 아들이 저런 여자 친구를 좋아하는구나”라고 말했습니다. 아들의 얼굴이 활짝 피어올랐습니다. 그러더니 “그렇죠? 제가 요즘 쟤 때문에 공부하기 시작했다니까요. 진작 수학 공부 좀 할 것을, 기초가 부족해서 친구한테 물어가면서 작년 것부터 문제집을 풀고 있어요”라고 말했습니다. “와! 그래? 엄마도 정말 기쁘고, 저 여자 친구한테도 고맙네. 눈, 코, 입이 엄마가 좋아하는 외모에 가깝지는 않지만 그 이상으로 아름답게 보인다. 외모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니까 네가 볼 때 예쁜게 제일 중요하지.”

그 순간 저는, 아들이 스스로 성장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주는것만으 로도 고마웠습니다. 또 아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 여자아이에게 더욱 고마운 마음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를 나서면서 저는 아들의 질문을 듣자마자 제 안에 떠오른 생각과 판단을 쏟아내지 않은 것을 스스로 무척 뿌듯하고 다행스럽게 여겼습니다.

김나래, ‘Rose’, 종이에 혼합재료, 122×72cm, 2015, 왼쪽과 오른쪽, 작품을 보는 시점에 따라 다른 이미지가 보이는 이 작품은 ‘나는 당신과 더하여 내가 된다’는 작가의 생각을 표현한 것이다.
예전에 저는 누군가의 이야기를 들을 때 곧잘 제 생각을 표현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아니 꽤 오랫동안 그런 대화 방식에 익숙했습니다. 상대방이 말할 때 어떤 마음인지 이해하려 하기보다 속으로 그 말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생각하고, 상대방에게 내 의견을 전달하기 바빴습니다. 그런 저의 반응과 의견들은 천천히 생각한 뒤에 나오는 의식적인 말이라기보다는 습관적으로 판단한 경우가 많았습니다. 내 의견을 말하기 전에, 말하는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거나 이해하려는 노력을 하는 것이 긍정적인 소통에 얼마나 필요한지를 깨닫기까지 그 후로도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그것을 깨달은 후에도 많은 연습과 노력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과 다른 의견을 말할 때, 우리는 잠시 스스로 내면을 정리하는 침묵의 시간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상대방의 의도와 마음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때 우리는 서로의 마음을 보호하면서 자신의 의견을 솔직하게 말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상대방의 생각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안할 때는 더욱더 이러한 침묵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저마다 다른 가치와 욕구를 지닌 상대방을 이해할 때에만 자신의 의견이 상대방에게도 잘 받아들여지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우리에게 어떤 이야기를 할 때, 어떤 마음일지 먼저 헤아려 보세요. 그리고 상대방이 듣기 좋은 거짓 의견을 말하지 말고, 상대방의 생각을 비난하지도 않으며 우리의 생각을 강요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저 상대방의 마음을 이해해주고 서로에게 진정으로 바라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해보세요.


대화 교육 안내자 박재연은 ‘개인의 삶과 서로의 관계를 다시 회복하자’는 뜻을 담은 Re+리플러스 대표입니다. 권위적이고 폭력적인 사회에서 상호 존중의 관계로 나아가는 ‘연결의 대화’라는 대화 교육 프로그램을 전파하며 ‘말하고 듣는 방법을 다시 배우도록 지원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대화 교육의 대상은 기업에서의 갈등 중재부터 부모, 교사, 정신 치료를 받는 이들까지 다양하며, 저서로는 <사랑하면 통한다>가 있습니다.




#박재연 #연결의 대화 #대화의 기술
글 박재연 | 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4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