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대와 함께한 지난 16년은 행복한 날들의 연속이었습니다.” 애석하게도 이 말은 사실이 아닙니다. 건대 덕분에 많은 날이 행 복했지만 어떤 날은 짜증 났고, 또 어떤 날은 고통스러웠죠. 16 년 동안 건대는 여러 번 아팠습니다. 혼자 있을 때면 심하게 짖었고, 생의 대부분을 대소변 가리기에 실패했습니다. 누렇게 말라버린 오줌 자국을 지우는 일로 하루를 시작하는 건 그야말로 비극입니다. 축 늘어져 병원 철장에 갇힌 건대를 보는 일은 더할 나위 없이 괴로웠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답답한 건 제가 건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건대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어디가 불편한 건 아닌지, 지금의 삶이 행복하긴 한 건지… 항상 궁금했지만 알 길이 없었습니다.
‘우리 개의 마음을 알고 싶다.’ 저뿐만 아니라 반려견과 함께하는 사람들이 소망하는 일임과 동시에 이루기 힘든 꿈같은 목표일 겁니다. 간혹 개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은 그런 초능력을 갖고 태어나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평범한 우리에게도 개의 마음을 읽어낼 기회는 있습니다. 말 못 하는 개는 행동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합니다. 만약 개의 행동에 담긴 뜻을 읽을 수만 있다면 우리가 개의 마음을 이해하는 일도 불가능하지 않을 겁니다. 문제는 세상에서 가장 유능한 동물행동학자조차 개의 행동을 100% 이해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개의 행동은 순간적으로 일어나며,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복잡한 형태를 띠고 있으니까요. 어떤 행동은 의학적 문제의 결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가 개의 행동에 대해 취할 수 있는 가장 잘못된 태도는 인간의 관점에서 개 행동을 해석하는 것입니다. 가령 이런 식입니다. “우리 개는 다른 개를 보고 왜 저렇게 짖지? 아, 꼬리를 흔드는 걸 보니 기분이 좋아서 그런가 봐. 주말엔 개가 많은 애견 카페라도 데려가야겠어.”
모든 일에는 발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개의 행동을 이해하기 위한 첫걸음도 어떤 행동이 일어난 이유를 짐작해보는 것입니다. 물론 개의 입장에서 말이죠. 개는 왜 짖을까요? 개가 짖는 이유를 한 손에 꼽기란 어렵습니다. 개는 무언가를 원할 때 짖습니다. 기쁨과 흥분의 표시로 짖기도 하고, 두려움과 불안의 표현으로 짖을 수도 있습니다. 개는 본능적으로(다른 개가 짖을 때 따라서 짖는 사회적 짖음 행위가 대표적입니다) 짖기도 하며, 인지 장애의 증상 중 하나로 없던 짖음이 나타나기도 합니다. 결국 개는 우리가 상상하는 모든 이유로 짖을 수 있으며, 한 가지 이유로 짖기도 하지만 복합적 이유로 짖을 때가 더 많습니다.
개가 어떤 행동을 할 때 그 의미에 대한 결정적 힌트는 개의 보디랭귀지(몸짓언어)에서 드러납니다. 사람의 감정이 표정과 제스처에서 드러나듯, 개의 몸짓 또한 현재의 감정에 대한 많은 것 을 알려줍니다. 만약 우리가 개의 몸짓언어를 제대로 이해할 수만 있다면 개가 왜 그렇게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더라도, 개의 기분이 어떤지 정도는 판단할 수 있을 겁니다. 개가 짖음과 동시에 불안을 표현하는 몸짓을 보여준다면, 당장 개를 그 상황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어야겠죠. 우리가 개의 몸짓언어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개의 행동에 대해 우리가 오해하는 대부분의 상황은 몸짓언어의 잘못된 해석때문에 나타납니다. 꼬리 흔들기가 개의 기분 좋음을 나타낸다는 것 역시 대표적으로 잘못된 통설입니다. 개는 기분 좋을 때도 꼬리를 흔들지만, 흥분했거나 위협이 닥쳤을 때도 꼬리를 흔듭니다. 만약 낯선 개가 두려워서 짖는 것을 보고, 좋아서 짖는 걸로 오해해 온갖 낯선 개가 모인 애견 카페에 데려간다면 개는 어떤 기분일까요? 개를 조금 더 행복하게 해주고 싶다는 우리의 선의는 불행히도 정반대 결과를 이끌어내고 맙니다. 어쩌면 개는 평생 우리를 원망할지도 모르죠.
가끔 동물행동학이 왜 필요한가 묻는 사람들을 만납니다. 멀쩡히 건강하게 살고 있는 개를 불행한 개 취급하는 이유가 뭐냐며 항의 아닌 항의를 받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저는 일관된 질문으로 대답을 대신합니다. “당신의 인생을 왜 개와 함께하고 있으신가요?” 저는 건대의 삶이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만 소모되길 원치 않습니다. 건대의 삶도 제 삶만큼이나 행복하길 바랍니다. 동물 의 행복을 바란다면 그들의 행동에 귀 기울여주세요. 우리가 동물의 작은 몸짓에 담긴 의미를 이해할 때 동물의 삶은 훨씬 더 행복해질 테니까요.
글을 쓴 조광민 수의사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를 하는 특별한 수의사다. 미국 동물행동수의사회 정회원이며 ‘그녀의 동물병원’이라는 동물 행동 심리 치료 전문 병원을 운영하고 있다. 동물 애플리케이션 개발 자문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쓴 오영욱 건축가는 ‘오기사’라는 필명으로 유명한 건축가이자 작가로, 오다건축사무소의 공동대표를 맡고 있다. 베를링턴테리어 암컷을 키우는 그는 초보 개 아범의 심정과 에피소드를 자신의 블로그에 연재하고 있다.
- 수의사와 초보 개 아범의 동물 행동 심리 이야기 개의 행동을 보면 개의 마음이 보입니다
-
베를링턴테리어라는 동물 가족을 입양한 건축가와 동물행동심리치료학을 공부하고 열다섯 살 몰티즈와 함께 사는 수의사의 그림과 글을 연재해 동물과 사람이 함께 행복해지는 삶을 탐구합니다.#동물행동학 #반려견담당 유주희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6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