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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매사추세츠 주 붉은 빛이 탐스러운 크랜베리를 만나다
눈부신 햇살 아래 붉은 물결이 일렁이며 수를 놓는다. 매년 9월부터 11월까지 미국 매사추세츠 주는 새빨갛고 탐스러운 과일, 크랜베리 수확이 한창이다. 꽃부리가 마치 두루미(Sandhill Crane)의 머리 부분을 닮았다 해서 크랜베리cranberry라 불리기 시작한 이 열매의 독특한 습식 수확 현장을 보기 위해 크랜베리 농장을 다녀왔다.

크랜베리를 습식으로 수확한다. 물 위에 크랜베리가 떠 있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영화 <디파티드>에서 주인공 역을 맡은 리어나도 디캐프리오는 허름한 술집에 들어가 바텐더에게 이렇게 외친다. “크랜베리 주스!” 크랜베리는 포도, 블루베리와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3대 과일로 꼽힐 정도로 인기가 높다. 우리가 오렌지 주스를 즐겨 마시듯 미국에서 흔히 마시는 것이 크랜베리 주스다. 과거 미대륙의 원주민은 이 붉고 작은 열매가 지닌 의학적 효능을 일찍이 알아보고, 상처의 독을 빨아내는 약재로, 담요와 의류를 물들이는 천연 염색제로 활용해왔다. 또 사슴 고기와 다진 크랜베리를 섞어 페미카나pemmican라 불리는 비상 식량으로 만들어 배를 든든하게 채워주는 식재료로 요긴하게 사용했다. 이토록 기특한 크랜베리 효능이 새롭게 주목받으면서 지금은 전 세계에서 건강식품으로 인정받고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낯설게 느끼는 이가 많다. 붉은빛이 탐스러운 이 과일의 ‘진짜 매력’을 확인하기 위해 오션스프레이의 크랜베리 수확 현장으로 향했다.

85년의 역사, 7백여 농가의 주인
보스턴 공항에 내려 두 시간 남짓 달렸다. 보스턴의 고즈넉한 도시 풍경을 벗어나 울긋불긋한 단풍나무가 흐드러진 한적한 도로로 들어서더니 이내 레이크빌미들버러Lakeville-Middleboro에 다다른다. 이곳은 크랜베리로 다양한 가공품을 생산하는 오션스프레이 본사가 있으며, 일대 주변은 북미를 대표하는 크랜베리 생산지이기도 하다. 1930년 단 세 곳의 농장으로 시작한 오션스프레이가 어떻게 세계적 크랜베리 회사로 거듭날 수 있었을까? 오션스프레이 글로벌 사업 개발 수석 부사장 피터 와이먼Peter Wyman에게 그 대답을 들었다. “오션스프레이는 85년이라는 역사를 지닌 농업협동조합입니다. 세 명의 창립자는 크랜베리 젤리 소스와 클래식 주스를 생산하며 크랜베리 특유의 새큼한 풍미와 영양학적 가치를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이를 시작으로 좋은 제품을 만드는 기술력과 역사가 이어져왔고, 현재 7백여 농가가 오션스프레이를 책임지고 있는 주인입니다.”

7백여 농가의 평균 재배 면적만 18에이커에 이르며, 한 해 수확량은 약 7백만 배럴이라는 어마어마한 양을 자랑한다. 이렇게 수확한 크랜베리로 가공품을 만들어 전 세계 90개국에 수출하며 연간 약 20억 달러의 매출을 기록하고 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오션스프레이를 이끌어가는 농가 대부분이 여러 세대에 걸쳐 전통적 가족 영농 방식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들은 경제적 이익을 좇아서 크랜베리를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크랜베리가 지닌 맛과 영양학적가치, 80년이 넘는 세월 동안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정신적 유산을 소중히 여기며 품질 높은 크랜베리를 생산하고 있다.

붉은빛의 향연, 습식으로 수확하는 크랜베리
아버지의 뒤를 이어 크랜베리를 재배하고 있는 에이드리엔 몰러Adrienne Mollor의 농장을 방문했을 때 눈을 사로잡은 것은 허허벌판 같은 늪지대였다. ‘크랜베리는 어디에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녀를 따라 늪지대(우리나라의 논 같은 곳이라고 생각하면 된다)로 들어서자 발아래로 붉은 열매가 드문드문 보이기 시작했다. 재빨리 손으로 덤불을 파헤쳐보니 긴 덩굴줄기 아래로 촘촘히 매달린 크랜베리가 모습을 드러냈다. 텅 빈 노지처럼 보이던 이곳이 바로 잘 영근 크랜베리로 빼곡히 차 있는 늪지대였던 것이다.

1 습지대에 물을 채우면 크랜베리가 둥둥 떠오른다.
2 새콤한 맛이 입맛을 당기는 크랜베리 주스. 3 크랜베리 속 공기주머니를 설명하는 에이드리엔 몰러.
크랜베리를 수확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건식 수확으로, 제초기와 비슷한 수확 기계를 이용한다. 금속 톱니가 덩굴에서 열매를 떨어뜨리면 손으로 일일이 주워 기계 뒤에 부착된 삼베 주머니에 넣는다. 지금은 생크랜베리를 수확하기 위해 전체 생산량의 약 2%가량만 건식으로 수확한다. 나머지 98%는 습식 수확을 한다. 사실 19세기 전까지만 해도 건식으로만 수확했는데, 크랜베리를 효율적으로 수확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1963년부터 습식 수확 기술을 개발했다. 논둑처럼 비교적 높은 둑으로 둘러싸인 크랜베리밭에 물을 채운 뒤 교반기라 일컫는 워터릴 5 장비6를 사용해 물을 휘휘 젓는다. 그러면 무르익은 열매가 덩굴에서 떨어지면서 수면 위로 떠오르는데, 이 모습은 그 야말로 장관을 연출한다. “크랜베리 속에는 네 개의 공기주머니가 있어 수면 위로 떠오르죠. 그다음 흡입 장비로 빨아들여 채집을 시작해요. 친환경적이고 효율적 재배를 위해 우리 농장에서는 관개부터 수확까지 1년 내내 물을 재활용하고 있어요.”

4 땅이 넓은 나라답게 입구에서 한참을 가야 오션스프레이의 본사가 모습을 드러낸다.
에이드리엔 몰러의 설명을 들으며 수확이 한창인 곳으로 장소를 옮기자, 이내 새빨간 크랜베리가 물 위에 둥둥 떠 있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드넓은 대지 한 가운데서 땅이 사라지고 붉은 바다가 나타나 출렁이는 듯한 풍경은 이루 말 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게 다가왔다. 이렇게 수확한 크랜베리는 오션스프레이가 보유한 스무 곳의 수집 및 가공 시설로 옮긴 후 잘 말려 설탕 시럽을 가미한 건조 크랜베리와 시그너처 상품인 주스, 간식으로 먹기 좋은 크레이즌 등으로 만든다.

5 수확한 크랜베리를 싣고 온 트럭에서 수집 시설로 옮기는 모습. 마치 크랜베리 폭포처럼 보인다. 6 아시아・태평양 지역 전무 이사 아라빈드 체루쿠리Arvind Cherukuri는 한국 시장에 크랜베리를 적극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건강을 상징하는 새콤한 맛
인디언이 치료제로 사용하며 이미 오래전 부터 그 영양학적 가치와 효능을 인정받은 크랜베리. 오션스프레이의 리서치 과학 소장 크리스티나 쿠Christina Khoo에 따르면 크랜베리 맛에 아주 특별한 효능이 숨어 있다. 시큼한 맛을 내는 물질 속에 PACs라 불리는 프로안토시 아니딘이 풍부한데, 이는 항산화 물질의 일종으로 신체를 깨끗이 정화해주는 기능이 탁월하며, 몸에 해로운 박테리아를 효과적으로 감소해준다. 예를 들면 한국인의 경우 위궤양을 일으키는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프로안토시아니딘이 위벽에 박테리아가 들러붙는 것을 방지해주는 것. 또한 크랜베리는 요로 건강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7 매력 만점 식재료인 크랜베리는 추수감사절 식탁에 칠면조와 함께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50년에 걸쳐 크랜베리가 요로 건강에 좋다는 것을 입증했습니다. 실험을 통해 크랜베리 주스를 마시는 아이들이 요로염에 걸리는 확률이 65%나 감소한 것을 발견했어요.” 미국 비뇨기과 의사가 환자에게 약 대신 크랜베리 주스를 처방하는 경우도 이 때문인 것. 그뿐 아니라 크랜베리는 고농도의 폴리페놀을 함유해 혈액순환을 돕고, 혈압을 개선해 심장 건강을 유지하는 데도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크랜베리는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까? 매년 미국인이 소비하는 크랜베리양은 약 4억 파운드에 이른다. 그중 20%인 8천만 파운드가 추수감사절 기간에 소비된다. 미국인에게 크랜베리는 추수감사절 필수품이나 다름없다. 본격적으로 수확을 시작하는 9월부터 11월까지만 생크랜베리를 얻을 수 있는데, 이를 활용해 칠면조구이에 곁들일 크랜베리 소스를 만들기도 한다. 특유의 떫고 시큼한 맛이 강해 생으로 먹기 부담스럽다면 새콤달콤한 건크랜베리를 추천한다. 특히 건크랜베리는 베이킹에도 활용하기 아주 좋은데, 쿠키나 머핀 에 넣으면 식감을 끌어올리고 예쁜 색도 낼 수 있다.

대형 마트에서 주스를 사거나 종종 사 먹는 쿠키가 내 평생 크랜베리를 경험할 수 있는 전부라고 생각했다. 습식 수확부터 가공품을 만드는 과정까지 직접 본 것은 그야말로 평생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황홀한 경험 자체였다. 새콤한 맛 도 일품이지만 블루베리나 딸기와 비교했을 때 월등히 높은 항산화 효능까지 갖춘 크랜베리야말로 진정 이로운 과일이 아닐까.

취재 협조 오션스프레이(www.oceanspr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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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김혜민 기자 | 사진 박정우
디자인하우스 (행복이가득한집 2015년 12월호) ⓒdesign.co.kr, ⓒdesignhouse.co.kr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