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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년층을 위한 첨단 IT제품 스마트 테크놀로지가 만드는 스마트한 노년 생활
한국과 중국 등 신흥국의 인구 구조가 빠른 속도로 고령화되고, 기존 선진국 역시 인구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베이비 붐 세대가 환갑을 넘기며 세계는 본격적인 고령화 시대에 접어들었다. <행복>은 해외의 사례를 통해 고령화 시대에 발맞춰 다양한 분야에서 빠르게 발전하는 첨단 테크놀로지를 소개한다.

권신홍, ‘궁그미’ 할아버지, 캔버스에 아크릴, 45×45cm, 2014
작가 필립 로스Philip Roth의 2006년작 <에브리맨>은 썩 괜찮은 인생을 살았지만, 흠결도 적지 않은 한 남자의 노년기를 차분하게 묘사한 장편소설이다. 주인공은 잦은 수술과 예고 없는 통증, 흐려지는 기억과 하나 둘 생을 마감하는 지인들의 부고에 지쳐 이렇게 읊조린다. “노년은 전투가 아니다. 대학살이다.” ‘에브리맨’이라는 제목처럼 별다를 것 없는 인물이 노쇠해지다 죽음에 이르는 과정을 담담하게 써 내려간 문장을 읽는 건 고통스러운 한편, 놀라울 정도로 새로운 경험이었다. 이야기 어디에도 구원이나 탈출구는 없었지만, 소설을 통해 간접 경험하는 주인공의 고통과 외로움은 기묘하게 위안을 주었다. 노화와 죽음은 언젠가 당연히 겪어야 할 삶의 한 부분일 뿐이라는 생생한 감각.

1 ‘R70i 에이지 슈트’는 노년의 어려움을 미리 체험하는 장치. 양쪽 어깨부터 무릎까지 여덟 곳의 관절에 부하를 걸어 움직임을 어렵게 한다. 2 케어프레딕트의 템포. 팔찌처럼 착용하는 웨어러블 기기다. 3 라이블리의 센서와 스마트 워치.
빠르게 발전하는 기술은 소설과 영화 속 이야기나 노인과의 대화를 통해 미루어 짐작할 수밖에 없었던 노년의 고통을 잠시나마 직접 경험하게 만들었다. 지난 1월에 열린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에선 얼핏 봐서는 쓰임을 짐작하기 어려운 보디 슈트가 화제가 되었다. 디즈니 테마파크를 기획, 설계한 대니 힐리스와 브랜 페렌이 창업한 테크 기업 어플라이드 마인즈 Applied Minds가 생명보험회사 젠워스 파이낸셜과 함께 개발한 ‘R70i 에이지 슈트’는 몸에 장착해 노년의 어려움을 미리 체험하는 장치다. 센서와 모터를 활용해 마치 브레이크를 거는 것처럼 인체 주요 관절을 움직이기 힘들게 만 들고, VR 헤드셋은 시야와 청력을 흐릿하게 만든다. 이 기묘한 장치를 체험한 <월스트리트저널>의 칼럼니스트 제프리 파울러는 기사에 “걷거나 팔을 들어 올리는 기본적인 일도 힘들었다. 심장박동 수가 증가했고, 샤워가 필요할 만큼 온몸이 땀으로 흠뻑 젖었다”고 토로했다. 젠워스 파이낸셜은 에이지 슈트를 활용해 각지를 순회하며 노화를 경험하는 행사를 계획 중이다. 공포를 활용한 보험회사의 상술로 볼 수도 있지만, 노년의 고통을 체험하는 일은 그들을 이해하고, 피할 수 없는 우리의 미래를 준비하는 데 분명 도움이 될 것이다.

첨단 테크놀로지를 기반으로 하는 많은 기술 기업이 어느새 현실로 다가온 고령화 시대를 겨냥한 다양한 제품과 서비스를 발표하고 있다. 노화를 연구하는 스탠퍼드 장수센터의 로라 카스텐슨 박사는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앞으로 3~5년 사이에 노인들의 생활이 완전히 달라질 것으로 예측했다. 몸이 불편하거나 질병을 앓는 노인도 집에서 편하게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 첨단 기술이 보편화될 것이기 때문. 낯선 요양 시설이나 병원이 아닌, 가족이나 오랜 지인이 있고 환경이 익숙한 집에서 생활하는 건 노년의 품위와 행복을 높이는 데 큰 부분을 차지한다. 카스텐슨 박사의 말처럼 가까운 미래에 드론과 로봇이 대화를 통해 물건을 옮기는 등 간단한 집안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물 인터넷의 발전으로 집 안의 모든 전자 제품이 연결되어 조작 없이도 최적의 집 안 환경을 유지하는 스마트홈 역시 말년의 편안한 생활을 도울 것이다.

4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는 스마트 약병, 글로우캡. 5, 6 파킨슨병 환자를 돕는 리프트웨어. 손잡이와 음식을 담는 부분이 따로 움직여 균형을 맞춘다.
현재 실제로 활용하는 제품과 서비스는 주로 센서와 스마트 기기를 이용한 것들이다. ‘라이블리Lively’는 조약돌처럼 생긴 센서를 집안 곳곳에 부착하고, 센서가 수집한 정보를 통해 떨어져 지내는 가족이나 보호자에게 노인의 상태를 알리는 서비스다. 약상자에 붙인 센서로 일정에 따라 약을 먹는지를 알 수 있고, 대문에 붙인 센서를 통해 외출 중이 아닌데 집 안에서 한참 동안 움직임이 감지되지 않으면 가족의 스마트폰으로 위험 신호를 보낸다. 노인이 가장 흔히 겪는 위험은 낙상인데, 뼈와 근육이 약한 노인은 바닥에 넘어지는 것만으로도 골절 등 치명적 부상을 입을 수 있기 때문. 센서와 함께 제공하는 노인용 스마트 워치는 화면을 누르는 것만으로 가까운 병원에서 앰뷸런스가 출동하는 서비스를 제공해 사고가 발생했을 때, 간병인이나 가족이 곁에 없어도 더 큰 위험이 생기지 않도록 돕는다. 케어프레딕트의 ‘템포Tempo’는 팔찌처럼 손목에 차는 스마트 웨어러블 기기다. 착용자의 움직임을 추적하고 다양한 신체 정보를 수집해 이상이 감지되면 미리 정해둔 보호자에게 위험 신호를 보낸다. 수면 상태가 아닌데 오래 바닥에 누운 상태를 감지하면 쓰러진 걸로 판단하는 식이다. 그 외 다양한 활동, 목욕과 식사, 음주, 수면의 질과 양 등 다양한 정보를 기록해 보호자가 수시로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 

기존에 널리 사용하던 생활 필수품을 새로운 기술과 아이디어로 노인이 쓰기에 알맞도록 개선한 경우도 있다. ‘리프트웨어Liftware’는 손 떨림이 심한 노인과 파킨슨병 환자가 보호자나 타인의 도움 없이도 음식을 먹을 수 있도록 만든 숟가락이다. 손의 흔들림을 감지해 손잡이를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는 식으로 균형을 맞춰 음식이 담긴 부분을 움직이지 않게 하는 것. ‘글로우캡 GlowCap’은 가장 스마트한 약병이다. 약병 뚜껑이 소리와 불빛을 내며 약 먹을 시간을 알려준다. 여전히 약병이 닫혀 있다면 환자에게 전화가 걸려올 차례. 글로우캡을 개발한 의료 기술 기업 바이탈리티의 자료에 따르면 글로우캡 사용 후 복약률이 98%까지 올라갔다. 이뿐 아니다. 글로우캡을 열고 약 먹은 시간과 횟수를 데이터베이스로 저장해 환자와 보호자, 의사에게 제공한다. 

1 ‘마더’ 센서를 약병에 부착하면 움직임을 통해 투약 여부를 알 수 있다. 2 도널드 럼즈펠드가 83세의 나이에 개발한 모바일 게임 ‘처칠 솔리테어’ 화면.
3 스마트 워치로 간편하게 조절할 수 있는 리사운드의 ‘링스 스퀘어’ 보청기. 4 착용자의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GPS 스마트솔’. 
GTX의 ‘GPS 스마트솔SmartSole’은 이름 그대로 위치를 추적할 수 있는 신발 밑창. 2013년 알츠하이머학회의 연구에 따르면 현재 1억 명 정도인 알츠하이머병 환자가 늘어나는 노인 인구로 인해 2050년에는 2억 8천만 명까지 증가할 전망이며, 환자의 60%가 한 번 이상 길을 잃은 적이 있다고 한다. 알츠 하이머병 환자가 스마트솔을 부착한 신발을 신으면 언제든 보호자가 환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것. 스마트폰, 스마트 워치와 연결해 환경에 따라 간단하게 볼륨과 설정을 조절할 수 있는 리사운드의 ‘링스 스퀘어LiNx2’ 역시 기술 발전으로 주변의 시선을 끌지 않은 채 좀 더 품위 있게 보청기를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한다.

2010년 영국에서 실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사람들은 노년이 되었을 때 질병과 노화로 인해 독립적으로 생활할 수 없는 것을 죽는 것보다 더 두려워한다고 한다. 기술의 발달은 아들딸에게 의지하거나 요양 기관과 병원에 가지 않고도 노인들이 가정에서 이전과 같이 독립적인 생활을 누릴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꼭 노년층을 위해 만든 것이 아니더라도, 노년기 삶의 질을 유지하고 고립을 피하기 위해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사용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전 국방 장관 도널드 럼즈펠드는 83세의 나이로 자신의 SNS 프로필 자기소개에 ‘앱 개발자’라는 직함을 더했다. 1970년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사로 유럽에서 생활할 때 배운 윈스턴 처칠의 솔리테어Solitaire(혼자 하는 카드 게임)를 예일 대학 출신의 젊은 프로그래머들과 함께 모바일 게임으로 개발한 것. 그가 개발한 ‘처칠 솔리테어’는 간결하고 직관적인 구성과 처칠의 동료가 되어 게임을 진행할 때마다 진급하는 독특한 시스템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지독하게 어려운 이 게임은 완수했을 때의 성취감이 아주 크다. 기술은 노년의 삶을 이전보다 낫게 할 뿐 아니라, 노인 역시 발전된 기술을 이용해 자신을 둘러싼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들 수 있다. 고령화 시대는 많은 이에게 ‐ 당사자인 노인들에게도 ‐ 새로운 기회를 주고 있다.

 
자료 제공 라이블리(mylively.com), 리프트웨어(liftware.com), 바이탈리티(vitality.net), 센스(sen.se), 젠워스 파이낸셜(genwort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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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정규영 기자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6년 3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